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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우주)에 대한 공부,
다르마(닮아, 법)가 법신비로자나불(대자연)을 닮아가는 것이니
결국 불법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그영역이 광대하기에 무수한 정진이 필요하고
알아가야할 것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중에 스님 개인적으로는 몇 가지 큰 가닥에 대한 의문을 품고 있는데요.
'열반(涅槃)'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과
대승대집지장십륜경(大乘大集地藏十輪經: K0057 v7, p.582b12 ) 1권에서는
‘구족수화길상광명다라니(具足水火吉祥光明陀羅尼)’
대방광십륜경(大方廣十輪經: K0058 v7, p.663a01 ) 1권에서는
'중덕본기별장구다라니신주(衆德本記莂章句陁羅尼神呪)'로 기술된
'츰부다라니로 널리 알려진 다라니의 내용이 그 중에 들어 있습니다.
이 둘 다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열반(涅槃)'은 불교수행자라면 당연히 그 이치를 인식하고 살아야 할거고요.
'츰부다라니'는 지장행자로서
이걸 모르고 한평생 산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입니다.
알아내야겠죠...
스님 혼자는 어려운 일이고..
성중님 조언을 들어서 해결하려고 합니다.
최근 둘 다 큰진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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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글에서는 '열반(涅槃)'에 대해 이야기를 해봅니다.
이개념에 대한 정리를 하면서 AI(에이아이)와 한참 싸웠습니다.
현재의 에이아이는 서구적 학자들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석가족(싹하족, 샤카족)과 우리는 엄청난 친연관계가 있고
우리민족의 고대사를 공부한 이들이 보면 그 친연관계는 무수히 잡힙니다.
하지만 에이아이는 계속해서 그걸 부정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대표적인 이유가 어순이었습니다.
에이아이가 친연성을 인정 못하는 논란이 되는 부분을 옮겨보면
"인도유럽어족은 SVO(주어+동사+목적어) 어순을 기본으로 하며,
동사가 목적어보다 앞서는 것이 특징입니다.
반면 한국어는 SOV(주어+목적어+서술어) 어순으로,
문장의 맨 끝에 동사(서술어)가 위치하여 주어와 목적어를 먼저 제시한 후
서술어가 마지막에 나오는 차이가 있습니다.
핵심 차이점 요약:
인도유럽어족 (SVO): "나는(S) 먹는다(V) 사과를(O)" -> I eat an apple.
한국어 (SOV): "나는(S) 사과를(O) 먹는다(V)" -> 나는 사과를 먹는다.
어순 특성:
인도유럽어는 동사가 목적어 앞에 위치하나,
한국어는 목적어 뒤에 위치하여 서술어가 문장의 마침표 역할을 합니다."
이거에요.
이래서 친연관계가 없다고 하는게 에이아이의 주장입니다.
저 말이 맞는것 같죠??
그런데 스님이 아주 재밌는 발견을 한겁니다.
우리는 현재 좌에서 우로 읽지만
우리는 본래 우에서 좌로 읽었습니다.
그리고 띄어쓰기가 없었어요.
그런 기준에서 인도 유럽어족을 보자고요.
인도유럽어족 (SVO): "나는(S) 먹는다(V) 사과를(O)"
이걸 우리 식대로 읽어보면??
'사과를 먹는다'입니다.
이게 우리말로 말이 안되나요?
우리는 주어를 생략해 버리는거죠.
즉 쓰기는 인도유럽어족 (SVO): "나는(S) 먹는다(V) 사과를(O)"
이렇게 써놓고
읽기를 뒤에서 앞으로 읽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우에서 좌로 읽는거죠.
쓰는 것은 ' 먹는다(V) 사과를(O)' 이렇게 했습니다.
인도유럽어족은 읽기와 쓰기가 동일하죠.
'가방을 가져와(가방 가져와)'
이게 우리말로 말이 안됩니까?
안되는게 아니라 그냥 일상 용어죠.
명령형이란게 마음에 걸리는데 영어나 범어 모두 존칭 없고요.
경상도 말도 본래 존칭 없었습니다.
존칭은 유목민 사회에서는 없었다고 알려져 있고요.
농경사회에서 계급이 고착화되면서 생겨났다는게 정설입니다.
