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텔라의 거짓말
홍미자
파란시선 0185∣2026년 8월 30일 발간∣정가 12,000원∣B6(128×208㎜)∣144쪽
ISBN 979-11-94799-40-5 03810∣(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
[신간 소개]
만져지지 않는 것들은 처음부터 없는 이름이었다
[카스텔라의 거짓말]은 홍미자 시인의 두 번째 신작 시집으로, 「아일랜드」 「당근」 「카스텔라의 거짓말」 등 55편이 실려 있다.
홍미자 시인은 2018년 [내일을 여는 작가]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혼잣말이 저 혼자] [카스텔라의 거짓말]을 썼다.
홍미자의 이번 시집 [카스텔라의 거짓말]은 두 개의 갈림길로 구성된 세계처럼 느껴진다. 하나는 ‘습관-일상’과 그 바깥, 즉 이곳과 저곳의 분기점이고(「나쁜 습관」), 다른 하나는 “두고 온 나”와 연관되는 ‘거기’와 ‘여기’의 분기점이다(「거기와 여기」). 이번 시집은 전자로 시작해 후자로 끝난다. 이것들은 대립하는 두 세계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하지만 전자에서는 공간이, 후자에서는 시간이 중요한 변수라는 점에서 완전히 동일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요컨대 화자가 “거기로 사라지거나/여기로 돌아오거나”라고 말할 때(「거기와 여기」) 이것은 공간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사실은 시간의 문제에 가깝다. “흔들리는 풍경을 뒤적이면/접어 둔 얼굴이 있다”나(「처인」) “지나온 길을 천천히 읽는 뒷걸음이야”라는 진술도 마찬가지이다(「그네」). 실존적 시각에서 바라볼 때 세상은 우리가 지나온 흔적의 총체일 수밖에 없다. ‘습관-일상’의 바깥으로 나가는 일이 어려운 그만큼 ‘과거’에서 자유롭기는 어렵다. 이런 의미에서 모든 ‘바깥’에는 이미-항상 실패의 가능성이 훨씬 많을 것이다. 이 실패에 순응하는 사람이 일상인이라면 높은 실패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도전을 중단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켜 우리는 예술가라고 부른다. 시인은 두 개의 갈림길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할까? (이상 고봉준 문학평론가의 해설 중에서)
[추천사]
홍미자 시인은 멀어지는 사람이다. 안과 밖으로부터. 겉과 속으로부터. 국내와 국외로부터. 아이와 어른으로부터. 진실과 거짓말로부터. 식탁과 심장과 햇살로부터. 나와 당신으로부터 멀어지는 사람이다. 멀어지고 멀어지다가 단숨에 가까워지는 사람이다. 시인은 자기 자신마저 멀어지면서 세계와의 거리를 재조정한다. 시인은 멀어지거나 가까워지면서 언어로 흔적을 남기는 사람이다. 언어의 실험실에서 “거기로 사라지거나/여기로 돌아오”는 사람이다(「거기와 여기」). “칼날에 묻은 허기/살 오른 방들의 침묵/식탁의 모든 영역”을 다른 차원으로 배치하는 사람이다(「관계」). 멀어지는 사람은 멀어진 사람과의 경계에 무늬를 펼친다. 시인의 궤적을 추적해 보면, 이곳과 저곳의 경계는 희미해지고 삶의 무늬가 남는다. 사람의 체취가 흐른다. 시인은 이방인의 삶을 자처한다. 집과 식탁에서, 공항과 기차에서 마주한 상처를 언어로 새긴다. 그곳은 아름다운 무늬들로 일렁인다. 시인은 “나는 나만의 무늬를 잃었고/밝히기 난해한 직업을 가졌습니다”라고 고백하며(「통계 센터」) “콕콕 찌르는 바늘의 기억을 따라 남자의 무늬를 그려” 본다(「용산행」). 이방인의 ‘시간은 잘게 쪼개지면서 또 다른 무늬’를 생성한다(「직소 퍼즐」). 무늬에 반사되는 무늬들. 반추(反芻). 반성(反省). 반야(般若). 무늬에 갇혀 있는 울음. 울음에 묶인 심장. 심장을 겹쳐 놓는 시인. 시인은 언어를 통해 “우리였다가 밖이었다가/끊임없이 선을 긋고 다시 허문다”(「붉은토끼풀꽃」). 이방인은 때때로 “거울 안에 살아 있었으나 나를 읽을 수 없”는 유령으로 변하거나(「훔쳐 읽었다」), 때때로 “망설일 틈을 주지 않고 후루룩 넘어가 버리는” 물체가 된다(「우리는 국수를 싫어했다」). 나는 ‘시인-이방인’의 탄생의 순간을 목격한다. 이 시집을 끝까지 읽으면 무늬 뒤에서 멀겋게 웃는 당신을 만날 수 있다. ‘산세베리아 뒤에 숨은 검은 모서리’의 정체를 알 수 있다(「집의 매너리즘」). 비극의 맛을 경험하고서도 기어이 멀어지는 당신, 이 세계의 다정한 무관심을 기어코 온몸의 무늬로 남기고자 하는 당신, 시인! 이방인, 적법한 이방인.
