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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오씨종친총회 Korea OH CLANS ASSOC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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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스크랩 오대산 상원사 (五臺山 上院寺)
현정 추천 0 조회 43 14.06.11 10:1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지난 일요일 (2007-10-21) 오대산 단풍산행 길에 적멸보궁(寂滅寶宮)과

상원사(上院寺)를 들렀기에 몇 자 적어 본다.

 

 

산행도

 

 

단풍이 한참이라 오대산 일대는 차들로 꽉 차 있어 대형버스를 통제하여

동피골에서 내려 걸어야 했다. 이날 산행은 상원사와 적멸보궁을 거쳐

비로봉까지 갔다가 되돌아 오는 왕복 원점회귀였다. 오대산까지 가서

한강의 발원지 우통수, 오대산 사고지(史庫址)와 월정사를 그냥 지나치는 것이

아쉬우나 일행의 귀경 길도 생각해야 하는지라 내 욕심만 부릴 수는 없었다.

 

 

오대산(五臺山)과 문수보살(文殊菩薩)

 

오대산(五臺山)은 문수보살(文殊菩薩)과 인연이 깊다. 이름 대로

다섯 (臺)가 있는 데, 동대 관세음보살, 서대 아미타불, 남대 지장보살,

북대 석가모니불, 가운 데 -중대에 문수보살이 계신다고 한다.

 

 

사진 : 상원사 앞 표석. 문수성지(文殊聖地)라고 쓰여 있다.

 

중국 산서성에 불교 남산종(南山宗)의 중심지 오대산(五臺山)이 있다.

신라 선덕왕 5년 (636년) 자장율사가 이 중국 오대산으로 유학을 갔다.

남산종은 계율(戒律:vinaya)을 중요시하여 율종(律宗) 이라고도 하는데

자장(慈藏)을 율사(律師)로 부르는 까닭이 율종(律宗) 계통이기 때문이다.

자장은 원효(元曉)나 의상(義湘) 보다 한 세대 정도 빠른 인물로

원효, 의상과 달리 신라 진골(眞骨)귀족 출신이었다.

 

남산종 신앙의 중심은 문수보살로 자장은 중국에서 기도하다 보살을 뵙는다.

그 때 “너희 나라 동북방에 일만의 내 (곧 문수)가 상주하고 있으니 거기서

다시 나를 친견하라”는 게송을  듣고 신라에 돌아와 오대산에서 정진하나

문수보살은 다시 뵙지 못하고 대신 문수를 위한 월정사와 상원사를 지었다.

 

게송 중 우리나라 동북방에도 오대산이 있는 것이 아니라, 중국을 본 따서

우리나라 산에 오대산 이름을 붙였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리라.

전설을 자꾸 합리적으로 풀려고 하는 것은 그리 좋은 버릇은 아니지만.

 

 

세조(世祖)와 문수동자(文殊童子)

 

세조대왕이 어느 날 상원사 앞 맑은 물에서 혼자 목욕을 하다가 마침

지나가던 동승(童僧)에게 등을 밀어 줄 것을 부탁했다. 목욕을 마친 세조가

동승에게  "어디 가든지 임금의 옥체를 씻었다고 말하지 말라" 고 하니

동승이 미소를 지으며 "어디 가든지 문수보살을 보았다고 하지 마십시오"

하고는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세조가 놀라 주위를 살피니 동승은 간 곳 없고

어느새 몸의 종기가 씻은 듯이 낳았다고 한다.

 

 

 사진 : 세조가 목욕 할 때 옷을 걸어두던 관대걸이(冠帶)-상원사 앞

 

 

 

사진 : 상원사 앞 관대걸이 근처 냇물. 세조는 이런 데서 목욕했을 것이다.

 

임금이 왜 바깥에서 그것도 혼자 목욕했을까? 는 따지지 말자.

그런데 놀랍게도 황당한 이야기를 적지 않는 실록에 이 이야기가 나온다.