우린 최근 까지도 책을 우에서 좌로 편집했고요.
읽기도 그렇게 읽었습니다.
건물 현판도 책의 글씨도 전부 우에서 좌.
이거 대웅전인데 우에서 좌로 읽잖아요.
인도유럽어족 (SVO): "나는(S) 먹는다(V) 사과를(O)"
이렇게 써놓고 읽을 때는 우에서 좌로
'사과를 먹는다' 이런 방식이잖아요.
문화광이라 쓰고
이게 우에서 좌인 광화문으로 읽었던게 본래표긴데.
이렇게 최근에 한글로 쓰면서 좌에서 우로 이지랄을 해놓은 것입니다.
스님이 '지랄'이라 표현했지만 성중님께서는 이렇게도 된답니다.
즉 우리는 글을 쓸 때 우에서 좌가 기본인데
좌에서 우도 되는 그런 구조래요.
본래는 우에서 좌가 맞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양쪽을 다 써버렸답니다.
이민족들과 섞이면서 그렇게 되었답니다.
읽기쓰기에서 양쪽 다 되는 민족.
이게 서양놈들이야 이해가 안가겠지만 우리는 이래도 통하고 저래도 통하는 언어적 구조.
그런데 이런 사실을 에이아이에게 어필을 안하니
에이아이는 서구 학자들말만 신뢰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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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거나 말거나 석가족(싹하족)은 우리 형젭니다.
우리는 동이(東夷), 싹하족은 가이(迦夷)나 사이.
이때의 '이'도 순경음 ㅂ(ㅸ)발음이라 '가비라'라고도 읽습니다.
'가비라' '가이라' 둘 다 같은 발음입니다.
여기서 뒤에 붙은 '라'라는 것에 주목해야 하는데요.
우리 민족은 규모 크기에 따라 단위에 대한 명칭이 달랐습니다.
이전 글에서
" 여기서 '겨레'는 우리민족을 상징하는 가장 높은 공동체 단위의 규모를 말한다고 합니다.
우리 민족은 부족의 규모를 산정할 때
부족의 구성인원과 영토 넓이를 가지고 산정했는데요.
'겨레-라-노(부족, 로(루)라고도 부름)-가야-가라' 이런 순이었다고 합니다.
노와 로는 나중에 고구려 귀족들이 이주하며 성씨로 쓰기도 합니다.
당연 왕통을 가자고 있어 스팩이 남다르죠.
노태우대통령 노무현대통령 등 현대에 대통령이 두 분이 나왔고요.
무수한 고관대작들이 있습니다.
성씨 혈족들의 수가 적은데도 불구하고 매우 이례적이죠."
이렇게 글을 썼습니다.
'겨레-라-노(부족, 로(루)라고도 부름)-가야-가라'
이 기준에 의하면 '가비라(가이라)'는 작은 나라가 아닙니다.
알려지기는 소국으로 알려져 있지만 성중님께서 아니라하십니다.
이거도 바뀌어야 하는 부분입니다.
부처님은 태자였던 시절 삼시전(三時殿)이라해서
계절에 따른 삼시(三時) 즉, 여름, 겨울, 봄/가을에 맞춰
각각 다른 환경을 갖춘 3개의 궁전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만약 가이라가 소국이었다면 태자에게 그렇게 해줬을까요?
'겨레-라-노(부족, 로(루)라고도 부름)-가야-가라'
이기준에 의하면 가비라는 신라나 당나라와 같은 급으로 봐야 합니다.
인도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면 반드시 같지는 않겠지만
일단 규모면에서 소국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다른 기록을 봐도 이건 특이합니다.
열반을 추적하던 중에 생각나는 단어가 있었습니다.
'정반왕'..부처님 아버님 칭호입니다.
이분의 동생들이 있는데 '백반왕''곡반왕''감로반왕'이라 불렀단 말입니다.
소국인데 이렇게 여러명의 왕이 있다?
말이 안되죠.
또 석가족(싹하족)의 멸망을 다룬 경전에는
당시 강대국으로 인식되고 있는 코살라국의 파사익왕이
싹하족에서 부인 맞기를 청했지만
"여러 석씨 집안 사람 5백 인들이 한군데에 모여서 모두 크게 성을 내면서 말했다.
