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글은 네이버 검색에 올라온 중앙일보 기사 내용인데 잘못된 내용이 너무 많이 발견되어 함께 검토해 봤으면 해서 이곳에 올렸습니다.
정치 정치일반
달성 서씨
중앙일보
입력 1983.04.23 00:00
지면보기
달성서씨는 6대를 계속이어 3대정승·3대대제학을 지낸 유일한 씨족. 이밖에 선조∼고종간 3백여년동안 숱한 인물을 배출, 정계·학계를 주름잡다시피한 명문의 집안이다. 숙종때 영의정 서종태를 비롯해 서씨중 참판급(차관급)이상의 고관대작만 30명이 넘어 하루는 조7회를하려던 숙종이 용상에서 바라보니 줄지어 오가는 경신들이 대부분 서씨이므로 『마치 어미쥐가 새끼쥐를 거느리고 다니는듯하다』고 감탄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다.
달성서씨는 이천서씨로부터 분파된것이라고 전하고 있으나 고증자료가 없고 고려중엽 군기소윤을 지낸 서윤파 판도판서 서진을 원조로 삼고있다.
전국적으로 서씨는 9만여가구 50여만명으로 성별인구순위 14위. 이중 달성서씨가 또25명으로 가장많다.
달성서는 현재 크게 두개의 파로 나눠져 내려오고 있는데 서윤을 시조로 그의6대손 서철진(고려판전)을 증시조로 삼는 「대구서」파와 서진(고려판도판서)을 시조로 모시는 「판도공」파.
이들 두파는 현재 각각 별도의 족보를 만들고 있으나 두파 모두 관향이 같은 지역에서부터 비롯된다는점에서 같은조상을 모시고 있을것으로 생각되나 고증자료가 없다.
<두파 통합움직임>
관향(관향)인 대구·달성일대에 많이 살고 있으며 경남·북과 전남일원에 집성촌이 많이있다.
「경국대전」 「동국통감」 「대동여지승람」등을 편찬한 서거정은 서문이 낳은 대학자.
세종26년(1444년)문과에 급제한 그는 성종때까지 6대왕조 45년에걸쳐 6조관서와 대제학을 지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큰 업적은 최초로 고전의 세계를 집대성했다는점. 신라때부터 조선초기에 이르기까지 시문을 정수만 골라 실은 「동문선」이 그것.
우리의 옛문화를 연구하려면 이 「동문선」에 의존하지 않을수 없을만큼 중요성을 띠고있다.
서균형은 여말 이부상서 (장관급)와 정당문학을 지낸 인물로 신돈을 제거해야 된다고 글을 올렸다 축출된 직언자.
판도공파 서진의 종손인 서균형은 공민왕9년 (l360년) 문과에 급제, 연관으로 있으면서 l366년 신돈이 왕과 나란히 자리에 앉는등 권세를 떨칠때 그의 횡포와 방탕음란한 행위를 보다못해 위험을 무릅쓰고 『신을 죽여야한다』고 직언한다.
서균형은 또 왜구의 잦은 침임에 대비, 『주함을 구축, 기구를 갖춰 적의 침입로를 막아야 한다』고 해군의 중요성을 역설했으며 정예부대·군량축적등 국방에 힘쓸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의 말을 그대로 쫓았다면 이후 숱한 외침은 막을수 있지 않았느냐고 후손들은 아쉬워하고있다.
<인구 순위는 14위>
서성은 선조때 5도관찰사와 3조판서, 인조때 판중추부사를 지낸 인물로 그의 자손중에서 3대정승·3대대제학·3대대학자가 배출되는등 서문의 가장 거대한 산맥을 이룬다.
조선 3대현모로 꼽히는 그의 어머니는 고성이씨로 맹인.
서성은 네아들을 두었는데 장남서경우는 우의정, 4남서경주는 선조의 장녀 정신옹주와 결혼한 부마.
2남 서경수의 현손 서종제의 딸이 영조비가 되고 다시 서종제의 현손 서용보는 영의정을 맡는다.
서경주의 집안에서 서종봉(영의점)-서명균(좌의정)-서지수(영의정)-서유신(대제학)-서영보(동)-서기순(동)등 국내유일의 6대에 걸친 3대정승·3대대제학을 배출, 서문의 골격을 이룬다.
역시 서경주 집안의 서명응(대제학)-서호수(직제학)-서유휘(대제학)는 3대학자.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169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