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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1-23)
세상 사람들은 서로 좋아서 하는 행위는 문제 될 것 없다며, 음행은 죄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욥은 음행을 정죄 받을 행위로 알고 철저히 경계했습니다. 욥의 생을 통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건한 삶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1내가 내 눈과 약속하였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2그리하면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분깃이 무엇이겠으며 높은 곳의 전능자께서 주시는 기업이 무엇이겠느냐 3불의한 자에게는 환난이 아니겠느냐 행악자에게는 불행이 아니겠느냐 4그가 내 길을 살피지 아니하시느냐 내 걸음을 다 세지 아니하시느냐 5○만일 내가 허위와 함께 동행하고 내 발이 속임수에 빨랐다면 6하나님께서 나를 공평한 저울에 달아보시고 그가 나의 온전함을 아시기를 바라노라 7만일 내 걸음이 길에서 떠났거나 내 마음이 내 눈을 따랐거나 내 손에 더러운 것이 묻었다면 8내가 심은 것을 타인이 먹으며 나의 소출이 뿌리째 뽑히기를 바라노라 9○만일 내 마음이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을 엿보아 문에서 숨어 기다렸다면 10내 아내가 타인의 맷돌을 돌리며 타인과 더불어 동침하기를 바라노라 11그것은 참으로 음란한 일이니 재판에 회부할 죄악이요 12멸망하도록 사르는 불이니 나의 모든 소출을 뿌리째 뽑기를 바라노라 13만일 남종이나 여종이 나와 더불어 쟁론할 때에 내가 그의 권리를 저버렸다면 14하나님이 일어나실 때에 내가 어떻게 하겠느냐 하나님이 심판하실 때에 내가 무엇이라 대답하겠느냐 15나를 태 속에 만드신 이가 그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를 뱃속에 지으신 이가 한 분이 아니시냐 16○내가 언제 가난한 자의 소원을 막았거나 과부의 눈으로 하여금 실망하게 하였던가 17나만 혼자 내 떡덩이를 먹고 고아에게 그 조각을 먹이지 아니하였던가 18실상은 내가 젊었을 때부터 고아 기르기를 그의 아비처럼 하였으며 내가 어렸을 때부터 과부를 인도하였노라 19만일 내가 사람이 의복이 없이 죽어가는 것이나 가난한 자가 덮을 것이 없는 것을 못본 체 했다면 20만일 나의 양털로 그의 몸을 따뜻하게 입혀서 그의 허리가 나를 위하여 복을 빌게 하지 아니하였다면 21만일 나를 도와 주는 자가 성문에 있음을 보고 내가 주먹을 들어 고아를 향해 휘둘렀다면 22내 팔이 어깨 뼈에서 떨어지고 내 팔 뼈가 그 자리에서 부스러지기를 바라노라 23나는 하나님의 재앙을 심히 두려워하고 그의 위엄으로 말미암아 그런 일을 할 수 없느니라(1-23)
욥의 친구들은 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완전성이 손상을 입지 않도록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변호하는 믿음 좋은 신학자요 목회자처럼 보였으나, 그들의 논증에는 ‘사랑의 하나님’이 부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세상과 다름없습니다. 욥은 자신을 고발하는 세상 속에 홀로 내팽개쳐져 있습니다.
(1) 욥이 짓지 않은 죄(1) 성적 정욕(1-4)
고통과 상처로 만신창이가 되어 두려움을 느끼는 욥이지만 자신의 결백에 대해서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욥의 무죄를 변호해줄 자가 주위에 없으므로 욥은 스스로 자신의 무죄를 변론해왔습니다. 그가 친구들과의 논쟁을 끝내려 하기 때문에 이번이 그의 마지막 변론이 됩니다. 그러므로 욥은 필사적이고 단호합니다. 법정에서 피고가 죄를 졌는지 안졌는지에 대해 증거를 바탕으로 판결을 내리듯, 욥은 자기가 짓지 않은 죄 14가지를 하나하나 나열함으로써 자신이 결백하다는 점을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욥이 언급한 죄의 목록은 죄를 총망라하거나 조직적이고 논리적인 순서를 따르지는 않습니다. 이는 욥의 최종 목표가 자신의 무죄 증명에 있기 때문입니다. 덧붙여, 완전한 수를 의미하는 7을 두 번 사용하여 14가지의 죄를 나열함으로써 자신이 언급하지 않은 죄목이 있다해도 자신은 그 죄에 대해 결백하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드러냅니다.
