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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다 평생을 좌우하는 수구초심의 핵심이 되기도 한다.
최불암선생님이 주연을 맡았던 수사반장 지금도 잊을 수 없고 형사시리즈의 금자탑을 쌓은 것도 사실이다.
그시절 내 마음속에 강한 인상을 남긴 사건이 있었다. 내용인즉슨 어느날 큰기업체 사장이 별장에서 살해당하고 혈흔이 남는다. 감식결과 그건 사람의 피가 아닌 노루의 피였고 사건 중간중간에 총을 든 사람들이 산에서 노루를 쫓는 장면이 여럿나오고 잡은 즉시 여러명이 둘러싸 피를 마셔댔다. 너무나 끔찍했다 산짐승이 무슨 죄가 있다고 ...
초등학교시절 운동장 한쪽에 새우리가 있었다. 학생들보라고 여러종류의 새를 가져다 놓았고 우리중간을 1/3로 나눠 철창속에 부엉이를 한 마리 가둬놓았다. 그걸 꾸며놓은 학교의 의도는 지금생각에 아이들 학습에 도움이 되라고 하셨겠지만 새들은 가끔 알을 바닥에 낳고 그걸 다른 새들이 까먹는다. 철창속 부엉이도 1칸도 안되는 공간에 있다 우리가 보는 부엉인 모두 야생에서 잡아온 것들이다.! 에버랜드를 가건 대공원을 가건 야생에서 잡아온 것들 투성이다. 내 생각엔 밀렵에서 겨우 살아남았지만 날개를 다쳐 날지못하는 새들을 우리에 전시용으로 두고 이렇게 야생에서 잡아온 새나 야생 적응 훈련만하면 얼마든지 야생에서 살 수 있는 새들은 자연방사하는 것은 어떨지 너무 늦은 나이에 생각해본다.
시골에선 부엉이 눈을 먹으면 눈이 좋아진다고 하여 부엉이를 잡아 먹는다.
눈이 좋아지는건 좋지만 최소한도로 줄어든 부엉이수가 이들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을까 이렇게 줄어들었기에 속초,양양쪽 관청에 수리부엉이가 날아들었다는게 뉴스에 방영될 정도가 었지.
중학교시절 건물 뒤쪽으로 숲이 있었고 서무과에서 작은 우리에 공작새 한 마리를 구해서 길렀다. 수업시간마나 00울어대고 그 소리가 웃겨 우리는 그때마다 웃었다.
어느날 한 선생님이 욕을하신다 ‘서무과놈들 멀쩡한 새를 움직이기도 힘든 우리에 가둬놓고 뭐하는거냐고’
이등병시절 훈련소에서 자대배치받고 부대 뒷산을 넘고 있었다. 그시절 우린 아무런 자치권이 없었고 군견보다 못한 신세였는데 옆에 가던 서울동기가 산비들기를 보자 돌을 주워던지기 시작해 내가 말렸다 무얼보면 우선 못먹어도 잡고보자는 심산일까 서울출신이니 털이라도 제대로 뽑을줄 알까 주방가면 고참이 수두룩하고 아는 얼굴도 없고 우리소대 가지고오면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집에 가져갈 수도 없고 그냥 생각없이 던진 것이다 우선 잡고보자고
등산하면서 이런일 여럿겪었고 가장 기억에 남는건 제주도로 졸업여행을 갔을 때 늦깍이로 들어온 친한형이 ‘백록담에 가면 에델바이스가 있대 그거 내일 따자’ 그런다. 그래서 내가 바로 옆에서 그랬다. ‘그거 따서 뭐하게요’ 그랬더니 그 모범적인 사람이라고 소문난형은 입을 다물고 나와 시선도 못마주쳤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건 에델바이스가 아니고 그것과 비슷 한 솜다리라는 꽃일뿐이었다. 조용필펜사인회에 갔는데 조용필이 아파서 못오고 대신 조용필과 똑같이 생긴 그의 사촌이 대신 사인해주면 사인받을 맛이 나겠는가.
