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살과 풍자 그리고 자비의 전설, 전등사로 1... (여행을 떠나며)
전등사의 대표적인 전각인 대웅보전... 조선 중기의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건축물이다. 하지만 세상에 더욱 유명하게 된 것은 대웅보전의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나부상(裸婦像) 때문이다. 전설에 의하면 대웅보전 건립에 참여한 도편수(都邊首)... 건축공사를 담당하던 기술자의 호칭으로, 각 분야의 책임자인 변수(邊首)의 우두머리라는 뜻이다. 그는 불사(佛事)를 하던 중 마을의 주모(酒母)와 깊은 사랑에 빠졌다. 佛事를 마치면 주모와 결혼할 생각으로 정성껏 모아둔 돈을 맡겼단다. 하지만 주모는 공사가 마무리 직전에 도망을 갔단다.
사라진 주모 때문에 몇 날을 힘겨워한 都邊首... 마음을 다잡고 공사를 마무리 하였다. 공사가 끝나갈 무렵 대웅전의 처마 네 군데에 지붕을 떠받치는 벌거벗은 여인상을 만들었다. 욕심에 눈이 멀어 사랑을 배신한 여인에 대한 증오심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을 배신하고 도망간 여인이 대웅전에 들려 부처님의 말씀을 들으며 잘못을 뉘우치고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라는 도편수의 염원도 반영되었단다. 어떤 사람은 나부상(裸婦像)이 아니라 사찰을 수호하는 원숭이로 간주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裸婦像이나 원숭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성불(成佛)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불법의 등불을 전한다.’는 전등사(傳燈寺)... 고구려 소수림왕 때 아도화상(我道和尙)이 진종사(眞宗寺)로 창건하였다. 그 후 고려 충렬왕비인 정화궁주(貞和宮主)가 인기(印奇) 스님으로 하여금 송나라에서 펴낸 대장경을 인간(印刊), 봉안(奉安)하도록 한 것과 옥(玉)으로 만든 전등을 시주한 것에 의해 傳燈寺라 하였다. 왕의 후궁을 일컫는 宮主... 貞和宮主는 누구일까? 고려 20대 왕인 신종(神宗)의 막내 왕자인 양양(襄陽)공의 손녀이며 시안(始安)공의 딸이다. 그녀는 충렬왕이 태자(太子)로 있을 때 정비(正妃)로 책봉되었다.
하지만 충렬왕이 원나라 세조의 강요에 의해 세조의 딸인 제국공주와 장가를 들면서 正妃의 자리를 박탈당하였다. 貞和宮主는 별궁에 내쳐져서 왕과는 상봉조차 할 수 없는 가련한 신세가 되었다. 이어 제국공주와의 사이에서 충선왕이 태어나면서 자신의 소생인 원자 강양공도 태자의 자리에서 쫓겨나 충청도 아주(牙州, 지금의 아산)로 유폐(流弊)되었다. 나라를 잃어 속국이 된 것도 원통한데 적국의 공주에게 왕과 태자까지 빼앗겼으니 궁주의 원한을 말할 수 없다. 이 정화궁주의 한이 서린 전등사... 5월 25일 한화관광을 따라 여행을 떠났다.
익살과 풍자 그리고 자비의 전설, 전등사로 2... (김포에서)
대전을 떠난 여행길... 열흘 전 마니산을 다녀왔기 때문에 중복된 부분은 생략한다.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서울로... 한남대교에서 올림픽대로와 국도 48번 도로를 따라 김포까지는 같은 길로 달려갔다. 통진면에서 출발하는 인천남항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타고 대곶IC로 나갔다. 이 고속도로는 대곶, 검단양촌, 북청라, 남청라, 인천항까지 연결하는 도로다. 앞으로 안산, 송산, 봉담, 동탄, 이천, 양평, 화도, 포천, 파주, 김포로 이어지는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 제2순환 고속도로를 완공할 계획이란다. 대곶IC에서 356번 지방도를 타니 바로 김포 대명항이다.
