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22] 이명희(李名熙) - 부활의 체험을 맛보며 4.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사람 - 2
12 그러나 그 긴 설교 말씀 가운데 한마디 말씀 그것이 나의 신앙에 충격을 주었는데 그 말씀은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을 믿느니 안 믿느니 하는 말을 써왔다. 신, 불신은 그 대상의 변화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영원불변이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 믿을 수 없다, 하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13 오히려 역사적으로 볼 때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오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요, 유대교와 기독교의 역사였다. 그런데 성서상에 나타난 중심 인물을 하나님이 믿고 찾아 세웠는데 결국 다시 불신의 입장에 빠졌다.
14 노아가 그러했고, 아브라함이 그러했고, 모세가 그러했고, 유대 백성이 그러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신 것을 한탄까지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유대 백성에 대한 실망은 얼마나 컸겠는가.
15 그런데 지금 우리 자신들은 어떠한가.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자신이 되어 있는지 믿을 수 없는 배신자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나를 믿어 주시옵소서, 나는 변함이 없는 하나님이 믿을 수 있는 참된 효자입니다 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하는 반문과 호소의 말씀이었다.
16 그 말씀이 내게 큰 충격을 준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나는 기독교의 분열과 목사들의 교권주의에 환멸을 느끼며 하나님의 존재마저 의심하고 있었으며 신앙생활 자체가 성실하지 못하고 형식에 빠져 있었기에. 그 말씀은 바로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보니 그날의 선생님의 말씀은 나를 위한 말씀이었고, 그 말씀을 듣게 하기 위해 나를 청파동 교회로 보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17 지금까지는 내가 하나님께 의지하고 요구하고 부탁하는 상향식의 신앙 형식이었는데 선생님의 말씀은 “하나님으로 하여금 의지하게 하고 하나님이 이루시고자 하시는 ‘그 나라와 그 의’를 내가 이루어 드리겠습니다. 나를 더 이상 의심하지 마시고 안심하고 기대하여 주십시오” 하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내게 하향하게 하는 신앙 형식이었던 것이다.
18 전 형식이 의존적이고 소극적이라면, 후자는 자주적이며 독립적이고 그리고 적극적인 면이 있는 신앙 형식이었던 것이다. 이 통일교회는 교리 면에 있어서는 논리적이고 합리성이 있으며 또 현대인에게 설득력 있는 성서 해석과 짜임새 있는 원리를 소개하고 있는가 하면 예배의식은 광신일 정도로 신령하며 사상은 하나님의 슬픔을 위로하고 원한까지도 풀어 드리고 소망을 이루어 드리겠다고 나서는 적극성이 있어 신령과 진리 그리고 실천까지 겸해 삼위일체를 이루는 생활 종교임이 틀림없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19 그러한 말씀과 정열에 대한 충격이 나를 기성화된 장로교에 그냥 머물러 있게 할 리가 없다. 1959년 7월 20일, 개종을 위한 통일교인 입회원서를 제출하게 된 것이다.
20 그 후 수시로 이런저런 여러 가지 통일교회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렇게도 신령하고 엄숙하게만 보이던 선생님께서 화동회 시간에는 어쩌면 그렇게 소탈하고 세속적 인간 그대로의 친근감 가는 한 인간이셨는지 그때 식구님들의 유행가는 물론 선생님의 유행가도 처음 들은 것이다. 그것이 기성교회에서는 상상조차도 못할 일이었다.
21 기성교회에서는 유행가를 부르는 그 자체를 죄악시했기 때문이다. 오락회 시간에는 겨우 찬송가요 고작해야 명곡만을 부르는 것인데 그것은 서구식 멜로디인 것이다. 한국적인, 그리고 서민적인 맛이 나지 않음은 물론이다.
22 그런데 통일교회는 한국에서 한국인에 의해 창시된 교회로서 한국적이고 서민적 유행가를 거침없이 부르며 그것을 하늘적인 것으로 음미하고 있는데 정말 멋이 있는 교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그 어느 것도 저속한 것은 아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