조그만 나무배의 구멍 메우는거 어려운 일 아니다 하지만 호수 한가운데서 배의 구멍을 발견했을땐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유기견, 고양이문제 철거하는집들의 정원수들 구청에서 해결해줄 수도 있을텐데 구청이나 동사무소의 유휴인력중 이쪽일에 재능이 있는분 몇분을 투입시키는건 어떨까.
북한산정상에 갔다 경치가 좋았다 돌아서는데 산짐승 아니 고양이가 어슬렁거린다. 산입구엔 흔하게 보이는게 고양이다. 언제 등산할땐 먹다남은 산비들기 시체가 보인다 거리에서도 비들기나 참새 사냥하는 고양이를 가끔씩본다.
냉골쪽 매표소는 한적하여 작은 암자와 군초소 그 앞에 치킨트럭이 있다 또 조금 밑에 가정집같은 법당이 있고 그앞 숲속에 유기견을 버려놨다 어느 할머니가 그개를 끌어안으면서 ‘어휴 나쁜사람들 이렇게 버릴거면 키우지나 말지 이리온’ 하신다 참 인자하신 분이시다 닭트럭 앞에선 사람들이 먹다버린 치킨뼈다귀를 서! 로 먹겠다고 닭뼈를 서로 물고 다니는 유기견들 개는 닭뼈 먹으면 죽는다고 어른들이 그러시던데 걱정된다.
아차산에서는 어느 아주머니가 산속에서 버려진 고양이들을 모아 놓고 키우신단다 그 뜻은 좋으나 그렇게되면 고양이들이 그 작은산을 돌아다니며 얼마남지않은 작은새,청설모, 다람쥐등 몇 안 남은 작은 산짐승들을 모두 싹쓸이 할텐데 걱정이다. 구청이 개입하면안될까.
그럼 다른산들은 어떨까 고양이나 개를 이길 야생동물은 남아있을까 있어봐야 깊은산에 남아있는 오소리나 얼마 안남은 살쾡이가 전부일 것이다.
예전 대학2학년때 소양댐속 산막골로 농촌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었다 마을에 군데군데 고양이들이 새 끼 들을 키우고 있었고 마을분들왈 ‘여기서 다람쥐가 없어진지 꽤되었어 고양이가 하도 많아서’그 곳은 원시림이던데 20년이 지난 지금은 어디까지 고양이들이 번식처를 넓혀나갔을까 일본책 ‘숨겨진 풍경’을 읽었다 유기견과 유기고양이에 관한 실체를 보여준다. 일본에선 이미 그런일에 대해 관청이 관심을 가지고 팔을 걷어부쳤다는데 우린 왜 이렇게 더딜까
산에서 돌아다니는 개나 고양이 길에서 돌아다니는 동물들도 알고보면 집에서 기르던 애완용이었을텐데 구청에서 다 받으면 될텐데 길고양이를 죽이자는 의견과 안된다는 의견이 팽팽이 맞서서 고양이를 정관수술하는쪽으로 방향을 잡았다지만 안락사를 안시키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고양이를 모두 정관수술시키자니 감당할 방법이 없다고한다.
난 지금 모두 모아 안락사 시키자는 이야기가 아니고 모두 모아 제3의 해법을 찾으면 안될까하는 것이다 일본속담에 사람셋이 모이면 문수보살의 지혜가 생긴다는말도 있지않던가
철거하는 단독주택들이 많아지고 골목이 사라진 자리엔 성냥갑같은 아파트들이 들어선다.
인간미가 없어지는 현장을 보며 안타까움만 느껴진다. 철거되는 주택의 정원수는 그냥 철거되는 벽돌더미에 묻혀 폐기되는데 그거 키우는데 공이며 시간이 얼마나 들었을까 그 나무들 구청에 신고하면 그거 수거해가 하천변이나 주변산 아니면 인터넷을 통해 필요한 사람들에게 분양할 수도 있지않을까
난 어릴적 소년중앙이란 잡지를 1년간 구독한 적이 있다. 거기서 독일개구리 이야기가 나온다.
