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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녀 안나 카타리나 에머리히 수녀(이하 복녀 에머리히)가 받은 계시에 따른 백인대장 성 크테시폰(아브나달)과 성 론지누스의 감동적인 이야기>
성 론지누스
1821년 3월 15일 복녀 에머리히는 그 전날 밤 보았던 성 론지누스에 관한 환시 이야기를 내게(시인 브렌타노, 옮긴이 주1 참조) 들려주었다. 그날은 마침 성 론지누스의 축일이었는데 그녀는 그것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론지누스는 내가 알기로는 원래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옮긴이 주2 참조) 빌라도 집안에서 공적인 업무와 군사적인 업무 두 가지를 맡고 있었는데 빌라도 총독은 그에게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감독하는 일과 또 그러한 일들을 자신에게 소상히 보고하도록 하는 임무를 맡겼다. 그는 신뢰할만하고 기꺼이 일한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기 전까지만 해도 성격적으로 몹시 우유부단하고 심지가 곧지 못했다. 그는 매사에 극도로 충동적으로 일처리를 했으며 다른 사람들의 눈에 자신이 중요한 사람인 것처럼 보이려고 애썼다. 그런데 그는 사팔뜨기(옮긴이 주3 참조)였고 양쪽 눈의 시력이 좋지 않아서 동료들로부터 조롱을 당하고 놀림감이 되었다. 내가 오늘 밤 그리스도의 수난에 관한 환시를 보는 중에 동시에 그와 관련된 다음과 같은 환시를 보게 되었다.
’론지누스는 지휘관의 신분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보았던 모든 일들에 대해 빌라도에게 보고해야 했다. 예수님께서 가야파의 법정에 끌려가시던 그날 밤에 그는 병사들 무리에 섞여서 바깥마당에 있으면서 쉬지 않고 왔다 갔다 하였다. 베드로가 모닥불을 쬐고 있던 하녀의 말에 흠칫 놀랐을 때 다음과 같이 말한 사람이 바로 론지누스였다: ‘당신도 이 사람(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오?(요한 18:12-27 참조)’
‘예수님께서 갈바리아로 끌려가실 때, 론지누스는 빌라도의 명령으로 그분 뒤를 바짝 따랐는데, 그때 우리 주님께서 그를 쳐다보시며 그의 마음에 감동을 불러일으키셨다. 이후에 나는 그가 다른 병사들과 함께 골고타 언덕에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말을 타고 있었으며 창을 지니고 있었다. 나는 그가 우리 주님께서 숨을 거두신 이후에 빌라도의 관저에서 예수님의 다리를 부러트려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즉시 갈바리아로 돌아왔다. 그의 창은 여러 부분들이 결합되어 있는 형태로서 창을 뺄 때 원래 크기보다 세 배로 늘어나게 되도록 만들어졌다. 그는 우리 주님의 옆구리를 찌르기로 마음 먹었을 때 그것은 갑자기 내린 결정이었다. 그는 갈바리아 산에서 회개하게 되었으며 얼마 안 있어 빌라도에게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음을 확신하며 고백하게 된다. 니코데모스가 빌라도에게 론지누스의 창을 자신에게 달라고 간청하였으며 나는 이 창에 대한 그 후의 역사와 연관된 많은 것들을 보았다. 론지누스는 회심한 이후에 군대를 떠나서 제자들 무리에 합류하였다. 십자가 아래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그와 동료 병사 두 명은 오순절 성령강림 후에 세례를 받은 첫 번째 무리에 속한다.
’나는 론지누스와 이들 두 사람이 긴 흰옷을 입고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척박하고 습한 땅에서 자리 잡고 살았다. 그곳은 사십 명의 순교자들이 나온 곳이었다. 론지누스는 사제는 아니었고 부제였으며 힘닿는 데까지 이곳저곳을 다니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전도하고 그분의 수난과 부활의 산 증인으로서 그 사실들을 전하였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으며 자신이 지니고 다니던, 거룩한 창의 일부분인 유물에 병자들이 접촉하게 함으로써 많은 병자들을 치유하였다. 유대인들은 그와 두 동료들이 다니는 곳곳마다 예수님의 부활의 진리를 전하고 그분의 원수들의 잔인함과 기만성을 폭로하는 것에 몹시 분개하였다. 그들의 부추김을 받아서 로마 군인 몇 명이 그들을 체포하도록 파견되었다. 그들의 혐의는 허락 없이 군대를 떠난 것과 공공질서를 어지럽힌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론지누스는 밭을 갈고 있었는데 그는 그들을 보자 집으로 초대하여 환대하였다. 로마 군인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는데, 론지누스에게 자신들이 이곳에 온 목적을 설명하자, 그는 자신의 집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는 곳에서 운수자처럼 살고 있던 동료 두 명을 조용히 불러들이고는 병사들에게 그들이 찾고 있던 이들이 바로 자신들이라고 말해주었다. 이와 같은 일이 거룩한 정원사였던 포카스에게도 일어난 적이 있다. 