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찬미예수님!
대구시청 교통과장님에게 보낸 내용 입니다. 참고용입니다.
대구시가 이렇게 노력을 하고 있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서환종 과장님!
안녕하세요? 4월 24일 신문기사를 복사해서 주변에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민생 현장 택시 행정을 직접하여 주시니 좋습니다.
아무나 구상 못하는 획기적인 일입니다.
교통과 직원들 모두 택시 자격증을 받도록 해서 현장 행정을 하도록 구상하시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도 감격하였습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님은 자주 택시운전을 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서 우리 대구는 언제 이런 현장 행정이 이루어질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2008년 가을에 영업용 택시(동신택시)를 잠시 해보니 (12시간용, 24시간용) 아무리 달려도 입금액이 1만원- 2만원 부족하더라고요. 시민과 대화를하고 여러 직업의 사람을 만나니 경이롭고 좋았습니다. 별의 별 사람이 모두 손님으로 맞이하니 세상공부도 많이 되었습니다. 인생철학이 바뀌더라고요. 많은 일에 감사하게 됩디다. 인간은 대부분 자기 나름대로의 고통이 있더라고요. 겉은 행복하여 보이는 데 **^^
택시영업을 하여 보니
1. 한 일주일 하고 나니, 2주일간 다리 무릅이 새콤 새콤하여서 걷기가 힘들었습니다.
공원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걷는 것에 대한 가치를 다시 부여하였습니다. 택시기사들은 운동은 어떻게 하는지? 체력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였습니다.
2. 식사시간을 못 맞추겠어요. 식사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어요. 위장이 고장 날 것 같았어요. 기사들의 위장이 안 좋다는 말을 들었었는데 .... 이해가 되더라고요.
3. 화장실 갈 여유가 없기도 하고,(손님이 타고 있으니, 설사가 나도 곤란!)
시간이 있어도 대소변 볼 때가 마땅치 았았어요. 기사를 사용하기 편리한 화장실 설치건의?
4. 입금액이 버거웠어요. 현실적으로 입금액을 맞출 수 있을까?
대구시내 자체에 택시 절대수가 많은 것이 아닌가? 택시기사들간에 자기 살 뜯어 먹기를 해야 하는가?
보편적으로 울산, 강릉, 제주도가 그런대로 된다고 듣기도 했습니다.
열심히 하면 생활비는 되어야 하는데 ^^~~ 그렇지를 못하더라고요.
일전에 음주로 대리운전을 한 적이 있었는데,..
대리기사 왈 : 자기도 개인택시 기사인데
벌이가 시원치 않아서 ### 대리 운전회사에 등록 하여 놓고 대리운전도 합니다.
개인택시는 야간에 접어두고 ^^**
개인택시도 옛날 같지 않아서 밥 벌이가 되지를 않습니다. 투 잡을 안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운전하는 것을 말타는 승마처럼 좋아해서 택시를 언제가는 다시 하고자 하는데, WIFE가 벌이가 안된다고 적극 말려서 ^^ 아차 하면, 부부간에 헤어져야 하겠더라고요~~~
일단 택시기사는 하지 않고 쉬고 있는 데, ~~~ 때가 되면 언젠가 하려고 구상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대구시의 택시영업과 친절, 기사복지가 전국에서 가장 잘 되어서 타 시.도가 대구로 견학투어가 되기를 기대하여 봅니다.
대구골목투어처럼 ^^~~ 전국에서 각광 받는 것 처럼 ~~
대구시 대중교통과 직원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달서구 구민 택시기사 희망자 박의신 빈첸시오 와룡거사 (010-4196-0978)올림
택시에 관한 기사가 나오면 수집하여 놓습니다
P.S.
