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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조춘숙
말 씀 고린도전서 6장 1-11절
제 목 성도는 세상법정에 송사하지 말라[12]
악의에 찬 세상 누룩이 교회에 들어오는데도 교회는 이를 막지 못했습니다.
교회가 진리의 말씀으로 선을 명확하게 긋지 못하자 성도들은 서서히 교회와 세상에 양 발을 걸치고 살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만 그 마음은 세상에 있고, 세상에서 마음대로 살아가지만 하나님 때문에 죄의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고린도교회에서 아버지의 아내를 범하는 악행까지 저지르는 것을 보면 얼마나 오랫동안 교회가 타락해 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상태로 세월이 흐르자 성도뿐 아니라 목회자도 썩기 시작했습니다.
목회자들이 돈을 쫓고, 하나님보다 사람을 두려워하며, 권세를 가진 사람을 직분 자로 세워서 자기 자랑으로 삼기 시작하면서 말씀은 진리를 벗어나고 말았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교회들이 타락하는 것은 하루 이틀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세상을 쫓아가던 교인들의 죄가 굳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교회 근처에 건축을 하다가 중단한 교회가 있습니다.
며칠 전에 용역회사 사람들이 몰려와 교인들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 교회는 무리하게 건축을 하다가 건물은 경매에 넘어갔고, 교회와 성도들은 세상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었습니다.
요즘 교회들이 건물을 크게 짓는 것은 성도의 수가 많다기 보다는 크게 지어야만 사람들이 모여들 것이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것은 건물 뿐 아니라 목회자가 재정을 함부로 사용하고, 성도를 성폭행 하다가 교인에게 고발을 당하는 사건입니다.
교인들은 교회에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모두 세상 법정으로 가지고 가서 해결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세상도 교회를 세상과 구분해서 대하고 있는데, 지금 보면 교회가 스스로 세상을 교회의 일에 참견하도록 길을 열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교역자와 평신도들이 기득권 싸움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의 모임인데 그런 교회에서 기득권 싸움을 한다는 것은 성도들이 영혼을 구원해야겠다는 사명감 자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신분은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그런 성도들이 세상의 힘을 갖기 위해서, 혹은 쾌락을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더럽히고 있다면 그 자체로 교회도 교인도 아닌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은 무조건 교회에 관련 된 일을 열심히 하면 되는 것으로 알고 있고, 일만 하면 복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일이 먼저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신앙으로 시작되어야만 낮은 자리에서 하나님과 성도를 섬기는 겸손한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은 가지고 있는 자체로 하나님께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교회 일을 하는 것입니다.
소수의 목회자들이 자신을 하나님의 대리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잘못 된 생각이 성도들에게 전해져서 그들 역시 장로나 권사, 그리고 안수집사가 되면 누군가를 다스려야 하고,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생각들이 서로 충돌했을 때 교회는 이를 스스로 정화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해결하기 쉬운 세상 법정으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버리라고 말씀하셨고, 이 세상은 이미 심판을 받은 곳이기 때문에 욕심을 갖지 말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교역자와 평신도들 모두 말씀 외에 인간적인 것에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임직을 받을 때 돈을 내고 사는 것입니다.
물론 직분을 받으면서 헌금을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사명을 맡겨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며 헌금하는 것은 권장할 일이지만 강제로 거금을 내야만 직분을 받을 수 있는 악행은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거액을 내고 직분을 받은 사람은 돈을 냈기 때문에 당당할 것이고, 교회는 직분을 주면서 헌금을 받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죄를 지어도 함부로 치리 하지 못할 것입니다.
교회가 이런 악순환을 거듭하면서 세상은 자연스럽게 교회로 들어와 세상의 잣대로 말씀과 성도를 판단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일을 세상에 맞추어 조금씩 양보하는 것 이것이 바로 교회가 세상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타락한 모습입니다.
세상의 어둠은 교회가 빛을 높이 들어야만 사라지는데 교회가 타락하다 보니 빛을 드는 것이 부끄러워서 그 어둠에 몸을 숨기고 있습니다.
교회가 기득권 싸움을 하거나, 세상의 죄를 그대로 답습하게 되면 세상과 교회 그리고 성도들 모두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깨끗한 심령을 가진 성도들이 모여서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갈 때 존재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본을 보이기 위해서 믿음으로 살아내는 목회자가 있고,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성도가 있는 교회는 세상의 법정에 갈 이유가 없습니다.
무너져가는 교회들을 비판하기 보다는 먼저 우리가 바로서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며, 우리 교회가 반석 위에 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많은 교인들이 영 분별을 하지 못해서 말씀을 버려도 여러분은 미련할 만큼 말씀으로 살아 가시기 바랍니다.
