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파랑길(Haeparang Trail)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보면서
너와 내가 함께 걷는 길'이란 뜻으로
부산 오륙도 해맞이 공원에서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까지
동해안을 따라 걷는
총 길이 770km의 걷기여행길이다
2010년 9월 15일에 문화체육관광부가
동해안 탐방로 이름으로
해파랑길을 선정하였으며
2016년 5월에 정식 개통하였다
개인사정으로 37코스는 건너뛰고
38코스를 하러 오독떼기전수회관앞에 내리니
그사이 봄이 와 있다
저 멀리 능선엔 하얀 옷을 살포시 입고 있지만
눈부신 햇살과 파란하늘아래
이른 봄빛이 아른아른 내려 앉고 있음이 느껴진다
상쾌한 마음으로 어김없이 스트레칭을 하고 시작~~
38코스 지도를 쓰윽 보고
굴산사지는 다음에 시간날때 와서 보기로 하고
졸~졸~~봄이오는 물소리 들으면서
어단천(於丹川)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일대를 흐르는
총 길이 2.0km의 준용하천이다
섬석천의 제1지류이자 남대천의 제 2지류로서
강릉시 구정면 구정리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흘러 남대천에 합류된다
어단천(於丹川)이라는 이름은
고려 말기에 고려의 충신들이 낙향하여
강릉에 머물면서 제단을 만들고 임금을 향해 망제를 올렸다는
‘어단리(於丹里)’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어단천에 있는 교량으로는 1992년에 가설된 칠성교가 있다
학산1리회관앞을 지나간다
두마리 학이 춤을 추듯
하늘에 구름이 멋지게 그림을 그렸다
여찬리(余贊里)
이조말까지 풍양촡이라 했다
옛날 냇가에 개오동나무가 많아서 봉황이 자주 놀러 와
봉조조양이라 하여 그 글귀를 따서
봉양동이라 하다가 일제 때 여찬리로 개칭 되었다
날씨가 너무 좋아
해파랑길 걷는 이에게 기분을 업 시켜 주고
멋진 소나무가 자꾸 시선을 머무르게 하고
살짝 보이는 그림같은 산그리메에 외면할 수 없는~~~
참말로 멋진 소나무가 많은 곳이다
장현저수지로 접어든다
장현동(長峴洞)
구한말에 장현리와 담산리는상모산이라 했고
유산리와 박월리는 하모산이라 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장현리가 되었으며
1955년에 강릉시의 행정동이 되었다
장현저수지(長峴貯水池)
강릉시 구정면 여찬리, 내곡동, 장현동에 걸쳐져 있는 저수지이며
신석동, 월호평동으로 물이 흘러 들어가는 저수지로 1947년 9월 완공되었다
2002년 태풍으로 제방이 붕괴되어 하류 마을에 심대한 피해를 입어
2004년 12월 복구하였다
저수지의 둑을 쌓는 형식은 필댐(fill dam) 방식이며 제방길이 206m,
제방 높이 16.06m, 총 저수량 2,197,100㎥이다
저수지 인근에는 송파정, 장안성, 왕고개, 장안재, 진재 등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만 볼 수 있는 멋진 작품에 감동+감동+행복함
장현저수지 보도교를 건너간다
산을 오르면서 뒤돌아 보고
송파정
다시 되돌아 나가서
해파랑길 코스따라 간다
솔숲길이 참 조으다~~
모산봉으로 오른다
박월동(博月洞)
이태조가 조선을 건국한 후 고려 유신들이
송도 만월대의 고사를 생각하여
박월이란 지명을 만들었는데 이곳에 만월대가 있었다
1914년 장대리를 병합하여 박월리라 했다
1955년 강릉시 박월동이 되었다
모산봉 정상에서 보는 미인송(실제로 보면 아주 멋진데......)