- 신문기사 제목 -
‘달리는 상담실’ 카운셀러… 인생 2막 드라이브 즐거워
57세에 CEO 박차고 나와 10년 넘게 택시 운전
적당한 신체운동에 정년없는 직업에 만족해
속내 털어놓는 손님 하루에도 수십명씩 만나
승객들과 주고 받은 사연 모아 두번째 책 출간 계획
"어머, 과장님. 정말 택시를 모시네요." "누구시더라?"
택시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뒷좌석을 돌아보니 20여년 전 내가 중앙투자금융에 근무하던 시절 함께 일했던 여직원이었다. 내가 직접 채용했던 직원이어서인지 용케도 나를 알아본 것이다.
"허, 내가 그때부터 택시를 몰겠다고 그랬었나 보군요. 그걸 기억하고 계셨네."
꼭 10년 전인 2001년 11월, 나는 택시기사가 됐다. 세 차례 연임을 하며 8년 동안 맡았던 영풍상호신용금고의 사장(CEO) 임기가 아직 1년이나 남아 있던 시점이었다. 일찍 물러나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자는 생각이 있었고, 더 늦으면 '인생 2막'을 시작할 시기를 놓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환갑 기념으로 개인택시를 한 대 뽑겠다는 계획을 일찌감치부터 세워두고 있었는데, 개인택시 면허를 받으려면 3년의 법인택시 무사고 운전 경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만 57세 되던 해에 평생 몸담았던 금융권에 작별을 고했다.
영풍상호신용금고 사장 재직 시절 사무실에서/김기선씨 제공 젊을 때 대리 시절, 일본 도쿄로 휴가여행을 갔다가 은퇴한 노인들이 구두를 닦고, 여관에서 벨보이를 하는 모습을 봤다. 그들 중에는 고위관료 출신이나 사업가 출신도 있다고 했다. 그렇게 돈을 모아 자선단체에 기부도 하고 해외여행도 다닌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모습은 내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외국에선 대학총장이 퇴직 후 재임하던 학교의 수위나 정원사로 근무하는 예도 드물지 않다고 했다. 나는 은퇴 후 무엇을 할까 고민했다. 머리를 쓰는 것보다는 단순한 육체노동이 좋을 것 같았다. 또 정년이 없어야 하고, 내 스케줄대로 살 수 있어야 했다. 그리고 안 해 본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택시였다.
노년을 앞두고 택시 운전대를 잡겠다고 하니 주위에서 대부분 만류했다. '사모님' 소리만 듣던 아내도 반대가 심했다. 하지만 나는 강행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인 게 확실하다. 일주일 지나니 과거는 싹 잊혔다. 과거를 잊는 것은 인생 2막에 있어서 '제1원칙'이다. 아내는 요즘 자기 친구 남편들은 다 놀고 있는데 나는 일을 한다면서 대만족이다.
법인택시를 몰던 1~2년은 새로운 일이 주는 재미와 흥분에 빠져 살았다. 초기에는 실수 연발이었다. 미터를 꺾지도 않고 장거리를 운행하거나, 길을 찾지 못해 손님한테 폐를 끼친 날도 많았다. 그렇게 시작한 택시 인생이 어느새 10년을 넘겼다. 옛날에는 '한우물을 파라'고 했지만, 평균수명도 길어진 세상에서 어떻게 지루하게 한우물만 파겠는가. 전혀 다른 분야로 바꾼 것은 잘한 일이었다.
요즘도 일하는 날은 새벽 6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집을 나선다. 이른 새벽이지만, 아침밥은 아내가 항상 챙겨준다. 은퇴한 남편한테 하루 세끼 챙겨주면서 '삼식(三食)이'라고 놀리는 여자들이 있다는데, 나는 적어도 아내에게 눈칫밥 얻어먹을 일은 없다. 게다가 많지는 않지만 하루 벌이한 주머니를 매일 안겨주니 누가 마다하겠는가. 과거에 비하면 벌이는 많이 줄었지만, 노년의 삶은 수입에 맞춰 지출을 조절할 수 있다. 자식들이 다 커서 결혼한 마당에 큰돈 쓸 일도 없다.
