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선사는 지리산의 기슭인 경남 함양의 명산 ‘오봉산(五峰山)의 서쪽 끝자락인
남원시 인월면에 위치하고 있다.
정면으로는 지리산의 조망대로 불리는 ‘삼봉산(三峰山 )’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삼봉산과 덕두봉 사이로 지리산 ‘반야봉’이 신비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서쪽은 태조 이성계가 왜군을 대파한 기념으로 세운 대첩비가 있는 ‘황산’이 있으며
멀리 서북쪽에는 백두대간의 ‘고남산’이, 북쪽으로는 역시 백두대간인 ‘봉화산’이 자리잡고 있다.
1976년 초대 주지이신 '법련스님'께서 현재의 터에 자리를 잡으셔서 창건한 사찰이지만
이곳은 법련스님이 터를 잡기 이전부터 어떤 형태로든 사람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유는 현재 영선사 산신각을 거대한 바위 아래 자연동굴 속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동굴 말고도 작은 동굴이 2개가 더 있다. 큰 동굴 바위 밑에서는 물이 나오고
양지가 바른 곳에 위치하고 있어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확한 발굴 이전에는 1976년부터 영선사의 역사를 시작하는 것에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1996년 4월 2대 주지로 '월공(月空)스님'이 취임하셨으며
혼자 지장행자로서 정진을 계속하던 중, 1998년 8월 남원불교대학 강사로서 강좌 중
'계율'에 대한 강의를 준비하시다 금산사 '진표율사(眞表律師)'의 행장을 보고 크게 발심하셨다.
이후 대중과 함께 지장기도를 올려야겠다는 서원을 세워 사보와 법회를 통하여
지장철야기도를 공지하여 1998년 9월 26일부터 매월 마지막 토요일
신도들과 함께 1부 법회(오후9시~오후10시)와 2부 철야기도(오후10시~익일 새벽 2시),
3부 점찰법회와 예불(새벽2시20분~3시30분)의 순서로 법회와 기도를 열어 신행활동을 해오고 있다.
지장기도를 시작한 후 사세가 급격히 팽창되었으며 현재는 기도도량에 있어
필수적 요소인 신도 지원시설 연수관(건평 400평)을 현대적 시설로 완성하여 기초 작업이 완료 되었고,
2013년 9월 현재 179차의 지장 철야기도를 마치는 등 기도터로서의 이력을 쌓고 있다.
<영선사 미륵선암의 미륵불>
오래 전부터 '선암(仙庵)'이라는 암자가 있던 곳으로
1870년 풀숲에 버려져 있던 곳을 법련스님께서 기도터로 재개발하셨다.
처음 명칭은 미륵당이었으며 1988년 9월 미륵불(실제는 지장보살)봉안 이후
미륵선암으로 고쳐부르게 되었다.
이후 이곳은 영선사가 지장기도 도량으로 거듭나게 되는 여러가지 증거가 발견됨으로써
영선사 신행공간 중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우선 1988년 9월 당시 미륵불 봉안을 원하였으나,
실제는 미륵보살상이 미륵불이라는 이름으로 오시게 되었다.
그 당시 영선사는 지장기도 도량으로 될 것이라 전혀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지장기도 도량으로 되어 불사가 서로 연장선상에 놓이게 된것은 기이하다.
<영선사 대웅전>
서가모니불
정확한 봉안 연도는 기록이 없어 잘 모르나 1980년대 후반으로 추정된다.
원래 법당 내에는 대리석으로 조성된 2자 반 정도의 서가모니불이 모셔져 있었으나
현재의 청동불로 다시 봉안되었다. 높이는 석자이며 재질은 청동이다.
관세음보살
현재 법당의 서가모니불보다 조금 앞선 시기인 1980년대 중반에 모셔졌으며
1995년 중수 불사 중 손목의 훼손으로 새로 모신 영선사 마당의 아미타불 전신과 함께 봉안되었다.
재질은 화강암이며 원래는 개금을 하지 않은 백불의 형태였으나 그 후 개금하여 봉안하였다.
52차(2003년 11월 29일) 지장기도 때 땀을 흘리시는 이적을 보이시기도 하였다.
높이는 두자반이다.
지장보살
1995년 12월 22일 봉안하였으며 원래 자리에는 아미타불이 계셨으나
부처님께서 1995년 중수 중 훼불이 되어 법당에 다시 오시지 못하고 밖에 좌정하시자
법당 내에는 대체불을 모시면서 봉안하게 되었다.
높이는 두자 반이고 재질은 청동이다.
<영선사 신중탱>
<영선사 영가단>
<영선사 약사여래불>
<영선사 약사전>
금산사 1400주년(1999년) 기념행사 중 '매향(埋香)의식(1,000년된 향나무를 바닷속 깊이 파묻어서
수년간 두게 되면 향을 제외한 모든 성분을 제거하여 순수한 향만 남게 되는데 이를 침향이라 함.
이러한 향을 묻어두는 의식)'에 사용되었던 1천년 된 향나무 중 일부가 행사를 마치고
대중이 흩어진 후 떠올랐는데 마침 늦게까지 남아 있던 남원의 지경 최용만 거사가
이 통나무를 건져 보관해 왔다.