모산봉(母山峰)
강릉 부사의 집무실인 칠사당에서 남쪽으로 바라보면 보이는 작은 봉우리이다
산세가 마치 어머니가 어린아이를 업고 가는 모습으로 생겼다 하여 모산(母山)
혹은 밥그릇을 엎어 놓은 것 같다고 해서 밥봉이라고도 하고
볏짚을 쌓아놓은 것 같다는 뜻의 노적, 인재가 많이 배출된다 하여
문필봉으로도 불린다
예로부터 모산봉은 강릉으로 들어오는 재앙을 막아주고
정신적 위안을 주는 봉우리로 알려져
이곳을 향해 집을 지으면 잘 산다는 속설이 전해온다
그러다 조선 중종 때 강릉 부사가 강릉에서 큰 인물이
많이 나오는 것을 두려워 해 모산봉 정상을
석자 세치(약 1m) 깎아내렸다고 한다
그러다 2005년 강남동 주민들은 모산봉의 정기를 다시 세우기로 하고
6개월 동안 산꼭대기에 흙을 날라 산을 돋우어 105m의 옛 모습을 찾게 되었다
모산봉 정상에 서면 예전보다 훨씬 더 넓고 가까워진 동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멋진 소나무에 정신을 빼앗겨 모산봉 정상석을 찍지 못했다
내려가는 길에도 멋진 소나무가~~
날씨가 포근포근~~ 영상14도를 알리고 있다
유산동(幼山洞)
1914년 문암리와 신석리를 합쳐 유산리라 했다
1955년 노암동과 합쳐 강릉시 행정동의 하나가 되었다
노암동(魯岩洞)
마을에 노라니골이 있어서 노가니를 노암이라 불러 지명이 생겼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죽리를 병합하여 노암리가 되었다
강릉교육지원청
남대천으로 내려서서
창포다리를 건너 간다
강릉 남대천을 건너는 108m의 보도 육교
남대천 하류
남대천(南大川)
강릉시 왕산면 목계리, 삽당령 북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성산면 구산리와
시 중심부의 남쪽을 지나 동해로 흘러드는 길이 51.3㎞ 하천이다
구산리에서는 대관천, 하구부에서는 섬석천 등의 지류가 흘러들고
강의 옛 이름은 성남천,남천이었으며 하류지역에 광제연이 있었다고 한다
상류부의 산지에는 좁은 곡저평야가 띠 모양으로 발달했고 하류부의 해안지역에는
비교적 넓고 기름진 충적지가 발달해 있다
영동의 제1도시인 강릉시의 중심시가지는 이 하천 하류 유역의 충적지상에 발달했으며
대관령에서 강릉시에 이르는 강의 북쪽에는 영동고속도로가 지나고
강릉시 노암동과 성남동 사이에는 영동선이 지난다
이 강은 연어를 비롯한 은어,칠성뱀장어 등의 담수어가 서식하며
또한 매년 열리는 강릉 단오제 행사가 남대천 변에서 개최된다
유역 내에는 명주군왕릉을 비롯하여 문조대성전(보물 제214호), 대창리당간지주(보물 제82호),
수문리당간지주(보물 제83호), 굴산사지부도(보물 제85호)와 당간지주(보물 제86호),
강릉객사문(국보 제51호), 칠사당, 향헌사, 포은영당, 오봉서원터, 안국사터,
예국토성 등 수많은 유물,유적이 남아 있다
남대천 상류
내려서서 뒤돌아 보니 계단사이에 멋진 그림이~~~
시나미~명주 골목길
시나미는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을 뜻하는 (시나브로)의 강원도 말로
강릉은 삼국시대에 하슬라, 통일신라 때 명주(溟洲)라 불렀으며
명주동은 도시의 옛 지명이 동네 이름이 되었다
그에 걸맞게 고려에서 조선까지 이어진 강릉대도호부 관아(사적 388호),
강릉부의 행정 읍성인 강릉 읍성, 일제강점기 적산 가옥 등이 자리한다
강릉 시청도 2001년까지 명주동에 있었으니 약 1000년 동안 강릉의 중심 기능을 했으며
몇 해 전부터 오래된 것의 가치가 재발견되어 작고 아름다운 뉴트로 풍경이 부쩍 늘었고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생활관광 활성화 공모사업’에 시나미~명주 나들이가
최종 선정되어 명주동을 기반으로 하여 명주동 일대를 현지인들만의 먹거리와
볼거리를 즐기고 현지인처럼 체험하고 여행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일종의 관광 상품명이다
시나미~명주 나들이는 명주 마실 코스(수~목요일)와 명주시나미코스(금~일요일)로
나뉘는데 명주 마실 코스는 마을 해설 미디어 트레킹이 주를 이룬다
빨래터나 성벽 등 미리 촬영한 명주동 골목 영상을 태블릿 기기로 보며 마을을 구경하고