 

실록 세조 8년( 1462 임오) 11월 5일 을미

임금이 상원사(上元寺)에 거둥할 때에 관음 보살이 현상(現相)하는

이상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백관들이 전(箋)을 올려 진하(陳賀)하고 …

 

전설은 문수지만 실록은 관음이다. 세조 스스로 보살을 만났다고 믿었을 수 있다.

임금이 보살을 봤다니 신하야 치하 드려 마땅하고 그건 사실이니 실록에 올랐을 것이다.

세조 대왕의 피부병은 유명하여 혹시 문둥병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정도 있다.

 

 

 사진 : 상원사 벽화-문수동자가 세조의 등을 밀고 있다.

 

 

 

사진 : (중대 사자암) 샘물 조각-문수동자상. 옆의 할머니는 마시려고 물 받는 것이 아니라,

받은 물을 문수동자 정수리에 정성껏 붓고 또 붓고 한다.

 

 

 

사진: 세조가 만난 동자를 나무로 조각. 상원사 게시판 사진 찍어 트리밍.

 

 

문수보살(文殊菩薩)

 

문수는 문수사리(文殊師利) 또는 문수시리(文殊尸利)로, 산스크리트어로

만주슈리(Manjushri)다. ‘만주’는 달다, 묘하다, 훌륭하다고,  ‘슈리’는 복덕

(福德)이 많다 이니 훌륭한 복덕을 지녔다는 뜻이다. 여진(女眞)이 만주(滿洲)

족으로 이름을 바꿀 때 만주가 무슨 뜻인지? 그 설이 분분하나 문수보살의

여진발음 만주에서 왔다는 설이 유력하다.

 

 

사진 : 상원사 문수전 벽화-문수보살. 문수동자가 세조의 등을 미는
벽화 옆으로
아마도 세조의 등을 다 밀어 준 뒤 저 모습으로 현신한 것 아닐까?

위 벽화에서처럼 문수보살은 보통 위엄과 용맹의 상징인 사자를 타고 있다.

따라서 중대 사자암 비로전 주위와 상원사에는 온통 사자상이 있다.

 

문수보살은 반야경을 편찬했다고 하며 지혜의 완성을 상징한다.

지혜의 완성은 곧 마음에 아무런 분별심, 차별의식, 우열관념 등이 없는

한없는 고요 속의 밝음이다.

 

 

 

 

사진 :오대산 중대 사자암 비로전 불단.

가운데 부처님이 지권인(智拳印)을 했으니 비로자나불 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왼 손 검지를 오른 손이 감싸는 수인으로, 왼 손은 중생, 오른 손은 부처로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뜻으로 비로자나불 수인은 언제나 지권인이다.

 

비로자나불을 모실 때 양쪽 협시보살(夾侍菩薩)은 보통 문수와 보현보살이다.

보현보살은 실천적 구도자, 문수보살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지혜를 뜻한다.

위치는 보현이 (바라 볼 때) 부처님 오른 쪽, 문수가 왼쪽이다. 우리나라

산 봉우리에 보현, 문수봉이 많은데 보현봉이 오른쪽, 문수봉은 왼쪽이다.

삼각산 봉우리도 서울 도심에서 볼 때 오른쪽이 보현봉 왼쪽이 문수봉이다.

 

 

적멸보궁(寂滅寶宮)

 

적멸보궁(寂滅寶宮)은 상원사와 비로봉 중간으로 상원사에서 약 30분 걸린다.

 

적멸보궁이란 석가모니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한 불전(佛殿)이다.

궁궐에서 임금이나 왕비가 있는 건물만 전(殿)을 쓸 뿐, 세자만 되어도

당이나 각(閣)이다. 민간에서는 전(殿)을 쓸 수 없고 다만 부처님이나 공자

모신 곳만 대웅전, 대성전처럼 전을 붙인다. 부처나 공자가 아닌 보통 사람이

있는 곳은 조사당이나 명륜당처럼 당(堂)이지 전이 아니다.

적멸보궁에는 궁(宮)도 모자라 보(寶)까지 붙여 보궁(寶宮)이다.

