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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 : 2011. 2. 26(토) 22:00 ~ 2. 27(일)
□ 곳 : 댓재~황장산~환선봉~덕항산~구부시령~건의령~댓재
□ 낙동산악회, 백두대간 이어걷기 9기 - 26구간
□ 걷는 데 걸린 시간 : 03:38 ~ 13:39⇒10시간 1분
(글쓴 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 간추린 일정(글쓴 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 03:38 댓재 나섬
○ 03:57 황장산 푯돌
○ 03:59 황장산(1059m)
○ 04:18 1105봉
○ 04:53 1069봉
○ 05:11 1062봉
○ 05:33 큰재
○ 05:51-30 1058.6봉
○ 06:50-20 자암재
○ 07:08 넓은 헬기장
○ 07:23 환선봉(幻仙峯, 1080m)
○ 08:07 1050봉
○ 08:26-30 덕메기산[덕항산(德項山)0(1071m)
○ 08:51 구부시령(九夫侍嶺)
○ 09:07-30 1055봉
○ 09:47 997.4봉
○ 11:10 푯대봉 삼거리
○ 11:13 푯대봉(1009.2m)
○ 11:17 (다시) 푯대봉 삼거리
○ 11:31-30 한의령(寒衣嶺)[건의령(巾衣嶺)]
○ 12:41 새목이재
○ 13:17 노루메기
○ 13:37 피재(해발 935m)
□ 줄거리(글쓴 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차가 댓재에 닿았을 때 노재술 산행대장께서 차에 달린 온도계를 보고 댓재 기온이 4℃라고 했다.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으나 많이 오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윗옷만 비옷을 입고,
바지 비옷은 챙겨 갔으나 입지는 않고, 등 가방[배낭] 속에 넣고,
등 가방[배낭] 덮개도 씌우지 않고 길을 나섰다.(03:38)
지난 2월 11일(금요일) 강원도 강릉. 삼척시, 경북 울진군 따위에 많은 눈이 내리고,
특히 강릉 지방에는 하루만에 70cm 이상 눈이 내렸다는데, 그 눈이 아직 남아 있었고,
댓재 길 가에도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댓재~피재 사이 모든 구간에 몇 곳을 빼고는 계속 눈이 많이 있었다.
이번 산행에서는 다행히 춥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실제로 많이 춥지는 않았으나
새벽부터 내린 비와 눈으로 온통 습기와 물기에 젖어 칙칙함을 면치 못했고, 두꺼운 장갑은 사진 찍고,
기록하느라 계속 벗었다 끼었다를 반복하고, 계속 시계를 들여다봐야 하는 실정으로
윗옷으로 입은 비옷에서 타고 내려온 빗물. 눈물(雪-)이 장갑 속으로 들어가 장갑은 온통 물통으로 변했다.
처음에는 손이 조금 시렸으나 온통 물에 젖은 장갑 속이라도 손을 넣고 조금 있으면 추위를 느낄 수 없었다.
등 가방[배낭]에 장갑을 몇 켤레 여벌로 넣고 갔으나, 갈아 끼어봤자 바로 비에 젖을 것이었기 때문에
새 것으로 갈아 끼지 않았다.
댓재를 나서면 완만한 오르막이고, 눈이 제법 많이 있어, 걷는 속도는 자연히 느려져,
댓재를 나서 17~20분쯤 가면 황장산 푯돌이 나오고(03:57),
황장산 봉우리는 조금 더 가야 황장산(1059m)에 닿는다.(03:59)
황장산에서 13분쯤 가다가 비가 계속 왔으므로 등 가방[배낭] 덮개를 씌우고(04:12), 길을 나섰다.(04:13).
황장산에서 18분쯤 가면 1105봉에 닿는데(04:18), 1105봉에 있는 푯말은
209. 7. 26 낙동산악회에서 백두대간 이어걷기 7기 - 26구간 때 매달아 둔 것이다.
1105봉에서 35분쯤 가면 1069봉에 닿고(04:53), 1069봉에서 18분쯤 가면 1062봉에 닿고(05:11),
1062봉에서 20~22분쯤 가면 큰재에 닿는다(05:28).