영상에는 무월랑과 연화 낭자의 사랑 이야기가 거리 연극처럼 담겼고 이야기꾼 김시습,
그라피티를 하는 허난설헌 등 강릉의 위인이 등장해 흥미롭다
시나미~명주 코스는 마을 해설사의 육성을 빌려 동네를 여행하며
마을 해설사는 명주동 할머니들이다
운이 좋으면 그들의 이웃집인 옛 적산 가옥을 들여다볼 기회가 주어진다
할머니들이 자발적으로 참여 해 가꾼 길가 화단 작은 정원도 반갑다
어풍루(馭風樓)
조선 시대에 세워진 강릉 읍성의 남문으로
강릉시 경강로 2007[남문동 164-1번지]에 있는
강릉의료원 앞 삼거리 부근으로 추정된다
신선을 의미하는 어풍지객(馭風之客)에서 ‘어풍’을 따서 명명한 것으로 보이며
어풍은 바람이 많은 강릉 지역에서 바람의 힘을 잘 다스리고자 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관동 읍지(關東邑誌)에 의하면 남문인 어풍루는 동문인 가해루(駕海樓)와
함께 6칸의 규모였다고 한다
지금은 일제에 의해 형체도 없이 사라졌지만
남문동이라는 지명에서 확인 되듯이
이 지역에 읍성의 남문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칠사당 삼문이 보여 들어 가 보기로 한다
칠사당(七事堂)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호
조선 시대 지방 수령의 주요 업무인 칠사(七事- 호구,농사,병무,교육,세금,재판,비리단속 )를
집무하던 곳으로 강릉시 경강로 2045(명주동 38-1)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은 960년 이래로 조선 시대까지 강릉 지역의 읍치(邑治=수령이 고을에 관한
업무를 맡아보는 관아가 있는 곳)가 자리하고 있었다
ㄱ자형 건축물로 전면 7칸 측면 3칸이며 정면 좌측에 누마루를 붙였다
지붕은 겹처마 팔작기와지붕이며 공포는 하부가 앙서, 상부가 쇠서인 이익공(二翼工) 형식이며
본체의 좌측은 온돌방이고 중앙에 대청마루를 두었으며 방 앞에 툇마루를 두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이곳에 일본의 수비대가 있었고 뒤에 강릉 군수의 관사로 쓰이다가
6·25 전쟁 때 민사 원조단에서 임시로 사용하였고 1958년까지 강릉시장 관사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강릉 단오제에 쓰일 제례주를 빚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어머어마한 건물들에 눈이 희둥그레진다
의운루
울동네서는 아직 보지 못한
매화 향기가 솔솔~~
가까이 가서 눈맞춤 한다
매화가 이쁘게 피어 있는 곳
강릉 대도호부 관아(江陵大都護府官衙)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걸쳐 중앙의 관리들이 강릉에 내려오면 머물던 객사(客舍) 터로
조선 영조 때의 임영지(臨瀛誌)에 의하면 임영관은 936년(태조 19) 총 83칸 규모로 창건 되었으며
임영관이라는 관액(館額)은 1366년(공민왕 15) 공민왕이 낙산사(洛山寺) 관음에 후사를 빌기 위하여
신돈과 그의 종 반야를 데리고 왔다가 비에 막혀 강릉에서 10일간 머무를 때 썼다고 한다
강릉 대도호부 관아의 규모는 전대청(殿大廳: 9칸), 중대청(中大廳: 12칸), 동대청(東大廳: 13칸),
낭청방(郎廳防: 6칸), 서헌(西軒: 6칸), 월랑(月廊: 31칸), 삼문(三門: 6칸) 등 총 313칸의 규모에
달하였으나 1927년 일제강점기 때 강릉 공립보통학교가 세워지면서 객사문인 임영관 삼문
(국보 제51호)과 칠사당(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호)을 제외하고 모두 강제 철거 되었다
1993년부터 강릉대학교 박물관 및 문화재연구소가 실시한 발굴조사 결과 임영지의 기록과
일치되는 고려 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건물 터 유구(遺構)로 행랑 터 3개소, 회랑 터 1개소,
중대청터 2개소, 다자형 석렬(石列)유구, 연도(煙道) 등이 확인되었고, 11~15세기의 고급 청자편,