개구리 이동로에 도로가 나 개구리들이 지꾸 깔려죽자 시에서 개구리들의 이동통로를 만들어 주었다는 이야기다. 세월이 흘러 포천에서 동문의 결혼식이 있어 차를 태워주러 포천까지 야간운전을 한적이 있는데 부슬비가 내리던 밤 내 앞에 난데없이 개구리떼가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는 것이었고 이동하는 그 순간 난 당황했지만 차를 세울 생각을 못하고 그대로 지나갔다 내 생각엔 십여 마리는 압사시켰을거라 짐작이된다.
그 개구리들 그런 패턴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지금쯤 그곳개구리는 멸절되어 있진 않았을까 독일이 부럽다.
지금 내 모습은 어떻고 우리의 자화상은 어떻고 해외의 현실은 어떨까 그리고 그 대안을 어떻게 찾아야지될까 북한산 칼바위능선에 갔다 입구에 자연휴식년제라 출입을 통제한다고 안내문을 본다 내가 머뭇머뭇하다 돌아서려니까 어느 아주머니 한분이 ‘아 이렇게 넘어가면되지 빨리와요’하며 가는 것이다. 난 그래도 돌아서 갔다 그후 친구와 지리산을 간다 5월이었다 치밭목 산장으로 올라가는 마을인데 철조망에 6월전까지 자연휴식년제란다 하지만 이제까지 투자! 한게 아까워 난 거길 넘어가 2박3일 완주를 한 기억이 나고 노고단에 도착했을 때 국립공원관리소직원과 옥신각신 싸우던 기억들..,
내가 일하며 쉬던 골목길에 예쁜 진달래가 하나 있다 어느 초등하교 여학생이 예뻐서 탐이났던지 들여다보다가 가지 하나를 꺾는다 그리고 몇초후 그냥 버리고 간다. 신기한 걸 손에 가져넣어봤으니 이젠 필요없다는 것일까 난 카페는 잘 안가지만 언제 한 번 너무 마음에 드는 스푼이 있어 슬쩍했다. 집에 와서 꺼내놓으니! 감흥이 없었고 그후 그 스푼 쓴 기억은 없었다. 분위기에 매료되었던걸까.
우리는 냇가에서 올챙이와 다슬기 작은물고기를 잡고 집에 온다. 그리고 며칠 기르다 감흥이 없어지면 그냥 한 두 마리씩 죽어가는걸 지켜보다 그걸로 끝이다. 그걸 전국의 아이수 곱하기 잡은 마리수해보자 얼마나 많은 생명체가 우리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 위하여 죽어가야만할까 과거 방학숙제로 내주던 곤충채집도! 그래서 사라진건 아닐까 그냥 시냇가를 지나며 관찰하며 즐기는걸로 만족하는 교육을 시키면 해결될텐데 학교교육은 아직 이런덴 관심 없나보다 생명체보다 아직도 밥그릇교육이 더 중요하니까.
박정희대통령 당시 소양댐에 육영수여사와 함께 비단잉어를 풀어놓으셨다. 기념으로 이스라엘 잉어인 향어가 들어오고 베스나 블루길도 농가소득을 위해 들여왔지만 오히려 생태교란 생물이 되고 말았다 일산호수공원도 블루길과 베스외엔 1m잉어 빼놓곤 모두 전멸했다한다.
농가소득을 위해 황소개구리와 남미산 뉴트리아가 들어왔지만 수지가 맞지 않아 모두 풀어놓고 농민은 어디로 가버렸다고 한다. 방법이 없진않아 보인다. 황소개구리나 베스요리전문점에 세금 면제 혜택을 준다든지 뉴트리아 모피전문회사에도 무슨 혜택을 주면 생태교란 생물은 금방 자취를 감추지 않을까 지하철역이나 여! 러곳에서 쉬리등 민물고기를 큰 수조에 기르는걸 본다 관상용으로 또 양평 들꽃수목원에선 베스나 블루길 새 끼를 열대어수조 모양에서 기르는걸본다 예뻤다. 이런 생태교란 생물을 잡아다 그르면 될걸 씨가 말라가는 토종생물을 잡아다 전시한 다음 죽으면 버리는 과정을 꼭 되풀이해야할까
예전에 일요일일요일밤에란 프로를 김병조씨가 진행할 때 대만사람들이 한국빈대가 정력에 좋다고 소문이나자 빈대잡으러 몰려온다고해 웃은 기억이난다. 정력에 좋다고하면 싹사라지는 것 같은 혜택을 주면 생태교란 생물은 금방 자취를 감추지 않을까 지금 실업난도 심각한 상태던데...
