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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와 나는 동기로서 정을 같이 나눈 천륜이다. 네가 처음 발심할 적에 나의 법 가운데에서 어떤 거룩한 모양을 보았기에 세상의 깊고 중한 은애를 미련 없이 버렸는가.”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부처님의 서른두 가지 상이 뛰어나게 미묘하고 아주 특이하며 형체가 마치 맑은 유리처럼 밝게 비침을 보고서 이러한 모양은 욕애로 생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사옵니다. 왜냐하면 욕기는 더럽고 흐려서 비린내와 누린내가 풍겨나고 고름과 피가 뒤섞여서, 그와 같이 뛰어나게 깨끗하고 미묘하고 밝은 자금광을 발생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 마를 때 물을 찾듯이 우러러보며 부처님을 따라 머리를 깎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다. 아난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모든 중생들이 한없이 오랜 과거로부터 나고 죽음이 계속되는 것은 항상 머무르는 참 마음의 맑고 밝은 본체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허망한 생각이 작용한 탓이다. 이 허망한 생각은 참되지 못하므로 나고 죽는 세계를 윤회하느니라.
만약 네가 지금 가장 높은 보리의 참되고 밝은 성품을 알려면 마땅히 정직한 마음으로 내가 묻는 말에 대답하라.
시방의 여래가 모두 같은 법으로 생사에서 벗어났으니 이는 모두 바른 마음 때문이었느니라. 마음과 말이 바르기 때문에 처음부터 끝까지 어느 위치에서 든 왜곡된 현상이 없었느니라.
아난아,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다. 마땅히 네가 발심한 것은 여래의 서른 두 가지 상호 때문이었다고 했는데 그것을 무엇으로 보았으며 누가 좋아하였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렇게 사랑하고 좋아한 것은 제 마음과 눈으로 하였습니다.
눈으로 여래의 거룩한 모습을 뵈옵고 마음에 좋아함이 생겼기 때문에 제가 발심하여 죽고 나는 세계를 버리고자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말한 것과 같이 참으로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은, 마음과 눈으로 인한 것이니 만약 마음과 눈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면 번뇌를 항복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비유하면 마치 국왕이 적으로부터 침략을 받고서 군대를 동원하여 토벌하려면 국왕의 군대가 적병이 있는 곳을 마땅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과 같으니라. 너로 하여금 생사의 세계를 헤매게 하는 것은 마음과 눈의 허물이니라. 내가 지금 너에게 묻겠는데 마음과 눈은 어느 곳에 있느냐.”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모든 세간에 열 가지 다른 중생들이 다 같이 식별하는 마음을 지녔는데 그것은 몸속에 있습니다. 여래의 푸른 연꽃 같은 눈을 보아도 그것은 부처님의 얼굴에 있으며, 제가 지금 지수화풍으로 된 저의 육안을 살펴보아도 제 얼굴에 있으므로 이와 같이 인식하는 마음은 실로 몸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지금 강당에 앉아서 기타림을 보고 있는데 강당과 숲이 어디에 있느냐.”
“세존이시여, 여러 전각 중에 이 깨끗한 큰 강당은 급고독원에 있고 기타림은 이 강당 밖에 있습니다.”
“아난아, 너는 이 강당 안에서 먼저 무엇이 보이느냐?”
“세존이시여, 저는 강당 안에 있으면서 먼저 부처님을 뵙고 다음에 대중을 보며, 밖을 바라보면 비로소 숲과 동산이 보입니다.”
“아난아, 네가 숲과 동산을 본다고 하니, 무엇으로 인해서 보느냐.”
“세존이시여, 이 큰 강당의 문과 창이 활짝 열려 있기 때문에 제가 강당 안에 있으면서도 멀리 볼 수 있습니다.”
그 때 부처님은 대중 가운데서 황금빛 팔을 펴서 아난의 정수리를 만지시며 아난과 여러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삼마제가 있으니 그 이름이 대불정수능엄왕으로 만행이 다 갖추어졌느니라. 시방의 여래가 이 유일한 문으로 초출하신 오묘하고 장엄한 길이니 너는 명심하여 들어라.”
