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 연제구엔 혜원정사, 감천사, 금용암, 마하사 등 4곳이다.
혜원정사와 감천사는 이웃하고 있다.
감천사에서 내려와 마을버스를 타고 마하사로 갔다가 걷거나 택시로 영주암(수영구)에 간다.
이 3곳은 반경 4~5km 안에 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해 지기 전까지 돌아볼 수 있다.
금용암은 사직동이나 진구 초읍동에서 들어갈 수 있다.
김해서 점심을 먹고 대중교통으로 감천사와 혜원정사에 들렸다. (2022년 1월 3일)
사직동에서 친구들과 점심,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친구 승용차로 금용암에 들렸다.(2022년 1월 6일)
김해서 11시 30분, 대중교통과 두 다리를 이용하여 영주암(수영구 망미동)과 마하사에 들렸다.(2022년 1월 16일)
혜원정사 / 전통사찰
- 부산시 연제구 연산동
겨울 날씨답지 않게 그리 춥지는 않다.
지하철 연산역에서 내려 카카오앱을 이용, 걸어서 혜원정사로 향했다. 20분 정도 걸은 것 같다.
혜원정사는 1925년 창건하였다.
김덕만(金德萬) 노인이 땔감을 하러 이곳 산에 왔다가 옛 절터를 발견, 부인 김순임(金順任)과 함께 작은 사찰을 지었다.
이후 자손들이 관리를 하였으나 이들이 뿔뿔이 흩어진 후 폐사가 되었다.
1975년 승려 고산께서 사찰 건립에 뜻이 있어 여러 곳을 찾아다니다 이곳 절터를 보고 사찰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문화재로 조선후기(18세기) 작품인 '혜원정사 팔상도(부산시 문화재자료 제9호)'가 있다.
(혜원정사 홈페이지창건 유래와 경내 안내판 참조함)
정문인줄 알고 들어갔다. 후문인 셈이고 만불전 뒤편이다.
사진 오른편에 혜원정사 나한전과 삼성각 가는 일이 있고, 또 다른 전통사찰 감천사가 있다.
혜원정사 입구이다. 일주문인 셈이다.
이 누각은 사천왕문과 범종루를 겸하고 있다. '묘봉산혜원정사'이다.
만불전, 이 건물은 어린이집을 겸하고 있다. 3층이 만불을 모신 공간 같은데 안을 보지는 않았다.
대웅보전
대웅보전 내부
명심전, 요사로 쓰고 있는 건물일까?
육화전, 건물 아래에 종무소와 고산장학회 사무실이 있다.
육화전 내부
대웅보전 앞, 포대화상과 천진동자상.
자연석에 불상을 새겼다.
향로 같은데, 뚜껑이 그렇다. 기왕이면..... .
방장당(方丈堂), 지리산 무쇠소가 안에 있는 모양이다.
방장당 옆, 대웅보전 뒤에 관음보살상이 있다.
다층석탑
묘봉산 혜원정사 사적비명
첨성각(瞻星閣), 별을 쳐다보는 집이라..... .
나한전
삼성각
삼성각 밑으로 절개지가 생겼다.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감천사에서 본 혜원정사
감천사 / 전통사찰
- 부산시 연제구 연산동
극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고 지하 암반에서 1년 내내 물이 솟아올라 인근 주민의 식수로 사용하였습니다는 감천사.
물맛이 달아 달‘감(甘)’, 끊임없이 솟아 난다고 해서 샘‘천(泉)자로 이름 지어진 감천사.
묘봉산 자락에 있는 자그마한 비구니의 수행도량.
(인터넷 검색)
절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은 모양이다. 별 내용이 없다.
부산지역에서 범어사와 마하사 다음으로 오래된 사찰이다.
오래 전부터 '범무골 절'로 불렸으나 흔적은 없다.
1931년 경 창건, 1975년 승려 묘정이 부임, 대한불교법화종 사찰로 등록.
1988년 승려 현일이 대웅전 신축하고 대한불교 조계종 사찰로 등록하였다.
(부산역사문화대전에서 내용을 가지고 와서 정리함.)
입구다.
대웅전, 문이 잠겨져 있어 들어가지 못 했다.
혜원정사에서 본 감천사 대웅전이다.
덤으로.
부산 연산동 고분군 / 사적 제539호
혜원정사 옆에 작은 공원이 있다. 공원 위에 고분군이 있어 잠시 걸었다.
보이는 봉우리가 배산(盃山)이겠다.
반여동(해운대구)과 장산이 보인다.