―정우신 시인
[시인의 말]
바깥이 되려 한 건 오만이었다
[저자 소개]
홍미자
2018년 [내일을 여는 작가]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시집 [혼잣말이 저 혼자] [카스텔라의 거짓말]을 썼다.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나쁜 습관 – 11
아일랜드 – 12
지루하거나 집요하거나 – 14
당근 – 16
제설함 – 18
옥상정원 – 20
겨울 수목원 – 22
직소 퍼즐 – 24
해독 주스 – 26
산책 – 28
눈물 복용법 – 30
습작기 – 32
걱정 인형 – 34
제2부
애완 – 39
검침원 – 41
걷는 나무들 – 43
관계 – 45
건너뛰기 – 47
집의 매너리즘 – 49
종이와 컵 – 51
다리를 건너지 못했다 – 53
아보카도 씨 – 55
모임 – 57
방음벽 – 59
일요일 – 61
접경 – 63
통계 센터 – 65
제3부
카스텔라의 거짓말 – 69
재방송 – 71
몬순 – 73
영하 – 75
외벽 – 77
회색 – 79
객실 – 81
우편함 502호 – 83
풍선과 폭탄 – 85
비바 마젠타 – 87
신세계 콤플렉스 – 89
밤의 크레인 – 91
달빛 잉어빵 – 93
봄날의 라이더 – 95
제4부
여름 일기 – 99
훔쳐 읽었다 – 100
용산행 – 102
처인 – 104
환승역 – 106
우리는 국수를 싫어했다 – 108
만화경 – 110
채집 상자 – 112
극장에서 – 114
새들의 행방 – 116
그네 – 118
보풀 – 120
붉은토끼풀꽃 – 122
거기와 여기 – 124
해설 고봉준 바깥을 향하여 – 126
[시집 속의 시 세 편]
아일랜드
식탁에 대해 말하자면
등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짓이겨진 토마토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때 해가 주방 창으로 떨어졌을 뿐
서쪽은 아주 먼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식탁에게 다 털어놓지 못했다
탁상 달력의 붉은 표시는 약봉지와 어떤 관계도 없었다
역류성 식도염도 읽다 만 조류 도감도 접어 둔 한쪽 날개도
섬에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물컵이 쓰러졌다 흘러간 물이 망설임 없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모든 방향으로 열려 있어서 아무 데로도 나설 수 없는
식탁은 섬을 닮았다
식탁보 아래 아일랜드 지도를 숨겨 둔 것도
모허 절벽으로 떠날 계획이라고
아이슬란드에서 날아온 퍼핀이 검은 바위에 앉아 있다
노랑 부리와 주황빛 다리를 위해 망원경을 준비해야지
우비와 따뜻한 물과 젖은 날개도
골웨이행 기차를 타기로 한다
외국인들의 도시라는데 그건 철새들의 땅이라는 말로 들려서
아이리시 커피에 취해 봤어? 더블린 공항에서
비에 젖은 들판과 회색 산을 흔들며
기차는 절벽을 향해 달려가겠지
새를 보러 가는 거니까 괜찮을 거야
숨겨 둔 지도를 꺼내 놓기로 했다
아일랜드는 함께 도모한 일이어서
식탁은 섬이니까
어디로도 새 나가지 않을 테니까 ■
당근
당근을 잘 모릅니다
내가 아는 당근은
숨기기 어려웠어요
주황이 빠지면 불 꺼진 식탁 같아서
김밥천국이 24시 환한 것도 당근 때문이라고
가늘게 채 썰고 잘게 다져도 사라지지 않는
어떤 웃음은 그래요
한번 터지면 멈출 수 없는
돌아온 저녁엔 흰 접시에 당근 케이크를 놓아둘게요
아이디를 당근으로 정한 건 잘한 일이었어요
따뜻한 대답을 듣고 싶었나 봐요
그래도 당근을 다 알지 못해서
기르던 꽃기린을 당근에 내놓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죽은 화분을 정리했어요
이제 어떤 것도 기르지 않으려고요
파헤쳐진 뿌리를 보면 그렇게 돼요
토끼 인형이 피아노 위에서 야위어 가요
빨간 눈이 한번은 말을 걸어올 것 같아
냉장고에 싱싱한 당근을 남겨 뒀어요
당근에 팔고 피카츄를 살 때가 되었다고
살 것도 팔 것도 없다는 말이 슬프게 들려
마켓 구경을 함께 하자는데
모르는 일은 모르는 대로 둘래요
당근을 더 배우면 삼월 토끼를 만날 수도 있겠지만
잠에서 깨면 다 지워질 거예요
*삼월 토끼: 루이스 캐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카스텔라의 거짓말
아프다고 생각하면 아파질 거야
심장이 뛴다는 건 마음을 읽었다는 신호지
꽃망울이 부풀 듯
이마가 뜨거워지는 순간
비명이 낭자한 꽃밭이었어
목이 꺾인 샐비어와
붉은 고백의 입술들
꽃이 아름다운 건
닥쳐올 비극 때문이지
봉숭아 핏물 진 손톱들이 첫눈을 기다리는 밤
잔혹동화가 너를 키워 냈구나
환상과 상상 사이 어디쯤
산타의 부재를 모르는 착한 아이인 척
달콤한 말들을 찡그리며 삼킬 줄 알아야 해
카스텔라를 먹고 싶다면
혀끝에 닿자마자 녹아내리는 거짓말에 대해
쉽게 들키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해
평범한 어른이 되고 싶다면
머리맡에 카스텔라를 놓아둘게
높은 데서 떨어지는 꿈이었구나
무고한 죄를 다 저지른 구름의 기분으로
이제 거짓의 맛을 보게 될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