그 군인들은 그 말을 듣고 론지누스에게 깊은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몹시 괴로워하였다. 나는 론지누스가 동료 둘과 함께 이웃한 작은 마을로 끌려가서 심문받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거기에서 감옥에 갇히지는 않았으며 마음대로 다닐 수는 있었다. 단 어깨 위에 어떤 표식을 달고 다닌다는 조건 하에서였다. 그러나 후에 그들은 론지누스와 그 작은 마을 사이에 있던, 어떤 언덕 위에서 참수당하였으며 거기에 묻혔다. 병사들은 자신들이 임무를 달성했던 증거로 삼고자 론지누스의 머리를 창끝에 달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내 기억으로는 이러한 일이 우리 주님께서 돌아가신 후 몇 년 지나지 않아서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후에 나는 그와 관련해 일어난 어떤 일들에 대한 환시를 보았다. 성 론지누스와 동향이었던 어는 맹인이었던 여인이 아들과 함께 론지누스의 두 눈이 치유받았던, 거룩한 도성인 예루살렘에서 자신의 눈도 치유받고자 하는 희망을 품고 성지순례를 갔다. 그녀는 아들의 인도를 받으며 순례를 떠났지만 도중에 아들이 죽고 말았다. 그녀는 홀로 남게 되어 무척 상심하게 된다. 그때 성 론지누스가 그녀에게 환시 중에 나타나 그녀가 유대인들이 자신의 머리를 던져버렸던 하수구에서 자신의 머리를 꺼내준다면 그녀의 시력이 회복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하수구는 벽돌로 둘러싸인 깊은 우물 같은 곳이었는데 이곳으로 여러 개의 관을 통해서 도시의 온갖 오물과 폐수들이 흘러들었다. 나는 어떤 이들이 그 가련한 여인을 그곳으로 데려다주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그 하수구 아래로 자신의 목 높이까지 가서는 내려가서는 그 거룩한 머리를 들어 올렸다. 그때 그녀는 눈을 뜨게 되었다. 그녀는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그녀의 벗들이 론지누스 성인의 머리를 보존하였다. 이 주제와 관련해서 더 이상 기억나는 것이 없다.’
주1) 본명은 Clemens Brentano로서 독일의 저명한 시인이요, 소설가, 극작가로 독일 낭만주의의 제 2단계인 하이델베르크 낭만파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말년에 카톨릭에 귀의하여 복녀 안나 카타리나 에머리히 수녀의 환시들을 받아적고 편집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주2) 론지누스라는 이름으로 오늘날 잘 알려져 있는 이 성인은 복녀의 환시에서는 카시우스(Cassius)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BC 44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암살한 음모 세력의 주모자 중에 Gaiuss Cassius Longinus가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론지누스 성인은 카시우스 론지누스라는 가문과 관련이 있지 않나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주3) 보통 론지누스 성인은 한 쪽 눈이 보이지 않았던 인물로 알려져 왔으나 복녀 에머리히의 계시를 통해서 보면 사팔뜨기였다고 하며, 그가 빌라도 밑에서 맡았던 역할을 고려하면 애꾸눈이었다기보다는 사팔뜨기였다는 것이 설득력이 높다고 여겨진다.
성 크테시폰(아브나달)
1823년 4월 1일 복녀 에머리히는 그날이 바로 성경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때 현장에 있었던 백인대장(옮긴이 주1 참조)인, 성 크테시폰의 축일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녀는 그의 생애와 관련해서 매우 여러 가지 특별한 일들에 대해서 환시로 보았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또한 외적으로 방해하는 일들과 더불어 몹시 고통을 겪기도 했었으며 이로 인해 자신이 환시 중에 보았던 상당 부분을 잊어버리게 되었다고도 했다. 복녀는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다.
‘아브나달은 후일 크테시폰으로 불리게 되었는데 원래 아라비아 펠릭스의, 바빌론과 이집트의 사이에 위치한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곳은 욥이 인생 후반기를 살던 곳의 오른쪽이었다. 사각형 모양을 하고 지붕이 낮은 집들이 약간 오르막 한 곳에 지어져 있었다. 이곳에서는 작은 나무들이 많이 자라고 있었으며 향료와 향유가 채취되었다. 나는 환시 중에 아브나달의 집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데 그의 집은 부잣집이라고 여겨질 만큼 넓고 큼지막 했지만 이 집 역시 높이는 매우 낮았다. 이곳의 집들이 이렇게 지어진 데에는 아마도 바람 때문이었으리라. 그도 그럴 것이 그곳 지형은 주변 환경에 너무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브나달은 예루살렘에 있는 안토니아 요새의 수비대에 자원입대 하였다. 그는 학식이 있던 사람으로 자신의 예술 연구를 더 수월하게 할 요량으로 로마 군대에 들어갔던 것이다. 그는 확고한 성격이었으며 체구는 땅딸막했으며 피부는 검었다.
