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제위원들 '감금생활' 32일
12일 오후 6시 5분 수능시험 종료 벨이 울리는 순간 강원도 바닷가의 한 합숙장소에서 663명이 32일(10월 12일~11월 12일) 만에 '감금'에서 풀려났다.
수험생만큼이나 긴장된 시간을 보낸 출제위원단(대학교수 및 고교 교사) 300명을 포함, 검토위원단(고교 교사) 182명, 관리요원단(요리사·편집전문가·삽화전문가·자료관리자·보안담당자 등) 181명 등이었다. 대기하고 있던 24대의 버스가 일제히 시동을 걸고 이들을 태운 뒤 전국 각 지역의 집으로 보내주기 위해 출발했다. 출제 참고용으로 반입했던 각종 수험서와 참고 문헌들도 7대의 트럭에 실렸다.
이날 출제된 수능문제는 모두 51개 과목에 1118개 문항. 단순 셈법으로는 1인당 4문항을 낸 셈이다. 하지만 16년째 이어진 수능의 출제위원들로서는 '하늘 아래 새로운' 문제를 찾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기출문제와 겹치면 안되고, 시중의 수험서 '베끼기' 논란에도 휘말리면 안된다. 수능을 관장하는 교육과정평가원 김성열 원장은 "같은 문제 안 내려고 문제를 이리저리 꼬는 방식으로 내다보면 이중(二重) 정답 논란이 나올 위험도 있다"고 말했다.
초벌 수준으로 출제된 문제는 먼저 검토요원으로 합숙 중인 베테랑 고교 교사들이 1차 검증을 한다. 다른 과목 출제위원들도 상호 검증을 한다. 이런 검증방식 때문에 영어는 그동안 단 한번도 오류가 없었지만 물리 등 과학 분야는 상대적으로 많았다는 얘기도 나온다. 상호 검증 과정에서 영어는 누구나 한마디씩 할 수 있지만 물리 등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수능 영역별 인쇄 순서에서는 언어영역이 늘 맨 마지막이다. 지문이 많다보니 기출문제와 겹치지는 않는지 등을 살피는 데 그만큼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평가원 김정호 수능본부장은 "철저하게 검증하면서 수정을 거듭하다보니 위원들이 최초 출제했던 문제가 그대로 인쇄되는 경우는 하나도 없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32일간 이들의 생활은 철저히 외부와 차단됐다. 국가정보원의 보안 전문가들이 합숙소로 와서 전화와 인터넷, 휴대폰을 모두 끊었고 전파 차단기도 설치했다. 세상과의 소통 창구는 신문과 TV뿐이었다. 이들에게는 주변에 장막 등을 쳐서 외부에서 안 보이게 위장한 운동장이 제공됐다고 평가원측은 전했다. 출제위원들은 걷기나 조깅 등으로 스트레스 해소를 하는데, 일부는 족구 등도 즐겼다고 한다. 한 번 들어가면 수능 끝날 때까지 못 나온다는 각서도 쓴다. 부모상(喪) 정도가 예외다. 이번 출제위원 중 한 명이 입소 일주일여 만에 부친상을 당했지만 2명의 보안요원을 대동하고 외출해 분향만 한 채 2시간 만에 돌아와야 했다.
고강도 스트레스 업무인 만큼 수당은 출제위원은 하루에 30만원, 검토위원은 하루 20만원이다. 출제위원의 경우 32일 '감금생활'의 보상으로 약 960만원을 받은 셈이다.
'술 먹고 문제 낸다'는 소문 때문에 지난 2005년부터는 술 반입도 금지시켰다. 단 1차 검토가 끝난 뒤와 시험지 인쇄 직전에 두 번만 맥주를 넣어준다고 교육과정평가원은 밝혔다.