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롱초롱 박철홍의 고려사도 흐른다. 53
ㅡ 고려의 무신정권시대 9 ㅡ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 천민출신 집권자 이의민 2)
이의민이 집권했던 시기는 (1170년~1196년) 생각보다 길다. 무려 26년이나 된다.
하지만 앞 편에서 설명했듯이 이의민 집권 초기는 '두경승'등과 연합정권으로 이의민 혼자 정권을 장악한 것은 아니였다.
이의민이 혼자 정권을 장악한 실질적권력기(1183~1196년)는 13년 정도 된다.
고려의 무신들이 100여년 기까이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고려가 대외적으로 평화로운 시대 였기 때문이다.
이의민 집권 당시 중국대륙은 북송이 멸망하고 강남 쪽에 새로 세운 남송과 금나라가 대치하던 시기로, 동아시아 국제질서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이 시대는 금나라 전성기 말기와 쇠퇴 시작점, 그리고 남송이 내치 집중하면서 '성리학'을 정립하던 시기였다.
금나라는 남송과 전투에 정신 없었고 남송은 경제적, 문화적 으로는 찬란하게 꽃은 피웠으나 군사적으로는 형편없어 고려에게 군사적원조를 요청할 상황이었다.
고려는 금나라와 형제관계 형식적 외교를 지속하고, 남송과 활발한 무역을 통해 무신정권이라는 내정 불안에도 대외관계는 비교적 안정적이었던 것이다
앞 편에서 언급했지만, 이의민
등장은 고려사회에서도 신분제 경직성에 금이 가는 커다란 사건 이었다. 고려 백성들에게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의민은 자신 출신계층을 위한 제도적 개혁에는 나서지 않았다. 기존 권력구조 맛에 빠져 새로운 수탈자로 전락하고 만다.
결과적으로 이의민 집권은 천민 계층 권익향상과는 거리가 먼 무신정권 타락상만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아있다.
그 과정을 살펴보자!
이의민은 집권과 동시에 방탕하고 무자비한 정치를 펼쳤다. 여색을 밝히는 데 거리낌이 없었고, 양갓집 규수나 유부녀를 가리지 않고 탐하다 싫증 나면 버리기를 반복했다.
심지어 이의민 아내마저 종과 간통하다 발각되어 내쳐졌다는 기록이 있다.
이의민 아들들 역시 포악함과 방종으로 악명을 떨쳤다. 둘째 아들 '이지영'은 명종 애첩을 협박하여 강간하는 범죄를 저질렀고, 명종은 그가 두려워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셋째 아들 '이지광'도 '이지영' 못지 않았다. 이 둘을 함께 ‘쌍도자’라 불릴 정도로 극악한 악행을 일삼았다. 이의민 딸들까지도 추문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또한 이의민 장남 '이지순'은 '김사미·효심의 난' 진압군으로 나섰으나 반군과 내통하며 재물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이는 이의민이 신라부흥세력을 등에 업고 역성혁명을 도모하려 했다는 정황과도 맞닿아 있다.
이처럼 이의민 온 가족이 고려 사회에서 손가락 질 받고 다닐 일 들을 거침없이 행했다.
우린 여기서 당시 고려사회 권력자와 그 가족들의 심각한 도덕적 해이를 볼 수 있다.
김부식 아들 김돈중 사건, 정중부 아들과 사위의 권력남용, 이의민 가족들의 행태등등
문벌귀족사회 권력기반이 혈연과 사적인맥에 집중되면서 이들은 사리사욕과 방종에 빠졌고, 이러한 풍조는 사회 전반에 걸쳐 부패와 불신을 심화시켰다.
무신정권 또한 문벌귀족사회 이런 행태를 바꾸기 커녕 더 심화시켜 갔을 뿐이었다.
이러한 행태는 단지 한두 인물의 일탈이 아니라, 당시 고려사회에 서 권력을 쥔 자들의 전반적 도덕 불감증을 드러내는 사례였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종종 문제가 되는 권력자나 재벌2, 3세 방종한 행태는 과거 고려전기 문벌귀족 사회와 무신정권기 권력자 가족들 행태와 여러 면에서 닮아 있다.
가문에 의해 보장된 권력기반 속 에서 자신들이 법 위에 있는 듯 행동한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또한 사적 욕망에 충실하고 공적 책임은 경시한다는 점이다.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것은 고려사회만으 문제는 아니다. 우리 한국사를 관통하고 있는 우리나라 지도층들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이다.
과거 고려전기와 무신정권기의 권력자 가문들이 보여준 도덕적 타락과 권력의 사유화는 오늘날 에도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이 그러한 점을 보여주고 있다.
권력과 부를 독점한 소수집단의 도덕불감증은 어느 시대에나 공적 질서를 위협하며, 결국 민심이반 과 체제위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배우는 것이다.
고려의 사례는 오늘날 한국사회 가 지녀야 할 권력감시와 책임 윤리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한다.
결국 권력에 취한 이의민은 선을 넘는다.
