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수행이야기]〈86〉수행은, 지금 그 일상에서 완성된다
선(禪)은 지금 여기서, 밥 먹고 차 마시는데 있다
“마음을 고요히 머물 줄만 안다면
그 자리가 깨달음을 구하는 도량”
옛 선사들은 조용한 산사에서 수행하지 않고 시끄러운 시장 바닥에서 수행하였다. 깨달음을 구하는데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만 도(道)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냄새가 풍기는 삶의 터전에 도가 있다는 뜻이다. 틱낫한 스님은 시를 쓰거나 글을 쓰는 문인이기도 하다. 어느 날, 서양 학자와 대화를 하는 중에 그가 스님께 이런 말을 하였다.
“스님께서는 아름다운 문장을 잘 짓더군요. 그런데 제가 며칠간 스님의 일상을 살펴보니, 밭에 나가 채소를 키우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내더군요. 그런 시간을 줄이고, 글 쓰는 일에 시간을 할애한다면 더 좋을 듯합니다.”
“내가 밭에 나가 채소를 키우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나는 시를 쓰거나 문장을 짓지 못할 것입니다. 깨달음이란 설거지를 하거나 채소를 기르는 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삶의 순간순간을 자각하고 몰두(all in)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익히는 것은 곧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입니다. … 우리는 삶의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합니다.”
바로 스님의 이런 점을 ‘삶이 곧 수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참고로 틱낫한은 임제종 승려). 일상의 삶속에서 수행하는 사상은 조사선의 한 특징이다. 조사선은 인도선에 중국 문화와 종교가 결합되어 중국적인 토양으로 변이된 것인데, 살아있는 조사로서 생활 속에서 수행하는 선(禪)이다. 그래서 임제 의현은 조사인 부처라고 하여 조불(祖佛)이라고 하였다.
선사들의 수행 경지를 주고받는 선문답(禪問答)에 차ㆍ쌀ㆍ소금ㆍ간장ㆍ만두 등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물품들이 등장한다. 앙산 혜적(807~883)은 승려가 찾아와 어디서 왔냐고 물은 뒤, ‘유주 지역의 쌀값은 얼마인가?’라고 되묻기도 하고, 청원 행사(?~740)도 제자에게 ‘노릉의 쌀값은 얼마냐?’고 물었다. 방거사는 오도송에서 “신통과 묘용(내 마음공부는) 물 긷고 땔나무 줍는 일이로다”라고 하였다. 그만큼 깨달음도 일상을 떠나서 달리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은 ‘불법은 차 마시고 밥 먹는 곳에 있다’고 하셨다. 이를 ‘다반사(茶飯事)’라고 하는데, 원래 밥 먹고 차 마시는 것처럼, 수행도 일상적인 데서 도(道)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단어는 선에서 유래되어 세간에 널리 통용되고 있다.
<유마경>에 ‘직심이 바로 도량(直心是道場)’이라는 말이 있다. 광엄 동자가 바이샬리 성문을 나가려고 하는데, 마침 그곳으로부터 들어오고 있는 유마를 만났다. 동자가 유마에게 ‘도량을 찾아 성문을 나가려고 한다’라고 하자, 유마는 ‘자신은 지금 도량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하면서 마음이 곧 도량이라고 설해준다.
현재 머물고 있는 그 자리에서 마음을 고요히 머물 줄만 안다면 그 자리가 깨달음을 구하는 도량인 것이다. 그러니 굳이 고요한 숲속에 머물러야 도를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수행하기에 갖춰진 장소만이 도를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머무는 일상의 장소에서, 일상적인 자신의 행 하나하나를 참된 마음으로 수행할 때, 바로 그 마음이 도량인 것이다. 인간의 행주좌와 일체 동작이 법계(法界)가 되며, 신구의 3업이 부처의 행이라는 것이다. 곧 하나하나 행위 자체가 부처의 행으로서 행즉불(行卽佛)이라고 볼 수 있다.
신을 섬기는 유대교에서도 “우리 인생의 모든 행위가 다 성스러운 것이다. 먹고, 마시고, 숨쉬고, 즐기고, 누군가를 만나는 게 다 하느님을 공경하는 방법이고, 하느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삶을 영광스럽게 만드는 방법이다”라고 하였다. 승려가 깨달음을 구하거나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하는데 있어 일상을 떠나 이상을 추구할 수 없다고 본다.
바로 지금 여기, 서 있는 그 일상에서 수행은 완성되는 것이다. 그래서 임제는 ‘바로 지금, 여기가 아니면 다시 더 좋은 시절은 없다(直是現今 更無時節)’고 하였다.
정운스님… 서울 성심사에서 명우스님을 은사로 출가, 운문사승가대학 졸업, 동국대 선학과서 박사학위 취득. 저서 <동아시아 선의 르네상스를 찾아서> <경전숲길> 등 10여권. 현 조계종 교수아사리ㆍ동국대 선학과 강사.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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