욥은 자기가 짓지 않은 죄로서 먼저 성적인 정욕을 들었습니다. 그는 그의 눈과 언약을 맺어 처녀에게 정욕의 눈을 돌리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행동에 앞서 미리 그 생각을 차단하여 범죄에 빠지지 않으려고 눈과 언약을 맺은 행위는 욥의 결단력과 지혜를 보여줍니다. 또한 욥이 죄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도 알려줍니다. 누군가 범죄의 현장에서 걸리지 않았거나 죄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마음과 생각으로 죄가 되는 생각을 할 때 그는 이미 죄를 지었다고 욥은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욥은 여자에게 음흉한 눈길을 보내는 것이 이미 죄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마음까지 살피는 욥의 태도는 1장의 욥에 대한 소개에서도 동일하게 기술되었습니다. 욥은 자신의 영적 상태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영적 상태까지 살폈습니다(1:5). 자녀들이 혹시 마음으로라도 하나님을 저주하고 죄를 지었을까 하여 노심초사하였던 점을 미루어 보아 욥 자신은 얼마나 더 철저하게 죄에서 떠나려고 애썼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행위와 더불어 마음의 생각을 중요하게 여긴 욥의 태도는 예수님의 가르침에도 동일하게 강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외적으로만 죄목에 걸리지 않고 율법을 피해 가려는 것을 따끔하게 지적하시고 사람들로 하여금 각 계명의 근본적인 목적을 파악하고 마음의 동기와 생각을 먼저 살펴 죄의 길로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를 주셨습니다(마 5:21 이하).
욥이 마음으로 작정하고 정욕의 죄에 빠지지 않으려고 할 수 있었던 본질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주권과 그의 정의로운 통치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엘리바스는 하나님께서 높은 곳에 계심을 욥이 알면서도 구름에 가려져 계시므로 악을 행해도 모르실 것이라 믿고 악을 행했다며 욥을 비난하였습니다(22:12-15). 욥은 이 말을 염두에 둔 것처럼 하나님을 높은 곳에 계신 전능자로 언급하며, 그가 욥의 모든 행위를 낱낱이 살피신다는 점을 욥 자신도 확실히 안다고 밝힘으로써 엘리바스의 비난에 반박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악을 행하는 자에게 멸망과 재앙을 유산으로주실 것임을 알고 있는데 어떻게 죄를 짓겠느냐고 반문합니다. 욥은 세 친구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자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이 있을 것을 믿습니다. 그렇지만 그렇다 해서 자신이 받고 있는 현재의 고통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증거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2) 욥이 짓지 않은 죄(2):속임수(5-6)
둘째로, 욥은 남을 속이거나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만일 내가 했다면’이라는 공식을 이용하여 자신의 무죄함을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욥이 거짓말하고 다니며 남을 속이는 데 재빨랐다고 의심이 된다면 하나님께서 직접 그를 공평한 저울에 달아보시고 그가 흠이 없음을 아시게 될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정직한 삶을 살았으므로 본인이 흠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주장은 하나님의 욥에 대한 평가(온전하고 정직하며, 1:8; 2:3)를 고려했을 때 거짓이 아님이 드러납니다. 욥과 같이 시편 기자도 하나님의 율례를 버리지 않고 온전하게 행하여 죄로부터 자신을 지켰다고 선포하며(시 18:20-24) 자신의 마음과 행위를 살펴 시험하시라고 요구하였습니다(시 26:1-2). 이들은 당당히 자신을 시험해보라고 할 정도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3) 욥이 짓지 않은 죄(3): 죄의 길을 따름(7-8)
