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자동차 제조사인 푸조는 높은 잠재력을 갖춘 제조사다. 한 때 유럽의 경기침체와 제품 경쟁력 약화로 인해 실적악화를 겪었고, 구조조정과 함께 자금 지원을 받기 위해 중국 둥펑그룹에 지분을 일부 매각하는 일도 겪었지만, 자동차 제작에서만 100년이 넘는 세월을 거쳐오면서 축적한 잠재력은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011년에 출시한 508을 시작으로 새로운 ‘플로팅 디자인’을 입히기 시작한 푸조는 2014년, 카를로스 타바레스를 수장으로 맞이하면서 그룹 내에 혁신을 불어넣고 있다.
푸조를 비롯해 PSA 그룹이 다시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은 기술을 현실로 만드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푸조의 자동차에 적용되는 기술들은 ‘실용적이면서도 누구나 부담 없이 손에 넣을 수 있는 가격’이라는 진리를 추구하고 있다. 또한 수많은 전자장비가 자동차를 제어하는 시대에 물리적인 기계의 강성과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추구한다는 것은 전자장비로 인한 고장을 줄이는 데 있어서 큰 힘이 되고 있다.
그렇다고 전자장비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아니며, 실용성을 확보하는 내에서는 전자장비를 적용하고 있다. 특히 다가오는 자율주행 시대를 위한 기술들이 하나둘씩 적용되고 있다. 그리고 변속기의 다단화와 엔진의 개량을 통해 연비를 높이는 것은 물론 환경 규제에 대응하고 있고, 더불어 운전의 편리함도 조금씩 챙기고 있다. 그러한 푸조의 발전을 이끄는 것은 308이다.
EMP2 플랫폼이 맨 처음으로 적용된 모델은 2013년에 등장한 2세대 308부터이다. PSA 그룹은 본래 B와 C 엔트리 세그먼트를 커버하는 PF1 플랫폼, D와 E 세그먼트를 커버하는 PF3 플랫폼, C와 D 그리고 F 세그먼트를 커버하는 PF2 플랫폼을 갖고 있었는데, EMP2 플랫폼을 새로 개발하면서 기존 PF2, PF3 플랫폼을 대체하고 전체 생산 모델의 50%가량을 커버하게 된다. 앞으로 등장할 C 세그먼트 이상의 모델들은 전부 EMP2 플랫폼에서 제작되는 것이다.
EMP2 플랫폼은 그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총소유비용을 15% 가량 감소시키는 동시에 디자인적으로도 기술 구현을 자유롭게 한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플랫폼이 늘어나는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모든 등급의 자동차를 구현할 수는 없지만, 전장 4.2 m 이하부터 최대 4.95 m 까지 커버할 수 있어 부족함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지상고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로우 보디 스타일을 구사하고 플로어를 낮출 수 있어 날렵한 디자인과 여유 있는 실내를 동시에 구현하는 것도 가능하다.
자유자재로 변환 가능한 플랫폼 덕분에, PSA 그룹은 308 이후 EMP2 플랫폼을 폭 넓게 적용하기 시작했다. 푸조 3008과 5008, 시트로엥 C4 피카소와 그랜드피카소 그리고 C5 에어크로스, DS7 크로스백이 이미 EMP2를 적용했고 앞으로 적용되는 자동차들은 더욱 많아질 예정이다. 설계 초기부터 전자장비에 대한 확장성은 물론 전동화 파워트레인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DS7 크로스백에 PHEV 파워트레인을 적용할 수 있었다.
플랫폼의 모듈화는 개발 단가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하나의 부품에 문제가 생기면 모든 자동차에 문제가 생긴다는 단점도 있다. 한 번 개발하면 오랫동안 사용하는 만큼 원칙에 충실한 설계가 요구되는 부분이다. EMP2 플랫폼은 범퍼 레일과 서스펜션 등 하체의 운동 성능을 책임지는 부분에 알루미늄을, 차체 바닥의 충격을 흡수하는 주요 부분에 핫 스템핑 공법을 적용한 강철을 사용했으며 하부에는 레이저 웰딩을 적용해 무게를 줄이고 강성을 높였다.
308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은 기존 308과 비교했을 때 디자인의 차이는 크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페이스리프트의 진의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데, 최적화를 통해 다듬은 SCR과 DPF, 그리고 GPF와 8단 자동변속기다. 점점 심해지는 배기가스 규제에 대항하기 위함이 크지만 대부분의 자동차들이 PHEV 또는 EV의 구현으로 높은 단가, 실용성의 부재가 대두되는 가운데 실용적이면서도 오염이 적은 가솔린, 디젤 엔진을 구현해 운전자의 선택권을 넓혔다는 데 의의가 있다.
