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아리움은 ‘바다의 축소판’이다. 애써 발품을 팔지 않고도 다양한 바다생물을 코앞에서 볼 수 있다. 국내에 아쿠아리움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85년. 서울 여의도 63빌딩 내에 만들어진 ‘63씨월드’가 원조다. 이후 코엑스와 부산·여수·제주 등지에 하나 둘씩 생겨나면서 대표적 가족나들이 코스로 자리잡았다.
63씨월드 수족관 전경
아쿠아리움을 한 번쯤 가본 사람이라면 공통적인 의문 하나를 갖게 마련이다. 바다에 있어야 할 생물이 거대한 유리통 속에서 과연 어떻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느냐다. 겉보기에는 스스로 환경에 적응해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보이지 않는 손길 덕이다. 정확히 말하면 수중생물 전문가 또는 수족관 관리자로 불리는 아쿠아리스트(aqualist)가 있기에 가능하다.
아쿠아리스트들이 돌고래를 길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작업을 통해 다양한 바다생물들의 생명을 보장해 주는 것일까. 한마디로 수족관이라는 인공 환경을 최대한 자연상태와 비슷하게 조성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를 위해 이들이 해야 하는 일은 제법 많다. 수중생물의 건강을 살피고 먹이를 주는 관리와 사육은 기본이다. 이와 관련된 연구도 병행해야 하고, 수질검사와 여과장치 등을 조작·유지하는 기술적 능력도 필요하다.
이뿐 아니다. 수족관에 전시할 생물을 선정, 이를 수입하고 관련 시설을 관리해야 한다. 아쿠아리움의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위해 전시회와 이벤트를 기획해야 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현장에서는 관람객의 질문공세에 대비해 다양한 전문지식도 갖춰야 한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손길’ 덕분에 수족관 생물들은 바다에서와 똑같이 온전히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아쿠아리스트의 일과는 녹록하지 않다. 출근과 동시에 업무가 시작된다. 유니폼으로 갈아입는 순간 바로 현장에 투입된다. 우선 수조 별로 조명등을 켜고 바다생물들의 ‘밤새 안녕’을 확인해야 한다. 좁은 수조지만 이곳에도 엄연히 ‘자연의 법칙’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큰 개체가 힘없고 작은 생물을 잡아먹는 포식사(捕食死)가 빈번히 발생하고, 물에선 병이 퍼지는 속도가 빨라 매사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아쿠아리스트들이 펭귄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오전 일과 중 하나가 생물 별 먹이를 조리하고, 개체의 건강상태를 확인하면서 먹이를 주는 것이다. 생물에 따라 먹는 횟수도 제 각각이다. 하루 두 번 먹는 생물은 같은 과정을 오후에 반복해야 한다. 특히 상어나 독이 있는 해파리에게 먹이를 줄 때는 베테랑이라도 간담이 서늘해진단다.
공연 파트에서는 수중 다이빙을 통해 수조 청소와 함께 개체의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공연기구를 점검한다. 또 공연 후에는 다시 전시수조 청소 등 수중생물의 집중관리가 이어진다. 매시간,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다. 이외에도 할 일은 태산이다. 전시생물의 번식과 종 보존, 수급, 영양·수질·질병관리를 책임져야 한다. 게다가 산학 공동연구 등과 관련된 전문지식도 쌓아야 한다. 젊은 장정이라도 결코 만만찮은 일이다.
63씨월드 바다표범쇼
현재 국내에서 아쿠아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전문가는 80~90명이다. 이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아쿠아리스트가 된 것일까.
우선 아쿠아리스트의 자격요건으로 대부분의 업체에서 대졸 이상의 학력을 요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수중생물의 사육·관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석사학위 이상의 학력을 요구하는 곳도 있다. 다이빙이나 수영이 필수 요건은 아니지만, 이같은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 업무에 도움이 된다. 또 양식기사, 어병(魚病)기사 등 수산·해양 관련 자격증을 갖고 있는 것도 플러스 알파로 작용한다.
아쿠아리스트들이 돌고래를 이송하고 있다.
