랄프로렌 (Ralph Lauren)
폴로(Polo) 브랜드의 창시자 랄프 로렌(Ralph Lauren, 1939.10.14~)은 일반인들이 동경하는 상류사회의 스타일을 보편화한 디자이너다. 그는 단순히 상류층 스타일의 의상을 소개하기보다 상류층의 라이프 스타일을 함께 제시함으로써, 대중으로 하여금 그의 의상을 통해 누구나 특권층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었다. 이러한 환상 마케팅은 주류 계층으로의 편입을 꿈꾸는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인종들로 구성된 미국인들의 아메리칸 드림을 공략하는 데 성공하였다. 로렌 역시 가난한 유태인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자수성가하여 폴로 왕국을 이루어냈다는 측면에서 아메리칸 드림의 실현 가능성을 대변하는 상징적 인물로 자리매김하였다.
위대한 스타일리스트의 탄생
랄프 로렌은 1939년 뉴욕 브롱크스(Bronx)의 유태인 이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래 성은 리프시츠(Lifshitz)로, 유명한 랍비를 여럿 배출한 집안이었기 때문에 그의 어머니도 세 아들 중 한 명은 랍비가 되어주길 바랐다. 하지만 막내였던 랄프의 관심은 종교가 아닌 경제적 성공에 있었고, 그와 그의 형은 놀림거리가 되었던 성마저도 로렌(Lauren)으로 바꾸었다.
학창시절 로렌은 남다른 패션 감각으로 친구들의 주목을 받았다. 로렌은 두 형들만큼 잘생기거나 운동을 잘 하지도 못했고 집안 또한 넉넉하지 않았지만, 그는 항상 잘 다린 카키색 바지와 셔츠로 프레피 룩(preppy look: 미국 명문 사립고등학교 학생들의 교복을 본뜬 캐주얼 스타일)을 연출하였다. 그의 트레디셔널한 브랜드와 룩에 대한 집착은 고등학교 시절 캠프 루즈벨트에서 일할 때 접한 부유층 유대인 학생들의 옷차림은 물론, 영국신사 이미지의 영화배우 캐리 그랜트(Cary Grant)나 탭 댄스로 유명한 뮤지컬 배우 프레드 애스테어(Fred Astaire)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폴로의 창시: 폴로 선수 로고가 사회적 지위의 상징물로 부상하다
뉴욕 시립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며 패션 관련 판매원 일을 병행하던 로렌은 학교를 중퇴하고 실무를 통해 경영을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트레디셔널한 스타일의 의복을 생산하던 브룩스 브라더스(Brooks Brothers)를 거쳐 남성 넥타이 제조업체인 리베츠 앤 컴퍼니(Rivetz & Co.)에서 판매원으로 일하였다. 남성 넥타이를 판매하던 로렌은 당시에 유행하던 회색톤의 좁은 넥타이가 아닌 넓고 두꺼운 원단에 화려하게 수를 놓은 넥타이를 디자인하였고, 1967년 넥타이 제조업체인 보 브러멜(Beau Brummell)의 도움을 받아 폴로(Polo)라는 이름으로 이 넥타이들을 판매하게 되었다.
로렌은 자신의 넥타이를 스포티하면서도 우아함을 추종한다는 의미에서 폴로라 명명하였다. 로렌의 넥타이는 초기에 폴로라는 로고를 넣지 못하고 판매업소의 이름으로 거래되었으나, 디자인이 인기를 끌면서 곧 폴로라는 상표를 부착할 수 있게 되었다. 넥타이의 성공에 자신감을 얻은 로렌은 이듬해인 1968년, 의류로 제품을 확장하여 남성복 라인을 선보였다. 그는 기존의 브룩스 브라더스나 멜르단드리(Roland Meledandri)의 트레디셔널한 스타일과 차별화되는 섹시한 아이비리그 스타일을 발표하였다. 폴로 남성복의 인기를 감지한 뉴욕 블루밍데일즈(Bloomingdale’s) 백화점은 로렌의 제안에 따라 폴로의 다양한 제품을 한 자리에서 구매할 수 있는 폴로 바이 랄프 로렌(Polo by Ralph Lauren)의 첫 부티크를 열어주었다. 폴로 남성복 라인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1970년 로렌은 첫 코티(Coty)상을 수상하였다.
