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처럼 기다랗게 뽑아낸 면은 멸치국물을 진하게 우려낸 그릇에 푸짐하게 담겼다. 튀김가루 한 숟갈, 고춧가루 조금, 김가루 적당히, 쑥갓은 맨 위에 고명으로 얹어졌다. 일본에서의 우동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국물을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민족의 특성상 면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뜨끈한 국물이면 그만이었다.
-
- 아쯔아쯔 방식으로 만든 우동
국물 중시 여기는 한국인, 탱탱한 면 식감에 관심 갖기 시작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밀가루가 한국으로 엄청 들어오면서 학교, 가정, 식당에서 밀가루를 재료로 하는 음식들이 발전해왔다. 풍부해진 재료는 국민의 기호까지 바꾸어놓을 정도로 식탁을 지배했으며 우동 역시 가락국수라는 한국식 이름으로 불리며 분식집 메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됐다. 그리고 본격적인 분식의 시대가 왔다.
한 인스턴트 우동이 “국물이 끝내줘요”라는 멘트로 대한민국을 강타했을 때 국물 맛도 ‘끝내줬지’만 처음 경험한 생생한 면발이 더 인상적이었다. 시큼한 비닐 안에 들어있던 면발은 늘 먹던 가락국수와는 다른 쫄깃함을 맛보게 해주었다. 후루룩 국물과 넘겨버리기에는 탱글탱글함이 강했던 것이다.
해외여행자유화로 국경의 문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했을 때와 그 인스턴트 우동의 출시가 엇비슷하게 겹치면서 사람들은 탱탱한 면의 식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일본 현지에서 맛본 우동의 맛을 얘기하고 일본식 정통 우동 집들도 서서히 생겨났다.
밀가루, 소금, 물의 조합으로 탱탱한 면발 구현 ‘사누키우동’
면발을 중시 여기는 곳은 일본의 사누키 지방이다. 우동 이름도 지역 명을 따 사누키우동이라 부른다. 밀가루, 소금, 물, 이 세 가지의 조합으로 면을 만든다.
일본은 크게 4개의 섬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일본을 이루는 가장 큰 섬이 혼슈고 그 바로 아래 있는 섬이 시코쿠다. 시코쿠는 또다시 4개의 현으로 이루어지는데 그 중 하나인 가가와 현은 작지만 우동가게의 밀집도와 소비량 모두 일본에서 제일이다. 가가와 현을 이르는 옛말이 바로 사누키다.
에도시대의 백과사전인 와칸산자이도카이(1713년)에 따르면 밀에 관해서는 사누키국 마루가메 시(마루가메시는 가가와 현의 해안선쪽의 중앙쯤에 위치한다)에서 생산된 것이 최고다. 또 시코쿠와 인접한 세토내해는 예로부터 크고 작은 섬을 연결해주는 중요한 해상로의 역할을 했으며 소금, 멸치 등을 얻기 쉬워 우동을 발달시키는데 일조를 했을 것으로 파악한다. 사누키우동이 유명해진 까닭이다.
-
- 히야아쯔와 히야히야 방식으로 만든 우동
달팽이를 뜻하는 <가타쯔무리>는 사누키우동을 내는 곳으로 일본에서 우동을 먹고 자란 일본인이 한국에 문을 연 우동집이다. 가가와 현의 우동학교를 나온 일본인 주인장은 정통방식으로 우동을 낸다. 일본 본토 맛을 우리나라에서 맛볼 수 있다. <가타쯔무리>는 면을 그날의 기온이나 습도에 따라 그 미묘한 배합을 바꾸며 수작업으로 만들어낸다. 국물도 매일 만든다. 특징은 주문방식이다. 조금 더 정교한 주문방식을 요구한다. 첫 번째는 국물의 종류를 선택하는 일이다. 넉넉하고 따뜻한 국물에 말아져 나오는 우동이 가케우동이고, 그것보다는 좀 더 진한 국물을 자작할 정도로 넣고 면을 비벼먹는 것이 붓가케우동이다.
‘국물의 선택’이 끝났다면 두 번째로는 면과 국물의 ‘온도’를 선택할 차례다. 히야는 데우지 않은, 차갑다는 뜻이고 아쯔는 뜨겁다는 뜻이다. 히야히야를 선택하면 면도 국물도 모두 차가워서 그 탱탱함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사누키우동의 면발을 맛볼 수 있다. 히야아쯔를 선택하면 면은 차가운 채로 올린 후 따뜻한 국물을 부어내는데, 면발은 면발대로 쫄깃함을 놓치지 않고 국물은 온기로 덥혀져 부드럽다. 아쯔아쯔는 면도 따뜻하고 국물도 뜨겁게 나오는 우동으로, 면발이 목으로 쑤욱 부드럽게 넘어가며 국물까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우동이다.
단면 일치하고 각 살아 있는 면으로 만족도 높이는 <가타쯔무리>
면의 상태에 따라 모양이나 두께가 다르게 표현되는 부분을 다양성으로 봐달라는 이곳의 우동은 놀랄 만큼이나 균일하다. ‘수타’임을 내세워 정돈되지 않은 모습까지 뭉퉁거리려는 흔한 집들과는 다르다. 트레이에 반듯하게 나오는 우동은 면의 단면이 일치했고 각은 살아있었다.
밀가루, 소금, 물 이 단순하면서도 귀한 세 가지를 잘 섞어내고, 시간을 두고 숙성시키고, 접고 또 켜켜이 접어내는 과정들을 통해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반투명하고 두툼한 면을 만들어내고 있다. 강한 반죽은 탄력을 부여했고 여러 번 꽉꽉 접힌 반죽들은 조밀한 밀도를 선사했다.
가케 선택 시 넉넉히 나오는 국물은 파와 생강을 넣고 먹는다. 다시마와 멸치로 맑게 우려낸 국물은 아쉽게도 멸치만 조금 날이 서 있는듯했다. 물론 면을 방해하지 않는 범위에서다. 붓가케로 선택한 우동은 파와 생강을 기본으로 갈아놓은 무, 레몬도 더해서 먹는다. 쯔유는 과히 진하지 않고 맑았다. 그래도 면에 스르르 스며들었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유학한 동행인은 일본에서도 이렇게 제대로 하는 곳이 많지 않다며 감탄했고, 히야아쯔를 선택한 동행인은 면은 면대로 국물은 국물대로 즐길 수 있다며 만족해했다.
아쉬운 점이 영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매장에 전화가 없고, 영업시간도 짧다. 휴일은 페이스 북에 공지를 하기 때문에 관심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찾아봐야 한다. 게다가 일본의 장인들이 다 그렇듯 이곳 역시 반죽한 재료가 다 떨어지면 영업시간과 상관없이 문을 닫는다. 일본인이 운영한다고 해서 주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의 한국인 아내가 주문을 받는다.
음식을 내오고 수줍게 들어가는 주인장부부는 느릿느릿 이동하며 가끔은 숨어들어가는 달팽이 같다. 정갈하게 담겨 나오는 힘 있는 우동은 단단한 껍질을 이고 있는 매끄러운 달팽이와 꽤 닮았다. 아주 예전에 책에서 본 ‘우동 한그릇’ 이 마음을 적시는 감동을 주었다면, 이곳은 입안을 적시는 감동을 준다.
<가타쯔무리> 서울시 서대문구 명지대길 72, 전화 없음(페이스북에 그 달 휴무일 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