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48장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입양,
동생 에브라함을 형보다 더 축복
(찬송 시편 19편 – 악보는 맨 뒷장에)
2024-2-24, 토
맥락과 의미
48-50장은 25장부터 시작된 야곱 이야기의 결론입니다. 37장부터 시작된 요셉이야기의 결론이기도 합니다. 야곱은 임종이 다가오는 것을 알고 자신을 가나안 땅에 장례하라고 요셉에게 부탁했습니다(47:1-31).
이어서 자녀를 축복합니다. 48장에서는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합니다. 49장에는 자신의 12명의 아들을 축복합니다.
48-50장의 흐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48장: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
49장: 야곱이 자신의 12 명의 아들을 축복하고 임종
50장: 야곱의 장례
오늘 48장의 이야기의 주인공은 야곱도 아니고 요셉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인공이십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야곱은 예언자로서 전달합니다. 하나님이 약속대로 아브라함을 불러내셨을 때 하셨던 약속대로 언약에 일관성 있게 축복하십니다. 말로써 축복하셨고 하나님은 축복한 그대로 이루시는 분입니다.
1. 하나님께서 전에 야곱에게 하신 약속과 요셉의 두 아들 입양(1-7절)
2.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8-20절)
1. 하나님께서 전에 야곱에게 하신 약속과 요셉의 두 아들 입양(1-7절)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병들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두 아들과 함께 병문안을 갔습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말했습니다.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게 복을 주었다.” 루스는 벧엘을 말합니다. 이것은 창세기 28장과 35장 야곱이 고향을 떠날 때와 고향에 다시 돌아온 다음에 루스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서 복을 선언하신 것을 말합니다.
이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은 독특한 말입니다. 창세기 17장 1절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할례 언약을 맺으면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출산할 수 없는 나이인데, 그들의 몸에서 아들을 낳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게 이루어 가시는 분입니다.
야곱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말해 줍니다.
① 자손을 번성하게 하겠다.
② 가나안 땅을 너희 후손에게 영원한 기업으로 주겠다.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자기의 아들로 입양하겠다고 합니다.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요셉과 똑같은 항렬에 두겠다고 합니다.
욕심이 많다고 볼 수 있겠지만 거꾸로입니다. 22절에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세겜 땅을 더 주었나니” 요셉에게 두 배를 주는 것입니다. 요셉의 아들 두 명을 야곱 자신의 아들로 입양했기에 앞으로 요셉의 후손에게는 다른 형제 보다 두 배의 땅을 줍니다.
7절에, “내게 대해서는 내가 이전에 밧단에서 오는 도중에 라헬이 죽었다.” 라헬은 요셉의 어머니입니다. 그녀는 야곱 가족이 루스(벧엘)을 떠나 베들레헴에 왔을 때 죽었습니다.
이것이 암시하고 있는 것은 요셉의 어머니가 거기서 일찍 죽지 않았다면 더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요셉이 낳은 아들을 야곱 자신의 아들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2.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8-20절)
1) 두 사람에 대한 확인(8-10절)
요셉이 두 아들을 아버지 야곱에게 데려갔습니다. 아버지는 눈이 어두워서 보지못합니다. “이들은 누구냐?” 하고 묻습니다. 이미 알고 있지만 축복하기 전에 그렇게 확인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이삭도 야곱을 에서로 알고 축복하기 전에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27:18)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27장 1절에 이삭이 야곱을 축복할 때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해 자기의 오른손 축복을 동생 야곱에게 축복했던 것을 떠올리게 합니다. 지금 그 표현을 똑같이 쓰면서 하나님께서 두 가지 사건을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요셉은 자기 오른손으로 에브라임을 잡고 데려가서 자기 아버지의 왼손에 에브라임을 주고 자기 왼손으로 큰 아들인 므낫세를 데려가서 자기 아버지 오른편에 두었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할 것 같으면 야곱은 큰 손자, 그러니까 자기가 입양한 큰 아들인 므낫세를 오른손으로 축복하고 둘째 에브라임을 왼손으로 축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손을 거꾸로 해서 오른손으로 둘째 아들, 곧 둘째 손자에게 복을 줍니다. 15절에 보면 복을 주기 전에 요셉을 먼저 축복합니다. 사실 지금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하지만 요셉과 같이 항렬을 높였기 때문에 요셉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2) 야곱이 동생 에브라임을 더 축복(11-20절)
야곱은 손자들을 안고 그들에게 입맞추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앞에 엎드려 절했습니다. 야곱은 왼손을 큰 아들 므낫세의 머리에 얹었습니다. 오른손을 작은 아들 에브라임의 손에 얹었습니다. 작은 아들에게 더 많은 축복을 합니다. 이런 일이!
야곱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면서(15절), 그의 “아들” 즉, 요셉의 아들들을 위해 말했습니다. 먼저 하나님이 누군신지 고백합니다. 15절,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여기서 ‘섬기다’는 ‘행한다, 동행한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17:1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 행하여 완전하라”에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이 말씀대로 하나님 앞에 행했습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동행하며 왔던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기르신 것은 양을 목양해 주신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지금까지 인도하고 보호하셨습니다.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며 이들로 내 이름 이스라엘과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며 이들로 세상에게 번식하게 해 주소서” 축복합니다. 예언적으로 지금 성령의 감동으로 야곱이 이렇게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번식하게”, 번식한다는 것은 번성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아버지의 축복이 거꾸로 된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이 아버지의 손을 바꾸려고 했습니다. 야곱은 말했습니다. “안다, 안다, 나도 안다. 그래 장남도 크게 되지만 그 아우가 더 크게 될 것이고 더 큰 민족을 이룰 것이다.” 합니다.
