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조선왕조실록 박물관을 다녀와서] 정병경.
ㅡ기록의 역사ㅡ
광주문인협회에서 봉평 이효석 문학관 탐방 후 오대산으로 향한다. 단풍 절정을 이룬 오대산엔 산행 인파로 장사진이다. 산문(山門)에 들어서니 먹구름이 드리우고 비가 내릴 기세이다. 비바람과 환란을 겪으면서 수백 년간 이어왔다. 역사의 진실을 묵묵히 품어 안은 골짜기엔 실록과 의궤 정기가 서려있다.
오대산사고본의 영욕(榮辱)이 숨 쉬는 모습을 보기 위해 달려온 장소이다. 조선왕조실록 박물관이 고즈넉히 산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거친 역사 속에서도 기록의 흔적을 살피는 여정이다.
조선은 기록의 나라이다. 임금의 말 한마디까지 붓 끝에 담아 훗날 경계로 삼은 나라이다. 사고(史庫)에 실록과 의궤를 보관한 까닭은 옛 일을 남기기 위함이다. 실록은 국가의 통치 철학과 후손을 향한 경각심이다.
나라 잃은 일제강점기 시절 오대산의 사기(史氣)를 빼앗기고 만다. 실록과 의궤가 현해탄을 건너 타국으로 수탈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내 나라 역사의 흔적을 지키지 못한 무력함과 국권 상실 아픔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실록을 빼앗긴 자리마다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유물이 되돌아오기까지 걸린 세월은 얼마이던가. 빼앗긴 역사적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수많은 선각자들의 노고는 말로 표현이 안 된다. 민관이 마음을 모아 되찾아온 실록과 의궤의 전시장 앞에 서는 순간 낯설지 않다.
빛 바랜 종이에 기록된 문자는 역사의 흔적이다. 이 땅에서 살다 떠난 선조들의 고뇌마져 담겨있다. 끝내 역사를 포기하지 않은 후손들의 의지로 찾아온 것이다. 국가의 유물이 후대에게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민족은 역사가 없다.
조선이 왜란과 호란을 거치면서 어떻게 도륙되었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지배층의 분열과 내실 없는 성리학적 명분론이다. 왜 나라를 사지로 몰아넣었는지 유물은 침묵 속에서 나직이 대변한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현실 역시 온전치 않다.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기술로 세계가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기술 문명의 물결 속에 갇혀있다. 국가의 생존은 오직 기술적 주권과 독자적인 안보 역량에 달려 있다. 오늘날 실록은 무형의 반도체 집적회로를 통해 기록되고 있다. 미래를 향한 독자적 국가 전략 위에서 새롭게 쓰여지고 있는 셈이다.
오대산을 내려오는 길 단풍잎 사이에 얹힌 가을 빗방울이 유난히 빛나보인다. 지나간 역사를 반추(反芻)하며 오늘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첨단 기술 시대에 우리의 역사적 정체성과 자주 국방 의지를 결코 놓지 않아야 한다. 우리 손에 되돌아온 실록이 국민에게 내려주는 참된 가르침일 것이다.
一오대산사고(五臺山史庫)를 보며ㅡ
산빛이 깊어가고
단풍은 물드는데
오대산 실록 의궤
옛 숨결 아련하다
백년 전 수탈의 아픔
세월 속에 묻혀져
ㅡ실록과 의궤ㅡ
타국을 유랑하던
한 서린 역사 문서
겨레의 간절함이
품안에 안겼으니
묵향 속 새겨진 교훈
가슴마다 차올라
ㅡ미래를 향한 경계심ㅡ
반도체 요동치는
세상의 서슬 아래
국력을 다져야만
미래가 보장되지
내 조국 지켜낼 힘은
자주국방 뿐이다
2026.10.24.
첫댓글 박물관을 다녀와서 상세하게 적어주신 글 정독 잘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6행시도 신박했는데 문학기행 기록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직도 짙어가는 나무잎새, 곳곳 효석 의 발자취가
눈에 선합니다
늘 평안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