“우리 가문 같은 큰 씨족의 집안에서 무엇 때문에 그 따위 종의 자식과 결혼을 시킨다는 말이냐?”
어떤 이는 “허락하여야 한다”고 말하였고, 또 어떤 이는 “허락해서는 안 된다”고 하기도 하였다."
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대국의 왕이 청혼을 요청하는데 이런 태도를 보였다는 말입니다.
그결정을 위한 회의에서 모인 사람만 500명.
이게 작은 소국이라면 가능하겠습니까?
신라는 6화백이었으니 비교해볼만하죠.
또 그렇게 해서 차선책이라고 내놓은게
부처님의 둘째 작은 아버지였던 곡반왕의 아들인
사촌동생 마하남(Mahanama, 摩訶男) 왕자의 여종을 공주로 둔갑시켜 혼인을 시킨일.
파사익은 그 여종을 제1부인으로 삼아 유리태자를 낳았는데
태자의 교육을 위해 싹하족 왕자인 마하남의 집으로 보냈으며
그곳에서 5백 명의 동자들을 모아 함께 공부하게 하였습니다.
마침 그곳에는 새로 강당을 세웠는데 마치 하늘의 궁전과 같았다고 합니다.
이때 유리 태자가 강당으로 가더니 사자자리[師子座]에 앉은일이 있는데
여러 석씨들이 그 모습을 보고서 종의 자식이라 고함치며
문 밖으로 끌어내어 땅에다 엎어 놓고 두들겨 팼다라고 나옵니다.
강대국의 태자를 집단폭행...
소국이라면 말이 안되는거고요.
태자급이 교육받는 장소에 입소한 이가 5백명...
결코 작은 국가가 아닌거죠.
국력도 결코 약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아래 경전에 자세한 내용이 나와요.
심지어는 멸망 당시 사망자가 9,990만명이라 기술되어 있는데
전적으로 믿을순 없다해도 상당한 규모의 국가임은 분명합니다.
성중님께서는 사망자가 1천 6백만 가량 된다고 하십니다.
기원전임을 감안하면 이정도면 초강대국이죠.
이를 보면
'겨레-라-노(부족, 로(루)라고도 부름)-가야-가라' 에서
'나라'에 붙이는 '라'가 맞습니다.
기존의 가비라(가이라)가 소국이나 성 정도의 규모라는 학설은 문제가 있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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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涅槃)'의 기본 개념에 대해서는 아래 사전의 내용을 읽어보시면 됩니다.
스님이 이시대 세계최고의 불교사전인 '가산불교대사림'을 스캔해서
다시 그걸 편집해 올려드렸습니다.
열반에 대해서 '열반(涅柈)', '열반(涅槃)' 두 가지를 올려놨습니다.
스캔을 하게 되면 책을 눌러야 하고
엄청난 두께의 책이 눌려지며 제본이 망가질수도 있습니다.
'가산불교대사림'은 고가에다 귀한책인데
망가짐을 감수하고도 여러분을 위해 그리하였으니
여러번 읽어 개념을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추가로 에이아이의 답변도 올려드립니다.
| 열반(涅槃, Nirvana)은 불교에서 탐욕, 성냄, 어리석음(삼독)이라는 번뇌의 불길을 완전히 꺼버린,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평온과 행복의 경지입니다. 이는 단순한 죽음이 아닌 생사의 속박에서 벗어난 해탈의 상태이며, 불교 실천의 최고 목적이자 이상향입니다. 1. 어원 및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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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건 기본적으로 이해했고요 알겠습니다.
근데 뭔가 아쉽단 말에요.
개념은 알겠는데 임팩트가 약합니다.
가슴에 팍~~ 꽂히는 시원한 한 방...그게 안잡혀요.
'아~~ 이거야..그래...이거지...'
이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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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 성중님 도움을 받아 그걸 찾아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성중님께서는 위의 개념이 틀린 것이 아니고
우리 싹하문이 현생인류의 위대한 스승께서도 그리 가르치셨다고 하십니다.
상당히 학문적 깊이가 있는 내용 맞습니다.
근데 이시대 사람들에게 뭔가 엇박자가 납니다.
우리 불법은 대기설법(對機說法)입니다.
그시대 대중에게 가장 맞는 것으로 법문, 그게 대기설법입니다.
