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배우 이대근 장로 신앙간증
"예수님은 제 삶의 주인공이십니다"
칠순의 배우 이대근(사진). 40년의 연기 인생 중 장장 30년을 주연배우로 활동한 그가 국민일보 인터뷰에 응한 것은 선이 굵고 액션이 강한 연기자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기자의 예상(?)과 너무 달랐다.
4년 전 ‘교회 장로’ 직분을 받은 뒤 그의 삶과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무엇이 배우 이대근을 믿음의 세계로 인도했을까? 지난 25일 서울 이태원 캐피탈 호텔에서 검은 점퍼를 입고 나타난 그를 만났다. 국민 배우로 살아온 이대근이란 한 인간의 실제 인생 여정과 신앙을 들어봤다.
-장로 안수 받으셨다고요?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어떻게 교회에 나가게 됐는지 궁금하네요.
“1979년 일겁니다. ‘석양의 10번가’(빛을 마셔라, 감독 강대진)라는 종교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그 영화의 실제 주인공이 지금 제가 출석하는 서울 연남동 선민교회의 김유정 목사님이세요. 김 목사님이 촬영 현장에서 빵과 콜라를 주시며 교회 한번 놀러 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매니저와 함께 놀러 갔었는데 상가 지하교회였어요. 교회가 하도 허름해 교회가 아니고 곰탕집 개업하는 줄 알았다니까요(하하). 13명이 교회 개척 멤버인데 지금은 저 혼자 살아 있습니다.”
-교회 다닌다고 모두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어떻게 예수님을 인격적인 주님으로 받아들일 결심을 하게 되셨습니까.
“십자가를 보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참 많이 했어요. 인생이란 무엇인가. 바쁘게 살다보니 아무런 생각 없이 살았거든요. 김 목사님이 성경책을 사 주시어 1페이지부터 읽기 시작했죠. 처음엔 의문점이 많았지만 인생을 헛되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예수님을 영접하게 됐습니다. 특히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죠. 부모에게 불순종하면 안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고 효를 강조하는 말씀들이 마음에 쏙 들었습니다. 신앙생활을 직접 해보니 마음이 평안해지고 너무 좋아 계속 믿게 됐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지요.”
-배우 생활하면서 신앙생활 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요.
“제가 배우이다 보니 성경을 작품 분석 하듯이 읽곤 해요. 예수님이 성경의 주인공이라는 점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의 주인공일 뿐 아니라 이제 제 삶의 주인공이시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4회 정도 성경을 통독한 것 같아요. 바쁜 연기 생활로 시간에 쫓기다가 4년 전에 비로소 장로 안수를 받았고요. 주로 담임목사님이 추천하는 집회에 가서 간증을 하고 있어요. 10여 년 동안 50회쯤 간증하러 다닌 것 같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니 어떤 점이 좋던가요.
“매일 회개하며 산다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 날이 갈수록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느낍니다. ‘너무 좋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특히 하나님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 행복합니다. 하나님 말씀 안에서 살아가니 든든하기도 하고요. 교회 가서 예배드리고 목사님 말씀 듣고, 또 성도들과 교제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난 해 대종상영화제 시상식에서 하신 수상소감이 멋있었습니다.
“공로상을 받았어요. 후배들이 주는 멋진 상이죠. 그때 제가 ‘영화만큼 아름다운 세상을 나는 본 적이 없다. 남은 생을 영화에 바칠 것’이라고 말했는데, 그 말은 제 영화관과 여생의 계획을 압축해서 말씀드린 거예요. 그 때 방청객들이 기립 박수를 쳐 주는 데 하마터면 눈물이 나올 뻔 했어요.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과 팬들, 동료 선후배께 지면을 빌어 감사인사 드립니다(꾸벅).”
-정윤희 이미숙 원미경 강수연에 이르기까지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과 연기했습니다. 누가 기억에 남으세요.
“기자님, 이번엔 내가 한 번 물읍시다. 어떤 여자가 기억에 남던가요? (기자가 사랑했던 여자 아닐까요라고 답하니) 보통 그렇게들 이야기하지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예쁜 것은 피부 한 꺼풀이라고요. 섹시함이나 공부, 음식 잘하는 여자도 좋지만 여성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맑은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신앙적으로 함께 하면 더욱 좋고요. 그리고 한 가지, 기자님이 열거하신 여배우들은 작품 속에서 만난 분들이지요. 저는 제 아내 한 사람으로 만족하면서 여태까지 행복하게 살고 있답니다(웃음).”
-아 참, 6년 만에 연기를 재개하셨다죠.
