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오(戊午.1498):연산군이 김일손 등 사림파제거
2, 갑자(甲子.1504):폐비윤씨 복위문제 훈구세까지
3, 기묘(己卯.1519):남곤 심정 등이 조광조 일파를
●신사무옥(辛巳誣獄,1521):좌의정 安당家몰락
4, 을사(乙巳.1545):외척 윤임 윤원형의 대립
●무오사화:1498년음력7월 유자광과 연산군이 김일손 등의 신진세력인 사림파를 제거한 사건. 사초가 원인이 되었다하여 史禍라고도 표기한다. 성종때부터 사림파가 중앙에 등용되고 성종이 경국대전을 발표하는등 나라의 문물정비 인재등용,인재수요를 타고 사림파가 중앙에 진출, 삼사에 은연한 세력형성, 차차 종래의 閥族훈구파를 욕심많은 소인배가 무시하기 시작, 훈구파는 사림파를 野生貴族이라 업신여기게 되니 두 파는 주의, 사상 및 자부하는바가 서로 달라 배격과 반목이 그치지 않았다.
사림파 金馹孫이 사간원 헌납으로 있던 조의제문?
●갑자사화:1504년,연산10) :폐비윤씨 복위문제, 사림파 관리들이 반대하는 과정에서 궁중파 임사홍(1445~1506) 등이 부중파 훈구세력까지 일망타진하려하면서 사태가 확대, 이때 희생된 사람들은 중종반정직후 대부분 복권된다.
연산생모 폐비 윤씨가1482년사사, 임사홍이 연산의 처남인 신수근과 의논하여 연산군은 父성종의 총애, 폐위에 영향준 엄귀인 정귀인등 죽이고 그들의 소생도 귀양, 조모 인수대비는 연산의 행위를 꾸짓다가 화병으로 사망, 연산이 폐모를 추숭 성종묘에 配祀코자할때 반대한 응교應敎 권달수는 처형, 이행은 귀양감. 성종이 폐윤때 찬성했던 윤필상,이극균,김굉필,이세좌,성준,권주,이주 등 10여명 처형, 이미 사망한 남효온, 한명회, 정여창, 정창손, 한치형, 어세겸,심회,이파 등은 부관참시에 처함. 그 제자 가족들까지 처벌, 세지시절 갈등을 빚기도했던 문신이자 스승인 조지서도 주살함. 당시참혹한형벌 부관참시,쇄골표풍,능지처참,
언문학대,국문학침체도 가져왔음.
●기묘사화:1519년음력11월에 南袞,沈貞,洪景舟,金詮과 중종 등이 조광조 김식 등 핵심인물을 몰아내어 죽이고 혹은 귀양보낸 사건. 조광조 세력 확장과 위훈삭제에 불만이 원인,
사림파의 급진개혁정책역시 그들을 지지하던 정굉필 안당 등의 반감을 사면서 지원받지 못했다. 남곤 심정 김전 홍경주 고형산등은 후궁과 궐내세력을 이용하여 조광조 일파의 제거여론을 조성하여 제거에 성공한다. 이때 희생된 인물들을 후일 기묘名賢이라 부른다.김종직,김굉필,조광조
중종은 당시 승지들도 모르게 갑자기 대소신료 입궐명령을 내림, 홍경주 김전 남곤 심정 정광필 안당 등은 갑자기 소환명령 받고, 경복궁의 북쪽문(신무문)을 통해 들어와 승지들 모르게 회의를 연다.
연산군때 무오,갑자사화로 김종직 일파의 신진학자 거의 몰살 쇠퇴 기강문란 연산악정개혁 중종반정 이후 무한대로 권력남용, 견제 대의명분 오륜의도 존중, 성리학 크게 장려. 조광조등장(1515) 이조판서 안당이 천거 6품관직에 임명, 유교로 정치와 교화 근본 삼아 三代의 왕도정치 실현 노력,
왕권강화:반정공신 박원종 유자광 유순정 성희안 홍경주 등은 권력을 장악 무한대로 세력확장, 왕권을 넘보는 수준까지, 중종의 불안감,
●을사사화 : 외척 大尹(윤임), 少尹(윤원형)의 반목으로 1545(명종1)년에 일어난 士林의 禍獄으로 소윤이 대윤을 몰아낸 사건, 제1계비 장경왕후 尹씨에게서 인종을 낳고, 제2계비 文定왕후 尹씨에서 명종을 낳았다. 장경왕후(윤임), 문정왕후(윤원형), 서로 반목하다 중종승하 인종이 즉위=윤임 득세, 李彦迪,유관,成世昌 등을 정부의 대관으로 임명하는 등 일시 사림은 그 기세를 회복, 뜻을 얻지못한 이들이 윤원형의 밑에 모여 사림과 반목하고 윤임에 대한 반격을 기회 엿보다 인종이 8개월재위 승하 12세 명종이 즉위, 왕대비 문정왕후 수렴청정, 윤원형 첩은 유명한 정난정?
●신사무옥(辛巳誣獄,1521):좌의정 安塘家몰락, 조광조를 천거했기에 구하려다 파직, 1521년 신사무옥 연루:宋祀連(1496~1575)연산2~선조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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