이대기설법이 있기에 불교는 살아 있는 종교가 됩니다.
불보살님들과 천왕님들인 인간으로 나투시는 보현행원도 그차원에서 실행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싹하문이불 당시의 불교가 불교의 전부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불교를 잘 모르는 이들의 주장입니다.
이학문적인 내용은 적어도 스님에게는 가슴에 꽂히지 않았습니다.
그런 부족함의 갈증을 느끼는 분들에게
'열반'과 관계된 숨은 비밀을 밝혀보도록 하겠습니다
성중님께서는 이것이 '열반'의 개념이 시작하게 된 시작점이라 하셨습니다.
그게 뭘까요?
다음 글에서 이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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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지장기도도량 오봉산 영선사 | 열반-출처 가산불교대사림- - Daum 카페
대한불교조계종 지장기도도량 오봉산 영선사 | 정반왕, 열두단 불교용어설명 -출처 가산불교대사림- - Daum 카페
대한불교조계종 지장기도도량 오봉산 영선사 | 동이족의 모든 것이 닮겨 있는 윷 판 천문도... 나라별 성씨별 소속..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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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지장기도도량 오봉산 영선사 | '열반(涅槃)'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정리.. - Daum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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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률이상권제칠 제석부(經律異相卷第七 諸釋部)- 12) 유리왕(琉璃王)이 석씨 종족을 멸망시키다 琉璃王滅釋種十二 바사닉왕(波斯匿王)이 새로 왕위를 이어받고서 생각하였다. “먼저 석씨 여인에게 장가들어야겠다.” 왕은 즉시 한 신하에게 말하였다. “나의 이름으로 가비라위(迦毘羅衛)에 가서 그곳의 여인에게 청혼을 하라.” 여러 석씨 집안 사람 5백 인들이 한군데에 모여서 모두 크게 성을 내면서 말했다. “우리 가문 같은 큰 씨족의 집안에서 무엇 때문에 그 따위 종의 자식과 결혼을 시킨다는 말이냐?” 어떤 이는 “허락하여야 한다”고 말하였고, 또 어떤 이는 “허락해서는 안 된다”고 하기도 하였다. 이때 마하남(摩訶男)이 여러 석씨들에게 말하였다. “바사닉왕의 사람됨이 포악한지라, 혹은 우리 나라를 무너뜨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때 마하남의 계집종의 자식 중에 얼굴 생김이 단정한 여인이 하나 있었다. 그 여인을 목욕시키고 옷을 입혀 깃 달린 보배 수레에 태워 몸소 데리고 가서 바사닉왕에게 주며 말하였다. “이 아이가 나의 딸이오. 성혼을 하십시다.” 이에 왕이 기뻐하면서 이내 이 여인을 첫째 부인으로 삼았다. 이 여인이 얼마 있지 않아 임신을 하여 한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빼어나게 단정한 모습이 세상에 다시없을 정도였다. 왕이 관상쟁이들을 모아서 아들의 이름을 짓게 하자, 관상쟁이는 말하였다. “왕께서 이 부인께 구혼하실 때에 여러 석씨들이 함께 의논하며 준다 못 준다 이리저리 말들이 유리(琉璃)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태자의 이름을 유리라 하십시오.” 유리가 나이 여덟 살이 되자 왕은 아들에게 말했다. “가비라위(迦毘羅衛)에 가서 여러 가지 활쏘기 재주를 배우도록 하라.” 