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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사진 스크랩 충주호 라이딩 충주댐에서 532번 지방도를 타고 산을 넘어라
이글(김종국) 추천 0 조회 271 14.09.23 08:1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충주호 라이딩 1

충주댐에서 532번 지방도로를 타고 산길을 넘어라
 

라이딩 일자 2014 9월 20~21(토·일요일/1박2일)

참석인원 11명

 

충주호 라이딩 2보기 >>> http://blog.daum.net/koreasan/15606051

 

충주호 일주 라이딩하는 길에는 딱 2가지의 길만이 존재한다

평지는 없다

힘겹게 오르고 시원하게 내려가는 두가지 길만이 존재할 뿐이다   

 

▲ 충주호 원점회기 일주 라이딩 코스 ⓒ 2014 한국의산천

충주댐에서 출발하여 시계바늘 방향으로 돌아서 충주댐으로 원점회기하는 160km의 코스입니다 (청풍대교 인근 능강리에서 1박)

 

▲ 20일 토요일 아침 06:00 등촌동에서 모여서 출발 ⓒ 2014 한국의산천

 

 

 

 

 

 

 

▲ 왼쪽부터 한국의산천/흰구름님/강화도령님/윤일님/LA조님/따듯한가슴님/이글님/맑은샘님/오리온님/미카엘님/브라보님 (11명) ⓒ 2014 한국의산천

 

 

 

 

 

 

 

 

▲ 장선고개를 넘어가며 532번 지방도로를 달리게 됩니다 ⓒ 2014 한국의산천

532번 지방도로는 금성면까지 청풍호를 끼고 이어지며 호젓하고 여유로움이 가득한 비포장이 많은 길입니다

좌우로 굽이치고 산길을 굽이 굽이 오르고 내려가는 아름다운 길입니다

길 중간에 있는 마을은 충주댐으로 인해 수몰되면서 이주해온 수몰민들이 정착하여 만든 마을입니다

고개를 돌리면 잔잔한 수면의 청풍호가 눈에 들어옵니다.  

 

 

 

 

 

 

 

 

제천에서는 청풍호, 충주에서는 충주호라 불린다.

  청풍호는 1985년에 준공된 충주댐으로 인해 만들어진 호수다. 제천에서는 청풍호, 충주에서는 충주호라 불린다. 청풍호는 내륙의 바다라고 불릴 만큼 담수량이 많다. 면적 67.5㎢, 평균 수심 97.5m이며, 저수량은 27억5000t이다. 제천시의 담수 면적은 48㎢로 호수 전체 면적의 약 51%를 차지하고 있다.

 

  청풍호 주변에는 제천에서 그 풍광을 자랑할 만큼 빼어난 곳들이 산재해 있다. 물맛이 좋기로 유명한 비봉산과 청풍면의 진산인 인지산이 자리하고 있으며 남한강에서 가장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금수산이 있다. 이 외에도 동산, 대덕산, 부산, 관봉 등의 명산들이 청풍호 주변에 있다.

 

옛스러움을 간직한 청풍호 북쪽의 532번 지방도

 

 청풍호 북쪽의 532번 지방도 요즘은 지방에도 비포장도로가 거의 없는데, 대덕산과 수름산 자락을 따라 이어지는 이곳은 일부는 포장도로지만 대부분은 비포장 흙길이며  자동차가 가끔 다니지만 호젓한 길이다.

 

  제천 금성면 월굴리에서 시작돼 청풍면 황석리, 후산리, 사오리를 거쳐 부산리까지 이어지는 첫 번째 호반도로에서 비포장 구간은 9㎞이다. 금성면 갈림길에서 비포장도로까지는 3㎞ 남짓 거리다.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서쪽과 남쪽 청풍호반에 비해 외지인은 물론 제천 사람들에게조차 잊혀진 길이다 보니 호젓함을 간직하게 되었다.

 

 청풍호를 조망하는 최고의 포인트로 꼽히는 청풍호 활공장에서 북쪽으로 내려다보이는 실처럼 이어진 길이 바로 이 532번 지방도다.

 

  호반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흙길을 따라가면서 드물게 세월을 낚고 있는 강태공을 만날 수 있다. 주변 산하를 비추는 잔잔한 호수 아래에는 잉어, 붕어, 쏘가리, 꺽지가 산다. 아무도 살지 않을 것 같은 황석리에는 6~7가구로 구성된 마을이 있다.