대원들은 노재술 대장의 제의로 계속 내리는 비에 대비하여 등 가방[배낭] 덮개 씌우고,
비옷을 입고 있었는데, 비옷 바지를 입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비가 많이 오지 않겠지’ 라고 안이하게 생각하고,
비옷 바지를 입지 않고 시간만 허비했다.
다른 대원들이 비에 대비를 철저히 한 뒤 큰재를 나서(05:37),
큰재에서 14분쯤 가면 삼각점과 물 탱크가 있는 밋밋한 고랭지 채소 밭으로 변한 1058.6봉에 닿는다.(05:51-30)
이 일대 귀네미골 고랭지 채소 밭은 귀네미골에서 서쪽으로 3~4km 쯤 떨어진,
1988년 준공된 광동댐을 건설하면서 물에 잠기게 된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광동리 일대 자연 마을에
살던 사람들이 옮겨와 살면서 농사를 짓고 있는데, 고향 마을에서 가까운 곳에 터를 잡은 것은 좋은 일이고,
강원도 청정 지역에서 질 좋은 배추 따위를 생산. 공급하는 것도 좋은 일이겠으나,
하필 백두대간을 일구어 농사를 짓는 것은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곳 말고도 9기 대원들이 이미 지나온 화방재~피재 구간에도
고랭지 채소 밭이 백두대간 일대에 넓게 퍼져 있다.
사진을 찍고 나서 1058.6봉 되돌아 나와(05:53-30), 조금 뒤 이내 비탈진 곳을 내려가게 되는데(06:01-30),
이곳은 고랭지 채소 밭으로 개간한 산지를 복구하기 위하여 잣나무 심은 곳으로, 눈 덮이고,
새벽에 지났기 때문에 자세히 보지 못했겠지만, 고랭지 채소를 기르기 위해 나무를 베고 산을 일군 곳에
키 작은 전나무를 촘촘히 심어놓은 곳인데, 대간 길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전나무 심은 곳을 일부 지나다닌다.
곧 시멘트 길이 나오고(06:03), 길은 오른쪽으로 굽어지는데,
이 길은 고랭지 채소를 기르고 옮기기 위해 낸 비탈진 농사 길로,
비올 때 맨 땅이 파이고 질퍽거려 차는 물론 사람도 다니기 힘든 곳으로 시멘트로 포장해 놓은 길이다.
산길[임도]에서 왼쪽 산으로(06:04-35) 접어들었다가, 비가 점점 많이 내려 비옷 바지를 입기 위해(06:10),
발목싸개[행전, 스패츠] 풀고, 신발 벗고 바지 위에 비옷 바지를 껴입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댓재를 나설 때부터 비옷 바지를 껴입었으면 중간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수고도 덜었을 텐데,
한 치 앞 일기도 예측하지 못하는 사람의 한계랄까,
아니면 비가 많이 오지 않겠지 하고 편리한 대로 생각한 내 불찰일까....
비옷 바지 입고 나섰다(06:18).
1058.6봉에서 농사 길과 산을 두어 번 번갈아 걸은 뒤 45~50분쯤 뒤에 자암재에 닿는다.(06:50-20)
자암재[장암재]에서 동쪽으로 가면 가파른 비탈 길과 수직에 가까운 쇠 계단, 구멍 뚫린 바위 사이를 지나
환선굴에 닿을 수 있고, 환선굴에 닿기 전에 촛대바위. 실패바위 등 멋진 바위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고,
환선굴에 들어가면 아주 멋지고 신비한 돌 형상들을 만날 수 있고,
환선굴 안에는 콸콸 큰 소리를 내고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환선굴 안은 수 킬로에 이르는데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길도 꽤나 길다.
낙동산악회, 백두대간 이어걷기 7기-26구간(2009. 7. 26. 일요일) 때 자암재에서 환선굴에 갔다 온 적이 있었는데,
비가 오고 구름이 끼기도 했지만, 아주 멋진 구경을 한 적이 있다.
