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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전승기념행사에 참가한 포항 주둔 해병들이 월미도 적색해안으로 상륙하는 상황을 재연하고 있다. ⓒ좋아하는 사람들 |
“우리는 늙고 힘이 없어.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수원에서 온 노병은 굳이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선배님, 말씀 좀 하세요.”
시흥에서 온 월남 참전 후배(고철린ㆍ61세ㆍ파월 청룡부대)가 옆에서 채근을 해도 노병은 막무가내다.
“우리는 늙고 힘이 없어. 한달에 12만원 주는 것도 고맙지, 뭐.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
6.25 참전 노병은 이렇게 덧붙일 뿐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전승 재연행사가 벌어진 월미도 적색해안.
1950년 이날 한국군 해병대를 포함한 연합군은 맥아더의 지휘 아래 낙동강 전선의 반격과 동시에 인천 해안의 세 군데로 상륙을 감행, 적의 허를 찌르는 대역전을 펼치면서 9월 28일 서울을 수복하였고 10월 26일에는 압록강까지 진격했다.
기념행사는 국방부 주최, 인천광역시와 해군본부 주관으로 9월 13일 전승문화재로 시작, 14일 인천 앞바다 팔미도 등대 탈환 재연, 15일 자유공원의 맥아더 장군 동상 헌화와 월미도 해안 상륙작전 재연으로 이어졌다.
월미도 적색해안은 인천 상륙 세 지점의 하나.
6.25와 월남 참전 선후배들은 적색해안으로 그날의 상륙작전을 재연하는 포항 주둔 해병 후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마다의 감상에 젖어 있었다.
“저 선배님 좀 보세요.”
위 고철린 참전용사가 말했다.
눈길을 그쪽으로 돌리니 한 6.25 참전 노병의 얼굴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걸까.
“이건 나라도 아닙니다. 국회의원들은 단 하루만 배지를 달아도 죽을 때까지 120만원씩 받아 먹습니다. 6.25 선배님들은 국회의원들의 딱 10분의 1이에요. 무슨 나라가 이렇습니까. 국가를 위해 싸운 대가가 이래도 되는 겁니까. 옛날에야 나라가 가난하니까 참전 유공 대접을 못했지만, 이제 먹고 살 만해졌다고 못사는 나라에 원조를 주면서 6.25 유공자들을 이렇게 푸대접해도 되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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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남구 학익동 산동네의 한 6.25 참전 노병의 집. 명색이 국가유공자일 뿐 이들이 받는 보훈 혜택은 참전 명예수당 월12만원이 고작이다. ⓒ좋아하는 사람 |
6.25 참전 19만명, 월남 참전 25만명 생존
참전 명예수당 월12만원 받으면 노령연금 못받아 6.25 참전용사들에게 국가유공자라는 영예가 안겨진 것이 2008년. 그리고 지난해 2011년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면서 월남전 참전자들에게도 국가유공자 영예가 주어졌다. 국가유공자가 되었으니 처우가 달라졌을까. 아니다. 처우 개선은 없고 이름만 주었다. 돈 한푼 안쓰고 선심만 쓴 것.
현재 6.25 및 월남 참전 유공자들이 받고 있는 국가 보훈의 혜택은 참전 명예수당 월12만원. 그나마 월남 참전의 경우 각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형편에 따라 지급하게 되어 있는 액수는 1만원, 3만원, 7만원 제각각이다.
게다가 참전 명예수당 월12만원을 받으면 만65세 이상 대한민국 국민에게 지급되는 기초노령연금은 받지를 못한다. 예컨대 노령연금 월9만원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자가 참전용사인 경우 12만원을 받으므로 실제 참전의 대가로 돌아오는 것은 3만원이 되는 셈이다. 그러므로 참전 명예수당이 몇만원밖에 안되는 곳에서는 그것을 포기하고 노령연금을 받고 있는 실정.
