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곤증과의 사투가 시작됐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나른함은 입맛도 떨어지게 한다. 이럴 때는 매운 음식이 최고. 창원을 대표하는 빨간 맛 ‘마산아귀찜’으로 활력을 되찾아보자.
나른할 때 생각나는 화끈한 별미
한국사람에게 매운 맛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맛이다. 중독이라 타박을 당해도 개의치 않는 매운 맛 미식가도 있다. 굳이 매운 맛 마니아는 아니라 해도 사는 것이 팍팍할 때, 스트레스 해소가 필요할 때, 입맛 없어 밥 먹기 싫을 때 불현듯 붉은 맛이 당길 때가 있다. 마산아귀찜은 그런 때 필요한 음식이다. 가라앉아 있던 기분을 유쾌하게, 과묵했던 사람을 수다 떨게 한다.
아귀 토막과 콩나물이 뒤엉켜 있는 새빨간 아귀찜은 먹는 일에 그다지 힘을 들이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썩 내키는 음식은 아니다. 생선살 발라 먹는 게 귀찮아서, 손에 양념 묻는 게 싫어서 좋아하지 않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경상도 식 진한 양념 때문에 또 찾게 만드는 중독성이 있다. 따뜻한 흰 쌀밥과 함께라면 집 나갔던 봄철 입맛을 돌아오게 만들고, 입 짧은 사람도 밥 한 공기쯤 뚝딱 해치우게 만든다.
다이어트에 신경 쓰는 여성들에게도 인기 있는 메뉴다. 흰 살 생선인 아귀와 콩나물이 주재료여서 칼로리 걱정 없이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즐길 수 있다.
안줏거리에서 지역대표음식으로
‘아귀’는 식탐 많은 사람을 이르는 말이면서 ‘주둥이’를 가리키는 표준어이기도 하다. 몸체에 비해 입이 크고 먹성이 좋은 못생긴 바닷물고기의 이름으로 딱 들어맞는다. 경상도 사람들은 ‘아구’라 부른다. 아귀보다 발음하기 쉬워서다. 그래서 마산아귀찜이라 적고, ‘마산아구찜’이라 말한다.
지명이 붙은 음식에는 다 유래가 있다. 경남의 대표음식이 된 마산아귀찜도 사연이 있다. 1960년대 당시 오동동에서 식당을 하던 일명 혹부리할매가 어부들이 가져온 아귀를 흔한 채소인 콩나물, 미나리, 파와 함께 맵게 조리해 안줏거리로 내놓으면서 시작됐다. 할매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부두 노동자들의 형편에 맞춰 뜯어먹을 살이라고는 꼬리 쪽 두 토막뿐인 아귀를 대가리와 아가미살을 다 넣고 찜을 했다. 저장시설이 부족했던 때라 지금처럼 생아귀가 아닌 꾸덕하게 말린 아귀에 칼칼한 고춧가루로 버무려 조리했다.
최초 개발자가 ‘할매’여서인지, 창원시내 아귀찜 식당 간판에는 ‘할매’가 많이 들어가 있다. 세월이 흘러 몇몇 전문식당이 딸, 며느리 격인 ‘아지매’를 쓰기 시작한 것도 재미있다.
건아구·생아구, 상중하 매운맛 골라먹는다
“사진 찍다가 음식 맛 다 떨어지게 생겼네. 대충 찍고 어서 드세요.”
22년째 아귀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황경순(57)씨는 찜 상에 카메라를 들이대는 손님들에게 빨리 먹으라고 성화다. 버무린 후 내버려두면 수분이 많이 생겨서 맛이 없다고 재촉한다. 아귀찜 전문식당 주방장으로는 젊은 편이어서 그런지 그녀가 차리는 찜 상에는 마른 김이 등장한다. ‘쌈 채소가 나오는 건 봤어도 김은 처음 본다’는 반응에 “김이 매운맛을 고소하게 감싼다”며 “특히 젊은 손님들이 좋아한다”고 말한다.
사실 말린 아귀를 쪄서 양념한 혹부리할매의 원조아귀찜은 생아귀를 써서 부드럽게 먹을 수 있도록 한 요즘 아귀찜과는 다르다. 아귀찜 밥상에 오르는 부추전, 나물 반찬 등도 당시에는 없었다. 동치미국을 떠올리게 하는 무 물김치가 상차림의 전부였다.
아귀찜의 본고장 창원에 왔으니, 꼭 원조를 맛보겠다면 17개의 아귀찜 전문식당이 몰려 있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오동동 ‘마산아구찜거리’를 방문하면 된다. 입맛대로 건아구·생아구를 고를 수도 있고, 매운 맛을 상중하로 구분해 주문할 수도 있다.
촬영협조: 경아아구찜(창원시 의창구 지귀로128번길 33)
☎ 055)238-9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