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위기--하나님의 기회
본문: 룻 2:16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A. 서 론
룻기에 나오는 모압 지역은 남쪽의 세렛 계곡(Zered)에서 북쪽의 아르논(Arnon) 계곡 사이의 고원 지대를 말합니다. 현재 이 지역은 요르단(Jordan, Hashmite Kingdom of Jordan) 영토의 일부분입니다. 현대 요르단 국가는 북쪽의 고대 암몬(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예) 지역과 가운데 모압(롯의 첫째 아들의 후손, 창 19) 지역 및 남쪽의 에돔(에서의 후손, 창 36:1)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은 출애굽 후 여호수아의 영도 하에 이 지역들을 정복하고, 루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땅을 분배했습니다(민 32장; 수 13-22장). 이 지역은 성경에 자주 언급되는 유명한 왕의 대로(King's Highway)와 사막의 대로(Desert Highway)가 있어 고대 세계의 종주국이었던 메소포타미아와 애굽의 말과 철발굽이 지배와 정복 및 무역을 위해 지나던 유서 깊은 장소입니다. 이 지역은 한 때 다윗왕에 의해 고대 이스라엘에 합병되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후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셀루커스 및 프톨레미 왕조의 지배를 받고, 나바티안(Nabatean) 왕조를 세운 적도 있지만, 로마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7세기 이후 이슬람화되었고, 1920년대 압둘라 왕조가 시작되어 트랜스 요르단의 국왕이 되었습니다. 194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현재는 후세인왕이 왕정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마치 한국과 흡사하게 바람에 시달리는 갈대처럼 오늘에 이르기까지 늘 외세에 신음했던 애증의 역사를 부여안고 사는 곳입니다. 이 모압 평원은 룻기에 나오는 기사처럼, 이스라엘의 베들레헴 지역에 기근이 들었을 때 피신했던 것처럼, 비가 내리는 정도에 따라서는 경작과 정착에 비교적 좋은 환경이었습니다. 기후가 비교적 건조하고 온화하여 중동 지역의 여타 나라들보다는 견디기에 괜찮은 편입니다. 물론 날씨는 무덥지만, 선선한 바람이 있어서 특히 그렇습니다. 룻기는 이 모압이라는 역사의 현장에서 일어났던 한 가정의 이야기를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의 곤궁을 도와주고 구원하시는 가를 보여주는 생생한 한 예증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B. 본 론 - 삶의 고뇌에서
1. 고대 세계의 약자들
사람이 살다 보면 다양한 경험과 처지를 겪게 됩니다. 고대 세계에서 약자는 여자, 어린이, 고아 등이었습니다. 그 중 가장 힘없는 약자는 자식이 없는 과부였습니다. 오늘날에도 가장이 없는 소녀 가장들이 주위의 불랑배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안타까운 사건들이 종종 기사화 되곤 합니다. 특히 고대 세계에서는 자본이나, 기술, 화폐 경제 등이 아니고 삶의 방식이 오직 노동과 농업에 의존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과부들은 더욱 살기가 난감했었습니다. 가정에 가장이 없을 때, 매우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재산권이 여자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시대이었으며, 힘있는 자들이 이러한 약자들의 땅을 빼앗을 수도 있었습니다. 지게표를 옮기고 성문에서 그것을 정당화하고 사람들을 쫓아버리곤 했습니다.
