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방통위원장에게 50만원을 보상하라.
며칠 전 국회에서 탄핵 소추되었던 이진숙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헌법재판소로부터 기각판결을 받았다. 탄핵 소추가 이유가 없다고 이 방통위원장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애초부터 취임 후 이틀밖에 되지 않은 이 위원장을 탄핵 소추한 것이 말도 안 되는 “묻지 마” 소추였으므로 기각결정은 예상되었던 바였다.
이 건을 운위하는 많은 분들은 이 사건을 국회의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탄핵 소추의 극단적 예로서 정치적 함의를 강조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 나는 이 심판에 관련된 돈 문제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뭐니 뭐니 해도 돈이 제일 중요하니까 말이다.
어제(2월 22일) 조선일보 박정훈 칼럼에 의하면, 이 방통위원장은 이 심판에서 변호사 비용 수천만 원을 자기 주머니에서 냈다고 한다. 반면 국회 측에서는 세금 1억 2천만 원을 들여 변호사 6명을 고용했다고 한다.
심판에서 이긴 이 방통위원장은 국회에 나와 “의원들이 탄핵 비용을 N분의 1로 나눠 낸다면 줄탄핵이 있었을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정말 적절한 지적이다. 그럼 탄핵 소추에 찬성한 의원들이 국회 측 변호사 비용을 세비에서 공제, 납부케하고 이 방통위원장의 변호사 보수도 보상케 하면 해결이 되겠구먼.
위와 같은 제안을 했다가는 국회의원들로부터 속된 말로 “뼈도 못 추리게” 얻어맞으리라.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이 직무를 행하는데 개인 돈을 쓰라는 것이 말이 되느냐, 검사가 형사재판에서 패소했다고 피고인의 변호사 보수를 배상하는 경우가 있느냐, 라고 준절하게 꾸짖을 것이다. 일리가 있는 말씀이니 승복하고, 다만 국회 측이 선임하는 변호사의 보수는 총액과 1인당 액수에 적정한 한도를 정하는 것으로 마무리한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한다. 그래서 이 방통위원장 탄핵 소추 건 같이 결과가 뻔한 사건에는 국회 측에서 1명의 변호사를 300만 원 정도를 주고 고용하도록 규칙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옛말에 “송사를 하면 집안이 망한다.”고 일러왔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국민의 생명 신체와 재산의 보호가 국가의 책임임이 헌법에 명시된 현대 대한민국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무고하게 소송에 휘말리게 되면 소송에 이긴다고 해도 비물질적인 손실은 차치하고라도 변호사 비용 등으로 큰 경제적 손해를 입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런 피해는 서민뿐만 아니라 사회적 배경이 강고한 고위 공직자도 겪을 수 있는 위험이다.
대표적 예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경우가 아닐까 한다. 그는 퇴임 후 소위 “사법농단”사건의 주범으로 구속기소되어 5년 간 재판(291번 공판)을 받았는데 검찰 측 공소장은 296쪽이었고 수사 기록은 A4용지 17만 5천 쪽(500쪽 짜리 책으로 묶으면 350권)에 달했다. 2024년 1월 26일, 1심 재판부는 양 전 대법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검찰이 항소하여 현재 2심 재판중에 있다.
그 간 양 전 대법원장이 부담한 변호사 보수는 얼마나 될까, 어림잡아 보아도 아찔한 수준이 아닐까? 변호사를 1명만 고용했다고 가정하자. 그 변호사는 500쪽 짜리 증거자료 책을 350권을 읽고, 판례를 검토하며 대응논리를 수립하고 공판에 참여하는 등의 변호 업무를 하는데 5년간 모든 근무 시간을 이 사건에 투입해야 했으리라. 은행원의 평균 연봉이 1억 원을 넘으므로 이 중견 변호사 개인의 실수입은 1년에 최소 2억 원은 되어야 하며 사무실 유지비는 1년에 4억 원은 소요될 터이므로 그의 변호사 보수는 년 6억이 되어야 한다. 5년간 재판을 했으므로 의뢰인은 30억 원을 변호사에게 지급해야 한다. 이렇게 되니 아무리 대법원장을 역임한 분이라고 하여도 파산이라는 붉은 글자를 꿈속에서 보지 않을까 내가 다 걱정이 된다. 이런 “트럭 기소”에 대해서는 어떤 개선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어쩌다 보니 너무 길게 예를 들은 듯하여 독자께 송구스러우나 내가 양 전 대법원장과 대학 동기임을 감안하여 널리 양해하시기 바란다.
위와 같이 검경에게 속된 말로 “잘못 보이면” 가산이 풍비박산될 위험도 있으니 대한민국 위정자들이 어찌 그런 무고한 피고인들을 구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형사소송법 제194조의 4가 설치되어 형사소송비용 보상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형사사건에서 승소한 피고인은 재판에 소요된 여비, 일당, 숙박비와 변호사 보수를 국가로부터 보상받을 수 있다. 제일 몫이 큰 변호사 보수는 피고인이 지급한 보수 전액이 아니고 국선 변호사 보수에 준하는 금액을 보상하는데, 2023년 기준 심급당 50만 원이며 사전 난이도에 따라 5배까지 증액할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양 전 대법원장은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고 대법원에서도 승소하면 그가 쓴 소송비용 30여억 원중에서 150만 원, 아니 본건은 난이도가 높으므로 750만 원을 보상받을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방통위원장은 형사소송이 아니고 탄핵심판의 피청구인이므로 보상을 받을 수 없는데, 탄핵심판에서 이긴 피청구인과 형사소송에서 이긴 피고인을 차별함은 타당하다고 볼 수 없으며, 헌법재판소법 제40조는 심판절차에 관하여 형사소송에 관한 법령을 준용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 취지를 살려서 탄핵심판에서 기각결정을 받은 피청구인에게도 무죄 확정판결을 받은 형사피고인와 동일한 소송비용 보상제도를 도입하여 보호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그러므로 이번에 기각결정을 받은 이 방송통신위원장은 50만 원과 약간의 교통비와 일당을 보상받음이 타당하다. 단, 사건이 너무 쉽기 때문에 증액은 불가하다고 본다. 나는 추후 제도가 도입할 때 예외적으로 소급효를 인정해서라도 기필코 이 50만 원이 지급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력하고 열렬하게 주장하면서 이 글에 피어리어드를 콕 찍는다. (끝)
첫댓글 좋은 생각입니다.
무죄선고 받은 피고에게 변호사 비용까지 나라에서 보상하는 제도가 있으니 외국인이 들으면 선진국이라고 하겠고, 더욱이 50만원이 얼마나 되는 돈인지 조사하기 귀찮은 외국인이 대다수일 터이니 겉보기에 아주 좋아보이겠지요. 그러나 50만 원이라니 정말 코끼리에게 비스켓 하나 주고 밥 주었다고 손 터는 거 아닙니까? 허울뿐인 제도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