 

 

사진 : 적멸보궁. 상원사와 가까워 상원사 적멸보궁 인 줄 알았더니

안내판에 월정사 적멸보궁으로 되어 있다. 월정사가 대한불교 조계종

4교구 본사로 이 일대 절을 모두 관장하기 때문인 것 같다.

 

자장율사가 중국 유학에서 돌아 올 때 석가여래 정골(頂骨)을 가져와

오대산에 봉안하고 이곳에 적멸보궁을 세웠다고 한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寂滅寶宮)은 우리나라에 다섯 밖에 없으니 영취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와 이곳 월정사 적멸보궁이다.

 

 

 

 

사진 : 월정사 적멸보궁 내부.

석가여래 분신-사리를 모셨기 때문에 불상은 따로 모시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부처님 사리 묻은 곳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진 : 월정사 적멸보궁 뒤 석불조각

 

적멸보궁 뒤를 돌아가면 돌에 부처님이 새겨져 있다. 그 앞에 펫병 따위에

물을 담아 놓았으니 신도들이 기원한 흔적이다. 그렇다고 여기가 부처님

사리를 모셨다는 뜻은 아니고 어디에 봉안했는지 누구도 모른다.

그러나 삼라만상이 모두 부처니 부처님이 이곳에 계시다는 믿음이 중요하지,

2500년 인도 싯다르타의 DNA 흔적을 굳이 확인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중대 사자암

 

 

사진 : 전경. 예전 왔을 때 조그맣더니 굉장히 커졌다. 넘치는 불심을

누가 말리겠냐 만 크고 화려하다고 꼭 좋은 것은 아니다. 법당의 이름은

비로전(毘盧殿)이니 화엄(華嚴)의 주불(主佛)인 비로자나불을 모셨다.

비로자나불은 대적광토(大寂光土)에서 화엄경을 설(說)하며 광명(光明)을

비추어 어둠을 쫓고 진리를 상징하는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의 청정법신불

(淸淨法身佛)로 그 모신 불당을 적광전, 광명전 또는 보광전이라고도 한다 .

 

 

 

상원사(上院寺)

 

 

사진 : 상원사. 월정사와 함께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세웠다.

세조 때 중창하고 예종 1년 1469년 세조의 원찰(願刹)이 되었다.

1946년 불타고 1947년에 새로 지었다.

 

 

상원사 동종(銅鍾)

 

상원사에서 꼭 보아야 할 것이 우리나라 5대 범종으로 꼽히는 동종이다.

다른 넷은 국립경주박물관의 성덕대왕신종 (곧 에밀레 종), 천흥사 동종,

개성 남대문 연복사종, 서울 종로 보신각종이다.

 

 

사진 : 상원사 동종, 국보 36호, 높이 1.67m, 지름 91cm

 

종에 開元 十三年 乙丑三月 八日 명문이 있으니 신라 성덕왕 25년 725년으로

에밀레 종 보다 더 앞선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종이다.

모든 면에서 최고는 에밀레 종이지만 소리는 상원사 종이 더 좋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타종하지 않아 옛 음을 수록한 CD 로만 들을 수 있다.

상원사 종루에 복제품이 달려 있으니 지금은 그걸 치는 모양이다.

 

동종에 얽힌 전설이 있다. 원래 이 종이 안동에 있었던 듯 하다.

세조 때 상원사 중창하며 안동에서 종을 가져 오다가 죽령을 넘을 때다.

너무 무거워 꼼짝하지 않아 애먹다가 종유(鐘乳) 하나를 떼어 안동으로

돌려보내니 그제서야 움직일 수 있었다고 한다.

 

 

사진:상원사 동종 종유(鐘乳). 종 네 곳에 젖꼭지 9개 씩을 새긴 유곽이 있다.

그 중 한 군데에 (사진 왼쪽 맨 위) 젖 꼭지 딱 하나가 없다.

바로 그 종유를 떼어 안동으로 돌려 보내자 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용뉴(龍紐)

달아 매기 위해서 종 윗 부분에 만든 고리가 종뉴(鍾紐)다.

보통 용두(龍頭) 모양이라 용뉴(龍紐) 라고도 한다.