김기선씨는 법인택시 3년 무사고 운행 경력을 바탕으로 2005년 1월부터 개인택시를 몰고 있다. 비서도 부하직원도 없지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달리는 사무실'이다./허영한 기자 younghan@chosun.com
택시 안은 세상의 축소판이다. 좁은 땅덩이 위에 별의별 사연을 지닌 별의별 사람이 산다. 덕분에 세상을 한쪽밖에 못 보고 살았던 내가 그 뒤에 숨은 수많은 속사정을 알게 되고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게 됐다. 모두 이 한 평짜리 택시 속에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내 택시가 마치 '달리는 인생상담실' 같다는 생각이 든다.
택시 안은 철저한 익명과 비밀이 보장된다. 내리면 끝이니까. 그래서 자기 신상에 관한 것, 배우자에게도 차마 말하지 못하는 일을 털어놓는 이들이 하루에도 수십명이나 된다. 처음엔 뭔가 의미 있는 말 한마디라도 해줘야 하나 고민했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은 명쾌한 해답이나 해결책이 아니었다. 그저 진지하게 들어줄 사람, 시원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을 곳이 필요했던 것이다. 요즘은 자녀의 이혼 때문에 손자를 떠맡아 키우며 신세를 한탄하는 노인들이 많다.
노년의 지혜라고 할까, 생각지도 못했던 '경구(警句)' 같은 것이 택시 안에서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중에서 '살까 말까 망설여지면 말고, 갈까 말까 망설여지면 가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얼마 전 고급 외제 승용차를 살까 말까 고민하는 나이 지긋한 손님을 태우고 이야기를 나누다 내린 결론이었다. 앞으로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비싼 물건 사둬 봐야 애물단지가 될 가능성이 크니, 그것보다는 사람을 만나는 모임이나 좋은 여행지 같은 '갈 곳'을 부지런히 다니는 게 더 알찬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동안 들었거나 이야기를 나눈 이런저런 사연을 메모해두었고, 곧 이를 묶어서 책으로 낼 계획이다. 이미 지난 2005년에 택시 운전 경험을 묶어 '즐거워라 택시인생'이라는 책을 낸 적이 있다. 택시를 운전하다 보니 나도 모르는 새 작가라는 세 번째 직업까지 갖게 된 셈이다. 브라보, 택시 인생!
CEO 출신 택시기사가 본 체감경기
2009년 04월 28일 13시 23분
“쿵쿵따리 쿵쿵따 짜~리 잔짠…유행가 노래 가사는 우리가 사는 세상 이야기… 서글픈 노래 가슴치며 불러보자. 유행가 노래 가사는 사랑과 이별 눈물이구나…”
송대관이 부른 트로트 가요 ‘유행가’의 한 소절이다. 택시는 유행가이다. 한 평남짓한 작은 공간은 서민들의 삶의 애환을 엿보는 밀실이다.
저축은행 최고경영자 출신의 택시기사 김기선(66) 씨. 그는 요즘 신세 한탄을 하는 40~50대 여성승객들을 자주 태운다. “대개 직장이 위태로운 남편 이야기로 대화의 물꼬를 터 시부모, 친정 얘기로 이야깃거리를 넓혀가지요.” 2009년 4월, 택시에서 마주 친 대한민국의 풍경화는 온통 잿빛이다.
세월의 풍상이 얼굴에 묻어나는 그녀들은 생면부지의 택시기사에게 넋두리를 풀어낸다. 사람들은 여유가 없고, 생활은 팍팍하기만 하다. 영풍상호저축은행의 최고경영자로 근무하던 그가 택시업계에 투신한 것이 바로 8년 전이다.