시편 82편 5-7절 그들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여 흑암중에 왕래하니 땅의 모든 터가 흔들리도다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 그러나 너희는 사람처럼 죽으며 고관의 하나같이 넘어지리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공의로워야 할 재판장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하고, 의를 왜곡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차별하는 죄를 저지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타락한 제사장들을 향해 아삽은 하나님의 말씀을 위임 받은 자들은 모두 신이며 지존자의 아들인데 어찌하여 세상사람들처럼 모두 죄악에 넘어졌느냐고 책망하였습니다.
재판장들은 하나님의 권위를 위임 받았지만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와 은총의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말씀을 받은 성도가 신이며 지존자의 아들이라는 아삽의 말은 정말 놀라운 사실입니다.
이 시편의 말씀을 인용하신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0장 35-36절에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 하물며 아버지께서 세상에 보내신 자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을 어찌 신성모독이라고 하느냐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권위로, 세상을 판단하고 정죄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권위를 가진 성도들이 세상을 다스리기 보다 세상의 법정에 믿음의 형제를 서로 세운다면 하나님의 진노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을 비추는 등불이며, 세상을 판단하는 잣대입니다.
그런 교회가 세상의 악에 물들어 거룩함을 버리고, 썩어간다면 교회는 교회로써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이래서 교회는 세상의 소유나 능력을 보고 직분 자를 세우는 잘못을 저지르면 안 되는 것입니다.
직분 자를 세울 때 그 성도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하나님의 일에 얼마나 큰 열정을 가지고 있는지 믿음을 봐야 할 것입니다.
사도바울처럼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성도를 직분 자로 세운다면 교회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 뿐더러 그는 하나님의 법대로 성도들을 잘 인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제든지 교회의 기준과 세상의 기준이 달라야 합니다.
성도는 이 세상을 판단하는 큰 그릇인데 그 그릇이 깨어진다면 세상의 물은 거침없이 밀고 들어올 것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판단하고 정죄할 수 없게 된다면 세상은 도리어 교회를 핍박할 것이며, 교회가 밝히고 있는 등불을 끄기 위해서 사탄과 하나가 되어 공격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신으로, 지존자의 아들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타락한 천사 즉 사탄을 판단하는 권세까지 주셨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권세를 받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작은 일 하나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해서 세상의 법정으로 믿음의 형제를 끌어낸다면 이런 행위는 복음을 막는 악행이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교인들이 교회의 문제를 세상의 법정으로 가지고 가는 것은 교회에 지혜자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자기의 지식을 자랑하며 교만했지만 교회에서 일어나는 분쟁을 해결할 능력과 지혜를 갖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세상의 학벌과 지식으로 절대로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영적인 문제는 오로지 말씀과 하나님의 지혜로 풀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알고 계시겠지만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는 이미 성경에 해결 방법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는 큰 믿음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가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것 뿐이지 그 답을 모르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떤 형제와 관계가 좋지 않아서 고소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반드시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법정에 서는 순간 두 사람은 모두 패배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3장 13-14절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성도 두 사람이 서로 억울한 마음을 가지고 법정에 섰을 때 세상은 누가 억울하고, 누가 피해를 입었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서로 용서하지 못하고 법정에 선 두 사람을 모두 하나님을 믿는 교인으로 보기 때문에 두 사람이 조롱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회가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서로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은 바로 사탄이 원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어떤 상황 때문에 분란이 났든, 두 사람의 감정이 어떻든 상관하지 않고 복음을 막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교인의 법정 싸움은 오직 사탄의 승리로 끝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지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기려는 것은 결국 믿음을 내려놔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승리하든 패배하든 하나님이 보실 때는 이미 패배자들입니다.
물론 세상의 법이 잘못 되었다거나 그들이 악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교회와 세상은 동일한 문제를 놓고 보는 관점이 다르다는 것을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유한한 세상만 보고 판결할 것인지, 아니면 무한한 세계를 보고 판단할 것인지 그 판단에 따라 그 결과는 엄청나게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는 성도의 판단은 하나님의 뜻과 동일하며, 그 기업을 받을 성도들의 특권은 사탄을 판단하는 정도이기 때문에 늘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자신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을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실 것이며,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그들 중에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합심하여 구한다는 것은 두 사람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은혜를 구할 때 모든 응답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뜻을 가지고 합심하여 기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진리만을 전해서 성도들이 동일한 말씀과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하고, 성도들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깨달아 한 몸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고 계실 때 베드로가 묻기를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 줘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아마 베드로는 사람이 인내 할 수 있는 한계가 일곱 번이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 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마도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 용서하라고 하신 것은 한 몸을 이룬 성도들이 복음을 위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은 용서와 포용밖에 없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이런 사랑과 용서는 한 사람의 일방적인 사랑과 용서로는 유지 될 수 없기 때문에 성도들은 말씀을 올바로 배워서 서로 섬겨야 할 것입니다.
