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사회에서 다전마을 뒤에 계신 판서공 산소에 한글 와비를 세우는 문제를 논의 하면서 동규종언이 세우더라도 비문을 병사공 종중에서 논의하여 지어주기를 바란다고 하여 저에게 그 초안을 잡아보라고 하여서 다음과 같이 제 의견을 여기에 올리니 올려진 문안을 살펴 보시고 각자의 의견을 개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증병조판서 제주양공(濟州梁公) 익표(益標) 비문
여기 (한양 제일의 협객으로) 38살의 짧은 삶을 살다간 청년장군 제주양공(濟州梁公) 익표(益標)가 잠들어 있으니,
변방을 지켰던 할아버지(병마절도사 양우급梁禹及)처럼 되고자 심신을 단련하여 무과에 급제하였고, 도성과 임금을 지키는 여러 직책을 수행하다가 왕위계승의 역사적 소용돌이(1722~4, 신임옥사辛壬獄死)에 휘말려 무참히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더라!
사후 62년이 지나 억울함이 밝혀져 병조참판에 추증되고, 사후 141년 만에 병조판서로 추증되었지만
품었던 꿈은 사라지고 (죽은 후) 명예만 남았으니, 지나는 길손이여! 한줄기 탄식으로 그의 맺힌 한을 달래줌이 어떠하신지!
서기 2021.10.09. 제주양씨 판서공파 후손 동규 세움
증병조판서 양익표梁益標 연보年譜
1) 1685.7.20.(숙종11, 乙丑) 한성부 내남부 효현방 제1리의 24통에서 출생.
2) 1702.10.19.(18세) : 단지 주혈도 무효하여 아버님澂 상을 당함. 교하 선영에 장례하고 3년간 여묘 살이, 7년 후에는 모친상으로 또 교하에서 여묘 살이 3년
3) 1714.11.18.(숙종40, 30세) : 증광무과登增廣武科에 급제
4) 1718.3월(숙종44, 34세) : 어영초관御營哨官으로 벼슬길에 오름
5) 1720.07.25.(숙종46, 36세) : 영중추부사 정1품 이이명李頤命을 따라 숙종대왕의 부고 사신으로 북경에 감
6) 1721.09.(37세) : 절충장군 어영청 천총御營廳 千摠(임금 호위를 맡은 정3품 무관)
7) 1721.12.19.(경종1, 37세) : 소론의 왕권교체 관련 상소로 신축옥사辛丑獄死가 일어남. 경남 사천(泗川)에 유배
8) 1722.03.(경종2, 38세) : 삼급수설三急手說로 경종을 시해하려 했다는 상소로 공公이 역모逆謀에 가담했다는 죄를 뒤집어씀
9) 1722.08.17.(경종2, 38세) : 위의 역모죄를 피하지 못하고 억울한 참화를 당함(임인옥사壬寅獄事)
10) 1724.08(영조 즉위년, 순절 2년) : 청주유생 송재후宋載厚가 신임사화는 무고誣告였음을 상소하여 영조가 받아들임
11) 1784.08.29.(정조9, 순절 62년) : 공公에게 병조참판 추증
12) 1863.02.09.(철종14, 순절 141년) : 공公에게 병조판서 추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