군대시절 동기중 한 놈이 원양어선을 타다가 왔는데 참치캔은 진짜 참치가 아니라 한다 게맛살도 동태살인것처럼, 요즘 TV에서 자주본다 참치를 통째로 잡아다 회를 뜨는 장면을 장자연씨가 나왔던 꽃미남4인방등 여러 프로에서 한다 참치도 국제보호어종이지만 일본사람들이 퍼뜨린 나쁜 입맛이 우리나라에도 번져 참치집이 우후죽순 생긴다. 이런 장면을 넣는 작가나 PD행복할까.
과거 해양수산부에 민원을 낸 적이 있다. 친구하나가 사당동에서 모텔을 하고 그 앞엔 횟집골목이 성업중이었다. 세집중 한집꼴로 어른팔만한 상어가 한 마리씩 있었다 상어는 양식안되는 물고기인데 그후 구의시장 작은 시장횟집에서도 상어 한 마리가 보인다 아니 이런데까지 상어 민원을 냈고 얼마후 전화가 왔다! . ‘거기가 어디냐고 내가 나가 보겠다고’ 당당한 목소리에 딱히 지목을 못하자 그 직원은 답답한 듯 전화를 끊어버렸다. 내가 왜 그때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을까 전국 곱하기 사당,구의시장 횟집하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잃어버린 아이디어는 바 보의 생각보다 못하다 했거늘 남희석(?)씨가 MC를 보았던걸로 기억되는데 스튜디오에 상어한마리와 요리사 그리고 영양전문가가 계셨다 요리사는 수조에서 헤엄치던 상어를 꺼내어 도마에서 즉석회를 떴고 출연자들은 그 회를 한점이라도 더 먹으려고 웃긴포즈로 움직인다 그 와중에 전문가는 상어고기는 어디어디에 좋다는 설명 한다 신문이나 인터넷에서본다 참치회를 나체 여자몸에 얹어서 먹는게 유행이라고 로마가 망할때와 똑같은 모습들이다.
옛날 아르바이트하던 닭갈비집사장님이 공급업체에서 대접을 한다며 다른 닭갈비집사장님과 나를 데리고 춘천 소양댐부근으로 가셨다 거기선 오소리를 잡았다며 쓸개를 소주에 타서 대접했고 오소리 고기도 삼겹살식으로 구워 대접한다 오겹살비계부분만 먹는 느낌이었다.
나오는길에 마당에선 갖잡은 꿩의 내장을 빼고 있었다. 당신이 만일 산골에 산다면 산에서 산짐승을 잡아먹겠는가 하림닭고기를 사러 읍내까지 나가 사먹겠는가
지리산반달곰 적응사업중 적응을 가장 잘하던 낭림19호가 사라져서 추적해보니 어느 농가의 덫에 걸려 죽은지 오래되었고 농가는 발뺌을 한다 산에서 어쩌고하며 순박함을 가장한 위선자들 강촌쪽에 친구가 산다.동네를 도는데 올무투성이다 올무마다 토끼털이 묻어있다 토끼는 가던길만 간다고 얼마후 그 위쪽 숲엔 한화가! 골프장을 지었고 강촌역 바로 뒤엔 현대가 리조트를 지어 촛대바위가 무너진다며 그 좋던 강촌역에 콘크리트 지붕을 만들었다. 양양쪽에서 뒷숲에 덫을 제거하는데 수없이 나왔다 동네에서 우리가 설치한 것이 아니라며 화를 낸다 뭐라 그러는데 내가 주관적으로 보기엔 마을사람들 소행인 것 같다 김대중대통령 시절 영동지방에 큰산불이 났는데 덫에 걸린 짐승들이 도망을 못가고 타죽는걸 보며 안타까워하던 모습들을 듣는다.