16~17세기의 백자 및 분청사기 조이 출토되어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복원작업이 추진되어
2023년에 마무리 되어 2014년에는 강릉 임영관지에서 강릉 대도호부 관아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현재에는 각종 문화 행사와 공연이 열리고 있다
동헌(東軒)
조선시대 지방 관서에서 정무(政務)를 보던 중심 건물로
관찰사,병사,수사(水使),수령(守令)들의 정청(政廳)으로서
지방의 일반행정 업무와 재판 등이 여기서 행해졌다
지방관의 생활 처소인 내아(內衙 : 西軒이라고도 함)와 구분되어
보통 그 동편에 위치했기 때문에 동헌으로 불리게 되었다
아사(衙舍),군아(郡衙),현아(縣衙),시사청(視事廳)등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강릉 임영관 삼문(국보 제51호)
강릉 임영관 삼문(江陵臨瀛館三門)은
강릉 객사인 임영관(臨瀛館)의 정문으로
국보 제51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맞배집 3문으로서 남향이며 주심포 양식이다
앞면과 옆면만 단을 두어 쌓은 기단은 원래의 모습이 아니라 보수된 것이고
초석은 자연석을 거칠게 다듬은 화강석으로 비교적 둥근 모양이다
그 위에 바깥 기둥은 배흘림의 원기둥을, 건물 중앙부의 기둥은 민흘림의 4각 기둥을 세웠다
지붕은 맞배지붕에 장연만 사용한 홑처마 집으로 고려 시대 건축의 특징을 보여준다
전해 오는 말에 따르면 승려 범일(梵日)이 관사(官舍) 터에 절을 지었으나 병화(兵火)로 소실되고
그 문만이 남아 있다가 그 자리에 부관(府館)을 옮겨 지음으로써 객사문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하며
염양사(艶陽寺)의 삼문(三門)을 객사로 옮겨 지었기 때문에 사문(沙門)이라 불려 왔다고도 한다
절집이 아닌 목조건물로는 이 객사문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곳에서 꼭 챙겨 봐야 할 보물 중 하나로 '배흘림 기둥'을 들 수 있다
중간은 불뚝하고 아래위는 좁은 완벽한 배흘림 수법을 자랑하는 객사 기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굵은 목조 기둥이기도 하다
강릉의 옛 할머니들이 다리를 훤히 내놓고 다니는 처녀들을 보고
‘객사 기둥 같은 다리를 다 내놓고 다닌다’며 혀를 찼다는 그 기둥이다
중대청(中大廳)
고려 건축 양식으로 전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 주심포 양식이다
건물의 용도에 대하여는 관찰사의 순력 등을 위한 장소로 추정되나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서헌(西軒)
우측의 동대청과 더불어 사신 등이 숙식을 하던 곳으로
구조는 온돌방과 마루로 구성되어 있으며 동대청보다 규모가 작다
이용 규정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으나 수교집록(受敎輯錄)에 의하면
사신 일행 중 정 3품 관료들이 서헌을 사용했다고 한다
전대청(殿大廳)
객사의 정청(正廳)이자 중심공간이다
전대청에는 왕의 전패(殿牌)를 모셔두고 초하루와 보름에 수령이
대궐을 향해 절을 하는 망궐례(望闕禮)를 행하였던 곳으로
좌,우측의 동대청과 서헌에 비해 지붕이 한 단계 높게 지어졌다
정면에 1366년 고려 공민왕의 친필인 ‘임영관(臨瀛館)’ 이
가로 3m, 세로 1.2m 크기의 현판이 걸려 있다
동대청(東大廳)
좌측의 서헌과 더불어 사신 및 중앙관료들의 숙식 및 연회, 재판,
국가 경사 및 애사시 망곡(望哭) 등을 하던 곳이다
구조는 온돌방과 마루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헌보다 규모가 더 크다
이용 규정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수교집록(受敎輯錄)에 의하면
문,무관 구별 없이 사신 일행 중 품계가 2품 이상은 동대청을 이용했다는
것으로 미루어 서헌보다 위계가 높았음을 알 수 있다
강릉 대도호부 관아를 뒤로하고 횡단보도를 건너서
금성로 번화가를 걷는다
