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월감 속에 숨겨진 열등감 콤플렉스
[성격분석] 이준석 대표의 '튀는' 행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 후보 못지않게 세인의 눈길을 끌며 존재감을 과시하는 젊은 정치인이 있다. 야당 대표 이준석이다.
존재감을 드러내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구에게나 사랑 받는 존재가 되길 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월감을 보여주는 데서 존재 의미를 찾는 사람도 있다.
존재를 드러내기보다는 세상과 거리를 유지하며 사는 사람도 있고, 자신을 성찰하며 자기 답게 사는 삶에서 진정한 존재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이준석 대표가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비단주머니를 내보이며 제갈량 못지않은 지혜를 자랑한 바 있고 정치 고수로 나서서 논평하고 내로라하는 정치인의 멘토를 자처하고 있으니 말이다. ‘열등감 콤플렉스’로 널리 알려진 정신의학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우월성 추구를 삶의 중요한 동인으로 보았다.
즉 세상에 대해 우월한 존재임을 과시하고 싶은 욕구를 자연스런 본성의 일부로 본 것이다.
그러나 우월성 추구가 보기에 자연스럽지 않고 성숙한 인격의 한 부분으로 보기 어려울 때가 있다.
자신이 모든 면에서 항상 옳다고 생각하며 전지 전능한 사람처럼 행세할 때, 자신을 내세우며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인 행동을 할 때, 자신의 단점을 보지 못하고 열악한 면을 드러내는 경우 우월성 추구는 건강하다고 보기 어렵다.
함께 생활하기 불편하고 보기에도 좋지 않을 뿐더러 궁극적으로 진정한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고 자신의 고유한 재능을 제대로 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준석 대표는 그가 하는 말의 속도 만큼 빠른 두뇌 회전을 자랑하고 논리를 따지는 토론 배틀의 고수임을 자처하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하지만 공감을 바탕으로 하는 의사 소통 능력은 매우 열등해 보인다. 자신의 권위에 도전을 받았다고 생각하면 화를 참지 못하고 돌발적 행위를 하며 존재의 가벼움을 드러낸다.
알려진 사실을 정리해서 기억하고, 이해 관계를 따지며, 주어진 상황에 발빠르게 적응하는 도구적 기능과 실행 능력은 뛰어난 편이나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무엇이 소중하고 옳고 그른 일인지에 대한 판단과 갈등 상황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의 본질에 대한 통찰력은 상식적 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미래를 내다보고 문제의 핵심을 꿰뚫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듯하다.
그의 소통 문제는 자신이 항상 옳다고 생각하고 상대를 가르치려 드는 데서 비롯한다. 이럴 경우 옳은 얘기를 해도 상대의 거부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후보에게 정치 초보자 딱지를 붙이고 당선을 원하면 입 다물라고 가르친다. 연습 문제를 과제로 주고 제대로 푸는지 보겠다고 한다.
오랜 기간 고생하고 막 석방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마음을 헤아리기에 앞서 국정 농단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며 훈수 하고, 황교안 전 대표의 부정선거 문제 제기는 사실 관계 조차 파악하려 들지 않고 말도 안되는 얘기로 일축해버린다.
◇이준석 대표가 JTBC 신규 파일럿 시사교양 프로그램 ‘가면토론회’에 보수진영 논객 '마라탕'이란 이름으로 출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JTBC ‘가면토론회’
이 대표는 개념의 연관성을 따지는 논리적 사고는 뛰어난 데 반해 감정 기능과 공감 능력은 매우 열등하다.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불쾌해 하면서 상대를 조롱하거나 비아냥거리며 상대의 기분이 어떠할 지는 예상하지 못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돌발 행동과 분노 표출 또한 열등한 감정 기능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공당의 대표로서 느닷없이 당무를 보이콧하고 잠적한다든가 조수진 의원과 충돌 후 자신이 존중 받지 못해 불쾌하다며 선대위 자리를 박차고 나온 일은 감정이 미숙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말이 나왔으니 조수진 의원과의 의견 충돌이 그렇게 까지 화낼 일이었을까. 화는 대개의 경우 단순히 의견 충돌 때문에 나는 것은 아니다. 화가 나는 이유는 무시 당했다는 느낌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자신이 존중 받아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을 때 무시당했다는 느낌은 더욱 커지고 참기 어렵게 된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언제나 자신의 잘못은 없고 모든 것이 남 탓이다. 누군가의 아래가 아님을 강조하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억울한 피해자 행세를 한다.
최근 선대위 해체와 관련하여 후보 패싱 문제에 대해 질문을 받자 오히려 당대표인 자신도 패싱 당한 일이 있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의 답변을 한다. 말하자면 자신과 후보는 동격이고, 자신이 당하면 누구든 당해도 된다는 논리다.
지금의 선대위는 '이준석 대책위'라며 자신의 존재감이 부풀려진 과대 사고를 보인다.
과대 사고와 피해 사고는 동전의 앞뒷면이다. 선대위 탈퇴 이후 제발 복귀해달라 해도 시원찮은 판이라며 자신의 존재를 드높이는가 하면 모든 잘못을 자신에게 뒤집어 씌운다며 피해 의식을 드러낸다.
조수진 의원과 의견 충돌 시 민주주의라는 게 이견이 있을 수 있지 않냐는 후보의 발언을 걸고 넘어가며 조수진 의원이 자신의 권위에 도전 했듯이 자신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식의 주장을 펼치며 자기 합리화를 한다.
이 대표가 잘했다고 하는 사람이 없다며 나무라는 말에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반성하며 앞으로 잘해보겠다고 반응하기 보다는 되레 적당히 하시라고 훈계하며 상대를 비난한다.
이 대표는 논리적 사고로 돋보이고 싶어하나 정반대의 모습을 보일 때가 있다. 열등한 감정에 사로잡힐 때 그렇다. 예를 들면 대표의 자질이 문제된 상황에서 대표의 권한과 권위를 근거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비합리적 태도를 보이는 경우다.
이는 대표 자격이 있냐는 질문에 대표이니까 자격이 있다는 식의 비논리적 답변을 한 것과 같다. 사퇴 압박에 정치 원로인 손학규를 팔면서 자진 사퇴를 고려한 적이 없다고 하는데 이 역시 비 합리적인 열등한 감정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일반적으로 우월감을 과시하려는 욕구 이면에는 자신이 보잘것없는 존재로 보일 지 모른다는 불안 심리가 숨겨져 있다. 사실 우월성 추구는 자신의 타고난 우월한 기능을 살리는 일이지 누군가의 위에서 돋보이는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우월감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찾는 것이 지나칠 경우 사회적 관계에 문제가 생길 뿐 아니라 본인의 잠재적 재능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아들러는 우월성 추구가 병적인지 아닌지는 사회적 공헌 여부로 판단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준석 대표는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 하기에 앞서 당 대표를 위해 당이 존재하는지, 당대표가 당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이해 받지 못 한다고 억울하게만 생각할 게 아니라 자신의 장점이 본인이 인지하지 못하는 열악한 특성에 가려지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촉망받는 젊은 정치인인 만큼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자신의 고유한 재능을 살려 진정한 존재감을 제대로 드러내고, 사회적으로 공헌할 수 있기를 바란다.
글 | 김창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