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제는 일본을 푸는 열쇠라는 말이 있다. 일본을 아는 지름길이 천황제에 대한 이해라는 얘기다. 그만큼 천황제는 일본의 상징이고 일본 국민을 지배해 온 하늘이다. 특히 일본근대사를 군국주의의 침략 전쟁으로 물들이며 영욕의 삶을 산 히로히토 천황은 살아있는 신으로 추앙받았지만 결국 일본제국 건설에 광분한 군벌의 꼭두각시였을 뿐이다. 우리에게 일본 천황은 1945년 8월 15일 역사상 유례없는 칙서 발표로 전쟁의 끝을 알린 그의 떨리는 음성, 그 잊을 수 없는 목소리로 특히 강하게 남아 있다.
<일본 천황 히로히토>(레너드 모즐리/팽원순 옮김/깊은샘/1994)는 영국의 한 언론인이 방대한 자료 수집과 관련 인사들의 면담을 거쳐 쓴 전기로, 한 편의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일본 천황을 다루고 있다. 1965년 초판이 나오자마자 동서양의 출판계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까닭이 여기 있다. 근대 세계사에 갑자기 부각된 일본의 숨어 있던 신神이 인간의 얼굴을 하고 나타났던 것이다. 1966년 번역된 뒤 절판 됐던 팽원순(1929~1993) 교수의 첫 역서를 되살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