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갔다 오지 않은 관계로 취업이 안 되어 일 년간 백수로 지낸 50년 전의 일이 생각난다. 아침이 되면 희망찬 하루를 맞이하며 다들 바삐 일터로 출근을 하는데 나는 갈 곳도 없고 할 일도 없으니 아침이나 저녁이나 그날이 그날이요, 개미 쳇바퀴 돌 듯이 매일 같이 같은 생활을 반복하며 30도를 오르내리는 복더위에도 방 안에서 솜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서 세익스피어의 전집을 읽던 일을 잊을 수가 없다. 심오한 의미를 찾는 것도 아니고 철학적 사고를 하려는 것은 더욱 아니지만 공연히 스스로를 옥죄며 무슨 깊은 사고를 하며 중대한 일을 하는 것처럼 엉뚱한 생활로 무위도식하면서 한 해를 그렇게 보내는 중에 어느 신문 기사의 모집 광고를 보고 우편으로 이력서를 제출하여 행운을 얻어서 1971년 2월부터 낯설고 물설은 경기도 면 소재지 시골의 작은 학교에 출근을 하게 되면서 백수 생활이 끝나고 내 스스로 밥벌이를 하게 되었고, 그렇게 들어가서 학생들과 몸으로 부대끼며 실망과 보람을 오고 가는 사이에 세월이 바람처럼 흘러 36년의 교직 생활을 마치고 퇴직을 한 후 제2의 백수 생활이 시작되었다. 취직을 하려는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애를 태우던 때와는 달리, 내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제도를 따라 때가 되매 물러나게 되었고 어쩔 수 없이 백수로 살아가게 되었다. 긴 세월 동안 한결같이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며 똑딱이 인생을 살다가 갑자기 자유인인 되니 그런 해방감도 흔치 않을 듯하고 시원섭섭함이 동시에 몰려드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모든 사람의 본능이리라.
나에게 1970년대 초가 제1기 백수 시대라면 2010년대는 제2의 백수 시대가 된 것이다. 제1기는 짧게 지나갔지만 제2기는 언제 끝날는지 알 수 없고 또 백수시대라고 하니 적어도 수십 년은 백수 생활을 피할 수 없는 것이 확실하다. 비록 백수가 되었지만 박정희 대통령의 획기적인 교사 처우 개선으로 한 해에 몇 십 프로의 월급 인상을 해주기도 하고 우리나라가 잘 살려고 하면 산업이 발달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기술이 발전해야 한다며 공업학교 기술이나 전기과 선생님들에 대하여는 월 5만 원씩 월급을 더 주며 사기를 진작시켜 주었고 일반 교사들도 퇴직 후의 삶이 안정되어야 현직에서도 성실하게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다는 당연한 교육철학을 실현하여 사립학교 교사들에게도 1975년 1월1일부터 연금제도를 도입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덕분에 퇴직을 한 후에 나라의 백년대계인 교육에 종사하며 국가 발전에 일익을 담당했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연금으로, 비록 부자는 아니지만 먹고 사는 걱정 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20대의 원기 왕성하던 제1기 백수 시대에 비하면 제2기 백수 시대는 몸은 많이 쇠하여 힘들지만 마음은 여유롭고 편안하니 그것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하며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안식구는 나의 백수와는 상관없이 예나 지금이나 하루 세 끼 식사 준비에 빨래와 청소 등 집안일이라는 것은 변화가 없고 표도 잘 나지 않는 것이 안 하면 금방 눈에 드러나는 집안일이 보통 신경 쓰며 힘든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백수가 되고서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하면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집안 일을 될 수 있는 대로 안식구를 거들며 작은 것이라도 함께하면 한결 힘도 덜 들고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여 되는 대로 손을 맞대고 같이 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집 안 청소는 거의 내가 담당하고 단지 내 마트 심부름은 전담하다시피 하며 큰 마트나 농산물 시장에 갈 때는 기사 노릇을 한다. 그리고 쓰레기 분리수거 하는 것은 물론 반찬거리 손질할 때도 같이 하면 훨씬 쉽고 시간도 절약되며 안식구에게 점수도 딸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라고 할까? 식사를 하고 나서 안식구가 설거지 하는 동안 식탁을 행주로 문지르고 혼자 있을 때는 스스로 챙겨 먹고 설거지를 깨끗하게 해 놓는다. 그 외에도 나에게 필요한 것은 내 손으로 해결하는 것이 아내를 돕는 일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잠자리에 누운 채 스트레칭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오늘도 건강하게, 안전하게 잘 지내고 나에게 주어진 삶의 몫을 넉넉히 감당할 수 있게, 그리고 자녀들의 현재와 미래의 삶에 충실하며 축복해 달라고 기도하는데 특히 사랑하는 손주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마음을 모아 기도한 다음 이부자리를 개는 것은 당연히 내가 할 첫 번째 일이요, 조탁법으로 머리 두들기기를 하고 양치와 세수를 한 후 정식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늘 같은 내용이지만 순서대로 계획된 것을 그대로 진행하고 나면 마음이 편하고 하루가 수월하다.
