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리/Rome
포폴로 광장(Piazza del Popolo)
포폴로 광장(Piazza del Popolo)은 '민중의 광장'이라는 뜻이며 핀초 언덕과 테베레 강 사이에 있다. 1589년 교황 식스토 5세의 계획에 따라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19세기에 주세페 발라디에르에 의해 완성되었다.
광장 중앙에는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기원전 1세기에 이집트를 정복한 것을 기념해 가져온 36m 높이의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다. 남쪽에 있는 쌍둥이 교회 산타마리아 데이 미라콜리와 산타마리아 인 몬테산토는 교황 알렉산드르 7세의 명령으로 세워졌다. 18~19세기에는 이 광장에서 종종 공개처형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산타마리아 인 몬테산토 교회(Santa Maria in Montesanto)-좌측
포폴로 광장(Piazza del Popolo) 남쪽에 있는 교회로 오른쪽에 서 있는 산타마리아 데이 미라콜리 교회(Santa Maria dei Miracoli)와 함께 ‘쌍둥이 교회’로 불린다. 1662~1675년 카르멜회 교회가 있던 자리에 교황 알렉산데르 7세의 명령으로 새로운 건물을 세웠으며 추기경 지롤라모 가스탈디(Girolamo Gastaldi)가 재정을 지원했다.
몬테산토는 ‘성스러운 산’이라는 뜻으로, 이스라엘에 있는 카르멜산(Mount Carmel)에서 이름이 유래한다. 본래 건축가 카를로 라이날디(Carlo Rainaldi)가 설계하였으나 잔 로렌초 베르니니(Gian Lorenzo Bernini)가 수정한 데 이어 카를로 폰타나(Carlo Fontana)가 마무리하였다. 건물은 타원형 평면에 12각형의 둥근 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18세기에 세운 종탑이 있다.
▼▲ 산타마리아 데이 미라콜리교회(Santa Maria dei Miracoli)-우측
1589년 교황 식스토 5세의 계획에 따라 만들어진 포폴로 광장(Piazza del Popolo) 남쪽에 있는 교회로 왼쪽에 나란히 서 있는 산타마리아 인 몬테산토 교회(Santa Maria in Montesanto)와 함께 ‘쌍둥이 교회’로 불린다. 교황 알렉산데르 7세의 명령으로 1675~1681년에 세워졌으며 추기경 지롤라모 가스탈디(Girolamo Gastaldi)가 재정을 지원했다.
원형 평면에 지롤라모 테오돌리(Girolamo Theodoli)가 지은 우아한 종탑과 8변형의 둥근 지붕이 있다. 건물 내부는 치장 회반죽 장식으로 꾸몄고 카를로 폰타나가 만든 추기경 베네데토와 가스탈디의 기념비가 있다. 높다란 제단에 성모마리아가 기적을 행하는 그림이 있고 오른쪽의 첫 번째 예배당은 베타람(Bétharram)의 성모마리아에게 봉헌하였다.
▼▲ 로마를 상징하는 분수(테베레 강과 아니에네강의 신)
▲▼ 포폴로 광장에 있는 두 개의 분수
쌍둥이 성당을 바라보는 쪽에서 두 개의 분수가 있는데 좌측에는 로마를 상징하는 분수가 있다(▲). 이 분수는 갑옷을 두른 로마를 비롯해 그 좌우로 테베레 강과 아니에네강의 신이 자리잡고 있다. 좌측 테베레 강의 신 앞에는 어미 늑대와 로물루스 레무스 형제상이 있다. 한편 우측에는 넵튠(포세이돈)을 상징하는 분수가 있다(▼). 넵튠은 바다의 신이니 지중해의 중심 국가를 자처하는 로마를 상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 두개의 트리톤과 넵튠의 분수(Neptune between two tritons - Giovanni Ceccarini)
▲▼ 포폴로 문(Porta del Popolo Octavian)
광장 북쪽에 있는 포폴로 문은 교황 피우스4세가 16세기에 건설했으며 100년 후 스웨덴 크리스티나 여왕을 맞기 위해 베르니니가 새롭게 장식했다. 크리스티나 여왕은 30년 전쟁을 종식시키고 스웨덴의 예술과 학문을 부흥안 인물이였으나, 왕좌를 버리고 카톨릭으로 개종해 로마에 정착했다. 이 일은 루터와 칼뱅의 종교개혁으로 교황청의 권위가 덜어지던 시기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카톨릭을 홍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 광장 안쪽에서 본 포폴로 문
포폴로 문은 테르미니역이 완성되기 전까지 로마로 들어오는 사람이 가장 먼저 거쳐야 하는 관문이였는데, 실제로 기원전 220년경 만들어진 플라미니아 가도의 출입구였다. 플라미니아 가도는 포로 로마노까지 직선으로 이어졌는데, 이는 현재 코르소 거리로 바뀌었다. 크리스티나 여왕 외에 몽테뉴, 괴테 등 유럽의 명사들도 이곳을 거쳐 로마를 방문했다. 베르니니가 1655년에 부조물을 더한것이 지금의 모습이다.
