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장각 한국학연구원 발표, 숭정기원후 란?
1368년 주원장(朱元璋)이 원(元)나라를 멸망시키고 세운 왕조 명은 처음에 남경(南京)을 도읍으로 삼았지만,
성조(成祖) 영락제(永樂帝)가 정변을 통해 황제에 오른 후 북경으로 도읍을 옮겼다.
이후 16명의 황제를 거치며 276년 동안 존속했으나, 1644년 의종(毅宗) 숭정제(崇禎帝)때 만주족 청나라에 멸망당했습니다.
숭정(崇禎)은 명나라 마지막 황제인 제 16대 의종(毅宗, 1628~1644)의 연호입니다.
숭정연간이라고 하면 의종의 재위기간인 1628~1644년이 됩니다.
따라서 '숭정기원'은 1628년입니다.
‘숭정기원후’라는 것은,
1645년부터는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존재했던 시기이기 때문에 공식적인 기록에는 반드시 청의 연호를 사용해야 되지만,
비문 등 비공식 문건에는 당시 상존하던 청나라에 대한 반감으로,
청의 연호를 거부하고 명의 연호를 사용하여 숭정기원후 몇 년으로 사용하는 사례가 많아졌습니다.
예를 들면
숭정기원후 5병자년은 청나라 연호로는 광서2년(덕종) 이며, 조선 고종 13년인 1876년입니다.
숭정기원 1628년에서 첫 병자년 1636년, 2병자년 1696년, 3병자년 1756년, 4병자년 1816년, 5병자년은 1876년입니다.
실제 비문들을 볼 때,
서울역사박물관 앞의 비석들에서도 '숭정기원후 5신미(崇禎紀元後 五辛未)' '숭정기원후 3갑신'이라고 되어있는 것을 알 있습니다.
'5신미'는 '숭정 기원후 5번째 돌아온 신미 년'이라는 뜻이니 1871년을 말하고
‘3갑신’은 3번째 돌아온 갑신년인 1764년을 말합니다.
명이 망한지 무려 200여 년이 훨씬 더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쓴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기년도로 환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628년 戊辰 숭정戊辰 숭정 1
1629년 己巳 숭정己巳 숭정 2
1630년 庚午 숭정庚午 숭정 3
1643년 癸未 숭정癸未 숭정 16
1644년 甲申 숭정甲申 숭정 17 (명나라 멸망)
1645년 乙酉 숭정후乙酉 숭정 18
1646년 丙戌 숭정후丙戌 숭정 19
1688년 戊辰 숭정후2戊辰 숭정 61
1748년 戊辰 숭정후3戊辰 숭정 121
황제가 살았을 때는 당연히 ‘숭정무진(崇禎戊辰)’이며,
1644년 황제가 죽고 1645년 乙酉년인데 숭정 후 을유‘崇禎後乙酉’로,
1688년은 1628년이 숭정 1년이니까 두 번째 돌아오는 무진년이므로 숭정 후 2무진‘崇禎後2戊辰’ 로 표기됨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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崇禎紀元後旃蒙赤奮若否之下澣 숭정기원후 전몽 적분약 부지 하한。
숭정 기원 후 을축년(1685, 숙종11) 7월 하순에
恩津宋時烈記。은진송시열기。 은진 송시열은 쓴다.
旃蒙전몽 - 천간(天干) 을(乙)의 고갑자(古甲子)의 이름
赤奮若적분약 -고갑자에서, 십이지(十二支)의 축을 일컫는 말
下澣 하한 ☞ 하순(下旬)
否之 아닐 부 갈 지
古甲子고갑자 - 옛날 간지(干支)의 이름
天干천간 - 60갑자의 윗 단위(單位)를 이루는 요소(要素). 甲(갑)ㆍ乙(을)ㆍ丙(병)ㆍ丁(정)ㆍ戊(무)ㆍ己(기)ㆍ庚(경)ㆍ辛(신)ㆍ壬(임)ㆍ癸(계)의 총칭(總稱). 십간(十干)
十二支 -열두 개의 지지(地支). 곧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 과거(過去)에 지은 업을 따라서 현재(現在)의 과보(果報)를 받으며, 현재(現在)의 업을 따라 미래(未來)의 고통(苦痛)을 받는 열두 인연(因緣). 곧 무명(無明), 행(行), 식(識), 명색(名色), 육입(六入), 촉(觸), 수(受), 애(愛), 취(取), 유(有), 생(生), 노사(老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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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망한 명나라 숭정연호사용 이유
임진년(1592년)에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입(壬辰倭亂)하였을 때에 조선국을 도와주었기에 再造之恩(재조지은) 즉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게 도와준 은혜’가 있어 패망한 명나라이었지만 연호를 계속 사용하였다.
또 다른 이유는 명나라와는 역사·문화·성리학·등이 조선국과는 밀접한 관계이었지만, 들판에 떠돌이 민족인 청나라에는 상대적으로 부족하여 본을 받거나 존중할만한 가치를 찾지 못하였다. -2018.08.02.11:35 기록 추가
2023.04.29.10:08 기록추가
숭정(崇禎)은 명나라 숭정제(崇禎帝)의 연호
천계(天啓) 7년 8월 23일(1627년 10월 2일)에 연호명을 숭정(崇禎)으로 정하고, 내년 1월 1일(1628년 2월 5일)에 개원함
천계(天啓)는 명나라 희종(熹宗) 천계제(天啓帝)의 연호. 1621년부터 1627년까지 쓰였다.
태창(泰昌) 원년 9월 6일(1620년 10월 1일)에 연호명을 천계(天啓)로 정하고, 내년 1월 1일(1621년 1월 22일)에 개원함.
<위키백과>
*사례 : 청령포 금표, 숭정 99년 병오 10월 립
숭정 99년(혹은 숭정기원 99년) 했다면 숭정황제가 살아있다는 뜻
숭정기원후 99년 했다면 숭정황제 승하 후 (죽었는데) 연호를 정한 해로 부터 99년째 되는 해
즉 1627년 10월2일 연호를 숭정으로 정하였으므로 1627년 + 99년 = 1726년 임
청령포금표비에서는 '숭정 99년' 이 아닌 '숭정기원후 99년' 이 합당타 하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