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Today’s Meditation)
본문 : 히브리서 11장 1절에서 7절(Heb 11:1~7)
기독교는 처음부터 진정한 믿음의 종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공생애(公生涯)를 사실 때부터 사람들의 믿음을 보셨으며 그 믿음에 반응하셔서 기뻐하셨으며, 그 믿음에 따라 기적을 나타내 보이셨고 또 그 믿음으로 죄 사함과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도 사람들이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받는 유일한 길이 믿음의 길이며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삶을 믿음 가운데 사는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히브리서 전체가 강조하는 믿음에 대한 실증적인 예를 보여줍니다.
11:1~3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이 현실에서 실현된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원하는 것, 성취되어야 할 것, 그리고 현재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을 위해 기도하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셔서 그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해결될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에 대해서 우리는 기복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은 몸이 건강하고, 돈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고, 권세를 얻어 휘두르고, 명예를 얻으며 무병장수하는 것을 원합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이러한 것을 원함으로 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르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들을 원하는 것은 하나님 중심이 아니며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을 채우는 인간 중심적인 것 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믿음을 가진 자들이 원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으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자신이 필요하거나 원하는(바라는) 것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셔서 응답받게 되어 믿음이 현실이 되는 것을 포함합니다
또한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우리가 장차 구원받아 천국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함께 거하며 영생하는 것을 현재 볼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므로 장차 그렇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믿는 자들은 장차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것입니다. 현재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것은 이미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왜냐하면 믿는 자들이 장차 그렇게 될 것은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선진(先進, the ancients, οἱ πρεσβύτεροι)들은 자신보다 시간적으로 먼저 태어나 나이가 훨씬 많거나 혹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자신보다 먼저 지상에 존재했던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즉 우리보다 앞서서 믿음의 길을 간 분들입니다. 그들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는 사실을 실제로 입증해 보였습니다. 그에 대한 실제적인 예가 뒤를 잇는 구절들에게 계속 제시될 것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이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안다고 합니다. 어떻게? 왜냐하면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는 이 세상 만물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든 만물들은 그 만물들에 의하여 이 세상의 태초부터 원래 존재했었고, 원래 존재했던 그것들에 의해 계속 있어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눈으로 보여지는 모든 것은 원래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없었던 것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 무(없는 것)에서 있는 것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던 이 세상이 존재하셨던 하나님의 의해 창조되어 존재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즉 믿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그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도록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히브리서 저자는 4절부터 앞서 정의한 믿음에 대한 예를 하나씩 제시하면서 보여줍니다. 첫째는 아벨의 믿음입니다. 아벨은 자신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가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있는 제사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벨이 드린 예물이 증거합니다.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습니다.(창 4:4) 그러나 아벨의 형인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예물을 삼아 드렸습니다.(창 4:3) 히브리서 저자가 하나님께서 아벨의 예물에 초점을 두는 것은 아마도 희생제사에 초점을 두어서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가인이 땅의 소산물로 예물을 드린 것에는 짐승의 희생, 즉 죽음과 피 흘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벨은 양을 잡아서 기름을 떼어내고 .. 그 양과 기름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드린 예물과 그러한 예물을 드렸던 아벨을 보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 예물을 받으셨으나 희생제물이 없는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이 드린 예물에는 각각의 믿음의 차이가 있습니다. 아벨은 죽음과 희생으로 예물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고 가인에게는 죽음과 희생으로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려야 한다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벨의 예물과 그런 예물을 드린 아벨을 받으셨고 가인과 그 예물은 받지 않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가인과 아벨이 가졌던 믿음의 차이를 보면서 .. 우리가 죄인이었으며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알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희생제물로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가운데 굳게 서있어야 합니다.
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우리는 창세기 5장 24절에서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라는 정도로만 에녹의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를 살아있는 채로 죽음을 맛보지 않고 천국으로 옮겨 가셨습니다.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간 이유는 그가 하나님과 동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을 믿음으로 살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으므로 하나님은 그를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 가게 하신 것입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은 어디를 가든지 항상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으며 하나님의 임재의식 속에서 살아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브리서 저자가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 간 원인이 믿음이었다는 것을 드러내면서 믿음의 중요성을 부각합니다. 그러면서 믿음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정의합니다.
첫째 믿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피조물이 자신을 믿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믿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방법은 없습니다.
둘째 믿음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존재하시며 살아계시며 역사하시는 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지상의 많은 종교가 있는데 ..그 종교 가운데는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종교도 있습니다. 그러한 종교는 엄밀한 의미에서 종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은 존재하시며 역사(役事)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셋째 믿음은 존재하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많은 사람들도 그들의 종교성 때문에 존재하시는 신(神,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에 따라 하나님은 그들에게 상주시고 계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을 찾음에도 상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우상숭배한다고 하나님의 심판의 자리에 이르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시한 올바른 방법으로 하나님을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올바르게 찾는 방법은 오직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6) 우리는 하나님을 올바르게 찾는 유일한 방법을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