셋째로, 욥은 육신의 정욕을 따라 죄악의 길로 가지 않았습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고 계심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31:4). 또한 그의 마음과 행동으로 따라야 할 길로서 하나님의 명령을 선택하였습니다(23:11-12), 그러므로 그의 행동을 주의하여 하나님의 말씀에서 치우치거나 떠나지 않았고(31:7),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먹는 음식보다 더 귀중하게 여겼습니다(28:12). 또한 자신의 눈과 귀와 입이 원하는 대로 따라 행하거나 죄로 자기 자신을 더럽히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그가 이러한 죄를 지었다면 그가 일한 대가를 다른 사람이 얻기를 바라고 그의 밭의 작물이 뿌리째 뽑혀 더 이상 자신에게 소출을 줄 수 없기를 바란다고까지 진술합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죄가 없음을 아신다고 확신하였고(10:7,15) 본인도 자신의 죄 없음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4) 욥이 짓지 않은 죄(4):간음(9-12)
넷째로, 욥은 타인의 아내에게 탐심을 품지 않았습니다. 욥은 이미 결혼을 했으므로 처녀(1)든 이웃의 아내(10)든 마음으로 유혹되어 의도적으로 간음을 계획하거나 실행하지 않았다고 진술합니다. 만일 이런 죄를 지었다면 자신의 아내가 다른 이의 종이 되고 다른 남자와 동침하기를 바란다고 말할 정도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합니다. 욥은 간음이 파렴치하고 음란한 행위이며, 죽은 자들이 살고 있는 곳 즉 죽음의 문턱에 이르기까지 사람을 삼켜버리는 불과 같은 중죄라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간음죄를 지었다면 재판장으로부터 벌을 선고 받고 자기의 소출이 완전히 끊어지는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고 선포합니다.
(5) 욥이 짓지 않는 죄(5):종을 학대(13-15)
욥이 짓지 않은 죄의 다섯 번째는 종의 권리를 무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욥이 남종이나 여종을 업신여기거나 그들의 불만을 무시하지 않았던 것은 욥이나 종들이나 모두 하나님의 창조물로서 평등하다는 점을 간과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손길을 통해 어머니의 태속에 지음받아 세상에 나온 자들이므로 욥이 다른 사람의 권리를 무시한다면, 욥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권리를 호소하거나 하나님의 심판 앞에 뭐라고 대답할 면목이 없다고 진술합니다. 욥은 이 진술을 통해 하나님이 인간을 사려 깊게 창조하셨으므로 누군가 이 세상에 태어나 주인이 되든 종이 되든 그를 마땅히 존중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6) 욥이 짓지 않은 죄(6-8): 약자를 소홀히 여김(16-23)
욥이 짓지 않은 죄의 여섯 번째에서 여덟 번째까지의 항목은 사회에서 가난하고 소외되고 힘없는 자들을 못 본체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유사합니다. 욥은 끊임없이 가난한 자, 과부, 고아에게 관심을 두고 이들의 필요를 채워주었습니다. 종들을 인간으로서 평등하게 창조된 피조물로 여겼듯이 사회의 약자들 또한 자신의 가족처럼 돌보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의 기쁨과 위로가 되어주고 그들에게서 축복의 말을 들었습니다(29:12-17). 욥은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알고 있고 그를 경외하므로 하나님이 돌보라고 명령한 사회의 약자들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된다는 식의 윤리기준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절대적 판단 자체를 거부합니다. 상대적 기준을 주장합니다. 이런 때일수록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 본을 보여야 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행동은 물론이고 내면까지 정결하게 함으로 세상에 거룩함을 나타내는 성도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