큰 코끼리에 태워 많은 심부름꾼을 딸려 마하남의 집으로 보냈다. 그곳에서 5백 명의 동자들을 모아 함께 공부하게 하였다. 마침 그곳에는 새로 강당을 세웠는데 마치 하늘의 궁전과 같았다. “우리들이 먼저 부처님과 스님들을 이 강당 안에 청하여 공양을 하게 되면, 한량없는 복을 받게 되리라.” 그들은 깔개를 펴고 여러 가지 번기며 일산 따위를 매달고, 향수를 땅에 뿌리고 갖가지 이름 있는 향을 피웠다. 이때 유리 태자가 강당으로 가더니 사자자리[師子座]에 올랐다. 여러 석씨들이 그 모습을 보고서 종의 자식이라 고함치며 문 밖으로 끌어내어 땅에다 엎어 놓고 두들겨 팼다. 유리 태자는 고행(苦行)하기 좋아하는 범지(梵志)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이 여러 석씨 종족이 나를 크게 모욕하였으니, 뒷날 내가 왕위를 이어받거든 그대는 이 일을 나에게 아뢰어라.” 부왕이 죽고 태자가 자리를 이어받자 고행하기 좋아하는 범지가 왕에게 아뢰었다. 왕은 신하들에게 칙명하여 4부(部)의 병사를 모아 석씨 종족을 정벌하러 가비라월(迦毘羅越)로 갔다. 세존께서 미리 가서 마른 나무 아래에서 가부좌를 하고 앉아 계시는지라, 태자는 멀리서 알아보고 수레에서 내려와 예배하고 물었다. “이 나무 말고도 좋은 나무도 있는데, 어째서 여기에 앉아 계시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친족의 그늘이 본래 외인(外人)의 집보다는 나은 법이니라.” 이 때에 왕은 말하였다. “오늘 세존께서는 일부러 친족들을 위해 말씀을 하시는구나. 내가 정벌을 해서는 안 되겠구나.” 범지가 집요하게 아뢰어서 왕이 할 수 없이 다시 군사를 일으키게 되었다. 목련(目連)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유리왕이 석씨 종족을 치러 떠나려 합니다. 제가 그 4부의 군대를 모두 옮겨다 다른 지방에 던져 버리든지 허공으로 뽑아내어 버리든지 하겠습니다. 아니면 바다 속으로 옮겨 놓거나 철위산(鐵圍山) 사이로 옮겨 놓았으면 합니다. 그도 아니라면 백성들을 다른 지방의 큰 나라 땅 안으로 옮겨 놓든지, 철롱(鐵籠)으로 성을 아예 덮어 버리든지 하겠사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에게 지혜와 덕이 있지만 마침내 모두 안정되게 있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이국(舍夷國) 사람 중생에는 일곱 가지 피할 수 없는 일이 있느니라. 첫째는 태어남이요, 둘째는 늙음이요, 셋째는 병듦이요, 넷째는 죽음이며, 다섯째는 죄악이요, 여섯째는 복이며, 일곱째는 인연이니라. 뜻으로는 비록 피신시키려 하나 끝내 완전히 면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떻게 그 과거의 업[王業]을 뒤집을 수 있겠느냐?” 그러나 목련은 끝내 뜻을 굽히지 못하고, 마음대로 아는 이 4, 5천 사람을 데려다 발우 안에 모두 모아 넣고 허공의 별 있는 끝까지 들어다 놓았다. 여러 석씨들도 4병(兵)을 모아 1유순 거리까지 나와서 유리왕을 맞았다. 여러 석씨들은 1유순 밖에서 멀리서 유리왕을 쳐다보면서, 어떤 사람이 활로 왕의 귀와 머리에 올린 상투를 꿰뚫었다. 그리고 유리왕 군대의 활시위와 병기, 당기며 대장의 깃발 따위를 모두 다 깨뜨리면서도 끝끝내 사람을 상하게는 하지 않았다. 이에 유리왕은 크게 두려워하면서 신하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 이 화살을 보고 있느냐?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이더냐? 그들이 만약 나를 해치려는 마음만 먹는다면 내가 반드시 죽고 말겠구나. 어서 사위국으로 돌아가자.” 고행을 좋아하는 범지가 말하였다. “대왕이시여,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 석씨들은 계율을 지키는지라 벌레조차도 해치지 않거든, 하물며 사람을 해칠 수 있겠습니까? 