진도에 박씨 집성촌이 자기 고향이라며 놀러가자고 해 멋모르고 따라간적이 있다 고향형이 차를 태우더니 밭을 돌아다니며 엽총을 쏴댄다 그리고 꿩과 산비들기 한 마리씩을 잡아 대접한다. 난 산비들기고기만 먹었는데 토속순대맛이었다.
군시절 잔치가 열리면 부대원중 누군가 소를 잡는다 하는데 누군가 했더니 나중에 음식점보조로 일할 때 만난 친구가 자기가 그런 일을 부대에서 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 돼지나 소를 먹을 때 자기는 뒤에서 담배만 피웠다고하면서 옛날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느날 밭일을 하는데 왠 어린 고라니가 자기에게 오더란다 그래서 그 고라니에게 주사바늘을 꽂고 피를 빨아먹었다며 낄낄거리는 거였다. 사냥꾼도 품안에 들어온 새는 안잡는다고 했거늘.
어느 시골출신 신참은 고참에게 잘보이기 위해 부대뒤산에 그물을 치고 뱀들을 잡아 머리주변부만 또로로 감아 이게 몸에 가장 좋은 부분이라며 바친다는데 그런 신참이 한둘이겠는가.
성신여대부근으로 알고 있다 가로수가 부러져 지나가던 사람이 그것에 맞아 죽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우리부대장은 별세개인데 사저부근에 사람셋이 감을 정도의 큰 나무를 자르라는 것이다. 우린 하루종일 걸려 그 나무를 잘랐는데 넘어지면서 아스팔트에 사람키 두배만한 지름이 생길정도의 구멍이 날 정도였고 거기있던 ! 까치둥지엔 깨진 알이 널려있었다. 그 위에서 넋나간 까치 한 마리가 멍하니 있었다. 우리 모두 분노했다 그후 이상한 일이 생겼다.
우리 소대에서만 계속 사고가 났다. 야구하다 다치고 작업하다 베이고 불피우다 다치고 나도 눈주위에 몇바늘 꼬맸고 우리는 병신분대를 만들고 낄낄거렸다 문제는 다음부터다 그후 내가 제대후 우리부대로 대통령이 왔는데 대통령축사후 그 별 세 개는 대통령께 경례를 안했다고하는 신문을 보았다 그리고 짤렸다 우연일까.
가야산 해인사 유명하다 정문앞엔 신라 진성여왕이 심은 버드나무가 우편에 있고 1945년에 죽었다고 안내문에 써 있지만 아무도 안건드린다. 고려8만대장경과 그것을 보관하는 조선초기의 건물 멋지고 기분도 좋았다 절 뒤편으로 가니 무슨 암자로 가는 길을 닦는다는데 사방에 덤프트럭이고 무슨 암자까지 물건을 실어나를게 많다고 덤프트럭이 두 대가 교차해서 지나갈 정도로 넓은 길을 닦는것일까 나중에 누가 그러던데 나무도 돈이되지만 바위도 돈이된다고..
가야산꼭대기엔 우뢰정이란 연못이 있다 내가 갔을땐 보름이나 비가 안온 상태였는데도 연못물은 마르지 않았고 개구리가 헤엄치고 있었다 1년내내 마르지 않는 못이라더니 신기한 기분이었는데 해인사는 신기한 기분이 지속되도록 도와주질 않는다.
