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새벽부터 밤까지 뭐에 홀린듯 후다닥 시간을 보내고...
오늘은 어제의 후유증으로 한낮이 될때까지 죽은 듯이 자고...
배가 고파서 얼른 한 술 뜨고나니 이제사 정신이 좀 차려집니다.ㅎㅎ
자, 지금부터 어제의 짧은 듯 긴... 하얀 여행을 풀어놓을게요.
알람을 다섯 시에 맞춰놓고 일찌감치 잠을 청했으나 평소에 늘 늦게 잠드는 내 몸의 사이클이 그걸 받아들일 리가 없음...
결국 세 시간 쯤 자고 일어나 커피 끓이고 과일이랑 군주전부리들 가방에 챙겨넣고 깜깜한 새벽을 나섰어요.
지하철역에서 친구네 세 부부랑 합류해서 8명이 대구역으로 갔습니다.
젤 추운 날이 될거라고 하더니 플랫폼에서 잠시 기차를 기다리는데 칼바람이 사정없이 얼굴을 강타하고...
그래도 기차안은 후끈후끈~~ 창밖으로 제아무리 막바지 겨울이 심술을 부려도 봄날같은 마음은 즐겁기만 하고...
우린 좌석을 마다하고 열차카페로 옮겨가서 뜨끈한 어묵에 김밥을 먹으며 겨울낭만을 즐겼답니다. 가지고 간 커피도 마시고 사과도 아작아작 작살내고 ㅋㅋ.. 네 집에서 가져온 간식은 끝도 없이 가방에서 나왔지요. 커피, 떡, 초코파이. 사과, 귤, 홍삼젤리, 곶감, 대추차, 메밀차, 누룽지,..
1시간 20분을 달린 영동역에서 무주로 가는 관광버스로 바꿔타고... 한 숨 자고나니 무주스키장에 도착했다고 내리라고 했죠.
일요일이라 겨울을 즐기러 온 스키어들과 관광객들로 얼마나 붐비든지...
넘 추웠지만 그래도 하얀 눈속에 잠겨있을 향적봉을 정복할 생각하니 마음이 막 설레었죠.
그런데 이변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곤도라 운행을 못한다는 거예요. 우리팀은 순전히 눈산을 보러 온 거였는데
뭐, 눈썰매를 타라나 뭐라나... 우리가 불만을 표시하자 잘 생긴 총각 가이드는 난감해서 어쩔 줄 모르고...
할 수없이 함께 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은 각자 흩어져서 개인플레이를 하기로 했습니다.
우린 셔틀타고 만선하우스에 내려 티롤하우스(스키장에서 젤 좋은 호텔) 한식당으로 갔어요. 1인분에 3만 9천원짜리 한식을 먹을까 말까 살짝 망설이다가 곱하기 8을 하니 도저히 비싸서 패스~~ 결국 만선하우스 식당에서 만원짜리 육개장으로 점심을 먹었네요.
모이라는 시간이 아직도 많이 남아서 찻집으로 이동하는데 갑자기 걸려온 가이드의 전화. 얼른 곤도라 탑승장으로 오라네요. 바람이 좀 잦아져서 곤도라 운행을 재개한다고. 부리나케 뛰었으나 벌써 끝도없이 늘어선 탑승객 줄... 다들 어찌나 정보가 빠르던지...
향적봉을 오를 목적으로 갔다가 허탕치고 올 뻔 했는데 결국 행운이 따라줌에 감사했어요.
좁은 곤도라에 무릎을 맞대고 우리 여덟명은 깔깔대며 공중에 매달려 올라갔지요. 발 아래로 보이는 하얀 설경에 감탄을 하며서...
작년에도 다녀오고 그전까지 여러번 올랐던 길인데 그리 먼 길인 줄 몰랐네요. 3분의 2쯤 올랐을까... 갑자기 덜컹 덜컹 거리더니 곤도라가 멈추는 거예요. 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아뿔사! 고장이 난 겁니다. 얼마전에 뉴스에서 무주스키장 리프트가 고장나 2시간을 공중에 떠서 추위와 무서움에 벌벌 떨었다는 기사를 봤는데 또 그런 사고다 싶데요. 그래도 우리는 여덟명이 한 배를 탔고 유리창으로 막힌 곤도라니까 조금 위로가 됐습니다. 금방 고치겠거니 했는데 가다가 덜컹 또 가다가 덜컹 서고...