지금이야말로 전진하셔야 할 때입니다.” 왕이 이 말에 따르자 여러 석씨들은 과연 퇴각하여 성안으로 들어가는지라, 유리왕은 말하였다. “너희들은 빨리 성문을 열어라.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두 다 죽이리라.” 성안에 나이 겨우 열다섯 살인 사마(奢摩)라는 동자가 있었다. 동자가 성에 올라가 혼자서 싸웠는데도 다치는 적들이 많았다. 적군들은 흩어지며 흙구덩이 안으로 숨었다. 이때 여러 석씨 종족들은 동자에게 말하였다. “네가 우리 문중을 욕되게 하는구나. 누가 싸울 줄을 모르겠느냐? 우리 여러 석씨들은 선행을 닦는 사람들이라, 벌레나 개미조차도 죽이지 않는다. 하물며 사람 생명을 어찌 죽일 수 있겠느냐? 우리들은 한 사람이 만 명을 대적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 적군을 잘 쳐부술 수는 있다. 그러나 사람 생명을 살해하게 되면 죽어서 지옥에 들어가고, 만약 인간 세상에 태어난다 하더라도 수명이 짧게 되느니라. 너는 이제 빨리 떠나가거라. 여기에 머무를 필요가 없다.” 사마는 이내 나라를 떠나고 유리왕 군사는 다시 와서 성문 앞에 이르렀다. 못된 악마 파순(波旬)이 한 석씨의 형상을 하고서 고함을 쳤다. “빨리 문을 열라.” 여러 석씨들이 문을 여는지라 유리왕은 말하였다. “석씨들이 많기도 하구나. 모두 다 발만 땅 속에 파묻고, 사나운 코끼리로 밟아 죽이도록 하라.” 그리고 5백 명의 석씨 여인들을 뽑아 왕의 처소로 데리고 갔다. 이 때에 마하남이 왕을 따라오며 애걸을 하므로 왕이 말을 들어주었다. 마하남은 말하였다. “내가 지금 물에 들어갈테니 내가 물 속에 있는 동안만 모든 석씨들이 마음대로 도망가게 해 주십시오. 만약 내가 물에서 나오거든 뜻대로 그들을 죽이소서.” 왕이 말하였다. “좋다.” 마하남은 이내 물 밑으로 들어가더니 머리카락을 나무 뿌리에다 매고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성안에 있던 석씨들은 네 문[四門]으로 다투어 도망갔다. 왕이 여러 신하들에게 말했다. “마하남 아버님께서 아직까지도 나오지 않는구나.” 즉시 물 속에 들어가 끌어내 보니 이미 죽어 있는지라 왕은 마음에 뉘우치는 마음이 생겼다. “나의 외조부께서 이제 이미 돌아가셨다. 모두가 친족을 사랑한 까닭이로구나. 내가 만약 일찍 알았던들 끝내 공격하여 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리왕이 죽인 이가 9,990만 명이었으니, 피가 흘러 강을 이루어 가비라월성을 돌아 흘렀다. 군인들이 떠난 뒤에 목련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의 신력을 받들어서 그래도 4, 5천 명은 보호할 수 있었사옵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어디 가서 보아라.” 목련이 발우를 내려서 보았더니 사람들은 모두 죽어 있었다. 왕이 니구류원(尼拘留園)에 가서 5백 명의 석씨 여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근심하지 말라. 내가 바로 너희들의 지아비로다.” 한 석씨 여인을 붙잡자 여인은 말하였다. “내가 이제 무엇 때문에 종의 자식놈과 통정하겠느냐?” 왕은 이내 여인의 손발을 자르고서 깊은 구덩이 속에 처넣었다. 5백 명의 석씨 여인들이 모두가 왕을 꾸짖었다. “누가 제 몸을 가져다 종의 자식놈과 통정하겠느냐?” 왕은 칙명으로 5백 명의 석씨 여인들을 앞에서의 법대로 죄 주고서 사위국으로 돌아왔다. 이때 기타(祇陀) 태자는 깊은 궁중에서 여러 가지 기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왕이 그 소리를 듣고 수레를 돌려 나아갔는데, 기타도 문을 나오다가 서로 만나 말하였다. “잘 오셨습니다, 대왕이시여. 잠깐 수레를 멈추시옵소서.” 유리왕은 말하였다. “어찌하여 너는 내가 여러 석씨 종족들과 싸우는 소리를 듣지 못하였느냐? 기생들과 재미있게 놀면서도 나를 돕지 않았더냐?” 