아난이 이마를 땅에 대어 예를 올리고 땅에 엎드린 채 자비로운 가르침을 듣고자 하였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 말과 같이 몸은 강당 안에 있으나 문과 창이 활짝 열렸기 때문에 멀리 수풀과 동산을 본다고 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이 강당 안에 있으면서 여래는 보지 못하고 강당 바깥만 볼 수 있겠느냐.”
아난이 대답하였다.
“세존이시여, 강당 안에 있으며 여래는 보지 못하고 숲과 동산만을 본다 함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아난아, 너도 이와 같으니라. 너의 신령스러운 마음이 모든 것을 분명하게 아나니, 만약 너의 그 분명하게 아는 마음이 몸속에 있다면 마땅히 몸속의 것부터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어느 중생이 먼저 몸속을 보고 난 다음에 밖의 물건을 보고 있느냐. 비록 염통, 간, 지라, 밥통은 볼 수 없으나 손톱이 자라고 털이 자라며 힘줄이 움직이고 맥박이 뛰는 것은 분명히 알아야 하는데 어찌하여 알지 못하느냐. 이렇듯 몸속도 알지 못하면서 어떻게 밖을 안다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네 말대로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몸속에 있다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느니라.”
아난이 머리를 조아리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부처님의 이러한 법음을 듣고 보니 제 마음이 실로 몸 밖에 있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왜냐하면 마치 방 안에 등불을 켜 놓으면 그 불빛이 방 안을 먼저 비추고 난 뒤에 방문을 통하여 뜰과 마당을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모든 중생들이 몸 속은 보지 못하고 몸 밖만 보는 것은 등불이 방 밖에 있어서 방 안을 비추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이치가 분명하여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으므로 부처님의 분명한 이치와 같으리니, 잘못된 생각은 아니겠지요.”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모든 비구들이 나를 따라 시라벌성에서 음식을 얻어 가지고 기타숲으로 돌아왔는데 나는 이미 공양을 마쳤지만, 비구들을 보아라. 한 사람이 먹어서 여러 사람의 배를 다 부르게 할 수 있겠느냐.”
아난이 대답했다.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이 모든 비구들의 몸과 생명이 같지 않은데 어떻게 한 사람이 먹어서 여러 사람을 배부르게 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너의 깨닫고 알고 보는 마음이 몸 밖에 있다면 몸과 마음이 서로 떨어져 있어서 자연히 너와는 아무 상관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이 아는 것을 몸은 깨닫지 못할 것이며 깨달아야 할 것이 몸에 있다면 마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지금 도라면같은 손을 너에게 보이노니 네 눈으로 볼 때에 마음이 분별하느냐."
아난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분별합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서로 안다면 어떻게 몸 밖에 있다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네 말대로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몸 밖에 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처럼 안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몸 안에 있는 것이 아니옵고 몸과 마음이 서로 알아서 따로 떨어져 있지 않으므로 몸 밖에 있는 것도 아니니, 제가 지금 생각해 보건대 숨어 있는 한 곳을 알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한 곳이 어디냐.”
아난이 말하였다.
“이 또렷하게 아는 마음이 이미 몸속은 알지 못하고 몸 밖만 잘 볼 수 있으니 제 생각 같아서는 눈 속에 숨어 있는 듯합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 유리그릇을 가져다가 두 눈에 댄 것과 같아서 비록 물건에 가려졌으나 장애가 되지 않고 그 눈이 보는 대로 따라서 곧 분별하나니, 그렇다면 저의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몸 속을 보지 못하는 것은 마음이 눈 속에 있기 때문이고 분명하게 밖을 보는데 장애가 없는 것은 눈이 맑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말한 것처럼 눈 속에 숨어 있는 것이 마치 유리를 댄 것과 같다면 저 유리를 눈에 댄 사람이 마땅히 유리로 눈을 가렸기 때문에 산과 강을 볼 적에 유리가 보이겠느냐, 안보이겠느냐.”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사람은 유리로 눈을 가렸기 때문에 진실로 유리가 보일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이 만약 눈에 유리를 댄 것과 같다면 마땅히 산과 강을 볼 때 어찌 눈을 보지 못하느냐.