우리는 룻기에서 위에 언급한 딱한 형편에 처한 한 가정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어 엘리멜렉이라는 한 남자가 그 부인 나오미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지방에 이주하게 됩니다. 두 아들들은 모압 여인 중에서 아내를 취했습니다. 엘리멜렉이라는 이름은 “나의 하나님이 왕이시다”라는 뜻의 신본주의 사관을 풍기는 믿음이 있는 부모가 붙여준 이름입니다. 사사시대에는 인간 왕을 세우려는 풍조가 있었지만, 나오미의 시부모이나 그 가정의 어른들은 인간 왕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나라와 개인의 삶을 다스려야 한다는 뜻의 신앙을 표현하는 이름을 아들에게 붙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건한 의미의 이름을 가진 엘리멜렉에게 재난이 닥쳤습니다. 자신이 죽고, 그 두 아들들도 유명을 달리하는 신세가 됩니다. 이럴 경우 남게 되는 것이 과부들인데, 시어머니와 두 며느리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처지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길은 노예나 종으로 팔려 가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노동력에 의해 사람의 가치가 평가되었던 시대이기 때문에 종으로도 가치가 떨어질 수 있던 현실이었습니다. 이러한 기근과 사별의 고뇌에서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실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룻기에서 생생히 읽을 수 있습니다.
2.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הוהי)
하나님은 이러한 절대절명의 위기에서 한 가족을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흔히 하는 말에 위기는 위험과 기회라고도 합니다. 위험이 되기도 하지만 새로운 도약과 발전을 위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 등장 인물들은 하나님은 자애로운 언약을 지키시는 분으로서 여호와라는 믿음을 고백하곤 합니다(3:13). 하나님(히브리어의 엘)이라는 이름은 고대 세계인들에게는 항상 힘과 능력을 의미했습니다. 약한 자가 강하게 되고 병든 자가 힘을 얻고, 무능하고 연약한 자를 힘있게 하는 개념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난히도 여호와란 이름을 고백하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며, 삶이 존재하게 하시는 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특히 이 하나님은 고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분이시며 이것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과 맺으신 맹세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효가 많거나 어떤 다른 것 때문에 뛰어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시고 언약을 맺으신 사랑에 근거해서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오늘날 신약 시대에는 십자가의 영원한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약속을 받고 있습니다. 어떤 형편이나 상황에서도 인간의 공로가 아닌 십자가의 은총을 믿으면서 하나님께 나아오라는 초청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나오미 가정의 불모의 상태를 변화시키시어 좋은 인연과 일들을 만드시고 행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나오미의 형편이야말로 인간이 당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처지였으며, 이러한 위기에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인간의 역경을 변화시키신 분이십니다. 도무지 희망이라고는 발견하기 어려운 절망 속에서 시어머니를 버리지 않고, 그 노모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고 이스라엘 백성과 그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믿음을 고백하고 또 그렇게 살기로 결심하고 삶을 살아간 한 이방 여인, 룻이라는 한 여성의 믿음을 통해서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형편에 처한 가장 연약한 여인의 무기력한 상태를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은혜를 볼 수 있습니다.
3. 구속자 하나님
고대 세계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여성이 결혼하여 아들이 없이 과부가 되면, 도무지 살아갈 길이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것에 대한 하나의 돌파구를 열어 두셨습니다. 물론 이러한 제도는 오늘날에는 약간 생소한 것입니다만, 그 당시의 상황에서 이해하여야만 바르게 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고엘(ל)이라는 뜻은 구속자라는 의미인데, 가족 공동체를 지키고 보호하는 의무를 지닌 자를 의미합니다. 어떤 가족의 구성원도 경제적으로 곤핍하여 삶의 터전을 상실하거나, 인간적으로 삶의 의미를 상실하는 고독으로부터 보호하는 장치였습니다. 이것은 또한 값을 주고 재산을 무르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 구속자는 가장 가까운 친척이 무고하게 죽임을 당한 때, 자기 친족을 죽인 자를 복수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민 35; 신 19:6). 가난하게 되어 재산을 팔았을 때, 가족의 재산을 되돌려 회복할 수 있는 자입니다. 고대 세계에서는 주로 파종을 위해서 씨앗을 빌리곤 했는데, 거듭되는 가뭄이나 흉년 등으로 인해서 채무를 갚지 못하면, 빚과 이자가 누적되어 종으로 그 값을 갚거나, 재산인 땅을 팔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우 구속자가 있어 팔린 재산과 종의 신분을 회복시킨 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사회 제도이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구속자는 형제가 자식이 없이 죽었을 때에 다른 형제가 죽은 형제의 아내와 결혼하여 죽은 형제의 대를 이어주고 재산을 상속하게 해 주는 제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 중 가장 연약하게 보이는 한 여인의 곤란한 처지를 구원하시는 언약의 하나님이요 전능하신 분이심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나오미의 가까운 친척 보아스를 감동시키셔서 삶의 깨어진 꿈을 회복 주신 하나님은 참으로 은혜로운 우리의 구속자가 되십니다. 우리의 구세주 예수님은 인간과 함께 혈과 육을 취하고 계신 사실에서도 우리의 가까운 친척이요, 형제 자매임을 확인시켜 주시려는 하늘 아버지의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죄 값을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써 갚으셨고 천국과 영생을 우리에게 영원한 기업으로 약속하십니다.