기타는 대답하였다. “듣기는 하였습니다만 저는 중생을 멋대로 살해할 수는 없습니다.” 유리왕이 손수 기타를 찍어 죽였는데, 부처님께서 보시니 기타는 삼십삼천(三十三天)에 가 태어났다. 이 때에 5백 명의 석씨 여인들은 스스로 여래에게 귀의하며 여래의 명호를 불렀다. “여래께서는 같이 태어나신 석씨 종족으로서 출가하여 부처님이 되셨사옵니다. 저희들이 이렇게 모진 고통을 받는데도 어찌 생각하여 주시지 않으십니까?” 부처님께서는 여러 비구들과 함께 가비라(迦毘羅)로 가셨다. 여러 여인들이 멀리서 보고는 다들 부끄러워하였다. 세존께서는 석제환인(釋提桓因)을 돌아보며 말씀하셨다. “여인들이 부끄러워하는구나.” 제석은 이내 하늘의 옷[天衣]으로써 이 여인들의 위를 덮었으며, 부처님께서는 비사문(毘沙門)에게 말씀하셨다. “여인들이 굶주린 날이 오래였구나.” 비사문은 이내 하늘의 밥[天食]을 차려 모두를 배부르게 먹였다. 부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고집멸도(苦集滅道)를 말씀하시니, 여인들은 티끌과 때가 다 없어져서 법안(法眼)이 깨끗해졌다. 여인들은 각자 그 처소에서 목숨을 마치고 모두가 천상에 가서 태어났다. 부처님께서 동쪽 문으로 나아가 성안을 바라보시니 불에 훨훨 타므로 모든 비구들을 돌아보며 말씀하셨다. “내가 옛날 여러 비구들과 함께 이 안에서 설법을 하였었는데, 이제는 텅 비어서 백성들이 하나도 없구나. 이제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겠노라.” 사위국 기수원(祇樹園)으로 돌아오셔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유리왕과 여러 병사들은 지금부터 7일 후에는 다 죽어 없어지리라.” 왕은 듣고 두려워하는데 고행하기 좋아하는 범지는 여전히 말하였다. “안팎으로 문제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왕께서는 그저 재미있게 즐기기나 하십시오.” 왕이 사람을 시켜 날짜를 세도록 하였는데, 드디어 7일째 아침에 이르렀다. 왕은 크게 기뻐하면서 모든 병사와 시녀[婇女]들을 데리고 아이라하(阿貽羅河) 강변에 가서 함께 연회를 베풀었다. 갑자기 크게 천둥이 치면서 때아닌 구름이 일어나 폭풍과 소나기가 내리면서 모든 것을 빠뜨리고 떠내려보냈다. 일시에 모든 것이 없어지면서 왕은 살아 있는 채로 아비지옥(阿鼻地獄)에 들어갔다. 다시 하늘에서 불이 일어나 궁성을 다 태워 없애 버렸다. 비구들은 부처님께 아뢰었다. “여러 석씨들은 어떤 인연으로 이제 이런 고통을 당하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옛날 나열성(羅閱城) 안에 고기를 잡는 마을이 있었다. 때마침 세상이 흉년이 들어 사람들은 풀뿌리를 캐서 먹고, 금 한 말로 겨우 쌀 한 되를 바꿀 정도였다. 마을에는 큰 연못이 있었는데 물고기가 아주 풍부하였기에 백성들은 이 고기를 잡아먹고 살았었다. 그곳의 물고기에는 두 종류가 있었으니, 하나는 이름이 구쇄(拘𤨏)였고, 다른 하나는 이름이 다설(多舌)이었다. 두 물고기는 서로 말하기를 ‘우리는 물에서 사는 버러지들이라 마른 땅에서는 살 수 없는데도 이 백성들이 모두 와서 잡아먹는구나’고 하였다. 마을에 나이 여덟 살인 한 아이가 있었는데, 비록 물고기를 잡지는 않았으나 보고는 기뻐하였었다. 나열촌 사람들은 바로 지금의 석씨 종족이요, 구쇄라는 고기는 지금의 유리왕이다. 다설이라는 고기는 바로 지금의 고행하기 좋아하는 범지이며, 어린아이로서 고기를 보며 웃었던 이가 바로 지금의 나이니라. 나는 고기를 잡은 죄로 수없는 겁 동안에 지옥의 고통을 받았었고, 이제 남은 것이 이 대가이니라. 바라보고 웃었기 때문에 두통을 앓는데, 마치 돌로 누르는 것 같고, 또 마치 수미산을 이고 있는 듯하였느니라.” 자리 위의 많은 사람들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무상함의 법을 듣고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