북한산에도 정상에 일선사라는 절이 있다 예전엔 절입구에 샘물이 흘러 등산객들의 목을 적셔줬고 그곳에서 먼 산과 일출을 보며 가슴의 먼지를 씻어내는 기분을 느꼈었는데 지금은 크게 중축한다며 산에 시멘트를 조그많게 깔고 절 입구의 바위를 부수며 경운기가 올라올 길을 만들고 절 입구엔 등산객들이 못오게하려는지 유리조각을 뿌리고 그 샘물앞엔 간이화장실을 만들고 입구엔 커다란 달마상을 만들어 놓고 스피커를 최대로 올려 부처님 가라사대를 틀어놓고 있다. 북한산이 자기것인가 멀리선 웅얼웅얼 거리지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못알아듣겠다 예전 대광고 강의석군이 당당하게 예배를! 거부하던 일이 겹친다. 학생들은 공부를 하러온것이지 기독교교리를 배우러 온 것이 아니듯 등산객들도 등산을 하며 자연을 즐기러 온 것이지 불교도가 되려 온 것이 아닌데 어째 모든 종교가 다 이 모양일까 그날 난 일선사가서 크게 한판하고 왔다. 바위하나 나무하나에도 생명이 있다는 교리를 전파하는 종교가 이 모양인데 다른 종교는 오죽하겠는가
그럼 그들을 감독하는 관리사무소는 어떨까 산성을 고치고 등산로를 정비한다고 몇 년전 공사를 크게 벌이는데 인부들은 아무데서나 버너를 켜고 등산로에 설치한 장애물은 설치했다철거했다 제멋대로라 전화를 했더니 젊은 직원이 버너는 정해진데서 켠다고했다 정해진데가 어디냐고 하자 소리만 지르고 끊어버린다. 얼마후 내가 직접 관리사무소로 찾아가서 조목조목 이야기하자 직원들이 설명하다말고 슬그머니 일있다며 도망친다.
어떻게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복식만 바뀌었지 의식은 똑같냐
고건총리님이 생각난다. 강직한 공무원은 열에 하나라고 휴‘’
산에서 라디오를 틀고 등산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그분들을 볼때마다 간곡히 이야기한다. 여기는 동물들의 주택단지라고 만일 우리집앞에서 누가 하루종일 라디오를 틀어놓으면 생활을 할 수 있겠냐고 열에 아홉은 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도 내 느낌엔 그 때나 지금이나 라디오 튼 사람들의 숫자는 대동소이하다. 산에서 야호는 일상생활이다.
학교에선 올챙이를 봄마다 가져와 관찰하게하고 문방구마다 올챙이를 판다 이걸 전국으로 곱하기하면 몇 마리가 나올까
내가 먹은 캔 별거 아니다 아까 모텔하는 친구집에 놀러갔다 큰 종량제봉투에 다 버린다 내가 얘기한다 ‘야 분리수거 해야지’ 그러자‘내 돈 내고 내가 버리는데 어때’한다 아파트단지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아주머니들 고마우시다 하지만 옆에 분리수거 장소가 있는데도 큰 종량제 봉투에 페트병, 캔 다 섞어버린다 신문에선 미화원 아저씨들이 기껏 분리해 놓은 것 섞어서 가져간다고 지적하지만 모든 정책은 지적할 때 뿐만이라지만 이건 지적하는 순간에도 섞어서 가져간다.
산에서 무수히 담배를 피우고 버너를 켜도 단속하는 사람 보이지 않는다. 공익들 어떻게하면 빨리 제대하나가 꿈이다. 그 사람들에게 반대급부로 몇 명 단속하면 몇일 빨리 제대시켜준다면 어떨까 근본적인 의식변화와 법치적해결이 없다면 우리의 생활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
성북구청뒤에 개천이 흐르고, 조정래씨가 혜화동 보성고보를 다니셨기에 아리랑, 태백산맥등 그의 훌륭한 저서에 이 거리가 한 장면씩 삽입이된다.
물은 생명이다가 유행할 때 삼선교 나폴레옹등 여러곳은 손봐도 냇가위에 있는 관청건물들은 손 못보겠지했는데 몇 년후에 와보니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고 얼마나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있던지 얼마전에 가보니 청동오리들이 놀고 있었다. 박수를 보낸다. 짝짝짝짝
놀이공원 동물쇼도 나는 생각없이 봐왔는데 야생에서 잡아온 동물에게 정신적 스트레스를 너무 준다며 조련사들을 잡아먹는 장면등을 보여주며 반대운동이 국내외로 널리 확산되고 있다고하니 잘되길 빌뿐이다.
그럼 외국의 인식은 어떨까
대양시대시 탐험가들은 남극에서 펭귄을 본 순간 다 때려잡았고 북태평양연안에 대구도 몽둥이로 때려잡을 만큼 많았는데 지금은 씨만남았다. 버팔로가 가장 좋은 보기이다. 서양인들은 가는곳마다 때려잡았다.
