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 -73
“처음 뵙습니다.”
웃음을 보이는 왕인베스트의 진 대표가 손을 건넸다. 앞 자리에 앉아있던 기획실장 성민도 손을 내밀어 악수를 나누었다.
“전화 통화만 하다가 이렇게 뵙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족구협회 일을 도맡아서 하고 있는 친구입니다.”
함께 자리한 최 이사도 거들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지며 세 명의 사내는 소주잔을 들었다.
“족구를 위하여!”
“위하여!”
최 이사의 건배제의에 모두들 들었던 잔을 입에 가져갔다. 누가 먼저 마시나 내기를 하듯 세 명의 사내는 잔에 담겨있던 소주를 한 순간에 들이켰다. 소주잔이 몇 번을 오가며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최 이사와 진 대표는 소리를 높여가며 친밀감을 드러냈다. 성민도 분위기에 취하며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최 이사님, 온라인 베팅건은 아직도 소식이 없습니다. 김 의원도 아무런 대답이 없네요.”
“그래요. 아마 민감한 사안이라 그럴 겁니다.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분명히 좋은 소식이 올 겁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더할 나위 없죠.”
진 대표는 온라인 스포츠베팅 사업 건이 코앞에 닥친 일이었다. 국회로부터 대답이 없는 것이 불안하기만 했다. 하지만 최 이사는 웃음을 보이며 자신감을 내 비쳤다.
“실장님, 현장에서 선수등록을 하자는 아이디어는 대단했습니다.”
“그렀습니까? 제가 낸 아이디어가 홍 회장님이 직접 낸 아이디어였습니다.”
“그래요? 그래도 족구협회 대부분의 기획은 실장님 머리에서 나오지 않았습니까? 대단하십니다.”
“허허~ 그렇긴 하지만……”
갑자기 대화내용이 족구로 집중되는 것을 쑥스러워하며 성민은 소주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앞으로도 실장님 역할이 중요할 겁니다. 그래서 제가 친해지고 싶어하는 겁니다.”
“그래요? 그래서 류 실장과 만나고 싶어하셨군요.”
“허허~ 솔직히 그렇습니다.”
최 이사도 웃음을 머금고 대화에 참여하고 있었다. 한국체육회로 연결되는 족구와 관련된 주요 인터뷰는 최 이사의 몫이었다. 얼마 전 방송 인터뷰로 인해 최 이사도 한껏 기분이 올라선 상태였다.
“그런데 홍 회장이 없으니 썰렁합니다.”
진 대표가 갑자기 홍 회장을 언급하며 소주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렇죠? 저도 홍 회장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이 안 됩니다. 류 실장도 그렇지요?”
“예, 저도 위치파악이 안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전에도 자주 그래서 별 걱정은 없습니다.”
“그래요? 저는 아는데……”
“예? 아신다고요?”
갑작스런 진 대표의 이야기에 최 이사와 류 실장의 시선이 그에게 고정되었다. 집중된 시선이 부담이 되는 듯 진 대표는 두 손바닥을 보이며 태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아니, 진 대표님께서 홍 회장의 행적을 어떻게 아십니까? 류 실장도 모르고 저도 모르는데요.”
“아~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회사가 전세계적인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보니 연락이 오기도 합니다. 무슨 정보기관도 아니고…… 허허~”
웃음을 보이며 쑥스러워하는 진 대표였다. 하지만 최 이사와 성민은 그리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실을 진 대표가 안다는 그 자체가 용납되지 않았다.
좋았던 분위기가 한 순간 경직되며 최 이사와 성민의 시선이 마주쳤다. 진 대표도 상황을 인지한 듯 서둘러 소주잔을 들며 건배를 청했다.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유럽 쪽에 계시더라고요. 아무튼 조만간 오시겠죠. 그런데 류 실장님, 앞으로 제가 도움을 많이 청할 것 같습니다. 잘 봐주십시오.”
“예? 갑자기 무슨 말씀입니까?”
“아~ 별거는 아닙니다. 긴장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최 이사님께서도 도움이 되어주셔야 합니다. 국회에서 통과되는 거야 김 의원이 알아서 하겠지만 그래도 제가 편하게 말씀드릴 분은 이사님밖에 없습니다.”
술기운 덕분인지 이야기 주제는 홍 회장에서 자연스럽게 지금의 상황으로 바뀌었다. 최 이사도 그렇고 성민도 적지 않은 기대감에 젖어 들었다. 거대 규모의 자금을 운용하는 회사의 대표가 자신들에게 관심을 표명한다는 것 자체가 사소한 일로 넘길 수는 없었다.
세 사내의 끊이지 않는 웃음소리와 함께 술자리는 계속 이어졌다.
□ D. -72
“이 사장, 오랜만이오. 남조선에서 하는 일은 잘 되는 거지요?”
낯선 북한억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식당에 함께 자리한 족구협회 부회장은 미소를 보이며 앞에 놓인 대동강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럼요, 바쁘게 지냈습니다. 장 사장님, 식당사업은 어떻습니까? 힘 드시죠?”