’아브나달은 일찍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가르침과 자신이 직접 본, 그분의 기적(옮긴이 주2 참조)을 통해서 구원은 유대인들 가운데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으며 모세의 율법에 복종하고 있었다. 비록 그는 아직은 우리 주님의 제자가 아니었지만, 예수님께 대해 어떠한 악의도 품고 있지 않았으며 그분의 인격을 마음속으로 존경하고 있었다. 그는 천성적으로 진중하였으며 병력을 교대시키려고 골고타로 왔을 때 주변의 질서를 유지하였으며 모든 이로 하여금 경거망동하지 말도록 할 것을 명했으며 마침내 진리에 그가 굴복하게 되는 순간까지 그렇게 하였다. 결국 그는 예수님의 신성을 공적으로 증언하기에 이른다. 사실 부유한 사람이었고 군대도 자원해서 입대하였던 터라 그가 그 즉시 백인대장의 자리를 사임하는 것이 그에게는 전혀 힘든 일은 아니었다. 그는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의 성시를 내릴 때 그리고 그분을 무덤에 안장해드릴 때에 곁에서 거들었다. 이로 인해 그는 예수님의 벗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으며, 오순절 성령강림 후에 벳사이다 연못에서 세례를 받은 최초의 무리들 가운데 하나게 되었다. 그때 그는 크테시폰이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다. 그에게는 아라비아에 살고 있던 형제가 한 명 있었는데, 그는 크테시폰에게서 그 모든 기적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듣고 구원의 길로 초대받고서는 예루살렘으로 와서 캐실리우스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된다. 이들 형제들은 새롭게 형성된 그리스도교 초대 공동체에서 부제들을 도와주는 소임이 맡겨지게 되었다.
‘크테시폰은 대 야고보와 동행하여 스페인까지 갔다가 함께 돌아왔다. 이후로 그는 사도들에 의해 스페인으로 파견되었는데 그때 예루살렘에서 순교한 야고보 성인의 유해를 모시고 가는 임무가 맡겨졌다. 그는 후일 주교가 되어 방문하기도 했던 프랑스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일종의 섬 혹은 반도 같은 곳에서 주로 머물렀다. 그가 살았던 지명은 베르구이(Vergui)로 기억되는데 이곳은 나중에 홍수로 인해 황폐해지게 된다. 나는 크테시폰이 순교를 당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관련해 상세히 서술하고 있는 책들을 여러 권 집필하였는데, 오늘날 어떤 책들은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그가 썼던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으며, 반면에 실제로 그가 쓴 책들은 다른 이들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로마에서는 이러한 책들을 배척하고 있는데 그 상당 부분이 위경으로 판단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내용들 중에는 실제로 그가 쓴 것들이 일부나마 포함되어 있다. 우리 주님의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들 중에 유대인들의 뇌물에 넘어가지 않았던 병사가 하나 있었는데 그는 크테시폰의 동향인이자 친구였다. 그의 이름은 술레(Sulei)가 또는 술레이(Suleii) 비슷한 것이었다. 그는 한 동안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나서 시나이 산의 한 동굴로 들어가 칠 년 동안 살았다. 하느님께서는 이 사람에게 많은 특은을 베풀어주셨으며 그는 아레오파고스 회의의 디오니시오 양식에 따른, 매우 박식한 책들을 썼다. 다른 작가도 그의 저작들을 활용하였으며 이런 식으로 해서 다른 저자들의 책에서 인용된 그의 글들의 일부가 우리에게 전해져 오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 모두와 함께 그 책의 이름도 내게 계시되었지만 기억하지 못한다. 크테시폰의 이 동향 사람은 후일 그를 따라 스페인으로 갔다. 크테시폰의 동향인들 가운데에는 그의 형제인 캐실리우스를 포함해서 인탈레시우스, 헤시시우스와 유프라시우스가 있다. 초대 그리스도교 시대 때 개종한 아랍 사람으로는 술리마라는 사람이 있으며, 크테시폰의 동향인이었던 술렌시스는 후일 부제들의 시기에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주1) 통상적으로 복음서의 수난 이야기에 나오는 백인대장을 론지누스 성인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복녀 에머리히 수녀의 계시를 통해서 그 백인대장은 아브나달이었으며 론지누스와는 분명 다른 인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혼동하게 된 배경에는 복녀가 받은 방대한 계시 중에 그리스도의 수난 부분에 상세히 나오지만 아브나달(성 크페시폰)이 십자가 아래에서 예수님의 임종 직후 전적으로 회개하게 되면서 주님을 구원자로 받아들이게 되고 그 즉시 지휘권을 론지누스에게 넘겨주는 대목이 나온다. 그렇게 되면 이후의 그의 역할은 일시적으로나마 론지누스가 맡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이 혼란의 원인이 되지 않았나 추측해 본다.
주2) 루카 복음 7장 6절에서 10절까지의 말씀에 보면 믿음 깊은 백인대장의 이야기가 나온다. 복녀 에머리히 수녀의 계시에 따르면 그때 자신의 믿음을 보시고 자신의 종을 치유해주신 예수님께로부터 칭찬받은 백인대장이 바로 아브나달이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기적이란 바로 예수님께서 자신의 종을 치유해주신 것을 뜻하는 것이리라.
번역: 공동구속자 성모회 차 요아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