쇠미산 금용암(金蓉庵) / 전통사찰
- 부산시 연제구 거제동
조선말기 철종 때 이곳에 점술가 여인이 초막을 짓고 살다가 불교에 귀의, 이인덕행(李仁德行)이라는 보살명을 얻었다.
1919년 10월 15일 해인사에 출가, 비구니계를 수지하고 대봉(大鳳)이란 법명을 받았다.
대봉은 이곳에 기와집으로 인법당 3칸을 짓고 '금용암'이라 불렀다.
당시 법당에 봉안하던 석조 지장보살좌상은 금박하여 지금도 염화전에 있다.
절 담벽 아래의 비탈길에 1939년 5월 20일 세워진 대봉의 상반신이 선각(線刻)된 사적비가 있다.
금용은 '황금연꽃'을 뜻한다.
1964년 범어사의 승려 덕윤(德潤)이 중창, 1967년 건립된 염화전은 1992년 헐고 새로 지었다.
(인터넷-대한민국구석구석 등에서 발췌, 정리함)
미남로타리 근처에서 친구들을 만나 점심을 같이 하였다. 오랜만의 만남은 식당에서 커피숍으로.
오후 2시가 넘었다. 친구에게 부탁, 금용암까지 차로 갔다. 내비게이션은 초읍으로 가라고 한다.
쇠미산 둘레길은 걷기가 좋다. 작은 암자가 나온다.
동네 주민에게 물어서 사직동으로 하산하였다. 쇠미산 주위에 작은 암자가 많이 있다.
내려 오는 길에 본 사찰은 전통사찰은 아니지만 부산시 유형문화재가 있다고 간판에 적어 놓았다.
다음 기회에 쇠미산 자락에 있는 사찰을 돌아봐야겠다.
염화전
염화전 앞에서 본 경치, 좌 장산, 가운데 배산, 우 금련산 등이 보인다.
염화전 내부
목련구모(目蓮求母) / 염화전 외벽 그림
목련존자가 지옥에 있는 모친을 구하는 내용, 요즘 말로 '아들 찬스'이다.
이런 이야기는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내가 알기엔 지장보살은 후대에 대승불교에서 만들어진 존재이다.
원통료, 요사채 겸 종무소.
관음보살상.
삼성각
사적비와 부도 등
제봉덕윤(霽峰德潤)대선사탑, 염화전 내부 초상화도 이 분인 것 같다.
제봉, 비 개인 봉우리.
금련산 마하사 / 전통사찰
- 부산시 연제구 연산3동
1965년~1970년 크게 일으킨 중창 불사 때 대웅전 상량문에 '아도화상'이 창건하였다는 기록이 나왔다.
이를 근거로 마하사는 아도화상이 창건하였다고 추정한다.
임진왜란 때 전부 불에 타서 폐허가 되었다.
조선시대 숙종 43년(1717) 때 대웅전과 나한전 건립, 박성우 불자가 16나한상 조성하였다.
(마하사 팸프릿, 안내판 참조 정리함. 이후 사적은 인터넷 검색 바람)
우리나라 역사에서 아도화상과 도선국사는 신비한 인물이다.
기록에 따라 이들의 이름이나 생몰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도화상은 3건의 기록이 비슷하지만 다르다. 태어나고 활동한 시기도.
마하사 대웅전 상량문이 언제 만들어지고 기록하였는지 나는 모른다. 그 기록을 신뢰할 수 있을까?
그건 내 문제가 아니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수영구 망미동 영주암에서 앱을 켜니 걸어서 45분 거리이다. 걸었다. 헤맸다. 1시간 30분 걸렸다.
주차장, 이 건물은 60년 대나 70년 대에 지어진 것이 아닐까?
마하사 가는 길
일주문은 없다. 이 누각이 천왕문이고 종루이다.
천진난만. 웃음이 저절로 나온다.
금련산 마하사, 범어사 다음으로 오래된 사찰.
사천왕상 대신에 그림이 있다.
저 봉우리가 금련산일까 황령산일까? 자주 오는 곳이 아니니 잘 모르겠다.
대웅전
지장전
삼성각
나한전 겸 응진전이다.
종무소가 있는 전각, 마니당.
나한전 내부 / 영산회상도(부산시 문화재자료 제16호, 불상 뒤편)
석조 나한상(12구) / 부산시 문화재자료 제20호
4구는 근래 만든 것으로 보인다.
16나한도 / 부산시 문화재자료 제17호 (우측)
대웅전 내부
목각 탱화인줄 알았다. 실망은 순간이다. 프라스틱이다.
목조 석가여래좌상(부산시 문화재자료 제19호, 중앙)
현왕도/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54호, 영산회상도/ 부산시 문화재자료 제15호 등 2점은 범어사 성보박물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