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황금탑(Torre del Oro)
황금탑 / 황금탑 외벽 / 탑 내부 / 과달키비르 강
세비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관광명소로 황금탑(黃金塔:Torre del Oro)이 있다.
이 황금탑은 시내 가운데를 관통하며 흐르는 과달키비르(Guadalquivir) 강가에 있는 자그마한 탑인데 AD 13세기 초 이슬람인들이 과달키비르강(江)을 통과하는 배를 검문하기 위해 세웠다고 하며, 강 건너편에는 은의 탑이 있어서 두 탑을 쇠사슬로 연결하여 세비야에 들어오는 모든 배를 막고 검문을 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황금탑만 있다.
황금탑이라는 이름은 처음 탑을 세울 때 금 타일로 탑의 외부를 덮었기 때문이라는 설과 16~17세기 신대륙에서 가져온 금을 이곳 지하창고에 보관하였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어느 것이 사실인지 확실하지 않다고 한다.
또, 이곳은 콜럼버스(Columbus)의 신대륙 항해의 시작점이며, 마젤란(Magellan)이 세계 일주를 위한 항해를 떠났다고 하는 유서 깊은 곳이다.
지금 은의 탑은 없지만 조금 떨어져 건설한 다리를 건너가면 고만한 탑이 또 하나 있는데 올라가면 주변이 한눈에 보이고 두 탑 내부는 역사박물관으로 꾸며 놓았다.
<10> 세비야의 스페인 광장(廣場)
세비야의 볼거리로 스페인 광장을 빼놓을 수 없다.
주 건물 / 광장의 분수대 / 스페인 역사를 타일화로 / 돈키호테와 산초판사(Sancho Panza)
처음 큰 기대는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할 겸 덜렁덜렁 갔는데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완전히 압도당하고 말았다.
마치 왕궁처럼 반달형으로 지어진 건물은 수없이 많은 아치가 있고 그 뒤는 끝없는 회랑으로 이어져 있다.
그리고 한쪽에는 뾰족한 첨탑이 당당히 솟아있는 성당이 있고 건물 앞으로는 물이 흐르도록 작은 수로를 만들어 관광객들은 보트를 타고 한가하게 물놀이를 즐긴다.
이 거대한 건축물은 1929년에 열린 에스파냐아메리카 박람회장인데 건축가 곤잘레스(Aníbal González)가 건축했다고 한다. 또 광장 쪽 건물의 아치 밑 벽면에는 스페인 각 지역의 역사적 사건들을 타일 모자이크로 묘사하여 붙여 놓았는데 볼만하다. 건물 앞의 광장 한가운데는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대는 분수도 인상적이지만 광장은 그냥 텅 비어있고 나무 그늘도 하나 없다.
더운 여름철이면 땀깨나 흘려야 할 것 같은데 정문을 나서면 상당히 넓은 수목 공원 지대로 사람들이 그늘 밑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 한가롭다.
<11> 세비야 시청(市廳)
세비야 도심 풍경 / 세비야 시청사 / 페르난도 3세 기마상
세비야 도심 누에바 광장(Plaza Nueva)에 있는 세비야 시청사(市廳舍)는 스페인의 플래터레스크(Plateresque) 건축의 거장이었던 건축가 리아뇨(Diego de Riaño)가 15세기 말에 건축을 시작해 16세기에 완성한 유서 깊은 시청사로, 에스파냐에서 대표적인 플래터레스크 양식의 건축물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플래터레스크(Plateresque)는 원래 은세공을 뜻하는 단어로 16세기에 스페인에서 유행한 고딕, 르네상스, 이슬람의 여러 요소를 건물의 외관이나 내부 장식에 사용하는 건축기법이다.
현재 누에바 광장 쪽의 시청사 정면은 건축가 리오스(Demetrio de los Ríos)와 마론(Balbino Marrón)이 19세기에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새롭게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이 시청사는 세비야의 대표적인 관광명소이자 랜드마크(Landmark)라고 하는데...
글쎄 나는 골목길의 자그마하고 아기자기한 성당들이 훨씬 더 예뻐 보인다.
시내 가운데쯤에 누에바 광장(Plaza Nueva)이 있는데 그다지 크지는 않지만 시민들의 좋은 휴식처가 된다.
광장 한쪽에는 12세기 초 카스티야 왕국의 왕이었던 페르난도 3세(Pernando III) 기마상이 우뚝 솟아있다.
페르난도 3세는 스페인 서북부에 있던 조그마한 레온왕국(Kingdom of León)을 카스티야 왕국과 완전히 통합시킨 위대한 왕으로 알려져 있다.
스페인은 12세기에 아라곤(Aragon) 왕국, 나바라(Navarra) 왕국, 카스티야(Castilla) 왕국 그리고 남부 안달루시아지방의 무슬림 왕국인 그라나다(Granada)의 네 나라가 있었지만, 우리나라 부족국가 시대처럼 그 이전에는 훨씬 더 많은 작은 나라들이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