 

 

 

 

▲ 세세한 계획과 선두에서 리딩을 하며 팀을 잘 이끌어준 맑은샘님 ⓒ 2014 한국의산천

맑은샘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시원하게 펼져진 충주호를 바라 보고 서있는 정토사법경대사자등탑비(淨土寺法鏡大師慈燈塔碑 보물 제17호) ⓒ 2014 한국의산천

소재지  충북 충주시  동량면 하천리 177-1 
시대 고려시대

 

충주호가 만들어 지며 수몰지구에 있던 것을 현위치로 옮겼다.

  정토사터에 전하고 있는 비(碑)로, 신라말,고려초의 승려 법경대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정토사는 신라말에서 고려초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법경대사가 이 절의 주지가 되어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다가 태조 24년(941)에 입적하자, 그의 뒤를 이어 홍법대사가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비는 전체적으로 보존이 잘 되어 있으며, 당시의 양식을 잘 따르고 있어, 비받침에 새겨진 거북조각이나 머릿돌의 용조각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머릿돌 앞면의 중앙에는 ‘법경대사’라는 비의 명칭이 새겨져 있고, 비의 몸돌에는 대사의 행적이 자세히 새겨져 있다.

 

  법경대사는 통일신라 헌강왕 5년(879)에 태어나 어려서부터 불교의 법을 배워 20세에 불가에 입문하였다. 906년에 당나라에 들어가 도건대사에게 가르침을 받고, 924년에 귀국하였다. 경애왕은 그를 국사로 대우하여 정토사의 주지로 임명하였고, 고려 태조 24년(941)에 63세로 입적하자 태조는 시호를 ‘법경’, 탑이름을 ‘자등’이라 내렸다. 

 

  태조 26년(943)에 그의 공덕을 칭송하기 위해 이 비를 세웠고, 비문은 당시의 문장가 최언위가 지었으며, 유명한 서예가였던 구족달(仇足達)이 글씨를 썼다. 함께 서 있었을 사리탑은 일본으로 반출되어 이곳에 남아 있지 않다.

  

이 비의 규모는 비신 높이 3.15m, 폭 1.42m로서,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저기 산아래 수몰지에 있던 것을 1983년에 현 위치로 옮겼다.

충주호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저 아래 어디엔가 있었지만 수몰이 되면서 이곳 언덕으로 옮겨왔다.

이 비는 고려(高麗) 태조(太祖) 26년(943) 법경대사(法鏡大師)의 공덕(功德)을 칭송하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글은 최언위(崔彦위)가 짓고 글씨는 명필로 알려진 구족달(仇足達)이 썼다.

 

  법경대사(法鏡大師)는 신라, 고구려의 고승으로 신라시대에는 정토사(淨土寺)를 창건하였고 고려조(高麗朝)에 이르러 태조(太祖) 7년(924)에 국사(國師)의 대우를 받고 태조 24년(941)에 63세로 입적하니 시호(諡號)를 법경(法鏡), 탑명(塔名)을 자등(慈燈)이라 하였다.

 

▲ 동량면 하천리에 있는 정토사지(淨土寺址) 법경대사자등탑비(法鏡大師慈燈塔碑) ⓒ 2014 한국의산천

 

  법경대사는 879년 1월1일 오시에 태어나 898년에 가야산사에서 구족계를 받고 906년에 당나라로 가는 배를 얻어 타고 구법의 길을 떠났다. 구봉산의 도건대사를 만나 법을 구하고 세간과 출세간은 물론 천태산을 비롯한 명산의 선백들을 두루 만나 공부를 이루고 924년에 귀국한 인물이다. 귀국하자마자 고려의 태조인 왕건은 국사의 예로 대사를 맞이했으며 대사를 정토난야에 머물게 했는데 그곳이 바로 정토사이다. 그러나 정토사는 어느덧 폐사가 되고 우리 인간이 만든 커다란 호수로 인하여 본래의 자리를 잃었지만 그 자리가 그리운듯 드넓은 충주호를 바라보며 의연히 서있다.

 

 

 

 

 

 

 

 

 

 

 

 

 

 

 

 

 

 

 

 

 

 

 

 

 

 

 

▲ 동량면에서 청풍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 2014 한국의산천

 

 

 

 

 

 

 

 

 

 

 

 

 

 

 

 

 

 

 

 

계속해서 충주호 라이딩 2보기 >>> http://blog.daum.net/koreasan/15606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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