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이송이 피어나는 시낭송에서 만난 인연
김인희
송이송이 피어나는 시낭송은 2026년 사비석성권역 시설 연계 프로그램으로 진행한 7개 권역 주민들의 문화 향유를 위한 과정이었다. 3월, 겨울의 찬 바람이 차마 떠나지 못하고 미련을 두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날 즈음이었을 것이다. 석성사비양송이협동조합 사무장님의 연락을 받았다.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시낭송 강좌를 맡아 수업을 진행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필자는 앞뒤 재지 않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수락했다. 사무장님은 내로라하는 시낭송가로 눈부시게 활동하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기라성 같은 낭송가들을 섭외할 수 있는 능력자였다. 마을 주민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주면서 시낭송 수업을 진행할 적임자를 생각할 때 필자가 생각났다고 했다. 사무장님의 그 한마디에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겼다.
매주 수요일마다 시낭송 강의실에서 행복으로 전율했다. 수업을 준비할 때 순백의 누에가 싱그러운 뽕잎을 갉아먹듯 한 편의 시(詩)를 차곡차곡 읊조리면서 선별했다. 시인의 생애와 작품의 배경과 일화를 소개하여 시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사무장님의 시낭송 수업을 어렵지 않게 진행하면 좋겠다는 의견에 동의하고 무리수를 두지 않기로 다짐했다.
첫 시간에 만난 태산을 건너온 수강생들 모습을 보고 인생의 연륜이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수 있었다. 강의 시간마다 반갑게 맞아주시는 인생의 선배님들 앞에서 내가 가진 것을 아낌없이 전부 내놓고 싶었다. 직장에서 일하랴 집에서 일하랴 동동 바쁜 와중에 수요일마다 시낭송 수업에서 열심히 배우는 모습들이 한 떨기 꽃과 다르지 않았다. 그분들 앞에 서서 시낭송 강의한다는 것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일인지, 공자 앞에서 문자를 쓰는 건 아닌지, 얼마나 어쭙잖은 일인지 매시간 살얼음판을 걷듯 숨죽였다.
필자의 기우는 빗나갔고 수업 시간마다 웃음꽃이 송이송이 피어났다. 사무장님이 따뜻한 차와 여러 가지 간식을 가지런하게 준비해 놓고 맞아주었다. 우리는 모두 한 편의 시(詩)에 흠뻑 빠져들었다. 수강생들은 시간이 시나브로 흐르면서 시의 느낌을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앞에 나와서 마이크를 잡고 멋지게 시낭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자리에서 앞으로 나올 때 “난 연습도 안 했는 디.”, “난 마이크 잡고 말할 줄 모르는 디.” 하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막상 마이크를 잡으면 눈빛이 달라지고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 누군가 매끄럽게 잘하면 수강생들은 이구동성으로 참 잘했다고 칭찬하면서 아낌없이 손뼉을 치고 서로 응원했다.
수강생들의 아름다운 사연도 송이송이 피어났다. 하천 주변과 도로 주변을 아름다운 꽃을 심고 가꾼 꽃보다 아름다운 반장님의 선행은 가히 널리 알려야 할 미담이었다. 그 꽃이 하도 아름다워서 수업 중간 쉬는 시간에 모두 꽃구경을 나갔다. 송아지가 태어나서 결석했던 수강생은 다음 수업 시간에 하필 수업하는 날 송아지가 태어나는 바람에 결석했다며 못내 아쉬워했다.
유년 시절 어머니가 만들어 준 호빵 이야기를 잔잔하게 들려준 수강생, 어머니 병간호를 극진하게 한 효심이 깊은 딸은 시에서 어머니가 나올 때마다 울먹였다. 시낭송 동영상을 자녀에게 보냈더니 멋있다는 답을 보내왔다는 이야기, 합창단원으로 활동하는 수강생의 시낭송은 웅장했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시낭송을 병행하는 열정적인 수강생, 손수 만든 예쁜 손가방을 보여준 수강생은 시낭송 할 때 한 땀 한 땀 수놓듯 아름다운 목소리로 유창하게 했다.
수업 시간에 엄마가 등장하는 시(詩)를 낭송할 때 수강생이 울면 필자도 따라 울었다. 진달래꽃을 아름 따다 가는 길에 뿌리고 사뿐히 즈려밟고 가라는 시에서는 그 꽃을 어떻게 밟겠냐고 차마 밟지 못하겠다고 했다. 넓고 반듯한 길보다 구부러진 길에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뜬다고 구불구불 살겠다고 했다. 부처님 앞에서 납작납작 절하는 어머니 모습이 무너지지 않는 공든 탑이라는 것을 알고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바로 송이송이 피어나는 시낭송 수강생들이었다.
시낭송 수업 마지막 시간에는 각자 좋아하는 시를 한 편씩 정해 발표회를 하면 좋겠다고 했을 때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수업 시간에 배웠던 시 중에서 좋아하는 시를 한 편씩 정하고 배경음악에 맞추어 연습하고 마지막 시간에 멋지게 낭송하기로 했다. 필자는 수강생들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마지막 날 필자의 선물을 받고 좋아할 수강생들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나르시시즘의 미소를 짓는다.
송이송이 피어나는 시낭송 수업을 하면서 필자가 배운 바가 많다. 한세월을 올곧게 살아온 고귀한 사람들,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으면서 삶의 가치를 알았다. 삶의 가치는 권력이 높고 낮은 데 있지 않고 명예가 있고 없음도 아니고 돈이 많고 적음도 무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환경을 탓하지 않고 변함없이 거기 그 자리를 지켜온 사람들, 슬픔은 덜어서 반씩 나누어 갖고 기쁨은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면서 몇 배로 만드는 사람들이 꽃이다. 그들이 바로 빛나는 별이다.
시낭송 수업을 하면서 아름다운 꽃밭에서 향기에 흠뻑 취하고 찬연하게 빛나는 별들 속에서 덩달아 빛났던 황홀한 시간이었다. 석성사비양송이협동조합 사무장님과 송이송이 피어나는 시낭송 수강생들의 모습을 밤하늘 별을 보듯 하나씩 마음에 담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