일어나서 밖으로 나오자마자 건강을 위해서 둥굴레 차를 한 컵 마시고 공식적인 일과 중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성경 필사다. 지금 두 번째 하고 있는데 첫 번째 필사를 할 때는 대중 없이 여기저기 필요한 곳이나 중요한 내용을 먼저 시작하였고 하다 보니 전부를 하게 되어 약 3년이 걸려서 마무리를 하였다. 그런데 다시 두 번째는 정식으로 색깔이 짙은 북청색 대학노트 4권을 먼저 장만하고 아주 부드럽고 글씨가 잘 써지는 외제 볼펜 3박스를 준비하여 처음부터 순서대로, 2019년 10월에 시작하여 이제 마무리 단계에 왔으니 며칠만 더 하면 완성할 것 같다. 그러니까 꼬박 2년이 걸리는 셈이고 첫 번째보다는 일 년이 빠르다. 하루에 약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를 하는데 필사를 하는 동안은 전혀 잡념도 없고 지루하거나 싫다는 생각이 나지 않아서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하며 성경 필사를 해야 하루의 생활도 편하고 즐겁다. 마음을 편하고 즐겁게 필사를 할 수 있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생각으로 늘 감사한 마음과 한편으로 의무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고 있다. 아침 식전에 약 1시간 정도 하고 제 몫을 다 못 채우면 오전에 마저 채운다. 별다른 일이 없으면 오전에는 성경 필사를 최우선으로 하고 필사가 끝나야 편안한 마음으로 인테넷 검색도 하고 메일 쓸 것이 있으면 메일을 쓰고 때로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서 제출을 하거나 공제회에서 발행하는 소식지를 읽고 퀴즈를 풀기도 하고 주요 기사에 대한 삼상문을 써서 제출하기도 하며 기행문이나 시를 쓰면서 하루를 보내는 편이다. 틈틈이 바둑은 취미로 즐기고 집안에서도 간단한 근력 운동과 걷기를 하기도 한다. 또 지나간 추억을 되살려 대학 시절에 하던 캠핑과 무전여행 그리고 수학여행의 사진을 들춰보기도 하고 무엇보다 좋아하는 것은 전국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하던 여행이나 길위의 인문학 여행을 하고 쓴 기행문을 다시 읽기도 하며 명상을 하는 시간은 시간도 잘 갈 뿐만 아니라 정말 즐거운 시간이다.
나의 일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산행이다. 퇴직을 한 후 4개월 뒤에 시작한 산행이 어언 12년 반이 되었고 한 주에 두 번씩 하는 산행 기록이 1000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월요일은 정기 산행하는 날이다. 퇴직하신 선생님들과 함께 하는 월요 산행은 가장 마음이 편하고 즐거운 날이다. 오전 10시 30분에 만나서 보통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산행을 하고 숲속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먹는 도시락 맛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식사를 하고는 서너 시간 한가롭게 놀다가 하산하여 당구도 치고 저녁을 먹고 나면 깜깜한 밤이 되어서 헤어지곤 하였는데 코로나 때문에 요즘은 하산하면 바로 헤어져서 집으로 오니 환한 시간에 집에 와서 씻고 여유 있게 저녁을 먹을 수 있으니 그 또한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산행한 지 10년 동안 전국의 산을 찾아서 여행 겸 원정 산행을 한 횟수도 약40회 정도가 되니 한 해에 서너 번은 원정 산행을 한 셈이다. 주로 산속의 자연휴양림에 예약을 하여 먹을 거리를 준비해 가서 직접 식사를 해 먹고 밤이 늦도록 놀다가 다음날 산행을 하고 서울로 돌아오면 늦은 저녁이 되곤 하였고 해마다 연말이 되면 송년회 겸 산행 여행을 하다가 2020년 말에는 코로나로 송년회도 못하고 아쉽게 그냥 지나가고 말았다.