“에구, 말도 마십시오. 죽갑습네다.”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 위치한 북한식당이었다. 족구협회 부회장은 라오스에서 10년 넘게 사업을 한 사업가였다. 1년전 한국으로 들어가 족구협회 부회장으로 취임을 하며 회장인 기찬과 함께 많은 일을 준비하며 바쁜 시간을 보냈다. 북한식당 사장인 장 사장과도 손님으로 만나 10년 넘게 형 동생처럼 지내왔다.
“그런데 이 사장, 정말 가능한 이야기입네까?”
“당연하죠. 충분히 가능합니다. 사장님만 움직여 주시면 할 수 있습니다.”
“하~ 그래도 어려운 일인데……”
“잘 압니다. 그래도 가치 있는 일 아닙니까? 사장님 식당이름이 “백두에서 한라까지” 아닙니까? 충분히 하실 수 있습니다.”
“그것참~”
장 사장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 놓는 이 사장이었지만 이번 제안은 쉽지 않았다. 북한 대사관과 협의가 필요한 일이었다.
라오스 태생인 장 사장은 라오스에서 활동이 자유로웠다. 라오스는 1990년대 까지만 해도 한국보다 북한과의 관계가 우선시되던 나라였다. 라오스 주재 북한대사였던 아버지의 힘을 등에 없고 동남아시아에서 사업을 하다 북한으로 돌아간 사업수완이 보통이 아닌 인물이었다.
“그런데 남조선에서는 가능합네까? 거기도 쉽지 않을 텐데……”
“예, 솔직히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언젠가 해야 되는 일입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미 한국에서는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요? 다행입네다. 그래도 아직 남북관계가 애매해서……”
장 사장은 말꼬리를 흐리며 답을 내놓지 않았다. 자신도 북한식당을 운영하지만 우여곡절이 많았다. 몇 년 전만해도 끊이지 않고 찾아오는 관광객들로 식당은 빈 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손님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사업도 지지부진했다.
이 사장도 북한식당을 자주 찾는다고 한국대사관에서 경고를 받기도 했었다. 다행히도 남북관계가 유연해지면서 그런 문제는 사라졌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남북관계가 경색되며 북한식당을 찾는 것이 자유롭지만은 않았다.
“장 사장님, 이번 건이 제대로 성사된다면 사장님 식당사업도 탄력을 받습니다. 그 점은 제가 장담합니다. 물론 사장님께서 더 잘 아시겠지만요.”
부회장은 장 사장의 눈치를 살폈다.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맥주잔에 손을 가져가는 그가 아직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사장님, 남북이 항상 적으로만 살 수는 없습니다. 같은 민족입니다. 분명히 북에서도 승인을 할 겁니다. 돌파구 아니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무엇인가가 필요하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깊은 고민을 하는 장 사장이 잔을 내려놓았다.
“이 사장, 우리 담배나 피웁시다.”
“예, 좋죠. 그런데 담배 끊으셨잖아요? 다시 피우세요?”
“그게 그렇게 됐소. 속이 답답하니 술만 먹을 수도 없고. 빨리 나갑시다.
식당 밖으로 나온 부회장이 담배를 꺼내 식당사장에게 건넸다. 우기가 끝나고 건기가 시작되며 도로 포장상태가 안 좋은 길거리는 먼지로 덮여 있었다. 먼지는 아랑곳 하지 않고 깊게 담배연기를 들이킨 장 사장 다시 한 번 담배연기를 깊게 들이켰다.
“좋소, 그러면 내가 뭘 하면 되는 거요?”
“예? 오케이 하신 겁니까?”
“나야 뭐 중간에서 역할만 하는 거니까, 까짓 것 한번 해 봅시다.”
“고맙습니다. 사장님은 북한에서 승인만 얻어내 주시면 됩니다. 물론 힘 드시겠지만 모든 지원은 남한에서 하겠습니다.”
“알았습네다. 우선 라오스 주재 북한대사관에 말하겠소. 물론 그들이 결정할 수는 없을 겁네다. 평양의 승인이 나야 할 겁니다.”
“예,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성사되면 좋겠습니다. 힘 좀 쓰시는 겁니다.”
“아휴~ 알았다니까.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승인만 나면 남조선에서 다해야 합니다.”
“예, 당연하죠.”
담배를 발로 비벼 끈 부회장과 이 사장은 다시 식당 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보라우, 대동강 맥주 말고 평양소주로 가져 오라우! 아니다, 금강산소주로 가져 오라우!”
식당 안에 대기하던 여성 접대원은 한껏 힘이 들어간 장 사장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냉장고 문을 열고 금강산소주를 꺼내왔다.
“이 사장, 마십시다.”
“아하~ 좋죠. 이거 얼마만입니까?”
두 사내는 건배를 하며 술잔을 부딪쳤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그 들의 대화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졌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