※ 환선굴을 구경하고 싶다면 제 블로그 백두대간(낙동2)(42) ‘피재~건의령~덕항산~황장산~댓재’ 참조
※ 제 블로그
다음(daum) 블로그에서 한글로 한뫼 푸른솔, 또는 http://blog.daum.net/angol-jong
자암재[장암재]에서 조금 가면 「낭떠러지」푯말이 나오는데(07:03-40),
이곳을 포함하여 여러 곳에 ‘낭떠러지’ 푯말과 동쪽으로 나무 기둥+밧줄을 설치해 놓았는데,
실제로 자암재~덕항산 구간에는 동쪽은 깎아지른 절벽, 서쪽은 완만한
대표적인 ‘동고서저(東高西低)’ 현상을 볼 수 있는 곳인데, 눈 덮이고,
어두컴컴한 때에 지나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갔을 수 있다.
자암재[장암재]에서 18분쯤 가면 넓은 헬기장이 나오고(07:08),
이 헬기장에서 14분쯤 가면 환선봉(1080m) 푯돌이 있는 곳에 닿는데(07:22),
봉우리는 동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야 되는데, 환선봉 꼭대기는 뾰족하고 좁은 지형으로
푯돌이 있는 서쪽을 빼고 남. 북. 동쪽은 깎아지른 곳으로 주의해야 하고,
날씨가 좋으면 동쪽 아래 골짜기로 실패바위. 촛대바위 등 뾰족하게 거의 수직으로 서 있는 멋진 풍경이 펼쳐지고,
환선굴에 이르는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로 꼬불꼬불 이어진 길이 보이고, 귀네미골 고랭지 채소밭이 잘 보이는 곳이다.
환선봉은 「실전 백두대간 종주산행, 조선일보 펴냄」에는 그냥 ‘1079봉’으로,
「백두대간&정맥GPS 종주지도집, 산악문화 펴냄」에는 ‘지장산(1079m)’으로,
「지도첩 백두대간 24, 고산자의 후예들 펴냄」에는 지각산(환선봉)(1081m)으로,
「한국 400산행기, 김형수 지음, 깊은솔 펴냄」에는 지각산(1081m)로 표기해 놓았는데,
실제 지각산(904m)은 「지도첩 백두대간 24, 고산자의 후예들 펴냄」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광동댐 남쪽에 맞닿아 있는 산으로, 「한국의 산하」에도
광동댐과 맞닿아 있고, 지각산(904m)로 표기해 놓았다.
환선봉에서 내리는 비를 맞으며 아침밥을 먹었는데, 꾸역꾸역 내리는 비에 국물을 짊어지고 갔으나
먹을 마음이 나지 않아 하루 내내 짊어지고 다녔다.
아침밥을 먹고 환선봉을 나서(07:49), 18분쯤 가면 1050봉을 왼쪽으로 돌아가고(08:07),
1050봉 왼쪽에서 8분쯤 가면 잘루목인 쉼터에 닿고(08:15),
이곳에서 동쪽으로 쇠 계단을 거쳐 2.5km쯤 가면 환선굴에 닿을 수 있다.
쉼터에서 11분쯤 가면 덕메기산[덕항산](1071m)에 닿는다.(08:26-30)
덕메기산[덕항산]에서 8기 이종열 님이 온통 물에 젖은 장갑을 벗어
걸레 짜듯이 비틀어 빗물이 떨궈내고 있어 사진에 담았다.
덕항산에서 10분쯤 가면 넓은 곳에 닿고(08:37),
이곳 넓은 곳에서 14분쯤 가면 구부시령에 닿고(08:51), 눈이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구부시령에서 16분쯤 가면 1055봉에 닿고(09:07-30), 1055봉에서 40분쯤 가면 997.4봉에서 닿는다.(09:47)
997.4봉에서 16분쯤 가면 왼쪽으로 90도 이상 꺾여 가야 하는 곳인데,
앞서 간 대원들이 바로 나아가는 쪽으로 가지 못하도록 나무로 막아놓았지만,
눈이 많이 내린 탓에 앞쪽에 봉우리가 있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봉우리를 돌아오겠다고 작정하고 바로 나아갔으나,
봉우리는 나타나지 않고, 자꾸만 완만한 내리막이라 되돌아왔다.(10:04-30)
다시 원래 갈림길에 닿고(10:06-30), 이 갈림길에서 1시간쯤 가면 푯대봉 삼거리에 닿고(11:10),
여기서 대간 길은 왼쪽[남서쪽]으로 90도 이상 꺾어 걸어야 한다.