만일 눈을 본다면 눈이 곧 대상이 되는 물체와 같아서 눈이 보는 데를 따라서 분별한다는 말이 성립될 수 없고, 만약 눈을 보지 못한다면 어떻게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눈 속에 숨어 있는 것이 마치 유리를 댄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네가 말한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눈 속에 숨어 있음이 마치 유리를 댄 것과 같다고 함은 이치에 맞지 않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지금 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 중생들의 몸에서 장부는 속에 있고 구멍은 밖에 있으니 장부는 어둡고 구멍은 밝습니다. 지금 제가 부처님을 마주하여 눈을 뜨고 밝음을 보는 것은 밖을 본다고 하고. 눈을 감고 어둠을 보는 것은 안을 보는 것이라고 하고 싶은데 그 생각이 어떻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눈을 감고 어두운 것을 볼 적에 그 어두운 경계가 눈과 서로 대하였느냐, 대하지 아니하였느냐? 만일 눈과 대하였다면 어두운 경계가 눈앞에 있는데 어떻게 몸속이라 하겠느냐? 만약 몸속이라고 한다면 어두운 방 안에 있을 적에 해나 달이나 등불이 없으면 저 어두운 방 안이 전부 너의 육부일 것이며, 만약 어두운 세계가 눈과 마주하지 않는다면 본다고 하는 말이 어떻게 성립되겠느냐? 만약 밖으로 보는 것을 떠나서 안으로 대하는 것이 성립된다 하여 눈을 감고 본 어둠을 몸속이라고 한다면 눈을 뜨고 밝음을 볼 적엔 어째서 얼굴을 보지 못하느냐. 만약 얼굴을 보지 못한다면 안을 대하는 것도 성립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얼굴을 보는 것이 성립된다면 이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과 눈이 곧 허공에 있어야 하리니, 어떻게 몸속에 있다고 하겠느냐? 만약 허공에 있다면 그것은 너의 몸이 아니므로 그럴 경우 지금 너의 얼굴을 보고 있는 여래까지도 너의 몸이라고 하겠느냐.
그러니 너의 눈은 이미 알고 있더라도 몸은 깨닫지 못할 것인데 너는 굳이 고집하여 몸과 눈이 다 같이 안다고 한다면 이는 마땅히 두 개의 알음알이가 있는 것이니 그렇다면 곧 네 한 몸이 두 부처를 이루는 격이 된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네가 말한 어두운 것을 보는 것이 몸속을 보는 것이라고 함은 이치에 맞지 않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일찍이 들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사부대중에게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생김으로 인하여 갖가지 법이 생기며, 법이 생김으로 인하여 갖가지 마음이 생긴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지금 곧 생각하는 그 실체가 바로 저의 심성이라고 봅니다. 합하는 곳을 따라서 마음도 있는 것이니 역시 마음은 안과 밖과 중간 세 곳에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지금 말하기를 법이 생김으로 인하여 갖가지 마음이 생겨나므로 합하는 곳을 따라 마음도 있다고 하지만 이 마음은 본체가 없는 것이어서 합해질 곳도 없다. 만약 본체가 없는데도 합할 수 있다면 이는 십구계가 칠진으로 인하여 합한 것이니 그런 이치는 있을 수 없느니라. 만약 마음의 본체가 있다면 가령 네 손으로 네 몸을 찌를 적에 네가 알고 있는 마음은 몸속에서 나오느냐, 밖에서 들어오느냐? 만약 몸 에서 나온다면 몸속을 보아야 할 것이고 만약 밖에서 들어온다면 먼저 얼굴부터 보아야 할 것이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눈은 보는 것이며, 마음은 아는 것으로, 마음은 눈이 아니거늘 본다고 하심은 옳지 않은 듯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눈만이 볼 수 있다고 한다면 네가 방 안에 있을 적에 문이 사물을 볼 수 있느냐? 그리고 이미 죽은 사람도 아직 눈은 있으니 마땅히 물건을 본다고 해야 되겠구나. 만약 물건을 본다면 어찌 죽었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아난아, 또 너의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 만약 반드시 실체가 있는 것이라면 그 실체는 하나이냐, 여럿이냐. 지금 네 몸에 가득하게 퍼져 있느냐, 가득하게 퍼져 있지 아니하냐? 만약 몸이 하나라면 네가 손으로 한 팔을 찌를 적에 사지가 다 깨달아야 할 것이며, 만약 모두가 함께 깨닫는다면 찌른 데가 따로 없어야 하거늘, 만약 찌른 데가 따로 있다면 네 몸이 하나라는 것은 자연 성립될 수 없으니라. 만약 몸이 여러 개라면 많은 사람이 되어야 하리니 어느 것이 네 몸이냐. 