4. 긍휼의 하나님
하나님은 여기에서 인간을 가장 긍휼히 여기시는 분으로 나오고있습니다. 긍휼(헤세드, ד)이라는 말은 인애 또는 자비라는 뜻인데, 언약에 근거한 사랑, 혹은 언약적 사랑이라고도 합니다. 이 영원한 사랑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 개인을 향하신 자세입니다. 절대 곤궁의 위기에서 삶이 파괴되고 산산이 부서져 없어질 위기의 한 가정을 어떻게 하나님이 도와주셨는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개입하시고 섭리를 베푸시지 않았더라면, 늙은 과부 할머니와 두 며느리 과부 등 참으로 딱하기 짝이 없는 형편에서 노역으로 학대와 착취의 대상으로 처참한 삶을 살았을 가능성이 많았습니다. 나오미가 젊었거나, 혹은 다른 아들이 있었다면, 룻에게 약간의 위로도 되었겠지만, 노령의 그녀에겐 어떤 결혼의 가능성이나 아들에 대한 희망도 없었던 난감한 형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어려운 처지에서 자부 룻이 시어머니에게 인애를 베풀어 시어머니를 모시고 그녀와 함께 운명을 같이 하려고 결단했을 때, 또한 그녀의 야훼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고, 그녀의 백성 이스라엘이 그 자신의 백성이 되도록 결단했을 때에, 무한히 더 자비로운 하나님은 그녀를 위해서 모든 것을 예비해 두시고 삶의 좋은 배필과, 후손, 재산 등 모든 것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처럼 보이는 인생살이에서 우리가 이와 같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믿고, 이러한 인애를 인간 관계에서 실천할 때 하나님은 더 무한한 인애로 인간 삶에 역사하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바로 이 이방 여성,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시하고 냉대했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의 장부와 같은 믿음에 의해 그녀는 결국 다윗의 조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룻 4:22), 예수님의 조상이 되고(마 1:5) 성경에 나오는 불후의 인물이 되었습니다.
C. 결 론
하나님은 무한히 자비로우신 주님이십니다. 나오미의 인생 길에 그녀를 도와주셨던 분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한 구원과 은총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 하나님은 오늘날도 옛날의 룻기에서와 같이 언약을 지키시는 분으로서 그 약속은 영원히 동일하게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 개인을 향하신 약속을 믿고 그것을 의지하고 그 약속의 성취를 믿음으로 간구하고 노력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역사하심을 확신하게 됩니다.
(2) 나오미의 그 어려웠던 위경에서 구원의 손길을 베푸셨던 그 구속주 하나님은 여전히 오늘날에도 우리 삶의 구속자가 되십니다. 인간적으로 이해되지 않고, 해결할 수 없는 절대난관을 헤어날 수 있는 구속자(고엘)로서 도와주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속자가 되십니다.
(3) 하나님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은혜를 베푸시는 인애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시고 영원한 언약을 맺으신 주님께서는 무한하신 자비와 동정으로 우리를 인도해주시는 분입니다. 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희망이 있고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