업계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개 수의대나 수산학 관련 전공자, 수산계열 대학에 진학하면서 자연스럽게 아쿠아리스트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쿠아리스트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바로 수질관리이기 때문에 수질·환경 관련 전공자도 유리하다. 간혹 전공과 관련 없는 인력이 충원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생물전공자를 원하는 경우가 많다. 수중동물을 관찰하고 돌보는 데는 섬세함이 요구돼 여성에게도 적합하다.
아직까지 국내에는 아쿠아리스트를 양성하는 기관이나 학교가 전무한 상태다. 이 때문에 학습 외에 현장실습을 통해 자신이 좋아하는 생물을 경험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 이로 인한 인적 네트워크 형성은 업체에 결원이 생기거나 필요 시 바로 투입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에서 가장 많은 아쿠아리움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 한화그룹이다. 한화그룹의 아쿠아리스트 채용 규모를 예로 들면, 2010년부터 시작된 한화 아쿠아플라넷 벨트정책에 따라 수요가 많이 늘어나 취업의 폭이 넓어졌다. 하지만 아쿠아리움의 수가 한정돼 있어 아쿠아리스트의 수요는 그다지 넉넉하지 않다. 신규 채용도 해마다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기 채용보다는 충원 개념의 채용이 많아 현직에 있는 선·후배를 통해 채용정보에 귀를 기울이거나 산학연대 프로그램 등을 이용해 꾸준히 유대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쿠아리스트라고 하면 사람들은 ‘인어처럼 우아한 직업’이라고 상상할지 모른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아쿠아리스트의 하루 일은 고되다. 반면 보람도 적지 않다. 작은 손길 하나하나가 바다생물의 건강상태로 이어질 때, 세세한 마음 씀씀이가 동물들에게 전해질 때, 수중 다이빙으로 수조에 들어가자 바다생물들이 친구처럼 다가올 때, 아픈 개체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자 건강을 회복할 때 등이 아쿠아리스트들이 느끼는 공통된 보람이다. 생명과 함께하는 매 순간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애로사항도 적지 않다. 상처가 아물 날이 없다. 항상 물기에 노출돼 미끄러지는 일이 다반사이고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다 떨어지기도 한다. 자신이 돌보는 바다생물에게 공격을 당하는 일도 벌어진다. 무엇보다 아픈 개체가 발생할 때 ‘나의 손길 어딘가에 문제가 있던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이 앞선다.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낸 동물의 경우 마음고생의 무게가 더하다. 특히 자신의 마음이 동물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더욱 힘들고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바다생물들과 동고동락하면서 벌어들이는 이들의 수입은 과연 얼마나 될까. 결론부터 말하면 일반 대기업 수준과 비슷하다. 또 일본이나 미국 등 글로벌 아쿠아리움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업체마다 차이가 있지만 주니어 아쿠아리스트로 시작해 아쿠아리스트,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큐레이터 등으로 승진한다. 보통 큐레이터 또는 팀장이 되면 전시회를 기획하는 등 기획 및 관리업무를 수행한다.
63씨월드 김기태 팀장
아쿠아리스트의 장점 중 하나가 바로 정년이 없다는 것이다. 정년이 지나도 사육업무를 유지하는 사육사들이 적지 않다. 현재도 많은 사람들이 각지의 아쿠아리움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는 전문직이 갖는 가장 큰 혜택이다. 생물을 보듬고, 소통하고, 사랑하는 마음만 식지 않았다면 나이는 큰 문제가 안 된다는 얘기다.
김기태 팀장이 직원들과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강원대학교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후 아쿠아리스트가 된 ‘63씨월드’의 김기태 팀장(50)은 24년 경력의 베테랑이다. 김 팀장은 “국내에서 아쿠아리스트를 필요로 하는 수요는 많지 않다. 아쿠아리움은 한정돼 있고 아쿠아리스트가 되려는 이들은 해마다 늘고 있어 수산·해양 관련 자격증, 수중 다이빙 자격증 등이 취업에 유리한 조건이 될 것”이라며 “무엇보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은 기본이고, 생물에 대한 심도 있는 공부와 체험은 물론 관람시설을 많이 둘러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