인터넷에 상원사 동종 용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쓴 글을 보았다.

 

오뚝 솟은 귀와 날카로운 뿔, 천지를 명동(鳴動)케 할 것처럼 크게 벌린 입,

하늘을 나는 듯 한 억세고 힘찬 발과 다리……

 

심형래 디워 이무기가 드디어 용으로 변하여 천하무적 된 것 같이

웅장하다는 뜻인데…. 과연 그럴까? 

 

뭐든지 천적(天敵)은 있는 법으로 용은 고래를 무서워 한다 (고 한다.)

종 치는 당목이 보통은 그냥 나무 공이지만 물고기 모양을 한 곳도 있다.

그냥 물고기가 아니라 바로 고래다. 따라서 그 당목-고래가 종을 때리면

용이 놀라서 비명을 질러 종소리가 크게 울리라고 용모양으로 만들었다.

 

 

 

사진: 상원사 동종 용뉴

저 용이 힘차게 지르는지? 무서워 겁먹고 지르는지?

보는 이가 판단할 수 밖에 없는데

무엇이던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기만 하면 목적을 이루었다 하겠다.

그런데 겁에 질려 소리 지르는지 여의주는 입에 물려 있지 않다.

 

용뉴 옆에 연꽃과 덩굴무늬로 장식된 관이 음관이다. 음관은 종을 달아매는

용뉴를 튼튼하게 보강하는 외에  종을 칠 때 종 내부 공기 진동을 줄여

파장이 길어져 소리가 멀리 퍼지게끔 한다고 한다. 신라 보물 만파식적을

모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설이 있다.

 

 

 

사진 : 동종과 당목. 당목이 물고기(고래) 모양인 곳도 있다.

 

 

사진 : 종 앞뒤에 새겨진 비천상. 넝쿨이 둘러싼 가운데 옷 자락이 휘날린다.

둘 다 무릎을 뒤로 구부렸는데 왼쪽 인물은 하프 같은 것을 뜯고 오른 쪽은

관악기를 입에 대고 있다. 하나는 수공후, 다른 쪽은 생황으로 서역 악기다.

이는 비천상 형식이 중앙아시아를 거쳤다는 것을 뜻한다. 비천상은 원래

인도 잡신(雜神)으로 나중 불교에 흡수된 팔부신중 중 둘이다. 불교가 서역을

지날 때 까진 우스꽝스러운 모습의 괴물 비슷했던 듯 하나 중국 서북에

들어 오면서 위와 같이 늘씬하게 변했다고 한다.

 

고양이 석상

 

상원사 문수전 계단 옆에 고양이석상이 있다.

 

 

고양이 일 수도 있지만 고양이 과(科) 다른 동물일 수도 있다.

절에 웬 고양이?  그 사연은 어느 날 세조가 상원사 법당에 들어가려는데

고양이가 야옹 거리며 세조 옷자락을 잡아당겨 불당을 뒤지니 안에 세조를

해치려던 자객이 숨어 있더란다. 이에 보답으로 고양이 상을 세웠다는데….

 

필자는 다른 생각을 해 본다. 우리나라에는 풍수사상의 뿌리가 깊다.

풍수적으로 완전한 땅이란 없으니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쓰는 비보(裨補)가’

성행했다. 필자가 다른 글 ‘창의문 닭과 지네’에 썼듯이 창의문 밖이

지네 모양이라 창의문 홍예에 닭을 새기고 또 그려 이를 누르려 했다.

또 거대한 남근석이 동네 가운데 있는 곳이 많으니 근처 여음 같이 새긴

골짜기의 음기를 누르기 위함이다. 이 고양이 내지 고양이과 동물 석상도

상원사 주위가 풍수상 쥐와 연관이 있어 비보(裨補)로 만든 것 아닐까?

아님 말고

 

상원사 주위를 둘러 보아도 풍수 문외한인 필자로서야 알 길이 없다.

다만 고양이석상을 어루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하길래 같이 간 일행

모두 한번 씩 만지고 단체 사진도 찍었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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