푯대봉 삼거리에서 바로 나아가 삼각점과 통신 중계 시설이 있는 푯대봉(1009.2m)에 닿고(11:13),
사진 몇 장을 찍고 다시 푯대봉 삼거리로 되돌아 나와(11:17),
푯대봉 삼거리에서 14분쯤 가면 널찍한 한의령[건의령]에 닿는다.(11:31-30)
한의령(寒衣嶺) 푯말에는 “태백 상사미에서 삼척 도계로 넘어가는 고갯길로 건의령(巾衣嶺)이라고도 한다.
고려 말 때 삼척으로 유배 온 공양왕이 근덕 궁촌에서 살해되자 고려의 충신들이 이 고개를 넘으며
고갯마루에 관모와 관복을 걸어놓고 다시는 벼슬길에 나서지 않겠다고 하며
고개를 넘어 태백산중으로 몸을 숨겼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유서 깊은 고개이다.
여기서 관모와 관복을 벗어 걸었다고 하여 관모(冠帽)를 뜻하는 건(巾)과 의복을 뜻하는 의(衣)을 합쳐 건
의령(巾衣嶺)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의리와 신념을 손바닥 뒤집듯 내팽개치고, 자리와 돈을 위해서라면 신념, 지조 따위는
아예 거추장스런 물건처럼 여기는 이가 적지 않은 요즘 세태에 견주어 보면
고려 때 충신들의 기개와 절개, 참다운 충성을 엿볼 수 있는 것 같아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사진을 찍고 한의령을 나서니 이내 8기 대원인 박은주. 이종열. 나희욱씨와
찬조 산행에 나섰다는 한 사람을 포함하여 네 사람이 과일을 먹으면서 내게도 과일을 주어
맛있게 먹고, 5분쯤 뒤 길을 나섰다.(11:40)
길을 나서니 곧 길 안내판이 나오는데, 한의령에서 피재까지 거리를 6km라 적어놓앗는데,
한의령에서 피재 쪽으로 500m를 걸어왔는데, 이곳에서 피재까지 거리 역시 6km로 적어 놓아
두 곳 가운데 한 곳 표기는 틀린 것이 틀림 없는데, 어느 곳 표기가 틀렸는지?
아마도 한의령에 있는 길 안내판이 ‘↑삼수령 6.5km’로 적을 것을 ‘↑삼수령 6.0km’로 잘못 적어 놓은 것 같았다.
길을 나서 55분쯤 가니 이번에는 염동연. 박향동. 조배연씨가 약밥 등을 먹으며 쉬고 있다가
내게 먹고 가기를 권해 약밥과 내게 있던 밀감을 나눠먹었다.
쉰 뒤 길을 나서니(12:40), 「←345kv울태 송전선로 25호 0.2km」푯말이 서 있는 새목이재로(12:41),
여기서 ‘울태’는 ‘경북 울진과 강원 태백’을 가리키는 말로 보인다.
새목이재에서 36분쯤 가면 노루메기에 닿고(13:17), 노루메기에서 12분쯤 가면
눈이 펑펑 쏟아지는 피재(해발 935m)에 닿아 산행을 마쳤다.
버너에 불을 피워 라면을 먹을 수 있게 도와준 동료가 있어 하루내내 이어진 피로를 씻을 수 있어 고맙게 생각한다.
□ 그밖에
○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하는 미련한 산행
빗속을 걸으며 종이에 일일이 기록하는 내 한심한 모습을 보고,
김부일 대장께서는 “GPS를 사서 갖고 다니면 매우 편리하다”고 말했으나,
그런 이야기는 벌써 몇 년 전부터 여러 사람으로부터 수도 없이 들었던 이야기였으나,
미련스럽게도 아날로그 방식으로 미련하고 고된 산행을 고집하고 있다.
시대 변화에 맞춰 디지털 방식으로 산행을 하면 편리하고, 시간도 줄이고,
정확한 산행 기록을 얻을 수 있는데도 옛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를 딱히 설명하라고 하면 별로 할 말이 없다.