“이스라엘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네게 에브라임같고 므낫세같게 하시리라.” 앞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서로를 축복할 때 “하나님께서는 너를 에브라임이나 므낫세처럼 해 주시기를!”이라고 할 것입니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축복의 모델이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사람의 생각을 뛰어 넘음: 보통은 큰 아들이 작은 아들보다 더 복을 받도록 축복합니다. 그러나 이번에 거꾸로 작은 아들이 장자의 복을 가지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그렇게 하셨을 까요?
자연적인 장자권, 자연적인 것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결정과 축복으로 복이 온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상식을 깨고 그 다음에 우리 자신의 교만을 깨뜨리십니다. 자기 생각을 맹신하는 것을 깨어버립니다. 이 땅의 모든 축복이 하나님의 결정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아버지 이삭에게 형 이스마엘을 제치고 장자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작은 아들 이삭을 더 크게 하고 그와 언약을 맺었습니다(18:20-21). 하나님은 둘째 아들인 야곱에게 장자권을 주셨습니다(25:2). 요셉에게도 꿈을 통해서 요셉이 형들보다도 더 높이 될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37:11).
오늘 종합적으로 무엇을 이야기합니까? 하나님께서 언약에 신실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복을 주시는데 그들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조상과 맺었던 언약 때문에 복을 주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가 아니었지만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를 입양하셔서 은혜로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이 복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둘째에게 더 복을 주셔서 우리의 상식을 뒤엎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공식화하면 안 됩니다. 둘째가 첫째보다 복 받는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또 잘못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결정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하나님께 경배 찬양하고 자비와 은혜를 구합시다.
그리고 야곱이 보여준 아버지의 축복권에 대해서 배웁시다. 하나님은 아버지를 통해서 자녀들을 축복하도록 하셨습니다. 아버지로서 자녀를 축복하고 축복을 선언합시다. 인간적인 욕심과 상식으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계시를 잘 분별하여 예언적 감각을 가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자녀를 축복하고 이끄시기를 바랍니다.
믿고 복종할 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복을 주시니 감사합시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해 주신 것 감사합시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통해서 요셉의 두 아들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입을 통하여서 하나님의 축복이 흘러가는 것을 봅니다.
지금도 교회를 통해서 우리에게 복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목사는 계속 하나님의 축복을 성도들에게 선언합니다. 아버지와 부모는 자신의 직분을 각성하여 참 인내를 가지고 부지런히 자녀를 축복합시다.
우리도 지금 교회의 일원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일원으로서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해주시기를 구합시다. 우리에게 이 땅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이 땅 위에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을 우상처럼 받들지 맙시다. 우리의 자녀들이나 이 땅의 재산을 우상처럼 받들지 맙시다. 오히려 우리의 자녀와 이 땅을 복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하나님 안에서 참된 복을 누리도록 해주시기를 간절히 구합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고 하나님의 결정으로 되니 우리 상식과 노력을 가지고 하나님을 설득하고 때로는 꾸짖기까지 하는 그런 오만한 자리에 우리가 들어가지 않도록 주님의 은혜를 구합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대로 이루어지니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이루시는 것을 기뻐하면서 감사합시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2절,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
2절에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 하였습니다. ‘하자크’라는 이 말이 참 독특한 단어입니다. 하자크, 강하다는 뜻이죠? 하자크, 강하다. 힘이 세다는 뜻도 되고 힘이 강해 인구도 많이 진다는 뜻도 됩니다.
‘아마츠’, 하자크와 같이 나오는 단어가 아마츠인데요, 여호수아 1장 잘 아시죠?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여기서 ‘강하고’가 하자크이고, ‘담대하라’가 아마츠입니다.
이 하자크, 아마츠 두 단어가 짝을 이룹니다. 나중에 출애굽기 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아마츠됐다 합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나이가 들었지만 하자크합니다. 이스라엘이 가문의 할아버지로서 힘을 내기 때문에 이들이 번성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참고> 하나님의 계시의 방식: 직접 나타나심(환상), 꿈, 말로 전해줌
하나님이 나타나는 방법, 계시를 하는 방법은 하나님께서 자유로 하시지만 어떤 경향성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꿈보다는 직접 나타났고 이삭과 야곱에게도 직접 나타나셨습니다. 이 세 사람 이후 요셉부터는 꿈으로 나타나셨습니다. 훨씬 간접적인 계시라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후반부 37장부터는 꿈을 통한 계시가 더 중요하게 됩니다. 그 앞쪽에서도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일을 할 때(31:10) 하나님께서 꿈 가운데 나타나 야곱을 번성하게 해주었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꿈으로 계시가 이루어진 것은 37장부터 요셉에게 나타났습니다.
48장에서 야곱은 아들에게 자신이 받은 계시를 말로 전해줍니다. 꿈보다 말로 전해주는 전승이 더 중요한 계시의 수단이 됩니다.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 직접 말로 전해주는 것입니다. 물론 앞쪽에도 있었겠지만 이렇게 문자적으로 정확히 나오는 것은 여기가 처음입니다.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게 복을 주었다.” 이것은 창세기 28장과 35장에 야곱이 고향을 떠날 때와 고향에 다시 돌아온 다음에 루스(벧엘)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서 복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참고> 15절,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섬기다’는 ‘할라크’의 한 형태인 ‘히트할라크’입니다. “걸어가다. 동행하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17:1에 같은 표현이 나옵니다.
<참고> 나를 기르신(라아) 하나님(15절), 요셉이 기뻐하지(라하) 아니하여(17절)
나를 ‘기르신’(라아) 하나님(15절)과 요셉이 ‘기뻐하지’(라하) 아니하여 (17절)에서 두 단어는 뜻은 다르지만 소리는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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