▲▼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Santa Maria del Popolo)
로마 포폴로 광장 북쪽에 있는성당으로 포폴로(Popolo)는 ‘백성’이라는 뜻이고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Santa Maria del Popolo)'는 ’백성들의 성모 마리아‘라는 뜻의 르네상스 양식의 성당이다. 정면은 안드레아 브레뇨(Andrea Bregno, 1421경~1506경)의 작품이며, 아프시스 (1508경)는 브라만테가, 내부는 잔 로렌초 베르니니가 개축하였다. 라파엘 설계의 키지 가(家) 예배당(1513경)과 카를로 폰타나 설계인 치보 가(家) 예배당(1683~87)이 특히 유명하며 전자의 돔 모자이크 장식도 라파엘의 디자인이었다.
그 외에도 핀투리키오의 프레스코화, 베르니니의 조각 등이 있다.1099년, 교황 파스칼 2세에 의해 도미티아 가족묘 위에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하는 경당이 들어섰다. 이 교회가 건축된 데에는 네로 황제와 관련된 전설이 있다. 이 교회의 터에는 원래 네로 황제의 묘소와 호두나무가 있었는데, 이곳에 계속 네로 황제의 망령이 나타나 백성들을 괴롭힌다는 소문을 들은 교황이 나무를 베어버리고 그 자리에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교회를 지었다는 것이다.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이탈리아어: Basilica di Santa Maria del Popolo)은 로마에 있는 유명한 아우구스티노회 담당 성당이다. 유명한 가문들은 이 교회에 자신들을 위한 예배당을 가지고 있었는데, 체라시 예배당은 카라바조의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고, 키지 예배당은 라파엘이 설계하였다. 교회의 뒤쪽 언덕에 울창한 소나무 숲이 펼쳐져 있다.
산타 마리아 델 포폴로 성당은 로마 주재 롬바르드인 협회의 의뢰로 1472-1477년에 바치오 폰텔리와 안드레아 브레뇨에 의해 재건축되었으며, 이탈리아 르네상스 건축의 본보기로 태어났다. 1655-60년에는 교황 알렉산데르 7세의 요구에 따라 잔 로렌초 베르니니에 의해 수정되어, 르네상스 양식의 성당에서 좀 더 근대적인 바로크 양식의 성당으로 개정되었다.
▲ 체라시 경당 내에는 안네발레 카라치의 '성모승천'과 카라바조의 그림 2점이 있는데 성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메달려 순교를 당하는 이야기의 '십자가에 못박힌 성 베드로' 와 다마스커스로 기독교인 박해를 떠난 바울(사울)이 말에서 떨어져 회심을 결심하게 되는 사건의 이야기의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 그림이다. 카라바조의 뛰어난 기법 중 하나인 명암기법을 감상할 수 있는 작품으로 이 작품을 통해 렘브란트, 루벤스, 디에고 벨라스케스 같은 당대 화가들이 큰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 체라시 경당의 '성모승천'( Assumption of the virgin)-안니발레 카라치
▲ '십자가에 못 박힌 성 베드로(Crucifixion of St. Peter )– 카라바조(Michelangelo Caravaggio)
카라바조의 ‘성 베드로의 순교’는 십자가형을 선고 받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리는 사도 베드로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백발에 깊게 패인 이마 주름이 보이는 베드로는 일그러진 얼굴로 십자가 형틀에 못박혀 있다. 중력 때문에 피가 거꾸로 흐르는 무거운 고통에 그는 머리를 든다. 그의 곁에는 십자가형을 집행하는 형리들 외에는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다. 형리 중 한 사람은 십자가를 세울 땅을 삽으로 파내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베드로의 십자가가 세워질 그 땅에서 파낸 돌이다. 매우 자세하게 묘사한 이 돌은 베드로가 바로 ‘반석’임을 나타낸다. 또 다른 형리들은 베드로가 매달린 십자가를 일으켜 세우려고 안간힘을 쓴다. 베드로가 체험한 십자가의 고통은 곧 그리스도의 고통에 동참하는 일이었다. 이렇듯 그리스도를 닮고자 했던 베드로는 말한다. “나는 십자가에 똑바로 달릴 수 없습니다. 오로지 그리스도만이 바로 달릴 수 있습니다.”
▲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카라바조(Michelangelo Caravaggio)
불과 38년의 열정적인 삶을 살고 요절한 화가 카라바지오는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을 대표하는 대가이다. 그는 대담한 화면 구성과 강렬한 암흑의 대비 효과로, 드라마틱한 표현의 절정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말을 타고 다마스커스로 향하는 사울은 강렬한 빛에 눈이 멀어 낙마하고 이 체험을 계기로 그리스도교인으로 개종, 바로 사도 바오로로 활동하게 된다. 거대한 말의 형상이 화폭을 거의 메우다시피 한 구도의 불균형으로 기진맥진한 사울의 충격이 더욱 강조된다.
▲ 키지 예배당(Santa Maria del Popolo,- Chigi Chapel)
▲키지 예배당의 '다니엘과 사자'( Daniel and the Lion -좌측)& '하박국과 천사'(Habakkuk and the Angel -우측) -Bernini
성당 내 체라시 경당에는 카라바조의 캔버스 그림(십자가에 못 박힌 성 베드로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과 안니발레 카라치의 성모 승천뿐만 아니라, 핀투리키오의 프레스코 벽화와 안드레아 브레뇨와 잔 로렌초 베르니니의 조각상(하바쿡과 천사, 다니엘과 사자)을 보유하고 있다. 키지 경당은 은행가 아고스티노 키지의 개인 경당으로 라파엘로 산치오가 설계하였다. 돔은 라파엘로의 모자이크 그림 천지 창조로 장식되어 있다.
▲ Statua di san Giovanni Gualberto(Santa Maria in Montesanto 성당)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