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증폭사회'저자와 '88만원 세대'저자의 한국사회진단 -1
김태형의 『불안 증폭 사회』는 한국인의 불안심리가 개인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정치.경제.사회 등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힌 책이다. 보수 우파가 개인 문제든 사회문제든 모든 것을 개인 문제로 치부하는데서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에 비해 이 책은 한국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잘 짚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저자는 386세대의 전형적인 인물로서 사회운동에 오래 몸담고 있다가 40대 즈음에 전공인 심리학을 본격적으로 다시 공부하여 저술작업을 하고 있다.
이 책에는 저자의 삶의 역정과 386 세대가 지니고 있던 사회 인식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심리학 이론을 토대로 한 저서라기보다는 운동권 출신의 사회비평 에세이에 가깝다. 다만 이 책에 심리학 관련 글이 있다면 저자가 끝머리에서 한국 심리학자자들의 사회발언은 ‘근원적인 오류가 있는 프로이트주의’와 ‘사회진화론에 근거하고 있는 미국 주류 심리학의 오류’ 등의 잘못된 심리학 이론에 근거하고 있어 전혀 타당성이 없다며 한국심리학계를 질타하고 있는 점이다.
이에 저자 김태형은 다윈의 진화론에 입각해 인간 심리를 분석하는 서구의 진화심리학은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사회적 동기가 더 강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행태를 동물적 본능이라는 관점에서만 해석하는 것은 명백히 엉터리 이론이라고 주장한다.
가령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가 “나이 많은 돈 많은 남성과 미모의 젊은 여성이 결합하는 이유를 단지 번식 욕구”로만 설명하고 있는 것이나,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이 “중년 남성이 룸살롱에 가고 터치폰을 사는 이유를 수컷 특유의 ’비벼대는 본능'으로 분석하고 있는 것 등을 예로 들었다. 이에 김태형은 "사람에게 마음의 병을 유발하는 사회적 요인이 70%라면 개인적 요인은 30%다"라는 말로 사회 현실과 개인의 행불행 사이의 연관성을 요약한다. 서구의 학문을 기계적으로 수용해온 그동안의 실태에 대해 과감하게 문제제기를 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문제는『불안 증폭 사회』에 결정적 흠이 있는 것이다. 김태형은 심리학자로서 사회 전체를 균형적인 시각에서 보지 않고 자신의 철학이자 세계관인 진보 좌파적 입장에서만 한국사회를 분석했다는 점이다. 과거 운동권 글의 수준과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특히 사회적 약자나 탈락자, 소외된 소수자 등의 문제를 다루면서 이것이 마치 한국사회 전체를 대표하는 것 같이 기술한 것은 매우 편협한 논리이다. 실제로 책 곳곳에는 객관적인 서술보다는 정의와 의협심에 불타는 열혈 사회운동가의 분노와 적개심이 정체되지 않은 채 표현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한국사회의 부정적인 모습만 부각시키고 말았다.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한쪽 면만을 보는 진보 좌파 출신의 사회인식이다. 나 자신 ‘휴비 담론’에서 한국 사회를 위험사회로 보는 여러 사례를 제시하는 글을 썼는데, 이는 인도주의적인 측면에서나, 경제적 측면에서나 위험사회를 그대로 놔둘 경우 후에 더 큰 댓가를 치루게 될 사회적 비용에 대한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김태형의 책은 현재의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체제를 모든 악의 근원으로 보고는 단죄만 하였지 구체적으로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심지어 한국인이 모두 정신병자 상태에 처해 있다고 경각심을 주면서 오히려 저자 자신이 한국 사회의 불안을 조장하는 면도 있다. 그리고는 단지 건강한 정치세력이 나와야 한다고 희망하는 정도이다.
한편 또다른 386세대인 경제학자 우석훈은『88만원 세대』를 통해 신자유주의적 경제구조가 만들어낸 한국사회의 비정규직 청년 고용실태를 적나라하게 분석하여 상당한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우석훈 역시 진보 좌파적 입장에서 한국 사회의 병리 현상을 예리하게 지적하고 있다. 386세대의 문제인식을 여전히 유지하면서 왕성하게 저술 작업을 하고 있는 우석훈과 김태형의 두 저서를 계기로 인터넷 언론 사이트인 프레시안에서 두 사람의 좌담을 마련하였기에 참고삼아 소개한다.(편집자 註)
프레시안 : 심리학자가 사회 비평에 뛰어든 예는 많지 않다. <불안 증폭 사회>를 놓고 "1997년 외환 위기 이후 달라진 한국인의 마음에 주목한 심리 보고서"라고 설명했다. 이런 책을 쓴 이유는 무엇인가?