당시만 해도 택시 일을 열심히만 하면 자식들 공부 가르치고, 생활비를 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정치인들을 화제에 올리며 ‘청산유수’ 같은 입담을 자랑하는 고객들도 많았다. 최고경영자를 하던 사람이 뭐가 아쉬워 택시를 모냐는 질문은 단골메뉴다. 요즘 승객들은 대한민국 정치를 잊었다.
택시는 현실을 엿보는 ‘창(窓)’이다.
“며칠 전에는 초로의 중소기업 경영자가 탔어요. 그는 어음을 할인해 직원들 월급을 줘야 한다며 은행으로 좀 빨리 가줄 것을 부탁했어요. 부도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했다고 했어요.”
전날(22일) 택시에 탑승한 30대 후반의 한 남자승객은 직장을 찾고 있다는 사실을 담담히 털어놓았다. 이런 순간은 그로서도 정말 난감하기만 하다.
공군 조종사로 근무하다 지금은 대한항공 기장으로 근무하는 장남 또래의 손님이다.
강남을 주요무대로 뛰는 그가 바라보는 대한민국호(號)는 여전히 추락 중이다.
“저야 두 아들이 다 결혼해 잘살고 있지만, 나이 어린 자녀를 둔 젊은 기사들은 참 힘들 거예요. 택시를 몰아서는 자녀들 학원비 대기도 녹록지 않은 것이 대한민국의 냉혹한 현실입니다.”
그는 요즘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경기회복론에 고개를 가로젓는다. “경기회복론이라는 게 다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냐”며 반문을 한다.
경기는 늘 순환하기 마련이지만 회복신호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선린상고 출신의 김 씨는 은행원 인기가 한창 좋았던 1963년 서울은행에 입사했다. 중앙투자금융, 동아증권, 영풍상호저축은행을 두루 거친 금융전문가가 바로 ‘그이다.
지난 23일, 오전 11시40분, 강남 포스코빌딩 주변은 점심시간 무렵이어서인지 삼삼오오 택시를 잡으려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장거리 손님 급감…하루 벌이 13만원 불과
젊은 여성고객들은 인도를 벗어나 도로 쪽으로 나와 수신호를 보낸다. 불과 1~2분새 남녀 10여명이 김 씨가 운전하는 택시를 타기 위해 이런저런 신호를 보냈다. 선릉 방면으로 택시를 운전하던 그는 너털웃음을 짓는다.
“손님이 더 늘기는 했습니다. 문제는 대부분 기본요금 정도가 나오는 단거리 손님이라는 점입니다.”
그가 하루에 태우는 손님은 평균 25~35명 정도. 삼삼오오 무리를 이뤄 주변의 지하철역으로 가거나, 약속장소로 이동하는 이들이 주종을 이룬다. 김 씨가 택시 승객 수와 경기가 역의 관계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경기가 좋을 때는 서울에서 분당이나 일산 등으로 이동하는 장거리 손님이 많아 이용객은 적어도 수입은 쏠쏠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틀을 일하고 하루를 쉰다는 김 씨는 전날 13만원가량을 버는 데 그쳤다.
“보통 하루에 15만원 정도 수입을 올려야 기름값을 비롯한 운영비를 제하고도 생활을 해나갈 수 있어요.” 그는 출출할 때 자주 들르는 포장마차 촌에만 가봐도 경기 한파를 느낄 수 있다고 귀뜸한다.
소주 한잔을 놓고 정치인들을 성토하는 직장인들, 그리고 출출한 배를 채우러 들른 이들로 포장마차는 입추의 여지가 없기 마련이다.
자정을 전후한 시간대의 풍경이다. 하지만 자주 가는 단골 포장마차의 여주인은 ‘피크타임’이 사라진 지도 꽤 지났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가락동 시장에 빈 택시 여전히 많아
가락동 농수산물 시장에 빈 택시들이 자주 눈에 띄는 것도 경기침체의 다른 징표이다. 경기가 좋을 때는 굳이 이곳까지 빈 택시들이 등장하는 사례는 보기 드물다는 것이 김 씨의 설명이다.
