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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 속 숨은 은혜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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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스탄 선철웅 선교사 사역 중 납치·폭행 당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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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0월 4일 저녁 7시 키르기스스탄 비쉬켁, 선철웅 선교사는 여느 때처럼 하루 사역을 마치고 귀가를 준비했다. 선 선교사는 집으로 가려던 발걸음을 예배당을 지으려는 부지로 돌렸다. 그곳에는 가정집 한 채가 있었다. 3개월째 이사를 가지 않고 버티던 사람들이 이 날 나간다고 했다.
그러나 나간다고 했던 사람들은 이삿짐도 싸지 않고 또 버텼다. 갑자기 청년들이 선 선교사를 집안으로 끌어들여 무자비하게 폭행하기 시작했다. 손을 전깃줄로 묶고 주먹이 날아들었다. 저항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청년들은 널브러진 그를 자동차 트렁크에 넣고 납치했다.
“얼굴을 집중적으로 맞아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납치를 당하면서 죽임을 당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불안함이나 원망보다 남겨질 가족에 대한 걱정과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만 계속 했습니다.” 선철웅 선교사는 밤 10시 30분까지 폭행과 납치를 당했다. 그들이 잠시 차를 비운 사이 극적으로 탈출한 것이 은혜였다. 바로 응급실로 실려 간 선 선교사는 눈 주위의 뼈가 부서지고, 오른쪽 눈이 두개골 속으로 함몰되고, 갈비뼈 3곳이 골절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사건 발생 후 한국으로 돌아와 치료를 받고 있는 선철웅 선교사를 11월 1일 만났다. 폭행 직후 사진은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었다. 몸도 마음도 많이 안정됐다고 하지만, 얼굴에는 아직 붓기가 남아있고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그러나 선 선교사는 “그 사건 이후 저와 아내는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 치유를 깊이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들을 원망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왜 자신을 폭행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라고 한다.
선철웅 선교사는 2001년 키르기스스탄으로 파송을 받았다. 파송받기 전에 가나안농군학교에 들어가 자연농법과 농업 교육을 받은 경험을 살려, 자연농업학교를 시작했다. 키르기스스탄 주민들은 유목문화 속에 살아서 농업을 몰랐다. 땅이 있어도 농사를 짓지 못했다. 자연농업학교는 농업으로 주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복음을 전하는 좋은 접촉점이 됐다.
자연농업학교와 함께 문화센터도 개설해 태권도 영어 컴퓨터 한국어 등을 가르치는 문화교실을 열었다. 문화센터는 이후 교육센터로 확장됐고, 유치원까지 설립하며 사역은 계속 넓어졌다. 자연농업학교와 문화센터는 현지인을 만나 복음을 전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 됐다.
“폭행을 한 청년 중 한 사람은 학교에서 훈련받은 형제의 처남이었습니다. 힘들게 사는 그 형제를 위해 교회 부지에 있던 가정집을 내어주고 살도록 했습니다. 그 형제의 처남이 왜 저를 폭행했는지 모를 일입니다.” 선 선교사는 점점 나태해지고 불성실한 그 형제를 다그치고, 충격요법으로 바르게 이끌려 한 것이 발단이 됐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선철웅 선교사는 현재 병원을 다니며 계속 치료를 받고 있다. 눈과 머리를 폭행당해 후유증이 걱정됐지만, 다행히 특별한 이상은 없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아내 이명희 선교사도 여러 선교사들의 기도 속에 안정을 찾고 있다.
선철웅 이명희 선교사는 향후 사역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있다. 다시 키르기스스탄으로 돌아가는 것에 두려움이나 거부감은 없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귀 기울이며 기도하고 있다.
“저희 가정을 위해 걱정해주시고 기도해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앞으로의 선교사역과 치유와 회복을 위해서 계속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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