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도시' 산시 성 몐산(綿山)풍경구. 협곡은 무지막지했다. 골짝물은 저 아래서 까마득했고 안개는 모든 통행로를 가뒀다. 절벽을 파고 든 사원과 사당엔 전설이 넘쳐났다. 현지인에게 그것은 굳건한 신앙이었다. 깎아지른 벼랑은 좀체 익숙해지지 않았다. 대책 없는 단절의 땅. 그만 질려버렸다. 심산유곡은 수행자뿐 아니라 천하제패 욕심을 가진 자와 권력을 버린 자의 것이기도 했다. 다부진 각오 없이는 발 들임을 허용하지 않았을 대자연은 군사 요새로, 은둔처로 쓰였다. 당 태종이, 개자추가 그러했다.
중국 5천 년사를 보려면 산시 성(山西省)으로 가라 했다. 천년 고성 핑야오구청(平遙古城), '소자금성' 왕자다이위안(王家大院), 고건축미 빼어난 진츠(晋祠)…. 산시 성은 몐산풍경구 외에도 중국 고대의 속살들로 고색창연하다. 옛 중국의 진짜 얼굴에 압도당하지 않았다면 거짓이겠다.
■등신불과 하늘 다리2,566m의 몐산은 거대한 돌산이다. 석회암 자연동굴이 많다. 절집 윈펑쓰(雲峰寺)와 정궈쓰(正果寺), 도교 사원 다이뤄궁(大羅宮), 톈차오(天橋)가 거기에 세워졌다. 대개 해발 2,000m 언저리. '하늘도시'는 괜한 말이 아니었다.
몐산,거대한 돌산 2.000m 높이 '하늘도시'
13층 누각이 절경인 중국 최대 도교사원도
명·청대 건축 원형이 보존된 핑야오구청
순천 낙안읍성 확장판 격 세계문화유산몐산은 2천 년 세월 한결같이 현지인의 수행처이자 기복처였다. 그러나 1940년대 불길에 휩싸였다. 일본군이 퇴각하면서 폭격을 가해서다. 폐허 위기의 몐산은 장기 임대권을 사들인 한 석탄 부호가 복원 작업을 벌이면서 관광지로 탄생했다. 1994년 무렵이다. 절벽 호텔 윈펑수위안은 이 과정에서 조성된 명소다. 아찔한 절벽을 옹벽 삼은 윈펑수위안의 아침은 장엄하고 막막하다. 창밖 첩첩 벼랑이 잠을 깨운다.
몐산은 당 태종과 인연이 깊다. 수나라 말기, 당 태종은 나라 뒤엎을 병력을 기른다. 넓은 평야를 낀 험준한 산세의 몐산은 천혜의 요새였다. 몰래 양병하려 절집으로 위장했다. 몐산풍경구 입구에서 그 요새를 목격할 수 있다.
'피의 자리'에 오른 당 태종도 위로받을 데가 절실했을 터. 해서 찾은 절집이 윈펑쓰. 1천400년 이상 된 고찰이다. 어느 해, 가뭄이 닥쳤던 모양이다. 당 태종이 윈펑쓰 고승에게 기우제를 부탁한다. 단비가 내렸고 땅은 갈증을 면한다. 그 고승이 현지에서 공왕불로 추앙받는 전지초란 스님이다. 그의 포골진신이 윈펑쓰에 있다. 포골진신? 알고 보니 김동리 소설 속 등신불이었다. 다만, 몸 불살라 소신공양한 불상과는 거리가 멀다. 수십 년 수련 끝에 몸이 목탄 상태로 변한 고승이 입적하면 그 몸에 진흙과 방부제 섞인 약재를 얇게 입힌단다.
|
정궈쓰의 등신불. |
윈펑쓰와 그 위 절집인 정궈쓰엔 총 16존의 포골진신이 안치됐다. 당·송·원나라 고승과 도교 인물이 포함됐다. 표정은 온화했고 금방 가부좌를 풀 듯이 생생했다. '불성과 인성 지닌 특이한 부처'는 볼수록 신비롭다.
다이뤄궁은 중국 최대 도교 사원이다. 티베트 전통 건축의 걸작인 포탈라 궁에 비견된다. 13층 규모에 높이 110m. 천길 단애 등진 층층 누각이 절경이다. 9층 진열실도 빼먹기 아깝다. 거칠지만 간결하고 채색 수준이 높은 진흙 불상과 토우가 적잖다.
하늘 도시의 '하늘 다리'가 톈차오다. 바닥으로부터 300m 위에 설치된, 허공에 떠 있는 공중다리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잔도 중 하나. 잔도는 절벽의 좁은 도로를 말한다. 길이는 300m, 너비는 1m 남짓. 한 사람이 만 명을 막을 수 있는 형세란다. 그 위를 걸어가면 구름 탄 듯 정신이 아득하다. 신선계로 가는 길이 이렇겠다.