조선시대 유럽을 중심으로 새로운 과학 문명이 발전하고 있었지만, 바깥의 앞선 문명을 모르고,
뒤에 중국이나 유럽 여러 나라, 조선 말기에는 미국 등을 통해서도
새로운 과학 기술과 새로운 문명과 문물을 받아들일 수 있었으나,
대원군의 쇄국 정책 등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기술과 사조를 외면한 100~150년 전 모습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산행 방식이 닮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
이 표현은 이번 산행 때 우리가 겪은 상황과 너무 잘 맞아 떨어진다.
적지 않은 대원들이 댓재에서 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길을 나섰다가,
큰재에 가서야 다들 비옷을 꺼내 입느라 부산을 떨었는데,
나는 큰재에서도 비옷 바지를 입지 않고 시간만 보내다가 귀내미 마을 고랭지 채소 밭에 접어들고 나서도
한참을 더 가다가 더는 참지 못하고 뒤늦게 비옷 바지를 입느라 10분 이상을 허비했다.
○ 비옷
긴 겨울 굴[터널]을 벗어나 봄으로 접어들면 앞으로 비가 잦을 것인데,
백두대간이나 정맥 길 같이 먼 거리를 오르락내리락 하자면
사람 몸 형태나 평소에 굳은 습관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원피스 같이 위 아래가 붙어 있는, 군인들이 입는 판초비옷[우의] 형태나
등 가방[배낭]까지 덮어씌우면서 몸 아래 위를 덮는 형태 비옷보다는 아래 위가 나눠진 윗옷 비옷,
바지 비옷이 각각 따로 된 제품이 걷는데 훨씬 편리할 것이다.
이 경우 단점이라면 등 가방[배낭]이 덮개를 씌워도 빗물로부터 충분히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불편은 있다.
○ 지팡이
백두대간이나 정맥 길을 걷는 사람들 가운데도 생각 밖으로 지팡이 두 개를 같이 내짚는 사랄들이 많은데,
이런 형태는 권장하고 싶지 않은 행보이다.
지팡이 짚는 것도 비옷과 마찬가지로 사람 몸 형태나 평소에 몸에 밴 습관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바람직하기로는 다리를 오른쪽 왼쪽으로 교대로 내딛듯이 지팡이도 발처럼 엇갈리게 짚는 것이 좋다.
특히, 내리막에서 지팡이 두 개를 모아 한꺼번에 짚으면 많은 힘이 지팡이에 쏠리므로
혹시라도 지팡이가 잘못 되거나 하면 몸 중심을 잃을 수 있고,
걷는 사람 윗몸[상체]이 앞으로 굽어지게 되므로 허리 건강에도 좋지 않을뿐더러,
걷는 데도 지팡이 두 개를 교대로 내 짚는 것보다 쉽게 피로해 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산행 뒤 지팡이는 습기가 차면 삭을 수 있으므로 3~4단으로 이루어진 작은 부분을 풀어
헝겊으로 물기를 깨끗이 닦아내고, 햇볕이 들지 않는,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말려야 하고,
이번처럼 하루 내내 비와 눈을 맞기라도 하면 반드시 마디를 풀어 물기를 충분히 닦아내고
위와 같은 방법으로 말려야 한다.
○ 신발
백두대간이나 정맥 길 같이 먼 길을 걷다보면 이번 같이 비나 눈으로 시작해서 비나 눈으로 끝나는 일이 많은데,
옷도 젖고 신발마저 젖고, 심한 경우는 신발 안에 물이 많이 들어가 물 속에서 발이 허우적대는 일도 있다.
발을 옮겨놓을 때마다 신발 안에서 ‘뿌걱뿌걱‘하는 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상쾌하지 못한 기분,
발은 물에 불을대로 붓고...
이런 일을 막으려면 바짓가랑이를 타고 들어가는 물을 최대한 막아야 하고,
동시에 신발 밖에서 신발을 뚫고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신발에 방수 약을 산행 이틀 전이나 사흘 전쯤부터 듬뿍 발라두는 것이 좋다.