푸조는 일찍이 유로 6.c 기준을 맞추기 위해 노력해 온 회사들 중 하나다. DPF를 처음 개발해 디젤 엔진의 오염을 먼저 줄이기 시작한 것이 푸조이니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직 시행되지도 않은 RDE(Real Driving Emissions) 측정 방식을 적용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기존 모델에도 SCR과 DPF를 결합한 형태의 후처리 장치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후처리 장치의 모듈 모양을 변경하고 위치를 엔진에 좀 더 가깝게 옮겨 원활한 작동이 이루어지도록 했다.
그리고 연비를 끌어올리면서도 승차감을 갖추기 위해 일본 아이신과 같이 최적화를 진행한 8단 자동변속기가 블루 HDi 180 S&S 엔진과 결합된다. 높은 연비를 구현하는 방식으로 세팅이 진행된 6단 자동변속기가 아쉬웠다면 매끄러우면서도 직결감이 있고 능수능란하게 반응하는 8단 자동변속기가 갈증을 달래줄 것이다. 308의 주행 능력은 물론 이를 기반으로 앞으로 등장하게 될 508, 그리고 시트로엥의 다른 모델들이 기대되는 부분이다.
국내에는 아직 들어오지 못하고 있지만 PSA 그룹의 3기통 터보차저 가솔린 엔진인 퓨어텍(PureTech) 시리즈는 부드러우면서도 추진력이 있고 터보래그가 거의 없는 엔진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2016년에 엔진 오브 더 이어를 획득하기도 했다. 최근 디젤 엔진보다 직분사식 가솔린 엔진이 대기오염을 더 일으킨다는 보고가 있었는데, 308 페이스리프트 모델에 적용되는 퓨어텍 130 S&S 엔진에는 촉매 변환 장치와 더불어 자연 재생 형태의 GPF가 적용된다. 이를 통해 대기 오염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푸조의 배기가스 후처리 장치들은 모두 혹독한 모터스포츠 환경에서 다듬어졌기 때문에 어떠한 환경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의 작동과 내구성을 보장한다. 모터스포츠는 극단적인 기록 달성 또는 우승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출력 상승에 방해가 될 수 있는 후처리 장치를 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지만, 푸조는 모터스포츠를 기술 개발의 장으로 적극 활용했고 축적한 기술을 일반 운전자들에게도 나눠줄 수 있었다. 이것은 푸조가 ‘저렴하게 적용 가능하면서도 쉽게 고장나지 않는’ 기술을 지향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항공기 제어 시스템을 통해 유명해진 바이 와이어 시스템은 이제 자동차로 무대를 확장하고 있다. 강철 와이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 바이 와이어 시스템이 중요한 이유는 ACC를 비롯해 자율주행차 제어에 필요한 시스템을 구현하는 데 있어 필수이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차라는 것은 AI가 전기 신호를 통해 자동차를 제어하므로 기존의 강철 와이어로 자동차를 제어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EMP2 플랫폼을 적용한 308은 자율주행차 구현을 위한 시스템과 기술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리고 308 페이스리프트 모델은 기존 308의 변속 레버가 아닌 3008에 적용된 전자식 변속 레버, 일명 시프트 바이 와이어 시스템을 적용한다. 여기에 정지 후 재출발이 가능한 ACC와 액티브 세이프티 브레이크, 액티브 차선 유지 시스템을 조합해 짧은 시간이나마 반 자율주행을 구사할 수 있게 된다.
크게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PSA 그룹 역시 높은 수준의 자율주행 기술을 구현하고 있다. 이미 프랑스 정부로부터 승인을 받은 자율주행차들이 일반도로에서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고, 제어도 수준급이다. PSA 그룹은 자율주행차 개발 프로그램을 아바(AVA)라고 칭하고 있는데 ‘모두를 위한 자율주행차(Autonomous Vehicle for All)’를 뜻한다. 올해 3월말에는 평범한 운전자들을 초대해 자율주행차를 체험시키는 등 적극적으로 자율주행 기술의 개발과 숙성에 나서고 있다.
푸조에게 있어 308은 단순한 준중형 해치백이 아니다. 그 속에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푸조, 그리고 PSA 그룹의 노력이 담겨 있다. 또한 최신 기술이라고 섣불리 적용하기 보다는 좀 더 숙성시키면서 단가를 낮춰 많은 운전자들이 기술을 누릴 수 있도록 하고, 환경 규제 대응은 철저하게 진행하면서 대기오염을 줄여나가고 있다. 그 모든 것을 담은 308은 어쩌면 푸조의 정수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