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2024 추계예술대학교 정시 수석 합격한 이송연입니다. (후기 쓴 뒤에 단국대도 붙었네요) 수석 합격 뜬 이후로 만나는 사람마다 우리 수석~ 하면서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셨는데 사실 그렇게 반응해주셔서 제가 받은 '수석'에 의미가 생기는 거라고 생각해요. 막상 수석이라는 소식을 엄마한테서 전화로 받았을 땐 그냥 그랬거든요. 입학을 수석으로 했다고 졸업까지 쭉 수석할 거란 보장도 없다고 생각하며... 요즘의 제 생활은 이 들뜨고 얼떨떨한 기분을 담담하게 가라앉히는 데 치중되고 있답니다.
거두절미하고, 솔직히 말하자면 다들 제게 합격 후기를 쓰라고 많이 권유하셨는데, 저는 며칠을 미루고 또 조금 썼다가 취소 버튼을 누르는 등 약간 고사했습니다. 후기를 쓰기 귀찮다기보다는 쓸 말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매일 밤을 새가면서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학원을 아주 오래 다닌 것도 아니었거든요. 억지로 말을 지어내봤자 선생님들께서 저를 아시는데...ㅎㅎ 어떻게 거짓말을 할 수 있겠나요?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조차 무슨 말을 할지 고민하고 있지만.. 거창하진 않더라도 제 얘기를 조금 해보겠습니다.
문창과 입시를 하게 된 계기는 딱 꼬집어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어릴 적부터 책 읽는 거랑(근데 다 역사책만 읽어서 입시에는 별로 쓸모가 없었습니다) 상상하는 걸 좋아했긴 했지만, 그것 때문이라기보다는... 고등학교에 딱 입학하니까 뭔가 운명처럼 슬금슬금 확신이 오더라고요. 그 어떤 계기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나는 이쪽을 가게 될 것 같다. 글을 쓰게 될 것 같다..고요. 그 전까지는 역사학자를 꿈꾸고 있었는데, 아무 관련이 없는 글을 쓰고 싶어지다니 저한텐 정말 운명 같았어요. 저는 원래 하나에 팍 꽂히면 그거 하나만 파면서 다른 건 눈길도 안 주는 성격이라.. 글쓰기가 운명 같다고 느끼자마자 다른 경우의 수는 다 접어버렸답니다. 저는 이랬지만... 웬만해선 이러지 않는 걸 추천드립니다. 입시에서는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으로 돌아오는 행동이에요.
저희 엄마는 제 성격을 잘 알아서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라는 입장이셨는데, 아빠는 조금 반대하셨어요. 뻔한 얘기를 늘어보자면, 아빠는 자수성가한 사람이라 돈과 안정적인 직업을 중시하셨거든요. 글 쓰는 일은 아빠 기준에서는 아빠가 원하는 길과 많이 달랐죠. 저희 삼남매에게 습관처럼 하는 말이 "나중에 부모한테 손 벌릴 생각 마라. 유산은 없어. (생각도 안 했는데!)", "너희는 내가 버는 돈의 절반만 벌어도 성공한 거로 쳐줄게."라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가시려나요? 아무튼 드라마틱하게까진 아니고 꼭 그쪽으로 가야겠냐?는 식으로 반대하시면서 입시 내내 제가 글쓰기에 대한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를 끊임없이 의심하셨어요. 합격 전날에는 일본 유학을 언급하시면서 차라리 약사를 하는 건 어떠냐, 원한다면 약국 정도는 나중에 차려주겠다고 저를 유혹하기까지 했는데...... 제가 장학금을 타버렸죠 ㅎ 지금은 수석 입학이라는 사실에 어느 정도 만족한 듯 보이십니다.
제 입시는 이런 아빠의 은근한 반대와 엄마의 걱정과 불안으로 일 년이 꽉 차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나 증명과 인정이 필요했어요. 신동엽 백일장에서 장원을 탔을 때, 상을 탔단 기쁨은 순간이었고, 부모님의 반응을 며칠 동안 살폈던 기억이 납니다. 부모님은 예상과 빗나가지 않게 백일장의 규모를 묻고, 상의 의미를 계속 제게 여쭤보셨죠. 부모님이 불안해하시는데, 저까지 불안해했다간 엄마아빠가 더 힘드실 것 같았습니다. 특히나 2023년은 아빠의 직장 생활이 힘든 시기였고, 엄마는 몸이 자주 편찮으셔서 저만큼은 짐이 되지 않았으면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입시 내내 가족들 앞에서 여유롭고 당당하게 행동했습니다. 그렇게라도 행동하니, 멘탈도 덩달아 흔들리지 않고 단단해지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그런 생활 속에서 점차 수험 생활 동안 제 멘탈이 흔들리지 않을 방법을 자연스레 깨달았고, 이 깨달음과 저만의 주관을 글에 집어넣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잘 쓰는 노하우는 다른 합격자 분들이 쓴 합격 후기에서 많이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저 자신을 몰아 붙이는 노력을 하면서 붙은 사람이 아닌지라 열심히 해라! 라고 말해봤자 거짓말 같을 거고요. 노력할 자신이 없다면 과제라도 성실하게 내시면 됩니다. 능동적인 사람이 아니라면 수동적으로라도 선생님 말씀을 따르면 됩니다. 1인칭 관찰자 시점이 1인칭 주인공 시점보다 합격글이 많긴 하지만, 평소 선생님들께 글에 네가 안 들어가 있다는 비평을 받으신다면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추천드려요. 자기 자신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제 합격작도 1인칭 주인공 시점이랍니다.