2002년 법공 조원인 거사, 현지 이정섭거사 두분이 이 향나무를 세등분한 후
그 중 하나는 서가모니불과 지장보살을 조성하였다.
현지거사가 조성한 서가모니불은 가정불로 모셔지고
법공거사가 조성한 지장보살 역시 가정불로 모시고 있었다.
그러던 중 불교대학 강의를 할 때 월공스님이 학생들에게 점안시 없이
가정에 불상을 모시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고,
이에 법공거사가 발심을 하여 영선사로 이운을 하게 되었다.
영선사로 불상을 모셔와서 보자기를 풀어보니 지장보살이 아닌 약사여래불이었다.
법공거사가 약사여래불을 영선사 강당에 봉안하기를 원하여 그러한 인연으로 오셨으며,
2003년 1월 52차 지장기도 때 연수관 강당에서 점안식을 가진 후 봉안하였다.
이는 매우 불가사의한 일로 영선사는 지장기도를 발원하면서
'진표율사'의 뒤를 잇겠다는 서원을 하여 현재 불사중인데 이렇게 인연이 된 것은
참으로 기이하다. 전체 높이는 한 자 반이다.
이러한 사연을 간직한 약사여래불 우측에는 대구의 갓바위부처님사진이 걸려있다.
<영선사 대웅전 터>
이 곳에다 향후 수년내에 250명 내외를 수용할 수 있는 대법당을 건립 예정이다.
형식은 법당 뒤의 중앙이 넓게 갈라져 있는 거대한 자연석 암벽에
지장삼부경에 근거 서가모니불과 지장보살님을 조각하려 하고 있다.
바위와 바위를 전통 목조로 연결한 금산사 미륵전을 모델로 9층이나 7층 누각형태로 건립하여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품을 만들 예정이다.
<영선사 미륵불 입상>
1993년에 봉안하였고 영선사의 마당 한가운데 위치하고 계신다.
미륵불을 봉안함에 맞춰 사명을 영선암에서 영선사로 개칭한 계기를 만드신 분이다.
현재 영선사의 대표 얼굴의 부처님이시고 재질은 익산의 황동석 화강암이며
전체 높이는 약 7미터 정도이다.
<미륵불 봉안 공덕비>
<영선사 아미타불>
아미타불은 관세음보살과 같은 시기에 법당 내에 봉안하였으나 1995년 영선사 중수 당시
잠시 밖으로 이운하는 도중 손목이 훼손되는 바람에 다시 법당으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에 모셔져 있다가 1996년 법련스님의 발원으로 불사가 시작되어
1년 반만인 1997년 8월 5일 기존불을 대체 새로 봉안하여
동년 11월 5일 점안법회를 가졌다.
재질은 익산의 황동 화강암이며 전체 높이는 6자, 연화대에 좌정하고 계신다.
<영선사 5층석탑>
<영선사 산신각 입구>
<산신각내 산신상과 독성상>
자연동굴내에 모셔진 산신상과 독성상
<산신각내 용왕탱>
<산신각내 인등>
<영선사 연수관>
영선사 연수관은 5층 건물로 1층은 보살님들 숙소 및 남`여 샤워시설,
2층은 공양간, 사무실, 공양주 보살님들 방
3층은 스님들과 거사님들 숙소, 접견실, 도서관
4층은 약사여래전 및 강당
옥상층은 법당(현재는 중심법당이지만 향후 영산전으로 바뀔 예정)이다.
1998년 지장철야기도 시작 후 영선사는 여러 좋은 이적을 경험하면서
사세가 급격히 팽창을 하기 시작했다.
1999년 5월 그간 발전을 가로막았던 주변 토지의 대매입(1만2천평)후
영선사에서는 향후 건립할 대법당을 종파와 사찰을 초월한 모든 지장행자들에게 개방을 하여
200~250명 정도의 상시 기도체제를 가동하여 명실상부한 지장기도 도량으로 자리매김하려고 한다.
이렇게 되려면 현재 영선사 신도들을 관리할 별도 법당의 필요성과
많은 인원이 쉴수 있는 요사의 공간이 필요하겠기에 건립을 계획하였으며,
현재 4층 강당까지 공사를 마무리하고 옥상에 영산전을 건립하기 위해 준비중이며
5층은 임시 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총건평은 각 층당 100평(1층은 95평)으로 395평이며
영산전까지 마무리되어 약 450평 정도에 달한다.
현재 연수관은 사찰의 주요 요사로서의 기능과
가끔 지역 불교 및 시민단체들의 모임에 이용되고 있으며,
당초 목적이 많은 이들이 쉬는 공간인만큼
수백명이 움직여도 전혀 무리가 없는 공간으로 영선사의 큰 행사를 잘 소화해내고 있다.
영선사 신도들은 연수관의 혜택으로 안락한 여건 속에서 신행생활을 하고 있다.
<영선사 동측루>
<동측루 간판>
영선사를 오르면 제일 먼저 반기는 건물이 동측루이다.
동측루는 '동편에 있는 측간인데, 그 형태가 누각의 형태인 해우소이다.
<영선사 오르는 길>
<영선사 입구 표지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