앞서 말한 이의민 큰 아들 '이지순 사건'에 대해서는 다른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지순이 '김사미, 효심의 난' 때 토벌대 장군으로 출전하였는데 반란군들과 내통하면서 그들에게 물건을 팔아 막대한 재물을 챙기기까지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때는 이의민이 권세를 누리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역성혁명을 일으켜 자신이 왕이 되겠다는 야심을 가졌을 때였다.
이 때 이의민은 <십팔자위왕>을 퍼뜨리며 반란을 일으킬 궁리를 하게 된다. 집에다 사당을 차려 놓고, 경주 일대에서 널리 믿던 '두두리'라는 목신(木神)을 밤낮 으로 섬겼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의민 고향 경주 에서 신라부흥을 주장하며 일어난 '김사미, 효심' 반란세력과 내통 하면서 이들을 이용하여 자신이 직접 황제에 오를 생각을 한 것 이다.
그래서 이의민 아들이 진압군 대장으로 나서 반란군과 내통하여 물건을 파는 형식으로 지원했다는 설이다.
이 설이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가장 진실에 가까워 보인다.
아무리 이의민 큰아들 이지순이
막 되먹었다고 하더라도 자기 생명이 달려있는 병장기를 적군 에게 팔아 먹을 장수는 없을 것 이기 때문이다.
일부 역사전문가는 이의민이 죽은 뒤 그 지방에서 일어난 반란 진압 실패한 책임을 이의민에게 뒤집어 씌우기 위한 후대조작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처럼 황제까지 꿈꾸던 이의민정권 몰락은 의외로 사소한 일 에서 비롯되었다.
이의민 둘째아둔 '이지영'이 기르던 '매'가 이웃집에 살던 '최충수'(최충헌의 동생)가 기르던 집비둘기를 잡아 채어 간다.
최충수는 열 받아 이지영을 찾아 가서 당장 집비둘기를 돌려 달라 하지만 이지영은 최충수 말투가 무례하다며 결박까지 했다.
당시 최충헌 집안은 고려에서 알아주는 무신가문이었는데
천민출신 이의민 아들이 결박까지 해서 망신을 주었으니 최충수는 대노했다.
이 일로 열이 받을대로 받은 최충수는 자기 친형 '최충헌'에게 달려가서 이의민을 제거하자고 먼저 의견을 낸다.
최충헌도 처음에는 동생 최충수를 만류하였지만 최충수가 단순히 열받아서 그러는 것이 아님을 보고는 이의민 일가를 제거할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다.
틈을 엿보던 최충헌 최충수는 말을 타고 가고있는 이의민을 급습하여 최충수가 먼저 칼을 휘둘렀으나 빗나갔는데 곧 바로 최충헌이 덤벼들어 칼로 베어 말에서 떨어뜨린 다음에 목을 베었다고 한다.
우리 역사상 최강무인 척준경에 비교될만한 금강야차 이의민 최후로서는 너무 싱겁다. 당시 이의민 나이는 60대 초반으로 추정된다. 세월이기는 장사가 없다는 말이 맞긴 하다.
이의민 아들인 이지순과 이지광은 그 자리에서 잠깐 피하여 군을 일으켜 반격하려 했지만 결국 이들도 붙잡혀 비참하게 목숨을 잃었다.
이지순과 이지광이 먼저 죽자 이지영은 모든걸 포기했는지 마지막 죽기 전에 해주로 달아나서 거기서 잔치를 벌이며 즐기다가 그를 추격해 온 장군 '한휴'에게 붙잡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후 이의민 일가 3대가 모두 몰살 당했다. 참말로 새때문에 이의민일가도 새가되어 버렸다.
정중부 일가가 경대승에게 당했듯 이의민 일가도 최충헌 최충수 형제에게 모조리 도살 당하고 만 것이다.
어떻게 보면 무신시대 최고 권력자들이 소수 병력에 의해 참 쉽게 당하는 것이 이해하기 힘들지만, 역사상 대부분 성공한 쿠데타도 소수병력으로 급습해 성공했으니 그렇게 볼 수밖에 없다.
이유불문하고 한 나라 최고권력 들이 이토록 쉽게 허물어 진다는 것도 문제가 크다.
어쨌든 권력의 말로는 처참했으머 그 말로는 늘 피로 얼룩졌다.
최충헌은 이의민 제거 이후 단순히 그를 암살한 데서 그치지 않고, 명종의 책임도 물어 왕에서 폐위시키고 궁에 유폐시켰다. 다만, 황제를 살해하지는 않았단 점에서 이의민과는 달랐다.
인류역사 전체를 관통하는 다음 명제를 이의민정권은 제대로 보여 준다.
"칼로 일어선 자, 칼로 망한다."
이의민 생애도 바로 이 문장을 그대로 증명해낸 비극적 서사 였다.
천민에서 시작해 고려최고권력에 오른 그는, 자신 신분적 한을 딛고 개혁자가 될 수도 있었으나, 오히려 더 포악하고 더 야비한 지배자로만 기억 된다.
이의민은 집권은 겁 많고 야비한 인물이 권력을 잡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이기도 하다.
이어서 무신정권의 절정 '최충헌'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ㅡ 초롱박철홍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