성도가 겸손해지는 방법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가는 성도는 다른 성도의 허물을 덮을만한 사랑과 혈기를 누를 만한 믿음이 있습니다.
자신을 내려 놓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도 변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의를 내려 놓지 못하기 때문에 작은 문제만 생겨도 불평하고, 화를 내며, 믿음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땅의 모든 것을 내 것으로 삼기 위해서 끊임없이 경쟁하고, 탈취하는 불의한 자였습니다.
무엇이든 내 소유가 되면 절대로 양보하지 않았고, 마치 처음부터 내 소유인 것처럼 이기적인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도 심령은 변하지 않았고, 더 많은 것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사명을 온전히 감당했기 때문에 축복하신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명을 감당하는 그릇으로 만들기 위해서 세상의 물질, 건강, 가족, 능력을 맡겨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지체들이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교회와 함께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8-10절 너희는 불의를 행하고 속이는 구나 그는 너희 형제로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 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 부르신 여러분은 왕과 같은 제사장이고, 거룩한 나라이며,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다는 것은 어두운 세상에서 건짐을 받아 사망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지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전에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을 뿐 아니라 긍휼을 얻는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긍휼하심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특혜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긍휼함을 받는 성도는 사탄이 감히 건드리지 못할 뿐 아니라 만유의 주 되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세상이 감히 생각할 수도 없는 놀라운 복을 받은 성도들이 형제를 속여 빼앗고, 해치고 모욕하는 악을 저지른다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많은 복을 쏟고 말 것입니다.
하늘과 땅이 함께 역사해야만 받을 수 있는 구원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지 못하는 자는 한 몸인 형제를 고소하고, 미워하며, 용서하지 않고 그를 세상의 법정에 세울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형제를 법정에 세우지 않는 방법은 용서하는 것 뿐이라고 말했으며, 성도들이 형제를 용서하는 신앙을 갖기 위해서는 교회가 말씀을 바르게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가 얼마나 큰 불의를 저지르고 있는지 지적하고 있는데 그들은 성적으로 타락했을 뿐 아니라 결혼의 신성함을 파괴하는 죄와 우상숭배까지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탐색과 남색의 죄를 짓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동성애자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처럼 미화하여 사람들에게 연민을 받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의식이 개방되어 있는 것처럼 이들을 차별하는 사람들을 도리어 책망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훗날 차별금지법이 통과되고 나면 교회는 많은 제재를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진리라는 선포를 할 수 없게 되며, 동성애가 성경이 금지하는 법이라는 말도 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성도는 진리를 전하는데 담대해야 할 것입니다.
고린도교인들은 성적인 타락과 함께 이웃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남의 것을 훔치는 좀도둑이 있는가 하면, 욕심으로 이웃의 것을 탐하는 자도 있으며, 술이 술을 마시는 것처럼 이성을 잃고 이웃에게 해를 끼치는 자도 있었고, 또 남을 비방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점점 세상의 누룩에 물들어가며 성적으로 타락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깨끗하게 씻김을 받은 거룩한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지 못하고, 세상의 죄를 부끄럼 없이 따라 하는 것을 보면서 바울은 애통한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은 나팔소리가 나는 마지막 날 큰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은 이 세상에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잊지 말고 요나의 외침을 들은 니느웨처럼 돌이켜야만 합니다.
회개하라고 외치는 그 외침은 요나의 생명과 바꾼 것이며, 바울의 생명과 바꾼 것입니다.
깨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세상을 거스르는 자입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자만이 사랑하는 믿음의 형제를 법정에 세워 복음을 막는 죄를 짓지 않을 것입니다.
성도들이 믿음의 형제를 사랑하고 용서하기 위해서는 교회가 언제나 순전한 말씀을 선포해야 하고, 말씀을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세상이 더 타락하든, 썩어가든, 폭력이 난무하든 세상은 처음부터 사탄의 영역 아래 있었기 때문에 더 타락할 것도, 썩을 것도 없습니다.
검은 먹물에 검은 먹물을 더 부었다고 해서 더 검어지는 것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문제는 교회가 등불을 더 높이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두울 때 등불을 켜면 나방들이 몰려오는 것처럼 많은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등불이 꺼지지만 않는다면 그 불빛에 의지해서 성도들은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오염되지 않은 기름을 등잔에 넣고, 심지를 크게 돋우어 핍박이 있을지라도 성도들이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세상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여러분의 가정과 교회와 택함 받은 영혼들의 구원은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지옥이 얼마나 두렵고 무서운 곳인지 성도들이 먼저 인지하고 언제나 진리의 반석위에 바로 선 성도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013,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