그는 위기 때 현실주의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출근길에 손님들이 줄을 잇다 10시 정도가 되면 뚝 끊어져요. 그리고 11시30분 이후 다시 늘었다 오후 11시 이후 장거리 손님들이 늘어나지요. 손님이 없는 저녁시간대에 운동을 다녀와 11시경 다시 장거리 손님을 모시러 나섭니다.” 그가 생각해낸 불황기 생존비법의 하나이다.
한때 새벽 2시까지 불야성을 이루던 강남은 밤 12시정도만 되면 벌써 파장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런 상황에서 아직 경기회복을 논하기는 너무 이른 것이 아니냐고 그는 반문한다.
건강만 뒷받침된다면 택시 운전 일을 90세까지 하고 싶다는 게 그의 작은 바람이다. “기사 식당에 들려 별 볼일 없는 찬이지만 푸짐하게 먹고, 때로 제육볶음까지 곁들이다 보면 바로 이곳이 무릉도원이 아닌가 싶습니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
<ⓒ 이코노믹 리뷰(er.asiae.co.kr) - 리더를 위한 고품격 시사경제주간지,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꾸벅꾸벅…택시 ‘아찔한 주행’
이틀에 한번꼴로 졸음운전 사고… 기사들 이유있는 항변?
목록 메일 인쇄 글씨크기 URL단축 지난 23일 오후 11시 30분쯤 서울 광진구 구의동에서 강남구 대치동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아탄 회사원 이모(30)씨. 한참 가다 고개를 떨구는 운전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차는 벌써 옆 차로로 넘어갔다. “지금 졸음운전하시는 거예요. 잠 깨세요.”라고 다그치자 “죄송합니다.”라고 답했다.
택시들의 ‘아찔한’ 졸음운전이 이어지고 있다. 물론 전체 택시 가운데 일부다. 25일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택시 졸음운전 사고는 2007년 182건, 2008년 193건, 2009년 164건, 2010년 196건, 지난해 165건이다. 연 평균 180건씩, 이틀에 한 번꼴로 발생한 셈이다. 택시기사 조모(46)씨는 “용케 사고를 피하고는 있지만 실제 졸음운전한 사례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택시 졸음운전 사고는 택시의 운행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이다. 잠시나마 쉴 곳, 잠잘 곳이 전혀 없는 것이다. 회사 택시는 1일 2교대가 기본으로 오전 2~5시, 오후 2~5시에 한 번 교대한다. 하루 평균 운행 시간은 11시간 20분가량이다.
졸리면 길가에 잠시 택시를 세워 놓고 눈을 붙이는 게 고작이다. 문제는 돈이다. 택시 기사들은 “졸음 쫓는다고 쉬면 하루 11만~13만원의 사납금을 못 낸다.”고 털어놓았다. 회사에서 하루 제공되는 연료는 LPG 25ℓ이지만 기사들이 사용하는 연료량은 하루 평균 40ℓ정도다. 15ℓ(약 1만 7000원)는 자기 호주머니에서 나가고 있다.기사들은 “이렇게 일해도 하루 1만~2만원만 손에 쥘 뿐”이라고 말했다. 월급은 90만원, 총수입은 120만~130만원에 불과하다.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쉼 없이 운전을 강행할 수밖에 없고 ‘승차거부’란 비판에도 둔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것이다.
게다가 택시는 법률상 흔히 말하는 ‘대중교통’이 아니다. ‘대중교통의 육성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은 버스, 지하철 등 노선을 가지고 일정한 시간대별로 운행하는 수단만을 대중교통으로 인정하고 있다. 기우석 민주택시노조 기획국장은 “공익적 역할을 하는 택시를 고급 교통수단이라는 이유로 육성·지원 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것은 불합리하다.”면서 “하루속히 법 개정을 통해 택시를 대중교통 수단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영준·명희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