6.25 참전자는 120만여명이고 그중 전사자와 전상자를 제외한 2012년 현재 생존 인원은 19만명. 월남전은 32만여명 참전에 현재 25만여명이 생존해 있다. 물론 고령으로 해마다 1만명 가까운 참전 유공자들이 세상을 뜨고 있어 그 수효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참전 유공자들이 더 이상 세상을 뜨기 전에 국가 보훈정책의 현실화와 합당한 예우를 해야 된다는 목소리는 더러 있었지만, 지난 4.11 총선 때 여야 정치권이 연간 53조 6천억원의 예산이 추가로 들어가는 266개의 복지정책을 쏟아내면서 참전용사들의 보훈복지에 관련된 것은 단 1건도 없었다.
이 나라 정치권의 모양새가 이렇다. 시위를 하고 난리법석을 떨어야 신문에 기사가 나고 정치권에서 겨우 반응을 보일 뿐, SNS로 목하 소통의 동시 광역화가 만발한 시대에 지독히도 소통이 안되는 절벽같은 세태를 우리는 살고 있다.
6.25전쟁에는 16개국이 참전했다. 참전용사에 대한 외국의 경우는 어떠할까.
호주는 6.25ㆍ월남 참전자에게 월200만원 이상을 지급하고 있으며, 그곳에 사는 한국인 참전자들에게도 똑같은 혜택을 베풀고 있다. 각종 복지혜택도 일일이 헤아릴 필요를 느끼지 않을 만큼 최상의 대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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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월미도 해안에서는 6.25 및 월남 참전 선후배들이 만나 지난날을 회고하며 불공평한 보훈정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6.25 노병들은 이름 밝히기를 거부하고 사진 찍는 것도 피했다. ⓒ좋아하는 사람들 |
“최저생계비만이라도 달라…국회의원들은 세비 인상하면서” 다시 월미도 해안의 대화.
“요즘 젊음이들 잘 먹어서 그런지 키도 참 커. 군대도 많이 좋아졌겠지. 세상이 몰라보게 달라지긴 했어. 하지만 봉급은 얼마 안되겠지?”
적색해안으로 상륙작전을 재연하고 모여 선 해병 후배들을 보면서 한 6.25 참전 노병이 말했다.
“병장이 10만원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월남전 후배가 말을 하니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확인해 보니 월 9만8천원. 너무 적다고 40만원은 줘야 한다는 국회의원의 목소리도 있었다.
어쨌든 참전용사들은 지금 현역 사병 수준의 참전 수당을 받고 있는 것.
묵묵히 옆에서 듣고만 있던 김경만(64세ㆍ인천ㆍ파월 백마부대) 참전용사가 국회의원들의 세비 인상을 꺼냈다.
“나쁜 놈들. 자기들 연봉은 1억 몇천만원으로 올리면서 오늘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피땀 흘린 유공자들은 안중에도 없는 거야. 박통(박정희 대통령)의 과오는 국회의사당을 분수에 맞지 않게 지은 거야. 저기 난지도 같은 매립지에다 판자집으로 지어놓고 저희끼리 싸우다 문짝 부서지고 기둥이 무너져 강물에 떠내려가든 말든 내버려두어야 하는 건데….”
“박통이 참 그립네.”
고철린 참전용사가 참전 수당 얘기를 꺼낸다. 요지는 박 대통령이 월남 참전 수당 100억불을 받아서 경부고속도로 비용으로 유용했다는 인터넷 상의 이러쿵저러쿵에 대해서. 그는 참전 수당 자체가 없었을 뿐더러 설령 있었다 해도 그것을 국가건설 비용으로 썼다면 거기에 항의할 참전용사는 아무도 없다고. 그리고 덧붙이는 한마디.
“지금 박통이 계시다면 우리가 이렇게 처량하지 않아.”
이어서 김경만 참전용사가 말했다.
“우리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도 아니잖아. 6.25 선배님들을 우선으로 국가 최저생계비(월55만원)만이라도 달라는 거야. 그게 왜 안되는 거야.”
하면서 그는 북한 지역의 미군 유해 발굴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있는 미국의 예를 들면서 국가가 군대의 애국심을 요구하기 전에 보훈복지에 정책적인 배려를 먼저 해야 된다고 강조하고 참전용사 처우는 국격(國格)에 관한 문제라고 매듭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