두개의 시장이 있는 곳이다
강릉 월화거리
강릉~원주 간 고속 철도 도심 구간으로
강릉시 교동 강릉역~노암동 부흥 마을의 지하화로 생긴 폐철도 부지에
2.6km의 거리 공원을 조성하고 강릉 지역의 고유 설화인
애틋한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인 ‘무월랑(無月郞)’과 ‘연화 부인(蓮花夫人)’의 이름에서
한자씩 따 와 '월화 거리'라 명명하였다
월화 거리 공원은 총 8개의 구간으로 구성한 말 나눔터 공원, 숲길, 임당 광장,
역사 문화 광장, 생활 문화 광장 및 전망대, 철도 보도 육교, 물놀이 시설,
노암 터널, 월화정 숲길 등으로 조성하였고 임당 광장, 역사 문화 광장 등에는
89개의 풍물 상점도 문을 열었다
멀리까지 왔으니 그냥 갈 수 없는~~~
중앙시장에서 강릉의 유명한 음식으로 잠깐 쉬어 가기로 한다
사 주신 님들 덕분에 튀김도 오징어순대도 맛나게 잘 먹었습니다
여유 - 김문기(2018)
따뜻한 햇살, 선선한 바람과 함께 남대천을 바라보며
월화거리를 찾는 모든 이들이 잠시나마 벤치에 앉아 커피한잔의
여유와 함께 힐링의 시간을 찾기 바라는 뜻으로 해 놓은 것이라고 함
폐철도 구간을 이용한 월화거리의 인도교
인도교에서 보는 풍경이 기가 막히다
월화정(月花亭)
무월랑(無月朗)의 월(月)자와 연화부인(蓮花夫人)의 화(花)자를 따서 이름 붙인 정자로
고려사(高麗史)악지에 소개된 명주가(溟州歌)의 배경 설화가 전승되며
남대천 월화정 설화는 허균(許筠)의 별연사고적기(鼈淵寺古迹記)에 가장 자세하게 실려 있다
그 내용에 의하면 강릉부의 남쪽에 큰 내가 있고 그 내의 남쪽에 별연사가 있으며
그 절 뒤쪽 언덕은 연화봉(蓮花峰)이다
노인들이 전하기를 주원공(周元公)의 어머니 연화 부인이 여기에 살았으므로 이것을 따서
봉우리 이름을 삼았고 절은 곧 그 옛집이라 한다
절 앞에는 석지(石池)가 있으며 이름을 양어지(養魚池)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남대천 월화정 설화는 양어지 설화 또는 명주가 배경 설화 등으로도 불리는
남,여 간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로 신라 29대 태종 무열왕 6세손인 강릉 김씨 시조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의 부모인 무월랑(無月郞)과 연화 부인(蓮花夫人)이 그 주인공이다
신라 35대 경덕왕(景德王) 때에 무월랑 김유정(金惟靖)이 화랑도 사관으로 명주(현 강릉)에서
재임할 때 연화봉 아래 별연사지 부근에 있는 연못에서 잉어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지방 토호의 딸인 연화 낭자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되었다
무월랑이 임기를 마치고 서라벌로 떠나면서 백년가약을 언약하였으나 그 후 연락이 끊겼고
박낭자의 부모는 딸을 다른 데로 시집을 보내려고 하였다.
혼담이 오가게 되자 연화 낭자는 그리움과 현 상황을 비단에 써서 고기에게 먹이를 주며
하소연을 할 때 황금빛 잉어가 편지를 물고 사라졌다
그 후 무월랑은 어머니의 병구완을 위해 장에 들러 잉어 한 마리를 사 오게 되고
잉어의 배를 가르니 편지가 나오는데 바로 연화의 편지였다
이러한 사연을 알게 된 임금은 무월랑과 연화 부인이 천생연분이라 하여 신어의 연으로
혼인을 하게 되었고 강릉 김씨의 시조 명주군왕 주원을 낳으셨다
(허균 별연사고적기, 동국여지승람)
두 사람이 잉어의 배에서 나온 편지를 보고 다시 만나게 된 일에 대해
고려사(高麗史) 명주가 배경설화에서는 정성에 감동되어 이루어진 일이지
사람의 힘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여 천정배필임을 강조하고 있다
잉어가 편지를 전달하는 전설은 당나라 때 단성식(段成式)이 편찬한
유양잡조(酉陽雜俎)의 가섭 처녀 이야기와 유사하고
고악부 음마장성굴행(飮馬長城窟行)의 내용과 아주 비슷하다
폐철도 구간이 멋진 산책길로 변신 되었다
예전 기차가 다녔던 노암터널
다시 산책길로 이어지고
입암동(笠岩洞)
마을 뒤에 삿갓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 입암동이라 하고