이제 완전히 멈추어버린 곤도라속에서 온갖 장면이 연출됩니다. 친구 하나는 아예 눈을 감고 무섭다 연발... 또 한 사람은 뭐 죽어도 다같이 죽을 거니까 안 무섭다 캐쌌고... 우리도 뉴스에서의 그 사람들처럼 좀 갇혀있다가 보상금 받지 뭐 하면서 농담을 하고...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나 몰라요. 서서히 곤도라가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아주 느리게 느리게 올라가더군요.
우여곡절 끝에 설천봉에 내려서는 다들 아이젠 장착하고 스틱 두 개씩 손에 들고 향적봉을 향해 걷기 시작했지요.
바로 눈앞에는 온통 하얀색으로 뒤덮인 세상 뿐인데 거기에 바람이 불어 하얀 바람이 끝도없이 공중을 날아다녔어요. 걷는데 마스크가 꽁꽁 얼어버리고 금새 볼이 새빨갛게 어는 듯 했습니다. 결국, 친구 하나는 포기하고 설천봉 카페에 남기로 하고 용감한 7인의 정복자는 길을 떠났네요. 역시나 춥고 힘든 걸 싫어하는 울 남편, 중간에 자꾸 돌아가려는 걸 제가 억지로 붙잡고 앞세웠지요. 여기까지 와서 남들 다 오르는 향적봉을 안 간다는 게 말이 안되잖아요. 결국 향적봉 오르자 마자 마누라는 안중에도 없이 혼자 냅다 도망가 버렸지만...
뭐 추운 거는 추운 거고, 저는 새로 산 디카 시험한다고 오며 가며 숱하게 사진을 찍어대느라 젤 꼴찌로 올라가고 내려가고 그랬네요.
덕분에 혼자 실컷 눈세상을 즐감했지요.
나중에 친구들 왈, 눈바람이 너무 추워서 앞만 보고 오르내리느라 정작 경치는 즐길 여유가 없었다고 하데요. ㅋㅋ.. 나는 실컷 봤구만..
아... 진짜 추웠어요. 내 얼굴이 빨갛게 얼어버린 모습은 아주 어릴적 우리 동네서 눈싸움하던 날 이후로 첨이었다니까요.
다시 곤도라 탑승장에 도착하니 얼른 얼른 타라고... 조금 있으면 운행 못 할수도 있다고, 그러면 걸어서 내려가야한다고 직원들이 막 다그쳤어요. 600m 이상 눈길을 걸어내려간다고? 으악!
다행히 무사히 출발지점에 도착... 그때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가이드가 그럽니다. 곤도라 티켓 들고 환불 받으러 가라고. 역시나 사고가 맞았어요. 우리는 좀 무서웠던 댓가로 1인당 9천원씩 다 돌려받았어요. 요즘 자주 일어나는 사고에 회사 이미지 차원으로다가 제대로 고객관리 하던걸요. 우스개로, 에이 좀 더 오래 매달려 있을걸, 그러면 위로금 더 줄텐데 하며 재밌어 했지요.
우린 목표를 제대로 달성했으므로 다음 코스는 아무래도 좋았어요. 무슨 수력발전소를 거쳐 머루 와인 터널에서 와인 한 잔씩 시음하는 걸로 여행 일정을 끝내고 다시 영동역... 기차타고 남은 간식 다 꺼내서 처리하고 대구 도착하니 밤이 되었네요. 다시 지하철 타고 우리 동네로...
삼겹살로 저녁 든든히 먹고 다음 여행을 기약하며 헤어졌습니다.
친구들은 오늘 하루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고 하네요. 새벽에 일어나 지하절, 기차, 버스, 곤도라, 산, 곤도라, 버스, 기차, 지하철 탄 생각만 난다고 ㅎㅎㅎㅎㅎ...
나중에 내가 사진으로 다시 즐겁게 해줘야지~~~
이상 민들레의 무주여행 후기였습니다.