나의 백수로 살아가는 방법으로
첫째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한다는 것이다. 언제나 원칙에 충실하는 것이 내 삶의 방식이었고 지금도 그것은 변함이 없다.
둘째는 먹는 것에 대해서는 투정을 하거나 요구하지 않고 안식구가 하자는 대로, 또 하는 대로 하며 주는 대로 먹는다. 원래 나는 밥보였다. 밥이 아니면 끼니를 감당할 수 없었는데 백수가 되고부터는 샌드위치나 빵, 떡볶기 등으로 간단하게 저녁 식사를 하는 것도 아무 문제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하게 되었다.
셋째는 작은 것이라도 옆에서 거들며 일손을 보탠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할 수 있는 대로 집안일이며 반찬거리 등 안식구의 하는 것에 같이 하여 힘들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것이 나의 진심이다.
넷째는 절대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안식구는 간간이 잔소리를 하지만 거의 응대를 하지 않는다. 누구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잔소리 듣는 것을 너무나 싫어하여 듣기는 하여도 하지는 않는 것이 내 방법이다.
다섯째는 음식은 언제나 맛있게 먹는다. 안식구가 한 음식은 싱겁다, 짜다 등 일체 토를 달지 않고 맛있다고 하며 먹는 것이 피차에게 좋다. 그래야 실제로 맛도 있고 몸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한다.
여섯째는 집 안에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될 수 있는 대로 움직이며 틈나는 대로 근력 운동이나 스트레칭을 하며 하루에 만 보 걷기를 실천한다.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고 만보 걷기를 실천하여 캐시를 쌓은 것으로 햄버거를 바꿔 먹는 재미가 정말 쏠쏠하다.
아침 식사를 하고 아침 방송을 보고 할 일을 하고 나면 컴퓨터를 열고 메일 검색과 응모할 것 등을 처리하고 정기적으로 은행 계좌에서 이체할 것은 이체를 하고 한가한 시간에는 컴퓨터 바둑을 두면서 심심풀이를 한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고 나면 잠시 하루의 일들을 돌아보며 ‘나의 후반기 삶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일기를 쓰고 티브이를 보다가 10시에서 11시 사이에는 잠자리에 들면서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한다.
백수가 살아가는 방법 중에 제일 중요한 것이 알아서 하는 것이고, 시키는 대로 하면 만사가 편하다.
성경 말씀에 이르지를 염려한다고 키를 한 치라도 더할 수 있느냐고 한 것처럼 우리가 하는 염려의 80~90% 이상이 쓸데없는 것이라고 하니 공연히 애태우며 마음 상하게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사람이 살아가는 중에 스트레스가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만병이 스트레스에서 시작된다는 말도 있듯이 내 건강을 지키는 방법도 항상 즐겁게 사는 것이 제일이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항상 즐겁게 사는 나의 방법 중에 제일은 여행을 하는 것이다. 학창 시절부터 시작한 나의 여행은 지금도 진행형이요 틈만 나면 인문학 여행이든 안식구와 가든 아니면 우산회원들과 산행 여행을 하는 것이 온갖 시름 다 떨쳐 버리고 마음이 편하고 가장 즐겁고 행복하다.
교사 초창기 시절에 농촌 학교만이 누리는 별미로 농번기 가정 실습으로 3~4일 쉬게 되는 틈을 이용하여 선생님들과 배낭을 메고 산행을 하면서 깊은 산속에서 마음속에 쌓였던 언짢은 기억과 마음 상했던 것들을 고함을 지르며 입으로 내뱉고 또 미운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한바탕 욕을 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확 풀이고 가슴이 뻥 뚫려 돌아와서는 편안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던 기억이 새롭다.
남은 날이 얼마일지 모르지만 건강하게, 그리고 마음만은 편하게 사는 것이 나의 가장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