이에 힘을 얻어 1971년에는 여성용 테일러드 셔츠를 출시하였는데, 이는 남성복 셔츠를 여성용 사이즈로 제작한 것으로 소맷부리에 채를 들고 공을 치려는 폴로 선수 모습의 로고를 처음으로 수놓기 시작했다. 이 셔츠의 성공으로 폴로 선수 로고는 사회적 지위의 상징물로 부상하게 되었다. 하지만, 셔츠의 성공은 폴로라는 명칭의 옥스퍼드 셔츠를 1930년대부터 생산하고 있던 브룩스 브라더스와의 법적 마찰을 불러일으켰고, 로렌은 급히 폴로 뒤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폴로 랄프 로렌이란 이름으로 로고를 변경하였다. 후에 로렌은 브룩스 브라더스로부터 폴로의 상표 권리를 사들였지만, 오늘날까지도 폴로의 여성복 라인에는 랄프 로렌의 이름이 함께 씌어있다. 그는 셔츠의 성공에 힘입어 1972년 랄프 로렌 여성복 라인을 출시하였고, 1976년 여성복으로 두 번째 코티상을 수상하였다. 빠른 스타일 변화를 기본으로 하는 여성복 시장에서의 성공을 인정받음으로써 그는 디자이너가 아닌 재단사라는 불명예스러운 꼬리표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었다.
평범함에 새로움을 부여하는 탁월한 능력
오늘날 폴로 프레피 룩의 핵심 아이템인 폴로 니트 셔츠는 1972년 처음 소개되었다. 폴로의 니트 셔츠는 기존의 것을 바탕으로 변형을 가해 만들어졌다. 1960년대에는 30년대의 유명 테니스 챔피언인 르네 라코스테(René Lacoste)가 입었던 피케 니트 셔츠의 변형이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 하지만 이 라코스테 셔츠는 세 가지 색상으로밖에 출시되지 않았고, 소재도 폴리에스테르와 면 혼방이었다. 이 점에 착안한 로렌은 그의 디자인 팀과 아이디어를 모아 면으로 된 폴로 니트 셔츠를 24가지 색상으로 생산하였고, 이는 큰 인기를 끌어 오늘날까지 폴로의 상징적 아이템으로 남게 되었다.
기존의 것으로부터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해내는 그의 특별한 재능은 1970년 초 이탈리아 방문 일화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탈리아 방문 중 그는 한 레스토랑의 웨이터에게 간곡히 부탁해 그 웨이터가 입고 있던 슈트를 구입해 미국으로 가져왔고, 이 슈트에서 영감을 얻어 소프트한 숄더의 셔츠와 재킷을 자신의 컬렉션에 포함시킨 바 있다. 이 제품들은 소량만 생산해 희소성을 노렸고, 그 실용성과 평범치 않은 스타일로 큰 인기를 끌었다.
로렌은 그의 의류 라인을 통해 상류층 라이프 스타일과 접목된 다양한 테마의 아메리칸 스타일을 소개하였다. 그의 디자인 테마는 나바호 인디언에서 영감을 얻은 산타 페 룩(Santa Fe Look)에서부터, 아이비 리그 룩, 전원적 아메리칸 패밀리 룩, 퀼트를 비롯한 포크 아트 룩, 카우보이 룩, 식민지 시대 아프리카풍, 영국적 스타일, 1930년대 여배우들의 매니쉬(mannish) 스타일, 빈티지룩, 보헤미안 룩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다. 이러한 디자인 테마는 그의 아내를 비롯한 가족이나 지인들, 골동품, 영화 등에서 영감을 얻어 발전되었다.
폴로 랄프 로렌은 귀족적 취향과 트래디셔널의 대명사로 인정받고 있으며 정통적 브리티쉬 스타일에 미국적 특성을 가미한 포스트 트래디셔널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즉 영국의 정통성을 평범과 보편성을 내세우는 미국적 감성으로 승화시킨 것이 특징. 폴로 랄프 로렌에서 전개되는 상품 색상이나 스타일,
디자인을 구성하고 있는 모티브를 바탕으로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 의 마케팅 능력은 세계에서 173번째 부자로 만들어 주었으며 2006년 타임지에서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미국 부자들의 특징인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몸소 실천함으로써 미국인들의 존경도 한몸에 받고있다.
랄프로렌(Ralph Lauren).p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