강화해협을 사이로 강화도와 마주보는 곳에 있는 대명항은 항구라기 전에 포구(浦口)라는 것이 맞을 것이다. 김포시 유일의 이곳 대명항은 규모는 작지만 서해에서 잡히는 각종 어류를 판매하는 어판장, 횟집 등이 있어 관광객의 말길이 끊이지 않는 낭만과 활력이 넘치는 어항이다. 또한 서해의 아름다운 석양과 어촌의 호젓한 바닷가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이곳의 함상공원... 62년 바다를 지켜오다 2006년 퇴역한 상륙함을 활용하여 조성한 수도권 유일한 함상공원이다. 이곳에서 다양한 볼거리는 물론 함상 체험 등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이곳의 덕포진(德浦鎭)... 서울로 진압하는 골목인 손돌목에 천혜의 지형을 이용하여 설치한 조선시대의 군영(軍營)이다. 손돌목... 그 유래는? 몽고군이 고려를 침입하여 도성으로 쳐들어오자 고종(高宗)은 강화도로 피난하게 되었다. 배를 구하지 못한 고종은 손돌의 작은 나룻배를 타게 되었다. 물길이 좁아 앞이 보이지 않고 세찬 물살에 배가 심하게 요동치자, 겁에 질린 고종은 뱃사공이 자신을 죽이려는 줄 알고 손돌의 목을 베라고 명령하였다. 손돌이 이지역의 물길이 험해서 그러한 것이라고 했지만 고종은 손돌의 애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자 손돌은 체념하고 물 위에 작은 바가지를 띄우고 그 바가지를 따라가면 강화도에 무사히 도착할 것이라고 말한 뒤 죽음을 받아들였다. 흘러가는 바가지를 따라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한 왕은 자신이 경솔하였음을 깨닫고 뱃사공의 시신을 거두어 후하게 장사를 치른 뒤 사당을 세워 억울하게 죽은 손돌의 넋을 위로하였다. 진심을 받아주지 않은 고종... ‘어리석은 사람은 비참한 일을 당해야지만 깨닫는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씀이 생각난다. 이런 어리석은 사람도 있다. 바람을 향해 짚을 던지는 사람, 여우한테 설교를 들으러 오는 거위, 누이 믿고 장가를 가지 않는 사람, 장사지내러 가는 사람이 시체를 두고 가는 사람도 있다.
익살과 풍자 그리고 자비의 전설, 전등사로 3... (초지진에서)
대명항에서 초지대교를 건너면 강화군 길상면이다. 강화와 김포 사이의 해협(海峽)을 염하(鹽河)라 한다. 폭이 좁은 곳은 2-300m, 넓은 곳은 1km 정도이고, 길이는 약 20km다. 鹽河는 밀물 때의 최대 유속은 약 3.5m/sec로 물살이 거세고 수심이 얕아서 썰물 때에는 곳에 따라 바닥이 드러나기도 한다. 염하의 북쪽으로는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의 강물이 흘러들어 온다. 염하 북쪽의 월곶과 남쪽 황산도 간에는 해수면 높이 차이가 아주 커서 물살이 빨라진단다. 조선시대에 삼남지방에서 서해를 북상해 온 세곡선(稅穀船)이 염하를 통해 한강으로 진입하여 한양으로 들어갔다. 또한 예로부터 우리나라 군사적 요충지다.
그런 이유로 강화에는 5진(鎭), 7보(堡), 8포대(砲臺), 54돈대(墩臺) 등 수많은 방어유적이 산재해 있다. 지금의 대대급의 鎭과 중대급의 堡, 소대급 병력이 주둔한 돈대(墩臺)가 있었다. 돈대는 보다 높은 지대에 망루(望樓) 또는 포(砲)를 설치한 곳이다. 근처에 초지진(草芝鎭)과 광성보(廣城堡)가 있다. 草芝鎭은 효종때 구축하였다. 성곽의 둘레가 500m도 안 되는 작은 규모의 방어시설이다. 조선 말기, 한양으로 향하는 적군의 침략을 저지하는 군사적 요충지였던 이곳은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운양호사건을 거치며 외적의 공격을 막아냈던 곳이다.
관군의 붉은 피가 물들었던 역사의 아픔이 서려 있는 초지진은 당시 격렬한 전투의 흔적이 성곽 입구의 소나무에 포탄 흔적(痕迹)이 아직도 남아 있다. 廣城堡는 광해군 때 설치하였으며 신미양요 때 가장 큰 격전지였다. 당시 조선군 지휘관 어재연(魚在淵)장군 형제 이하 전 용사가 열세한 무기로 용감하게 싸웠다. 포탄이 떨어지면 칼과 창으로 싸우고 칼과 창이 부러지면 돌과 맨주먹으로 싸워 한 사람도 물러서지 않고 전원이 장렬히 순국하였다고 한다. 이때 전리품으로 빼앗긴 수자기(帥字旗)... .2007년 환수(還收)하여 국립고궁박물관에 있다.