동쪽은 두산동,월호평동,서쪽은 노암동,남쪽은 월호평동,
신석동, 북쪽은 남대천과 접해 있다
다시 산으로 들어간다
오늘 코스는 미로를 찾듯이 다양한 길을 걷는 길이다
학동(鶴洞)
말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 형국이 학의 둥지처럼 생겨서 학우리
또는 학들이 모여 울었다고 하여 학울이라고도 했다 한다
남동이라 했던 것은 영암 남씨들이 이 마을을 창건했다고 하여 생긴 이름이다
한옥 펜션인 학동마을 대장골집
정겹기 그지없는 시골풍경에 괜히 마음이 아리다
오늘은 하늘도 멋지고 더 멋진~~
들판 너머 산그리메가 이유없는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강릉비행장의 관제탑이 보이고
냉이,쑥 캐기 좋은 곳 같으다~~ㅎㅎ
병산동 서낭당
마을 수호신인 성황을 모셔 놓은 서낭당으로
병산동에는 수서낭과 암서낭 두 개의 서낭당이 있는데
병산 초등학교 앞 논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암 서낭당으로
소나무 7그루가 서낭 숲을 이루고 있다
당집 안에 성황지신(城隍之神)을 모시고
제의는 성황제(城隍祭)라고 하며
음력 정월 초순에 지낸다
성황지신(城隍之神),토지지신(土地之神),여역지신(癘疫之神)을 모시는
병산동 수 서낭 제당은 병산동 산 32번지 마을 산기슭에 위치하며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가 서낭목이다
강릉 교육연수원 별관
병산동(炳山洞)
자리미(자루뫼)라고 불렀다
마을 서쪽 학우리에서 뻗어온 산세가 북두칠성 가운데
맨 끝에 있는 별 모양인 북두자루처럼 생겨
자루뫼( 炳山)라 하는데 자리미는 자루뫼가 변음된 것이다
오른쪽으로 들어가서 왼쪽의 섬석천 둑길따라 걷는다
남항진교를 건너간다
다리위에서 보는 섬석천
왼쪽 남항진동으로 들어간다
남항진동(南項津洞)
남대천 하류에 있는 포구로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남항진리
1955년 강릉시 남항진동으로 되었다
옛날 물건너의 견소동 앞목(앞에 있는 길목)이라 하고
이 마을은 제주에서 한송사(불화산)로 가는
남쪽 길목에 있는 나루라는 의미로 남항진이라 했다
한송사는 신라 중기에 창건된 절로
400여년 전 폐사 지금은 작은 암자만 남아 있다
국보 제 124호로 지정된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과
보물 제81호 한송사지 석불좌상은 국립춘천박물관과
오죽헌시립박물관에 각각 보관되어 있다
타워 360° / 아뜨 9 커피 카페
시골 어디를 가든 요즘 이쁜 카페들이 많이 생겼다
남항진해수욕장
길이 600m, 2만 4천㎡의 백사장이 있는 간이해수욕장으로
해수욕장 주변에는 횟집들이 많고 주차장이 넓어서 주차하기도 용이하다
주변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과 깨끗이 정비된 민박집이 있어서
조용하게 며칠쯤 쉬어가기에 적당한 곳이라고 한다
맑은 날씨에 달도 보이고
38코스 마무리를 한다
따뜻한 순두부에 편육으로 뒷풀이를 하고 출발~
차안에서 보는 하늘에 구름이 더 짙어지는 걸 보니
밤부터 비가 온다는 예보는 어김없이~~~ㅎㅎ
오늘의 최고 작품 수묵화 같은 산그리메~~
다시 봐도 너무너무 멋지다
평창휴게소에서 잠깐 내리니 비가 내린다
그렇게해서 계속 비는 쭈욱 내렸다는~~
**
길게 느껴질 수도 있었던 19km의 거리였지만
아주 좋은 날씨로 시선 가는 곳마다
멋진 풍경으로 길게 느껴지지 않았던
값지고 값진 자연을 품을 수 있었던
이쁜 구름이 다한 날이었다
함께 하신 모든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2024. 2. 18(일)
첫댓글 강릉에서 20년 살면서 알지 못했던 지명들이
샘터님 후기로 많은 공부 하였습니다
39코스에 수업료 내 겠습니다
"당신과 함께라서 행복한 오늘"
와하~~대단하셔요.
멋진 사진과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덕택에 많은 것을 배웁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