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오롯이 사랑입니다
최 화 웅
저는 2011년 초여름 예수성심전교수도회의 ‘마음의 영성’ 카페에 첫발을 디뎠습니다. 그동안 저는 ‘바다가 보이는 카페’(2011. 6. 19)를 시작으로 오늘 올린 ‘당신은 오롯이 사랑입니다’까지 모두 200편 가까운 글을 올렸습니다. 200자 원고지 3천 장이 넘는 분량으로 평균 엿새에 한 번꼴로 글을 올린 셈입니다. 저의 글은 인터넷을 타고 퍼져나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는 르뽀 형식의 시리즈도 있었습니다. 지난해 3월의 ‘제주 피정 순례길 답사’을 비롯해서 ‘강화수도원 체험기’, 지난해 겨울의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답사’와 여름의 ‘벌교에 가다’가 그것들입니다.
올 들어서는 노부부의 이야기가 저의 삶을 비추는 맑은 거울의 역할을 했습니다. 그것은 세월의 크기와 무게에 짓눌리고 휘어지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며 생로병사의 고령사회를 자연스럽게 조명했습니다. 고희(古稀)를 넘긴 몇 년 전부터는 저의 글에 ‘할아버지’와 ‘노부부’, ‘병들고 늙음’이 자주 등장했습니다.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2013. 8.30)’, ‘목요일에 만나는 양파할아버지(2013. 9. 19)’, ‘고희의 다짐(2013. 12. 17)’, ‘고추 먹고 맴맴(6. 11), 모니카 그리운 어머니(10. 18), ’노부부의 휠체어(11. 27), ‘당신은 오롯이 사랑입니다(12. 29)’가 그 예입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순수한 감성과 뜨거운 인문학적 열정이 열병으로 도집니다. 바깥세상과 인간성에 대한 도덕적 욕구가 하느님을 향한 저의 기도가 되었습니다. 오는 30일에는 저희 본당의 문덕칠 아우구스티노 형제님과 김정자 스텔라 자매님께서 금혼식을 올립니다. 금혼식은 시간만 흐르면 맞게 되는 형식적 결과가 아닙니다. 형제님은 저보다 다섯 살이 위인 일흔 일곱으로 올해 희수(喜壽)를 맞았습니다. 형제님은 프란치스코 교종과 동갑이시고 저의 선배사목회장으로 평소 저의 신앙생활에 모범이십니다. 이번 성탄 대축일미사가 끝난 자리였습니다. 연말에 고향에서 금혼식을 치르고 백년해로를 다짐한다는 소식이 좌중을 기쁘게 했습니다.
두 분의 고향은 제주 모슬포(毛瑟浦, 慕瑟浦)입니다. 두 분은 모슬포의 아래위 동네인 상모리와 하모리 출신입니다. 모슬포는 ‘모실개’의 한자식 지명입니다. 모실은 ‘모래’, 개는 ‘개울’ 또는 ‘바닷물이 드나드는 강어귀’를 뜻하는 제주도 방언입니다. 실제로 모슬포에는 제주도에서 귀하다는 모래가 지천에 깔렸습니다. 유흥준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돌하르방 어디 감수광’에서 “모슬포는 일찍부터 위아래 마을로 나뉘어 웃모실개, 알모실개로 불렸다. 이것이 상모슬리, 하모슬리라고 불리다가 급기야 어느 날 아무도 알아차리기 힘든 상모리 하모리로 둔갑해버린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모슬포에 부는 바람은 모래를 머금기로 유명합니다.
모슬포는 ‘몹쓸 바람’에서 유래했다고 증언하는 고로(古老)도 있습니다. 천주교의 신앙선조로 다산 정약용의 조카이자 황사영의 부인인 정난주 마리아 자매가 모슬포로 유배되었다가 순교한 대정성지와 천주교인의 횡포에 맞서 일어난 교란으로 아직 끝나지 않은 ‘이재수의 난’을 현기영이 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로 썼습니다. 그 사건의 진원지에 이곳 청년들이 ‘삼의사비(三義士碑)’를 세웠습니다. 놀랍게도 비문 뒷면에 “여기 세우는 이 비는 무릇 종교가 본연의 역할을 저버리고 권세를 등에 업었을 때 그 폐단이 어떠한가를 보여주는 교훈적 표석이 될 것이다.”라고 썼습니다. 옛 탐라의 포구, 모슬포에는 이렇게 슬프고도 아픈 추억이 전해집니다.
두 분은 이곳 대정고등학교를 나왔습니다. 나이는 두 살 차이지만 한 학년 위아래로 고등학교 1학년 때 세례를 받았습니다. 남녀공학의 학교에서 두 사람을 지켜본 선배의 중재로 교제를 하다 64년 당시 신설된 모슬포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모슬포성당에는 제주 화산석으로 쌓아 세운 소담한 돌문이 수문장처럼 방문객을 맞습니다. 그 안에는 6.25 한국전쟁 때 참전했던 중공군 포로들이 잘못을 뉘우치며 돌집을 지었다고 전해집니다. 그 돌집을 처음에는 ‘통회의집’으로 부르다가 지금은 ‘사랑의 집’이라고 부릅니다. 저는 제주 도보순례길 답사 때 모슬포성당에서 성삼일 미사전례의 세족례로 발을 씻겼습니다.