맑은별 김정애 님은 새로 산 신발이 복사뼈[복숭아뼈]와 발목 위 바깥쪽을 압박하여 많은 고통을 당한 모양인데,
2009. 10. 5 나도 같은 회사에서 나온 발목이 긴 새 신발을 미처 질을 내지 않고 신고 용아장성릉을 걸었는데
어마어마한 고통을 겪은 바 있어 맑은별 님이 당했을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다른 조건과 환경
이른 새벽 댓재를 나설 때부터 뿌리기 시작한 비가 한층 그 세기를 더해가더니
급기야 진눈깨비를 거쳐 아주 본격적으로 눈이 내렸는데,
눈이 귀한 곳에서 사는 사람이나 어린이들이었다면 기온도 낮지 않은 날씨에 내리는 눈이 참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무거운 짐을 지고, 새벽부터 먼 길을 걸어야 했고,
처음부터 비와 진눈깨비, 눈으로 이어지는 하루 내내 좋지 않은(?) 날씨 탓에 눈이 반가울리 없었다.
눈이 많이 오는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눈 치우는 일에 지치고, 직업으로 눈 치우기를 하는 사람,
비닐 온실[비닐 하우스] 농업을 하는 사람들, 전방에 근무하는 군인들이
겨울 자주 내리는 눈을 치우느라 고생을 하면서 눈에 대한 좋은 생각,
어릴 적 아련했던 추억은 어디론가 가 버리고, 눈이 싫어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사람이 처한 환경이나 조건에 따라 같은 상황이라도 아주 다른 느낌과 경험이 되는 것은
눈을 대하는, 눈을 보며 느끼는, 여러 사람의 각각 다른 생각이 말해 주는 것이다.
○ 빗물에 젖으나 눈(雪)에 젖으나 땀에 젖으나 같다?
여름철에 산행을 할 때 비옷 입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흔히
“빗물에 젖으나 땀에 젖으나 다 똑 같다”라는 말을 하는데,
이는 비를 그대로 맞고 걸어서 옷이 젖으나, 비옷을 입고 더위에 땀으로 범벅이 되니
옷이 젖기는 마찬가지라는 뜻으로 하는 말인데, 이번에 우리도 빗물과 눈(雪) 물(水)에 젖는 것이나,
비옷 때문에 직접 젖지는 않아도 땀에 젖기는 똑 같을지 몰랐다.
그래서 산행을 마치고 목욕을 끝내고 차 안으로 들어서는 대원들을 보며
하나 같이 “다른 사람 같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아 빗물과 눈(雪) 물(水)에 젖고
땀에 젖은 우리 몰골이 마치 ‘물에 빠진 생쥐‘ 같았는지 모른다.
○ 오늘 뭘 봤지?
몇 사람이 “오늘 아무 것도 본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아닌 게 아니라 눈길과 눈비에 젖은 땅과 나무 밖에 본 것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날씨가 맑았다면 아름다운 광경을 보고 감탄사를 연발했을 텐데,
역시 아쉬운 산행이었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먼 거리를 여러 날에 나눠 가는데 어찌 좋은 날만 있겠는가?
이런 궂은 날씨에 하는 산행도 우리 인생 역정에 추억 거리 하나로 아로새겨질 것이다.
○ 게으름
게으른 탓에 산행기라고 쓰는 것이 늘 일주일쯤 뒤에 올리게 되니
이제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완행 열차가 다시 운행되는 것 같은 느낌인데,
뚜렷하게 중요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늘 바쁘다는 핑계로, 또 이런저런 일로 제 때 글을 쓰지 못한다.
