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광고 기획자 샘이
나락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이 마치 돛대 잃는 배가 풍랑이 이리저리 휩쓸리는 모습 같습니다.
총기 사고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죽고
모든 것을 잃고 술에 절어 사는 그에게
남겨진 아들의 유품....
그건 아들이 그동안 만든 노래였지요.
그 노래를 부르며 아버지는 비로소 아들을 부르며 슬퍼합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는 이유는
우리가 모두 부모이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끔찍한 죄를 저질렀다 해서
자식이 아닌 것 아니기 때문이죠.
반전이 놀라운 음악영화....
그동안 샘이 왜 그렇게 가라앉아 살아야만 했는지 이유를 깨닫게 되는 묘한 반전 때문에
이 영화가 파르르 살아난 느낌....
두 번 보아도 좋을 영화....
영화가 시작되면 기숙사 방에서 혼자 기타를 치며 작곡 중인 남학생이 등장한다. 오프닝만 보면 싱어송라이터를 꿈꾸는 조쉬(마일스 헤이저)가 주인공인 음악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 초반 조쉬는 총기사고로 목숨을 잃고 영화의 초점은 갑작스러운 아들의 죽음 이후 남겨진 아버지 샘(빌리 크루덥)에게 맞춰진다. 광고회사의 촉망받는 기대주였던 샘은 아들의 죽은 뒤 낮에는 페인트칠로 돈을 벌고 밤에는 술을 마시며 외롭게 생활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의 유작들을 발견하면서 샘의 일상에 변화가 생긴다. 샘은 단골 술집에서 아들이 작곡한 곡들을 연주하고, 무명 가수인 쿠엔틴(안톤 옐친)은 샘에게 밴드 결성을 제안한다. 쿠엔틴의 오랜 설득 끝에 샘은 아들 또래의 멤버들과 '러덜리스'라는 이름의 4인조 밴드 활동을 시작한다.
<러덜리스>는 요트에서 생활하는 '샘'의 처지를 빗대어 만든 밴드의 이름이지만 동시에 갑작스럽게 인생의 키(rudder)를 잃고 방황하는 '샘'의 현재 모습이기도 하다. 자식을 잃은 아버지, 샘이 보여 주는 단순히 슬픔이라고 해석하기 힘든 언행은 사고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면서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한다. 음악으로 세상과 소통하던 아들과 닮은 '쿠엔틴'과의 만남을 통해 샘이 가졌던 분노와 절망, 죄책감은 서서히 옅어지며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진실은 그 이전 샘의 행동들을 다른 시각으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러덜리스>가 보여주는 음악을 매개로 한 세대를 초월한 우정도 특별하지만 영화에서 더 주목할 점은 음악을 통한 치유와 구원이다. 엔딩의 샘의 노래는, 긴 시간 방황을 끝내고 자식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서야 비로소 토해내는 깊은 슬픔의 울림이다.
첫댓글 엄마 얘기는 없네요?
이혼하여 늦둥이까지 낳았지요. 이 영화, 참 괜찮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