두 분은 지난 1964년 12월 30일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에 혼배미사를 봉헌했던 모슬포성당에서 금혼식을 치르고 백년해로를 다짐하러 떠났습니다. 슬하에 2남 1녀를 두고 퇴직 후에는 법무사로 올곧은 신앙생활을 이어가십니다. 저는 지난해 3월 제주 도보순례길 답사 때 대정성지와 ‘이재수의 난’ 진원지를 지나면서 형제님께 몇 차례의 통화로 묻고 확인하며 도움을 받은 바 있습니다. 부부사랑에 모범이신 문덕칠 아우그스티노 형제님과 김정자 스텔라 자매님의 금혼식에 축하의 마음과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와 그 소재가 된 KBS의 인간극장 ‘백발의 연인 5부작’을 보내주신 율리님께도 이 자리를 빌려 고마움을 전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가슴속에 나름의 ‘세기의 연인’을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저는 2007년 학고재에서 펴낸 <D에게 보낸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며 ‘앙드레 고르’와 그의 아내 ‘도린’을 ‘세기의 연인’으로 여깁니다. 세상 사람들의 입에 널리 오르내리는 오스트리아 출신 사상가이자 언론인인 앙드레 고르는 지난 2007년 9월 22일 “세상은 텅 비었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내.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살아나는 일이 없기를 바라네.”라는 말을 세상에 유언으로 남기고 불치병에 걸려 1983년부터 24년 동안 간호하던 아내 도린과 함께 60년간의 동반자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성탄 8일 축제를 지내면서 서재 가득히 흐르는 레온타인 프라이스의 아베 마리아를 듣습니다. 그리고 앙드레 고린이 도린에게 꼭 남기고 싶었던 마지막 영혼의 고백이자 예술적 유언, <D에게 보낸 편지>의 몇 마디를 올해 저의 마지막 글 ‘당신은 오롯이 사랑입니다’에 함께 올려 함께 읽고자 합니다.
“당신은 곧 여든두 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cm 줄었고,
몸무게는 겨우 45kg입니다.
그래도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 지 쉰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내 가슴 깊은 곳에 다시금 애타는 빈자리가 생겼습니다.
오직 내 몸을 꼭 안아주는 당신 몸의
온기만이 채울 수 있는 자리입니다.“
첫댓글 함께 해로하시는 부부님들의 모습에선 '아름답다'라는 표현 이상의 감동이 느껴지곤 합니다.
"D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며 느꼈던 짠한 감동도 되살아나네요..
아우구스티노♡스텔라부부님의 금혼식을 축하드리고 비오♡엘사형님의 그날도 기대합니다.^^♡
저희도 주님보시기 좋은 모습으로 살아오신 두분처럼 그렇게 함께 나이들어 금혼식을 맞이하고 싶어요~..
^^
사랑이란 참으로 아름답고 고귀하다는 생각이 더욱 절실히 다가옵니다. 저도 나이가 들어서 저런 아름다운 사랑을 표현할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국장님 '당신은 오롯이 사랑입니다' 사모님께 드리는 말씀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존경합니다. 가슴에 간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꾸준히 좋은 글을 써주신 형제님, 존경합니다.그리고 감사합니다..^^*
올 한해 그리움님의 글을 읽으며 배우고 감동하고 박학하심과 사랑 많으심에 카페에 함께 함이 감사했습니다. 마무리 글로 노부부의 연륜 깊은 사랑에 마음이 머물 수 있어 참 좋습니다. <D에게 보내는 편지> 와 '백발의 연인' 처럼 서로 아끼고 보듬으며
금혼식을 맞기를 기대해 봅니다. 그리움님!
엘사님과 함께 두분의 애틋한 사랑 가득한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새해에도 충만하기를 기도드립니다~^^*
새해도 며칠이 지났네요.
지나고 보니 다 지난 과거가
되었고, 지금 현재, 여기에,
존재하고 있는 제 자신이 참으로 사랑스럽습니다.
두분의 곱고 애틋한 사랑의 시선이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항상 곁에서 지금처럼 머물러 주시기를, 주님의 은총속에 행복하시기를 늘 기도드립니다.^^
선생님! 나주에서 일주일의 휴가를 마치고 전주로 왔습니다.
컴퓨터도 없고 조금은 답답하고 지루하였습니다.
스테파노가 3년 동안 집을 떠나 살고 있는 그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되더군요.
엘사 형님을 향한 애틋한 사랑에 찬사를 보냅니다.
앞에서 길라잡이가 되어주시니 저희도 똑같이 따라쟁이가 되어 따르겠습니다.
두 분 건강하시고 은총의 새해 되시길 기도드려요. ^^*
절실한 사랑의결실에 찬사드립니다
성가정에 주님의 풍만한 은총이 함께 하시길 기도중에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