만약 온몸에 가득 퍼져 있다면 앞에서 찌르는 경우와 같을 것이요, 온몸에 가득 퍼져 있는 것이 아니라면 네 머리에 부딪치고 다시 발에 부딪쳤을 적에 머리에 느끼는 것이 있으면 발은 몰라야 할 것인데 지금 너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합하는 곳을 따라서 마음도 있다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도 들었사온데 부처님께서 문수 등 여러 보살들과 함께 실상에 대해 말씀하실 적에 ‘마음은 몸속에 있는 것도 아니며 밖에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제 생각엔 몸속에 있다고 하면 안을 보지 못하고 밖에 있다고 하면 서로 알지 못해야 하는데, 안의 것을 알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에 있다는 것이 성립되지 않고, 몸과 마음이 서로 아는 것으로 보아서는 밖에 있다는 것도 옳지 않으니 그렇다면 지금 서로 알면서도 안은 보지 못하니 마땅히 중간에 있는 것 같사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중간이라고 말하는데 그 중간은 반드시 막연한 것이 아니어서 있는 데가 없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그 중간을 찾아보아라. 중간이 어디냐? 따로 장소가 있느냐, 몸에 있느냐? 만약 몸에 있을 경우 변두리에 있다면 중간이 아니요, 중간에 있다면 몸 속과 같으니라. 만약 따로 장소가 있다면 표시할 곳이 있느냐, 없느냐? 표시할 곳이 없다면 이는 없는 것과 같고 표시할 곳이 있다면 이는 일정하지 아니하리니,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표시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중간이라고 표시했을 때 동쪽에서 보면 서쪽이 되고 남쪽에서 보면 북쪽이 된다. 표시한 그 자체가 이미 혼란스러우니 마음도 따라서 혼란해지리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말씀드린 중간이란 것은 그러한 두 가지를 말한 것이 아닙니다.
세존께서 ‘눈과 물질이 반연이 되어 안식이 생기다’고 말씀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눈은 분별이 있고 물질은 느낌이 없는 것인데 의식은 그 중간에서 생겨나니 바로 그곳이 마음이 있는 곳이라고 여겨집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네 마음이 만약 눈과 물질의 중간에 있는 것이라면 이 마음 자체가 두 가지를 겸하였느냐, 겸하지 않았느냐. 만약 두 가지를 겸한 것이라면 눈과 물질이 섞여서 혼란하리니 물질은 눈처럼 알음알이가 없으므로 적이 되어 둘로 갈라설 것이니 어떻게 중간이라고 하겠느냐? 두 가지를 겸하지 아니하였다면 아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니다. 이는 곧 자체에 성품이 없는 것이리니 중간이란 어떤 모양이 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중간에 있을 것이라고 한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느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옛날에 보았는데 부처님께서 대목련 수보리 부루나 사리불 이 네 분의 제자들과 함께 법륜을 굴리실 적에 늘 말씀하시기를 ‘알고 느끼고 분별하는 마음은 안에 있는 것도 아니요, 밖에 있는 것도 아니며, 중간에 있는 것도 아니다. 어느 곳에도 있는 데가 없어서 모든 것에 집착함이 없는 것이다’고 하셨으니, 그렇다면 지금 제가 집착함이 없는 것을 마음이라고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알고 느끼고 분별하는 마음이 어느 곳에도 없다고 말하는데, 네가 집착하지 않는다고 한 것은 이 세상 허공이나 물 속 또는 육지에서 날아다니거나 걸어 다니는 모든 물상들이 있다는 것이냐? 없다는 것이냐? 없다면 거북의 털이나 토끼의 뿔과 같나니 무엇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냐.
모든 것이 있는데도 집착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집착이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형상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고, 없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곧 형상이다. 형상이 있으면 존재하는 것인데 어떻게 집착이 없다고 하겠느냐.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일체의 집착이 없는 것을 깨닫고 알고 하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