사진은 좀 있다 올릴게요. 새 카메라 사용법 좀 익히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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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어릴 때부터 다녔지만 그렇게 춥기는 처음이었어. 내가 사진 찍으려고 나무 사이로 깊숙이 들어갔다가 허벅지까지 잠겨서 빠져나오지 못해 몸부림 치고 있는데 지나가던 아저씨가 손잡아 끌어줘서 겨우 나왔다는 ㅋㅋ...
우여곡절이 있었던 여행이라 오랜 기억으로 남을 것 같으네요. 설천봉엔 내린 눈이 녹지 않고 있나보네요.
명절 쇠고 날이 조금 풀리면 저도 다녀와야겠어요. 언니글 읽으니 여름날 향적봉에 올랐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면서 가고 싶어지네요. 함께 등산하는 남편있어서 좋으시겠다....부럽습니다. 전 누구랑 가지요?
겨울에는 설천봉에 늘 눈이 가득해요. 그 눈을 보는 것만으로 멀리 여행간 보람을 느끼지요.
아라크네님도 남편 꼬셔서 가요. 좋아하실 거예요.^^
하얀여행!~ 아무튼 언니 넘 대단해.난 추울땐 꼼짝하기 싫던데.....생생한 여행후기 잘 봤어요~^^
더우면 더운대로, 추우면 추운대로 자꾸 가야지. 안 그러면 그만큼 내 것이 되질 못하니...^^
더울땐 간다~근데 겨울은 발부터 동상이 걸리려고하니....
안 그래도 요즘 집에서 한시간씩 Stepper로 땀 흘리면서 시간 날 때 도보나 산행을 꾸준히 해야겠다고 다짐 중. 시도도 못하고 막을 내렸던 도보의 길. 올해는 성공해야 하는데....
언니, 나도 겨울에는 추워서 스텝퍼나 하려고 홈쇼핑에서 하나 샀더랬는데 한 다섯 번 했나? 울 남편, 그럴줄 알았다 카데 ㅋㅋ.. 암만 추워도 나는 나가서 걷는 게 체질인가벼~
아참참... 에피소드 하나 빠트렸네요.
첨에 곤도라 포기하고 즉흥적으로 스노우모빌이라는 산악오토바이 같은 걸 탔거든요. 잠시 망설일 틈도 없이 친구 남편이 냅다 표를 끊어와 버리는 바람에. 슬로프를 따라 완전 초고속으로 달리는데 무서워서 죽는 줄 알았다니까요. 젊은 총각들이 운전을 하고 여자들은 다 중간에 앉고 남자들은 좌석이 높은 젤 뒷자리에 앉아서 완전 살인 바람을 맞아서 얼굴이 떨어져나가는 줄 알았다나... 오르막은 그렇다치고 내리막을 달릴 땐 점프까지 하는데 곧 눈밭에 곤두박질 칠 것 같은 공포...
한 바퀴 더 돌아 드릴까요? 얼른 내려버렸죠. 친구들왈, 알고는 못탈 걸 엉겹결에 웃기는 추억하나 건졌다고...
ㅋㅋㅋ 대단햐...티비에서 그거 본 것 같어...그런데 민들레 안자고 뭐햐?? ㅎㅎㅎㅎ
낮에 많이 잤잖어, 잠이 안 와여... 부활노래 들으며 이 밤을 밝히고 있슈 ㅎㅎㅎ...
아버지 제사지내고 막 도착했더니 아직 잠안자고 있는 올빼미 군단들이 많네..ㅎㅎ
에구.. 언니 고생했네. 오늘따라 다들 잠이 없나벼~~
에구... 덕유산 설경이 협조를 했네.... 암튼 겨울 설경을 제대로 대적할려면 평소의 삶이 진실해야한다니까....
내년에도 가고, 후내년에도 가고... 계속 갈 작정이야요.^^
저도 연말에 다녀왔는데 정말 환상적이였죠 ,,,찜질방도 초대형 호텔 분위기고 ,,완전 다른세상에서 ,,즐건여행 고생마니하셨지만 ,,그래도 후기를 넘 스릴있게 ,,,내년에도 향적봉은 꼭 가보구 싶네요 ,,,제가 다녀온듯 눈에 선하게 보여요,,,
우리가 사는 곳에서는 눈을 제대로 보려면 모두 너무 먼 데 있다는 게 좀 아쉽죠. 단단히 마음 먹고 강원도나 무주를 가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