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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의 「참(站)」 167
말의 독(毒)-“쇠파리보다 더 물것은 사람이더라.”
나는 유독 모기에 잘 물린다. 여럿이 둘러앉아 있어도 모기는 이상하리만치 내 팔과 다리를 먼저 찾아온다. 누군가는 혈액형 때문이라 하고, 또 누군가는 체질 탓이라 한다. 하지만 여름이면 나는 어김없이 모기와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잠이 막 들 무렵 귓가를 스치는 “앵―” 하는 소리. 불을 켜면 감쪽같이 사라지고, 불을 끄면 어느새 귀신같이 되돌아온다. 손바닥을 내리쳐도 허공만 때리기 일쑤다.
그럴 때마다 오래전 읽었던 사설시조 한 편이 떠오른다. “一身(일신)이 사쟈한이 믈껏 겨워 못견딀쐬…그 中(중)에 참아 못견될손 六月(유월) 복더위에 쉬파린가 하노라.” 이 시조는 벼룩, 빈대, 모기, 등에…등 사람을 괴롭히는 온갖 벌레를 줄줄이 열거한 뒤 끝내 복더위의 쇠파리를 가장 견디기 어렵다고 탄식한다.
몇 해 전 나는 이 시조를 읽고 수첩에 메모 하나를 남겼었다.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 어찌 없겠는가마는, 쇠파리보다 더 물것은 사람이더라.” 그때는 끄적여 둔 메모였다. 그러나 엊그제 다시 읽어보니 그 한 줄이 꽤 서늘하게 읽힌다. 모기는 피를 빨지만, 사람은 마음을 물어서인 듯 하다. 그래서 사람에게 물린 상처가 더 오래간다.
조선 후기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선생은 유배지 강진에서 모기와 치열한 여름밤을 보냈다. 그는 「증문(憎蚊, 모기를 미워함)」이라는 시에서 먼저 이렇게 노래한다. “맹호포리근(猛虎咆籬根) 아능후후면(我能齁齁眠) 수사괘옥각(脩蛇掛屋角) 차와간완연(且臥看蜿蜒)” 해석하자면 “맹호가 울 밑에서 으르렁대도 나는 코를 골며 잠들 수 있고, 큰 뱀이 처마 끝에 매달려 꿈틀거려도 태연히 누워서 바라본다”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두 구절에서 시의 분위기는 돌연 바뀐다. “일문앵연성도이(一蚊譻然聲到耳) 기겁담락장내전(氣怯膽落腸內煎)” 해석은 “모기 한 마리가 윙 하고 귓가에 이르면 간담이 서늘해지고 창자가 타들어 간다”이다. 맹호나 독사 같은 거대한 공포는 온몸으로 견뎌내면서도, 매일 되풀이되는 작은 고통과 자극에는 쉽게 지쳐 버리는 것이 인간이다. 몸을 갉아먹는 병보다 마음을 갉아먹는 일상의 스트레스가 더 무서운 것이 삶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산이 정말 말하고 싶었던 말은 모기의 생태나 여름밤의 불면이 아니었다. 시의 압권은 이어지는 두 구절이다. “삽자연혈사족의(揷觜吮血斯足矣) 취독차골우호연(吹毒次骨又胡然)” “ 해석은 ”부리를 박아 피를 빨면 그것으로 족할 텐데, 어찌하여 뼛속까지 독을 불어넣느냐”이다.
“뼛속까지 독을 불어넣”는다는 말은 물린 자리마다 울퉁불퉁 혹처럼 부풀어서다. 모기의 죄는 피를 빠는 행위 자체에 있지 않았다. 피를 빨고도 모자라 몸속 깊이 독(毒)까지 불어넣어 지속적인 상처를 남기는 데 있다는 선생의 글 줄 앞에서 멈춰선다.
문득, ‘다산 선생이 평생 『목민심서』에서 강조한 애민(愛民)의 정신에 비추어 보면,… 모기의 침을 통해 백성의 고혈을 짜내고도 원망과 상처를 남기는 탐관오리의 폭정과 유사하지 않을까?’ 250여 년이 지난 오늘, 다산의 저 「증문」이란 시 글줄에서 나는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까? 백성의 삶보다 진영의 이익과 권력 다툼에 몰두하는 세태가 예나 지금이나 닮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 우리 사회는 정치와 사법개혁, 검찰 개혁을 둘러싸고 극심한 대립을 이어가고 있다. 비상계엄의 숙주(宿主)가 된 제도를 고치는 일은 분명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다. 그러나 제도를 둘러싼 논쟁 속에서 쏟아지는 증오와 조롱, 확인되지 않은 정보와 악성 댓글은 또 다른 독이 되어 공동체를 병들게 한다.
문제는 오늘의 모기는 날개를 달고 날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알고리즘을 타고 날아온다. 손 안의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 혐오의 언어는 순식간에 번지고, 거짓 정보는 사실보다 빠르게 퍼진다. 모기는 한 사람의 피를 빨지만, 독한 말은 공동체의 신뢰를 갉아먹는다. 모기에게 물린 자리는 며칠이면 아물지만, 사람의 말이 남긴 독은 오래도록 마음을 떠나지 않는다.
다산이 진정 미워한 것은 모기가 아니라 독(毒)이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개혁 역시 제도만은 아니다. 개혁은 법률 조항 하나를 바꾸는 일에서 끝나지 않는다. 말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고, 상대를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데서 비로소 시작된다.
올여름에도 나는 몇 군데쯤 모기에게 물릴 것이다. 밤중에 벌떡 일어나 모기채를 휘두르고 약을 뿌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모기의 침이 아니라 사람의 혀라는 것도 안다. 여름밤 창가를 맴도는 모기 한 마리를 바라보며 오래전 적어 둔 수첩의 메모를 다시 꺼내 읽는다. “쇠파리보다 더 물것은 사람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