“네, 그래요. JTBC 드라마 ‘발효가족’에 출연하고 있지요. 인생살이에 서툰 한식집 가족들과 그곳에 모이는 수상쩍고 사연 많은 손님들이 좌충우돌 펼쳐가는 유쾌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저는 한식집 근처 낡은 연립으로 이사와 홀로 사는 독거노인인 설노인 역을 맡았는데 불평불만이 많고 잔소리를 해 대지만 미운 정 고운 정을 나누며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나눈 답니다. 오랜만에 TV에 출연하니 낯선 점도 있네요. 주연 배우 스케줄에 맞춰 다니려니 힘들기도 하고요. 시청자 여러분이 예쁘게 봐 주셨으면 합니다.”
-자식 농사 잘 지으셨다고 들었어요.
“80년대 초 미국으로 건너가 세 딸을 키웠어요. 큰 딸이 미국식품의약국(FDA) 14급 공무원(차관급)인데 신학박사인 목사와 결혼했어요. 둘째딸은 약학박사이고 남편도 경제학자이고요. 막내 딸은 고등학교 교사로 사업가와 결혼해 알콩달콩 살고 있지요. 애 엄마가 딸들을 신앙 안에서 잘 키웠어요. 불현듯 가족이 그리워지면 바로 비행기 표 끊어 워싱턴으로 날아가곤 하지요. 그러면 와이프는 늘 내가 좋아하는 음식 한상 차려놓고 기다립니다.”
-신앙생활은 어떻게 하세요.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기도를 해요. 대문 나오면서 하늘에 대고 기도하고…. 그러면 불안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마음에 안식이 옵니다. 저녁에 잘 때도 24시간 살도록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요. 주일 날 정성스레 예배드리면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깨닫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는 마태복음 5장 8절 말씀과 ‘저 높은 곳을 향하여’라는 찬송을 제일 좋아해요.”
-요즘 교회를 비방하는 안티 기독교인들이 있는데, 한 말씀 부탁드릴께요.
“교회는 죄인이 가는 곳입니다. 죄 없는 사람은 교회 갈 필요가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기독교는 회개의 종교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연악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해요.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믿음·소망·사랑 가운데 함께 더불어 살아갑시다. 저도 신앙인답게 성실히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떤 배우로 남고 싶습니까.
“하면 할수록 연기하는 게 어렵다는 생각을 해요. 그만큼 깊고 깊은 세계가 연기의 세계인 것 같습니다. 인생은 결코 짧지 않습니다. 시간을 낭비할 뿐이지요. 무대에서 연기를 하다 쓰러져 죽는 게 제 소망입니다. 죽은 뒤 묘비에 ‘그는 배우였다’라고 기록됐으면 해요. 그거면 돼요. 하나님 앞에 가서는 ‘죄인입니다. 구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고 말씀드릴 겁니다.”
1967년 KBS 7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영화 ‘김두한’ 시리즈를 비롯 ‘거지왕 김춘삼’ ‘제3부두 고슴도치’ ‘시라소니’에서 특유의 원트 스트레이트 펀치를 화끈하게 보여주며 호쾌한 액션 배우로 이름을 날린 배우 이대근. 사람들은 ‘변강쇠’를 이대근의 대명사로 여겨 희화화하기 일쑤지만, 그는 신실한 크리스천으로 거듭나 있었다.
그는 자신이 ‘변강쇠’의 이미지로 각인되고 있는 것을 크게 경계했다. 주연을 한 영화 ‘변강쇠’를 문학이 아니라 에로티시즘으로 보는 한국사회가 안타깝다고도 했다. 그는 판소리 열 두 마당 중 하나인 변강쇠전은 당시 위정자와 양반들의 위선, 문란한 성생활을 꼬집고 비판한 풍자해학극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변강쇠의 아래가 유난히 큰 건 일종의 불구를 상징합니다. ‘인권’이에요. 옹녀도 제도권에서 버림 받은 여자입니다. 그 둘이 만나 사랑을 나누고 산중에 들어가 가족을 일구려고 발버둥칩니다. 마지막 장면에 변강쇠가 장승을 붙잡고 막 싸우잖아요? 결국엔 장승을 도끼로 찍어 불태우고, 장승은 곧 제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상대 여배우 앞에서 바지 한 번 안 내리고 키스 한 번 안 했는데 저에게 ‘에로 배우’라고 늘 말씀하시는 것은 좀 곤란하죠?”
이 장로의 표정은 밝았다. 봄 소풍을 앞둔 소년처럼 흥분된 표정이었다. 주님이 기뻐하는 일을 준비하는 신실한 장로의 표정이었다. 부리부리한 눈빛만큼이나 자신감이 넘쳤다. 모든 것을 포기함으로써 모든 것을 얻는 역설적 진리를 채득한 십자가 군병의 넉넉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정말 배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