조선군의 명예와 자존심을 상징하는 것으로 총대장이 본진에 꼽는 깃발인 帥字旗... 지휘권을 상징하고 장수의 위상과 기개와 힘의 표상(表象)이다. 이는 장기 판에서 왕을 잃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수자기는 현존하는 유일무이(唯一無二)한 帥字旗란다. 어재연장군의 살신성인(殺身成仁) 정신... 이순신, 권율, 김시민 등 임진왜란 때의 혁혁한 공로를 남긴 장군에 못지않은 투지로 싸웠으니 청사(靑史)에 빛날 일이다. 한편 병인양요 때 열악한 병기로 우세한 프랑스군과의 정족산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양헌수 장군의 비각이 전등사 내에 있다.
살과 풍자 그리고 자비의 전설, 전등사로 4... (초지진에서)
초지대교를 건너 전등사 동문에 도착 정족산을 등반하는 회원들을 내려놓고 다음 코스인 외포리 선착장에 가서 밴댕이회와 삼식이 탕으로 점심을... 몸에 수많은 사마귀모양의 돌기로 덮여있는 삼식이... 수베기, 꺽지, 꺽주기, 삼수기, 멍텅구리, 탱수라 하는데 표준어는 삼세기다. ‘못생기고 바보 같다.’는 놀림말로 쓰이는 삼식이는 여기서 유래하였단다. 한편 하루에 세 끼 모두를 집에서 식사를 하지 않은 사람을 영식님, 한 끼만 먹으면 일식씨, 두 끼만 먹으면 이식이, 하루 세끼를 모두 먹으면 삼식놈, 간식까지 먹으면 간나새끼, 밤참을 먹으면 종간나O끼란다.
한국 연근해, 일본 북부, 베링해 등의 북태평양 등에 분포한 이 생선은 매운탕으로 즐겨먹는다. 마니산 입구에 있는 세계춘화(春花)박물관.. 소장하고 있는 춘화는 진품과 사진을 합쳐 160개국 5000여점이나 된다. 사방 벽면을 가득 채운 압도적인 춘화의 양에 먼저 입이 딱 벌어지고, 상상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춘화들의 기기묘묘함에 또 한 번 놀란다. 삼척의 해신당공원이 생각난다. 풍랑에 휩쓸려 죽은 처녀의 원혼을 달래고 풍어를 기원하기 위해 나무로 남근 모형을 깎아 제사를 올린 풍습에서 실마리를 얻어 조성하였다. 또 제주도의 ‘제주러브랜드’와 ‘건강과 성 박물관’, 서울 인사동의 ‘재미있는 성문화박물관’도 있다.
다시 전등사에 도착하여 계단을 오르니 성문(城門)을 통과해야 한다. 바로 신화와 호국의 정기가 어린 삼랑성(三郎城)이다. 단군의 세 아들 부여, 부우, 부소가 쌓아서 이름 지어진 三郎城... 조선 말 외침을 방어한 양헌수의 승전비각이 있다. 우거진 나무 숲 사이로 이어가니 윤장대, 대조루, 대웅전이다. 나부상(裸婦像)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다른 사찰에 없는 정족사고(鼎足史庫)... 임진왜란으로 춘추관(春秋館)과 충주(忠州) ·성주(星州)의 사고가 불타고 유일하게 남은 전주(全州)사고... 복사본을 마니산사고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보관하였단다.
이곳에서 나와 초지대교를 거쳐 대곶IC로 진입하였다. 차 안에서 술잔이 오간다. 한 번에 술잔을 비우는 것이 ‘원샷이냐? 완샷이냐?’로 갑론을박(甲論乙駁)이다. ‘원샷은 한 번에 다 비우는 것이고 완샷은 완전히 비우는 거란다.’ ‘完샷은 한 번에 털어 넣기, 願샷은 원하는 만큼만 마시기’란다. 전에 술을 먹을 때 만취 상태에서 칫솔에 물을 묻혀야 하는데 소피로 묻힌 기억이 난다. 하지만 요즘 소주는 생수로, 맥주는 보리차로 색깔을 맞추며 분위기를 조절한다. 인천에서 정왕IC, 서평택, 안성JC를 거쳐 대전으로 오면서 여행을 마친다. 감사합니다.
양헌수 승전비
대웅보전의 나부상(裸婦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