김태형 : 외환 위기 이후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경제 중심의 사고를 벗어나지 못했고, 그 속에서 사람이 병들거나 망가지는 일에 등한시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심각하게 병들었다. 이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고 대처하지 못하면 사회 발전이 힘들 거라고 봤다. 이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 위해 책을 썼다.
우석훈 : 이 책은 그동안 심리학을 개인 차원으로만 환원했던 것에서 벗어난 시도라 반가웠다. 최근 한국 사회를 보면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고방식에 있어서 두 가지 극단적인 경향이 있다. 하나는 경제 근본주의고 하나는 개인 환원주의다. 후자는 문제의 원인을 개인 심리에 돌리고, '너만 잘하면 돼'라는 식의 긍정적 사고를 해결 방법으로 삼는다. 말도 안 된다. 당장 입에 밥이 안 들어가는데 긍정적 사고가 뭘 바꾸겠나.
한국 사회의 미학, '삼성은 아름답다'
프레시안 : 얼마 전 김규항 씨가 고등학교 교사인 지인으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다고 한다. 반 아이에게 사회 비판 의식을 길러주기 위해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게 했더니 의외로 "이건희처럼 되고 싶다" 이런 반응이 나왔단다. <불안 증폭 사회>에서 병인(病因)으로 진단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이기심, 경쟁 심리가 교실까지 지배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일화인 듯하다.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김태형 : 아이들의 이기심이 강한 건 그만큼 어린 시절부터 신자유주의적 경쟁에 내몰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래도 공동체 속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다. 대학 시절 과 분위기만 해도 하나의 단결된 분위기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아니다. 어린이집에 들어가면서부터 철저한 경쟁 구도가 펼쳐진다.
어른들은 경쟁에서 이기는 아이들을 칭찬해 준다. 아이들은 가장 큰 행동 동기가 '부모의 사랑'이기 때문에 그걸 얻기 위해 경쟁 구도 속에서 철저히 이기적인 존재로 자라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은 사랑하기 어려운 존재, 공동체 개념이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우석훈 : '다방구'를 모르는 세대들이 더하다. (웃음) 그런데 이건희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은 이기심 외에도 다른 것들이 겹쳐진 것 같다. 과거 한국에선 군인이 영웅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CEO가 영웅으로 떠받들어지는 시대다. 재작년인가 초등학생, 유치원생들 데리고 생태 캠프를 했는데 다섯 살짜리 남자애한테 "뭐 되고 싶니"라고 물었더니 "CEO 되고 싶어요"라더라. 그리고 1970년대부터 관찰된 현상인데, 한국엔 메갈로매니아(megalomaina, 과도한 권력욕)에 대해 미학적인 집착을 보이는 이들이 많다. 거대한 것에 대한 사랑과 동경이 강하고, 지금은 그게 돈에 집중되고 있다. 그래서 돈 잘 버는 회장님을 볼 때 부러움을 떠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다.
김태형 : 아름다움과 추함을 느끼는 것 자체가 사회적 동기와 관련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게 돈을 많이 벌고 출세하는 게 가장 큰 동기라면, 그런 걸 체득한 사람이 가장 아름다워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이건희를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회라면 돈과 출세, 경쟁에서의 승리라는 동기가 강한 사회인 셈이다.
우석훈 : 내가 아는 어떤 삼성 직원의 부인은 TV에 이건희 회장이 나오면 고맙다고 절까지 한다고 한다. 연말에 보너스를 그렇게 많이 주니까 저절로 절이 나온다는 거다.
김태형 : 삼성은 직원들에게 특등 대우를 해주기 때문에 경제적인 불만을 가진 이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석훈 박사가 얘기한 것처럼 회사가 무슨 봉건 영주처럼 회사원에게 시혜를 주듯 하고, 회사원들은 "감사합니다" 하며 받는 방식으로 관계가 유지되다 보니 권리 의식이 없다. '삼성맨'은 왠지 일은 귀신같이 잘 해도 창의성이나 활기는 있을 것 같지 않다. 의존심이 강할수록, 권리 의식이 없을수록 그렇다.
家苑.政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