■개자추와 한식몐산은 한식의 기원지다. 춘추시대 진문공의 신하 개자추에서 유래한다. 왕위에 오르기 전 19년간 떠돌이 생활을 했던 진문공. 그를 따르며 허벅지 살을 잘라 고깃국을 바쳤던 충신이 개자추다. 시간이 흘러 왕이 된 진문공은 논공행상을 하다 어쩐 일인지 개자추를 빼먹었다. 그 길로 개자추는 몐산으로 종적을 감춘다. 개자추를 찾으러 나선 진문공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 산에 불을 놓는 일이었다. 불길을 피해 개자추가 산을 나오리라 여겼던 게다. 하지만 계획이 어긋나 버린다. 화마가 개자추를 덮쳐버려서다. 비통한 심정의 진문공은 그후 3일간 따뜻한 음식을 멀리했다. 애도의 뜻이었다. 중국 4대 명절인 한식의 시작이다.
|
개자추를 기린 개공사당. |
개자추를 기린 개공사당이 이 산에 있다. 하늘 도시의 다른 건물이 그렇듯, 개공사당은 절벽 품에 폭 안겼다. 가는 길은 두가지다. 엘리베이터와 도보. 도보 길은 서현곡을 트레킹하는 코스다. 개자추가 더 깊은 산속으로 은신하기 위해 밟아 올랐던 그 길이다. 단호한 은자의 길이겠다. 철계단과 흔들다리가 30여 분 정도 이어진다. 발 아래로 계곡물이 흐른다. "개자추가 진문공에게 유서로 남긴 말이 '청명'이었죠"(조선족 가이드 이성 씨). 나라를 맑게 다스리라는 뜻이다. 계곡 바람은 청명했다.
■명청대 거리와 진상몐산에서 40분 남짓 달리면 핑야오구청이 나온다. 명·청대의 건축 원형이 잘 보존된 중국 4대 고성 중 한 곳이다.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약 2천700년 전 주나라 때 건립된 토성이었으나 명나라 때 성벽 바깥을 벽돌로 보강했다.
|
핑야오구청. |
핑야오구청은 유교 원리가 구현된 고성이다. 공자 제자 숫자를 응용해 성벽 초소와 화살 구멍을 냈다. 성벽 둘레는 6.4㎞로 여의도 5배 면적. 약 5만 명이 실제로 거주하는, 박제되지 않은 유적지다. 순천 낙안읍성의 확장판이라 보면 되겠다. 성문은 총 6개. 남·북 1개씩, 동·서 2개씩 뒀다. 위에서 보면 거북 형상이라 '거북성'으로 불린다. 남문이 머리, 북문이 꼬리, 동문과 서문이 발인 셈. 핑야오구청의 골목 또한 종횡 9줄씩 81줄의 바둑판처럼 정연하다. 중심 골목은 명청대거리라 한다. 색바랜 고택과 붉은 등 단 상점을 따라 골목을 오가면 명·청시대를 걷는 기분이다.
핑야오구청은 진상(晋商)의 주 근거지였다. 진상은 명·청시대 '휘상'과 더불어 중국 상업계를 양분했던 산시 상인을 말한다. 중국 최초의 현대적 은행인 '일승창 표호'를 설립했다. 핑야오구청에서 15분 거리인 왕자다이위안에선 진상의 막강했던 경제력을 엿볼 수 있다. 왕씨 성을 가진 진상의 집성촌이다. 서태후가 머물기도 했다. 정원 123개, 방 1천118칸 . 민가박물관, 혹은 소자금성으로 불린다. 담벽과 바닥돌을 찬찬히 보면 금전을 상징하는 무늬로 가득하다. 더 많은 재력을 바랐던 염원일 터.
핑야오구청의 야경은 볼거리로 충분하다. 객잔에서 보내는 하룻밤도 평생 추억으로 남는다. 전통 여관인 객잔은 침구와 방 구조가 무협영화 그대로다. 달빛 아래 강호 검객이 객잔 정원에서 풀피리를 불어도 그다지 이상할 게 없다.
핑야오구청에서 1시간 30분 거리에 진츠가 있다. 주나라 무왕의 둘째 아들 당숙우의 모친을 기린 사당이다. 1천500년 전에 건립돼 계속 보수됐다. 조각한 용 여덟 마리가 기둥을 감싼 성모전,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 난라오취안(難老泉), 수령 3천 년의 측백나무가 손꼽힌다. 하긴 그것들이 아니더라도 아름다운 공원이다. 타이위안·몐산=임태섭 기자 tslim@busanilbo.com
사진=김병집 기자 bjk@
TIP
중국 산시 성(山西省)은 타이항 산의 서쪽에 있다. 동쪽으로 허베이 성, 남동쪽으로 허난 성과 경계를 이룬다. 평균 고도는 해발 300~900m의 고원. 춘추시대 오패였던 진(晋)나라의 영토였던 까닭에 약칭으로 '진'이라 부른다. 반건조 기후이지만 겨울엔 가뭄이 들며 여름엔 자주 우박이 내린다. '누들로드(noodle road)'의 시발점이라 면 요리가 유명하다. 특산주는 펀주(汾酒). 중국 8대 명주로 색·향·맛이 뛰어나다. 핑야오구청에서 살 수 있다. 산시 성의 성도는 타이위안(太原)으로 광공업 도시다.
에어부산이 내달 2일부터 두 달간 부산~타이위안 전세편을 띄운다. 매주 월·금 운항. 오전 10시 50분 출발. 돌아올 땐 오후 1시 35분 출발. 2시간 50분 걸린다. 타이위안~몐산은 차량으로 2시간 남짓.
여행 상품은 '㈜차이나는 중국여행'이 내놨다. 4박 5일 일정으로 몐산과 타이위안, 핑야오구청을 둘러보는 일정이다. 051-462-4020. 임태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