제가 노력에 대해 할 조언은 이것뿐이에요. 다만 저는 창작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고 뽑아내는 행동이라 창작을 하면서 많이 지치셨을 분들을 위해서 제 멘탈 유지 방법은 조금 알려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입시하면서 나 정도면 멘탈이 튼튼한 편이지 않았나.. 종종 생각하거든요. 입시가 길어져 정시까지 갔는데도 말이죠.
방법은 간단합니다. 현재를 살아가시면 돼요. 과거는 곱씹을수록 후회되는 것들 투성이고, 미래는 1초 뒤마저도 아무것도 알 수 없어 불안합니다. 저는 사람들은 눌어붙은 과거를 끄집어내 자기 자신을 갉아먹고, 미래에서 걱정할 거리를 빌려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되도록 과거와 미래는 생각하지 마세요. 백일장이나 시험에 떨어져도 그 순간만 아쉬워하세요. 이미 떨어진 거 어쩌겠나요? 바꿀 수 없는 과거가 됐으니까 더 잘하는 사람이 상을 받았겠거니, 또는 붙었겠거니 해야죠.
글이 잘 써지지 않아 자기 자신이 한심스러우면 한숨 몇 번 쉬고, 혼잣말로 욕을 좀 하거나 그것보다 감정을 주체할 수 없으면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를 지르세요. 감정은 그때그때 터트리는 게 좋거든요. 그런 다음 다시 노트북에 앉아 나와 내 인물에 대한 생각을 이어나가시면 됩니다. 앉아서 굳이굳이 최악의 미래를 상상하지 마세요. 동기부여가 된다면 최고의 미래 정도는 생각해도 괜찮겠지만.. 만약 정시까지 가게 된다면 그 미래가 족히 여섯 번은 깨지는 셈이니까 그것도 딱히 개인적으로 추천드리진 않아요. 언제나 현재와 오늘을 생각하고, 지금을 살아가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적어도 걱정과 불안은 많이 사라진답니다.
용기를 북돋아주는 말은 아니지만... 인생에서 꺾이고 실패할 일은 아직 한참 남았어요. 저도 그렇고,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도 그렇고요. 특히 예술은 극소수만이 성공하니까 보통 사람들보다 실패를 더 많이 겪게 될지도 몰라요. 그때마다 그만하고 싶어 포기하고 싶어..라면서 우울해할 순 없다고 생각해요. 주저앉을 수는 있지만 일어날 수도 있어야 하니까요. 저는 고도에서 글을 썼던 일 년이 잘 안다고 생각했던 저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고, 글쓰기 뿐만 아니라 제 마음가짐을 더 다듬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일어서는 법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아요. 지금 고도를 다니고 계신 여러분도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합격은 당연하고요. 하고픈 말을 다 썼으니, 이만 말을 줄일게요.
첫댓글 산문 A반 짱먹은 송연아~! ~!!! 합격 넘 추카해🥹 진짜 난 너 어느 대학이든 수석 할 줄 알았다 진짜 잘될 줄 알았다구ㅠㅠㅠㅠㅠ 💗💗 우리 대학 가서도 자주 만나자!! (+합격 후기 대문자 T 같음)
당근 자주 만나야지 ! 멀지도 않잖아~ 글고 대문자 T..ㅎㅎ 동생은 내 글 읽더니 팩폭하는 독설가의 순화 버전 같대.... 그 정도야? 나름 상냥하게 썼는데 일단 다나까가 아니라 해요체잖아..
송연아!!!! 네가 먼저 올렸구나!! 우하하!!! 정특을 너와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너무 즐거웠어. 우리 자랑스러운 수석 송연이 4년 내내 자랑하고 다니도록 해!! 고도의 자랑 나의 친구 이송연!!!!! 너무너무 축하하고 앞으로도 우리 문우로서 친구로서!!!! 잘 놀고 잘 쓰자!!!!! 우리의 앞날을 응원하며!!!! 파이팅!!!!
텍스트로 목소리 크기가 느껴져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명절 지나면서 후기 쓰는 거 잊고 있다가 지후 쌤이랑 세영이가 연락해서 ㅋㅋㅋㅋ... 나두 정특 때 네가 있어서 너무너무 다행이고 좋았어.. 앞으로도 자주 만나 !! 멀지도 않잖아용~
@이송연 당근 빠따죵!!! ㅋㅋㅋㅋㅋ 세영이도ㅋㅋㅋ내 댓글 보고... 우렁차다고ㅋㅋㅋㅋ
송연다운 후기다 ㅎㅎㅎ
선생님이 보시기에도 제가 T 같나요..... 근데 선생님 저 방금 단국대 추가 합격했는데 단국대도 제목에 적을까요?
@이송연 웅~~
송연아 확인이 늦었네!! 수석이라니 대단해! 학원 다닐 땐 무언가 부끄러워서 말 못했지만 나는 네 글 정말 좋았어!!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써줘:)
헐 나야말로 확인이 너무 늦었다... 나도 말은 못했지만 채영이 네 글 특유의 독특하고 신선한 발상이 너무 좋았고 대사를 생생하게 잘 쓰는 능력이 부러웠어 앞으로도 네가 쓰는 글 기대하고 있을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