1911년 인도식민지시절 영국 왕 조지5세는 코끼리에 올라탄 채 호랑이24마리를 잡았고 그의 일행은 호랑이 39마리 코뿔소 18마리 곰4마리를 잡았다.
지금은 귀하디 귀한 동물들이 그 당시엔 오락용품이었을 뿐이다.
남극에 순록이 있다. 북극에서 데리고 온 동물들이 여기에 있다 선원들의 배에서 내린 쥐는 급속도로 번식해 남극의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이들은 그 쥐들을 없애기 위해 쥐약이 섞인 먹이를 경비행기로 남극에 뿌려대고 이렇게 죽은 쥐를 새들이 먹고 있다. 우리가 70년대 쥐약을 전국에 뿌려대 여우,늑대를 멸종시킨 과정을 똑같이 반복하고 있다.
나는 일본학서적을 닥치는대로 읽는다 야스쿠니신사까지 결론이 난다 일본과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서로가 서로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알면 안싸우는데 모든건 오해에서 비롯되었다는걸 느낀다.
옛날 신라에서 일본으로 개를 선물했는데 이것이 경상도에 있는 삽살개이고 진돗개가 넘어가 아끼다란 품종이 되는데 민족혼을 없앤다고 삽살개, 풍산견을 몰살시켰다 개가 무슨 죄가 있다고 임진왜란시절 가토의 창과 호랑이의 대결은 유명한 일화인데 히데요시는 조선의 호랑이 가죽이 너무 많으니 이젠 그만 가져오라할만큼 왜군은 호랑이를 많이 잡았고 호랑이를 일본에서 키우고자 일본산에 풀어놨지만 환경이 안맞아 모두 멸종했고 같이간 까치도 규슈에서만 적응해 살아남아 있다. 살쾡이도 대마도에서만 생존이 가능한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수난을 당한 까치와 호랑이도 수가 늘어 영조때는 호랑이가 경복궁에까지 나타났다고 하니 자연의 복원력은 놀랍다. 일제시대 조선인사냥꾼을 앞세워 조선의 호랑이와 표범을 멸종시켰지만 한국의 TV와 북한의 자연생태계란 책을 보면 남한에선 호랑이 어미와 새 끼 발자국이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또 북한에 깊은 산마다 호랑이와 표범이 서식하고 있다고하니 기립해서 박수를 치고 싶다.
토머스 L. 프리드먼의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란 책을 본다 정착민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주변만 보기에 바위, 산, 나무, 짐승들을 숭배하지만 유목민들은 세상이 넓다는걸 알기에 무엇보다 강력한 세상을 지배하는 신을 만들어냈다고 ,, 우리는 우물안 개구리일까 세상을 넓게보는 이동하는 동물일까
호주 아름다운 자연을 갖고 있고 사람들은 해수욕을 한다 침입자 식인상어가 나타나기 전까진 말이다. 그래서 당국에선 해수욕장 둘레에 그물을 쳐놓아 그물에 걸린 상어는 식인상어완 관계없는 수많은 상어들이 수도없이 죽어간다. 인간의 해수욕을 위하여..
우리집에 누가 들어와 여기가 일하기 적합한 장소라고하며 자기네들끼리 놀거나 일하면 우리식구들과 그네들과 큰 싸움이 일어날 것이다 상어가 집단을 이루며 서식하는 곳에 궃이 가서 수영을 해야만할까 다른 해수욕장은 없었나 꼭 그물밖엔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우리는 TV에서 집찾아오는 진돗개의 모습을 보며 감동한다. 그런데 막상 현지주민들에게 들으니 여긴 그런개들 많이 있다고 한다. 이제 진실은 가까이로 옥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극동이란 말은 영국이 신식무기를 들고 세계를 약탈하러 돌아다닐 때 약탈하기 쉽게 지역을 나누고자 만든 말인데 극동방송에서 어느 목사님이 그러신다. 이 세상에 노래를 할 줄 아는건 새와 사람밖에 없다고 ‘그건 니 생각이고’ 귀뚜라미가 우는건 암컷을 유혹하기 위한 사랑의 세레나데고 밤에 고양이가 아기 울음소리를 내는 것도 사랑의 세레나데인데 새는 평생 노래만 부르고 사는가 그럼 독수리는 아주 못된 새인 것 같다 새인데 노래도 안부르니 목사님의 말은 무조건 주님의 말이라는 착각, 인간은 말물의 영장이라는 착각 아인슈타인은 그랬다 꿀벌이 사라지는날 인간은 멸망한다고 그 많은 곤충과 동물, 식물중에 하찮은 꿀벌하나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칠 줄이야.