○ 덧붙임
전문 산악인 범주에 드는 대원들 앞에서 장비 따위에 대해 말하는 것은 ‘
도사 앞에서 요령 흔드는 꼴’이라 부끄럽고, 혹시 잘못된 정보를 늘어놓지 않았는지 모르겠으나,
평소 경험을 말한 것이라 달리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 주요 시간대 별 이동 구간 따위(글쓴 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 제 블로그 참조
△ 다음(daum) 블로그에서 한글로 한뫼 푸른솔
△ 또는 http://blog.daum.net/angol-jong
댓재
어둠에 싸인 댓재
댓재
댓재
댓재
댓재
황장산 푯돌, 꼭대기는 이곳에서 조금 더 가야 한다
1105봉
1105봉 지나 작은 봉우리
1069봉
1062봉
1062봉
1062봉
1058.6봉
1058.6봉(고랭지 채소 밭)
자암재[장암재]
자암재[장암재] 지나 환선봉 쪽으로 가는 길에 있는 넓은 헬기장
환선봉
환선봉
환선봉 봉우리 아래(여기서 아침밥을 먹었다)
환선봉에서 쉼터 가는 길
쉼터
쉼터
덕메기산[덕항산]
장갑에 헝건히 고인 빗물을 짜내고...(덕항산)
덕항산
덕항산
내 뒤로 보이는 사람들은 우리 대원들이 아니고 다른 대원들이다(구부시령에서)
977.4봉
977.4봉
푯대봉
푯대봉
한의령[건의령]
한의령[건의령]
한의령[건의령]
한의령[건의령]
노루메기
노루메기
피재
피재에 있는 정자
펑펑 쏟아지는 눈(피재)
9기를 같이 출발했는데, 그 사이 8기와 부지런히 걸어 이번 구간을 끝으로 대간 졸업을 한단다.
□ 주요 시간대 별 이동 구간 따위(글쓴 이 기준이므로 각자 다를 수 있음)
※ 제 블로그 참조
△ 다음(daum) 블로그에서 한글로 한뫼 푸른솔
△ 또는 http://blog.daum.net/angol-jong
첫댓글 몰골이 말이 아니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신발 때문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
지금도 약 바르고 치료하고 있습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뒷산에 자주 신고 다녀 신발 질을 내십시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겪어봐서 그 아픔 너무 잘 압니다.
산행기 잘봤습니다. 특히 '그밖에'는 공부하듯 봤습니다 ㅋㅋ~
신발에 물 차는건 역시 해결이 쉽지않더군요. 몸을 타고 흐르는 땀 때문에..
다음 구간에 뵙겠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글을 써, 보는 이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발이 물에 젖으면 매우 힘든 상황이 되지요.
기록하는 처지에서는 종이와 볼펜이 빗물에 젖어 아무 것도 써지지 않을 때입니다.
이렇게 세밀하게 산행기를 쓰시는데 4일만에 올리시는 것도 대단하시죠.
잘 읽고 갑니다.
원체 게을러서 언제나 늦게 올리는데, 고쳐보려 해도 무슨 일은 그렇게도 생기는지...
"핑계 없는 무덤 없다" 했는데, 늦게 올리는 핑계 거리는 잘도 생기더군요.
저도 역시 공부하는 느낌으로 꼼꼼히 그리고 열심히 잘봤습니다
아마도 시험치면 60점정도는..(ㅎㅎ)
선생님 좋은그림과 꼼꼼하게 기록해주신 산행기에 깊은감사올립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복받많이 님의 깔끔한 사진 기술과 대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는 부지런함,
빠른 걸음 도저히 따를 수 없습니다.
움직이는 대원들 동작을 제대로 잡아내자면 다른 사람보다 훨씬 빠른 걸음걸이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만큼 소비되는 에너지와 노력이 매우 큽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꼼꼼하게 쓰신 산행기 잘 보고 배워서 갑니다..
빠른 걸음과 언제나 1등으로 올리는 사진, 그 부지런함이 부럽습니다.
비에서 눈으로 변하면서 나름 재미있는 구간이었읍니다..
목마름뒤에 나눠 먹는 빵 한조각과 귤 한개는 정말 꿀맛 이었지요..
같이 산행할 수 있어 정말 행복합니다..
자세한 산행기에 다시 대간길을 떠올리며 그날을 생각해 봅니다..
다리가 약간 불편한데도 먼 길을 걷는 모습에 손뼉을 칩니다.
빨리 완전히 나아 이전처럼 휙휙 날으는 모습을 보고싶네요.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네요,,
9기. 10기를 같이 하면서, 걸음도 빠르고, 좋은 사진들도 많이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9기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 같습니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대단하십니다 박수보내드립니다
봄은 왔으되 아직 봄은 아닌 날씨에 건강 조심하고, 얼마 남지 않은 구간 잘 끝내고,
호남정맥에서 같이 산행하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