선거를 하면 숲이 몇 개씩 없어진다고 한다. 이러면 어떨까 돈있는 사람이 출마를 한다 한 사람당 묘목 다섯 그루 심는거 어려운 일이 아니며 심는것보다 키우는게 더 어렵다 출마자격을 갖추려면 산림청에서 지정한 곳에 다음번에 다시 출마할 자격을 갖추려면 저번에 심은 나무가 살아있고 다시 나무묘목 다섯그루를 심어야 한다는 얼마나 쉬운 자격조건인가
그럼 싸움질하는 이미지가 아닌 상대를 끌어안는 큰 품성이 자연적으로 생기지 않을까 원래 정치란 마키아벨리식의 군주론 같은 처세법이 아닌 적을 줄이고 친구를 늘리는 거 아닌가.
요즘 후보자에 관한 우편물을 선거때마다 받는다 어디서는 주소불명이라 건물앞에 여러통 버려져있다 아까운 나무,숲 선거관리위원회에 문의를 했더니 상업용 선전용지 돌리는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 참견말라는 식이다. 그럼 소매치기는 연쇄살인범에 비하면 죄가 경미하니 상을 줘야하는지,.
길거리에 크게 붙는 선거대자보에 후보자에 관해 알아야할 정보 다 써놓고 더 알고 싶은 사람은 인터넷으로 선관위에 접속해 프린트로 출력시키게 하면 선거때마다 숲을 여러개 만들고도 남을 것이다.
예전에 한국야생동물보호협회에 가입한 적이 있었다. 여기서도 우편물이 온다 대충보거나 보지도 않을거 기업체에서 보내는 잡지 같은 광고물도 겉면만보고 버리는거 투성이다.
그 선관위 직원의 말도 맞긴맞나보다 이러면 어떨까 대형마트에서 보내는 광고물속의 쿠폰 인터넷으로 쉽게 클릭해서 집이나 pc방에서 쉽게 받을 수 있게한다면 만일 pc방에서 출력한다면 정확한 근거를 제출시 pc방비를 돌려주어도 마트는 손해보단 이익이 많을 것이다.
제약회사,화장품회사등 이루말할 수 없다. 이것도 꼭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집에서 쉽게 클릭해 스스로 책으로 만들도록하면 숲은 우리 옆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문명앞엔 숲이 있고 문명이 지나간 자리엔 사막이 남는다는 말’도 농담이 되어줄 것이다.
KBS보도국 사회부에 이석호기자가 양수리(?)쪽에서 개구리잡아 파는 아줌마들을 취재했다.
나는 열받아 거기가 어디냐고 당장가겠다 했더니 장소는 말할 수가 없단다 그 전에 황정민의 FM대행진 요즘엔 안나오냐 했더니 그런말 하려거든 끊겠습니다한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산에 이것저것 풀어주고 이석호기자왈 ‘훌륭하십니다’ 난 칭찬들으려고 전화한게 아니라며 개구리로 넘어갔다.
내가 이석호기자를 어떻게 기억하냐면 예전 북한산에 도룡뇽이 발견되었다며 위치는 안말하고 학계에서 서식지를 정밀 추적을 한단다. 난 속으로 그거 내가 경동시장 토종민물고기집에서 사서 풀어놓은건데하며 속으로 웃은적이 있어서이다.
난 이렇게 생각하며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사람에게 소중한 것은 이 세상에서 몇 년을 살았느냐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얼마만큼 가치 있는 일을 하느냐 하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흔히 역사는 정치적 개혁자들의 이름은 쉽게 기억하면서 민생개혁론자들의 이름은 망각해 버린다. 하물며 환경론자들의 이름은 오죽이 기억에 안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